자주 지나다니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며칠전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단체로 모여 목청높여 원색적인 구호로 군형법 개정에 반대를 하고 계셨습니다. 개신교 단체도 같이 있더군요. 그분들의 오래된 주관을 바꾸기란 참 어려운 일 같아서 한편 슬프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면서 요즘들어 자주 마주치는 개신교단의 행태를 떠올리며 분노도 치밀었습니다. 그러다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서 남겨봅니다.
자기 문제를 홀로 직시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혐오스러운 일이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중에서
사랑을 최고의 덕목으로 하는 종교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큰 문제를 언제쯤이나 직시하게 될까요? 외부의 적을 만들어 자기네들끼리 공고해지고자 하는 근본주의자들의 그 뿌리깊고 어리석은 혐오는 언제쯤이나 그치게 될까요? 그들과 우리들이 언제쯤 되면 서로 아무 거리낌없이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요?
그러게요 언제쯤 그렇게 될까요? 머무르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이루어 질 날도 있겠죠? 그런 현상들에 너무 힘들어 하지도 말고 위축되지도 말고 한걸음 한걸음 한 번 뿐인 인생인데 희망적으로 살다보면 자기자신의 삶에서 만족을 얻고, 그런 힘이 더욱 그런 현상들을 힘들지 않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주 지나다니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며칠전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단체로 모여 목청높여 원색적인 구호로 군형법 개정에 반대를 하고 계셨습니다. 개신교 단체도 같이 있더군요. 그분들의 오래된 주관을 바꾸기란 참 어려운 일 같아서 한편 슬프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면서 요즘들어 자주 마주치는 개신교단의 행태를 떠올리며 분노도 치밀었습니다. 그러다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서 남겨봅니다.
자기 문제를 홀로 직시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혐오스러운 일이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중에서
사랑을 최고의 덕목으로 하는 종교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큰 문제를 언제쯤이나 직시하게 될까요? 외부의 적을 만들어 자기네들끼리 공고해지고자 하는 근본주의자들의 그 뿌리깊고 어리석은 혐오는 언제쯤이나 그치게 될까요? 그들과 우리들이 언제쯤 되면 서로 아무 거리낌없이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