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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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친구사이, 바이모임을 만나다 - 웹진 '바이모임'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는 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예쁘다, 귀엽다, 깜찍하다, 섹시하다, 우아하다, 적극적이다, 자유롭다 등등. 하나로만 규정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가 무수히 모여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성소수자도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만 있는 게 아니겠죠. LGBTAIQ라고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셀 수 없는 다양한 성 정체성/성적지향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봄날의 기운이 움트는 어느날, 친구사이가 바이모임을 만났습니다. 스스로를 바이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한 분들이지만, 그 안에서도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졌는데요. 개개인의 생각들이 자유롭게 오고간 이번 인터뷰는 마치 간담회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바이모임에서는 네 분이나 와 주셨구요. 친구사이에서도 소식지팀인 크리스와 황이, 그리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카노님이 함께 하였습니다.
▲바이섹슈얼 플래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크리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친구사이 소식지팀 팀장 크리스라고 하구요. 4월호 인터뷰를 이렇게 바이모임 여러분 모시고 하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와~ 박수소리] 오, 박수치는 분위기군요. [웃음] 마침 딱 이렇게 뵙게 되어 너무 좋네요. 먼저 처음 보는 자리니까 간단히 각자 소개하면서 시작할게요.
이브리 저는 이브리라고 하고요. 바이모임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름 창간 멤버로.
주누 주누라고 합니다. 저도 웹진 발행할 때 처음부터 있었고, 지금까지 3호째 함께 하고 있습니다.
황이 안녕하세요, 친구사이 소식지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이라고 합니다.
카노 저도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카노라고 합니다.
셀프 안녕하세요 저는 셀프라고 합니다. 바이모임에서 올해부터 새롭게 함께하게 되어서 사실 저도 아직 창간멤버 분들과 어색할지도 몰라요. 상황이 비슷합니다. [웃음]
무명 (닉네임을) 뭐라고 해야 할지 아직 못 정했는데... 그냥 무명이라고 할게요. 저도 셀프님이랑 마찬가지고 (웹진 바이모임 편집팀에) 막 들어와서 아직 낯선 사이지만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크리스 아하 네. 반갑습니다~ [일동 박수]
‘웹진’ 바이모임의 시작
크리스 우선 오늘 자리는 형식은 인터뷰지만, 그냥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간담회 형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기획해 봤구요. 그래서 먼저 그래도 저희가 궁금한 거 몇 가지 질문하고, 또 저희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욕만 안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주누 안 되나요? [다들 웃음]
크리스 한 귀로 흘리죠 뭐^^ 우선 바이모임이 총 3호까지 웹진을 발행했잖아요. 그래서 밖에서 보시는 분들은 지금 ‘웹진으로 활동을 하고 있구나’라고 이해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처음 모임을 2013년 9월에 가지셨다고 봤어요. 그래서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신 건지 궁금하더라구요. 또 다양한 형태 중에서도 온라인 웹진이라는 걸 표방하게 되신 거잖아요. 그렇게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이브리 아마 웹진을 하기로 작정하고 처음 만나게 된 게 그때일 거예요. 아예 처음 시작을 아주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보다 훨씬 오래됐고요. 예전에 ‘바이모임’이라고 홍대 쪽에서 모임을 가진 적이 있거든요. 사실은 원래는 다른 바이섹슈얼 분이 먼저 모이자고 해서 갔었던 게 계기가 되어서 저희가 모임을 주최하게 됐어요. 딱히 뭐 단체나 활동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도 모여 보면 좋지 않을까 했던 거죠. 그래서 ‘캔디’라는 다른 한 분과 제가 결심을 하고 모임을 함께 주최했고요. 캔디는 지금은 웹진 바이모임으로 같이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서 거의 30명 가까이 처음에 모였던 것 같아요. 그때 느낀 건 저도 바이라고 하고 다니고 있지만 이렇게 많은 바이가 한 자리에 모인 건 처음 봤다는 거고, 얘기하면서 공감하는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되게 다른 것도 있다는 거.
그 후 모임을 몇 번 더 했었어요. 원래는 다른 바이섹슈얼 분이 먼저 모이자고 해서 갔는데 저희가 좋아서 그 다음엔 몇 번 더 모이자고 한 거죠. 근데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일회성으로 휘발돼 버리는 게 아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이섹슈얼들이 이렇게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기회가 없어서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프라인이 좋은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 같은 게 있잖아요. 물론 지금도 비공개 온라인 까페는 여러 개 있겠지만, 좀 더 잘 모아서 잘 정리해서 여러 사람이 보기 편하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냥 웹진을 만들게 된 거였구요. 자유게시판만큼은 아니지만 또 너무 딱딱하지는 않은 플랫폼을 찾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웹진이 된 것 같아요.
크리스 그럼 처음 모인 분들이 다양한 형태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웹진으로 가자고 해서 그렇게 협의를 보신 거죠?
주누 그게 그렇게 스무스하진 않았어요. [웃음] 아까 이브리님이 얘기한대로 ‘바이모임’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3월쯤부터 몇 번 모임을 했는데, 그땐 웹진 컨셉은 아니었고 사람들을 모아서 얘기를 듣자는 거였고 여럿이 모인 상황에서 각각의 모임에 주제가 있었어요. 지금 발행되고 있는 웹진에도 보면 제목하고 타이틀이 있잖아요. ‘커밍아웃’이나 ‘아무거나’ 같은 주제는 사실 오프라인에서 먼저 다루었던 주제인데, 그때 녹음을 했어도 그걸 어떻게 콘텐츠로 쓸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갈하게 잘 정리해서 기록을 남겨 놓고 사람들한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여러 가지 아이템들 중에 웹진이라는 형태가 나왔던 거죠. 게다가 개인적으로 솔직한 이유 중 하나가 다른 걸 할 줄 모르니까 차라리 글 쓰는 게 제일 편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예전에 모였던 20~30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가지고 준비를 같이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 모임 준비는 2~3명이 하고, 계속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래서 이 사람들 중심으로 이걸 응집시킬 수 있는 다른 콘텐츠로 가자고 해서 웹진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던 거죠. 그러고 나서 이제 9월에 첫 웹진 편집회의를 거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크리스 음 되게 흥미로운 지점이네요. 예를 들어 모임에 딱 나갔는데 와 사람 참 많다, 바이섹슈얼 참 많구나 하면 계속 모임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굳이 뭘 하지 않더라도 친목이라든지, 아님 주제를 정해서 매번 모인다든지. 그렇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오프라인 모임을 더 가진다거나, 꼭 그 멤버끼리 쭉 같이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더라도 관계 형성 식으로 해서 계속 모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약간 마음에 맞는 분들끼리 소규모 온라인으로, 웹진으로 갔다는 게 흐름이 재밌는 것 같아서요. 지금 생각했을 때 아쉽다거나, 그 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하는 게 있으신지.
이브리 어…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일단 맨 처음에 했을 때 사람이 제일 많이 모였는데 거기서 막 그렇게 얘길 했거든요. 만난 자리에선 막 너무 좋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모이고 어떤 활동도 같이 기획해보자고 여러 가지 얘길 했었는데, 그 다음엔 안 오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요. 이미 이전 참가자들 간에 SNS를 통해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모임에 참여할 이유가 없는 걸까 추측도 하고 고민도 해봤는데, 그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요. 어쨌든 참가자 수가 줄어드는데, 예전에 왔던 사람을 강제로 오라고 할 순 없거든요. 그렇기도 하고 매번 다른 사람들이 오는 게 의미는 있지만, 그 모임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개인으로 시작한 거잖아요. 몇 안 되는 인원들이 계속 참가신청자들의 SNS랑 메일 확인하고 준비하는 게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준비하는 입장에선 신경이 계속 쓰이는 거죠. 이걸 매번 매달 하는데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고 이야기가 잘 되도록 준비하는 게 저희 쪽도 소모가 되게 큰 거예요. 그래서 저희도 재밌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뭔가 좀 더 모아보자 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황이 근데 어떤 모임이든 그렇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것 같아요. 친구사이는 단체가 이미 있고 구체적인 활동이 있고 해서 동기부여가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모임이든, 게이들도 친구사이 나와서 활동하는 사람들보다는 자기들끼리 네트워크 형성해서 노는 게 훨씬 많아요. 온라인 밴드 같은 거 만들어서 활동하다 또 친한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갈라지고, 그럼 다 같이 모이기 힘들어지고. 그 모임이 흐지부지되면 또 다른 밴드가 생기고.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약간 어떤 모든 모임의 생리가 아닌가요. [웃음]
크리스 아 그렇군요. 근데 또 궁금한 건 모임 이름이 바이모임이잖아요. 딱 보면 바이섹슈얼들이 있는 모임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는 모임명인데, 모임명은 어떻게 해서 짓게 된 건지요?
이브리 아, 그거 정말 별게 없는데. [웃음] 다른 사람이 주도한 모임에 갔다가 저희가 좋아서 계속 열기로 했다고 했잖아요. 저희가 처음 본, ‘바이섹슈얼 모여서 이런 얘기해요~’라고 모임을 여신 분이 그걸 바이모임이라고 불렀던 거예요. 그때는 뭐 꼭 바이섹슈얼뿐 아니라 다양한 분들이 많이 왔었지만 어쨌든 이제 바이섹슈얼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자는 취지였는데, 이름이 입에 잘 붙으니까 모임을 하다가 이걸 웹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그냥 저희가 해오던 게 있으니까 바이모임이라고 하고. 검색에 잘 걸리기 위해서 ‘양성애, 바이섹슈얼, 바이, 폴리’ 이런 거도 걸어놓고. 암튼 저희는 나름의 연속성을 주기 위해서 약간은 그냥 그 이름을 계속 갖고 가면서 검색 키워드도 노린 거죠.
크리스 셀프, 무명님 두 분은 바이모임이란 이름, 맘에 드시나요?
무명 저는 뭐. 찾기 쉬웠기 때문에.
때론 사람들을 모으고 싶지만
주누 모임을 시작할 때는 어떤 바이섹슈얼에 관한 의제라는 게 기존에 얘기하던 것도 아니었잖아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물어보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고, 우리들도 글을 통해서든 뭐를 통해서든 해나가고 있는 상황, 그러니까 만들어가거나 혹은 안 만들까를 고민하는 상황인데 그런 요청들이 있는 거죠. 근데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실무를 맡을 사람과 물리적인 공간과 예산, 그리고 충분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루트 같은 게 필요하잖아요. 현재 상황에선 바이모임이 그게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그게 필요한지는 물음표 또는 우리 안에서도 합의를 하지 않은 상황이에요.
예를 들어 “바이인권단체 같은 게 필요해?”라고 했을 때 각자의 입장이 다 다를 수 있고,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서는 이게 계속 물음표가 있는 거죠. 근데 그거 자체가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된다면 그거 또한 놓치고 싶지 않고 잘 풀어가려는 마음이에요. 때때로 퀴퍼 같은 데에서는 사람들을 모으고 싶기도 해요. 웹진을 해보자라고 얘기하기 전 2013년 홍대에서 퀴퍼했을 때 조그마한 깃발을 만들었어요. 트위터로 ‘우리 같이 걸어요.’라고 홍보를 했는데, 아무도 안 온 거죠.
이브리 아니 아무도는 아니고요. 저희 외에 두 분이 더 왔어요. 그래서 서로 한 번씩 돌아가면서 깃발을 (들었어요). [웃음] 그래서 네 명 뿐이니까 따로 줄을 만들 수도 없고 해서 그때 당시 조각보(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준비위원회와 같이 걸었어요. 우린 아직 뭔가 오프라인으로 활동하기에는 조직도 없고 역량도 없다는 걸 그때 좀 알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단 좌담회라든지 해서 오프(라인)으로 모일 일이 더 있는데 그럴 때 오면 ‘저 바이섹슈얼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봐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만나본 적도 별로 없고, 서로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하는 것도 좋고 안 하기로 하는 것도 좋은데 그 전에 서로 얘기를 들어보자, 무슨 생각하는지 좀 알아보자 (이런 느낌).
카노 혹시 글을 읽고 사람들이 문의 같은 건 없나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나와 보고 싶다거나.
주누 트위터로 들어온 반응 중에 몇몇 개는 (개인적으로) 만나줬으면 좋겠다는 거. [웃음]
크리스 셀프, 무명님 두 분도 혹시 트위터 같은 거 통해 알음알음해서 오신 건지요?
셀프 그렇지는 않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 상에서 웹진 독자로 계속 보고 있다가 올해 웹진팀원 구인하신다는 걸 보고 함께하게 되었어요. 그 이전에 좌담회나 영화상영회 같은 행사는 비정기적이기도 하고 제가 항상 공지를 늦게 확인해서 참여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언제 한번 가볼 수 있을까 궁금해 하던 차에 올해 여러 가지가 시기적으로 맞아서 바이모임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 이메일을 보내게 되었어요.
무명 저도 웹진 보고 연락을 드렸는데, 저 같은 경우엔 여기 관련해서 했던 것도 없고, 사실 웹진을 처음 봤는데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원래는 그냥 평생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비슷한 사람들이 있구나 해서. [웃음] 글쓰는 걸 좀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럼 나도 쓰면 누군가 내 글에 공감해 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연락을 드린 거죠.
바이모임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크리스 그러시군요. 다시 웹진 얘기로 넘어와서, 지금까지 총 3호가 발행됐는데 주변 반응이 어떤지 좀 궁금하더라구요.
무명 저는 그냥 있는 거 자체가 좋았어요. 그 전에는 그냥 저만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우연치 않게 검색을 하다가 웹진이 있다고 해서 신기해서 봤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고 특히 제가 공감했던 글은 바이라고 누군가한테 얘기하거나 스스로 생각을 할 때 ‘내가 중2병에 걸려가지고 지금 바이라고 깝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스스로 되게 많이 했었어요. 내가 이상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 이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거 보면서 ‘아, 그러면 내가 중2병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고 약간 위로를 받은 게 좀 있어서. 거기서 그러면 나도 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연락을 드렸던 거고요. 주변에 친구 중에 딱 한 명이 알아서 그 친구한테 보여줬었는데 재밌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는데 폴리아모리 얘기도 많고 바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도 되게 여러 가지 있다는 것도 그 친구는 처음 알아서 계속 읽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것 같지만 독자로서의 심정은 좋고 빨리 참여하고 싶네요. [웃음]
셀프 저는 학교 다닐 때 성소수자 인권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저도 용어나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공부하면서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계속 ‘나는 뭐지?’ 이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요. 그래서 더 오히려 청소년기에는 동성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 ‘그럼 나는 트랜스젠더인가’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거든요 잘 모르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거치면서, 나중에 그런 활동을 더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에는 어떤 단체들이 활동을 하나 보던 중에 “친구사이” 같은 경우는 너무 유명하고 오래 됐고 많이 가시화되어 있는 커뮤니티가 있는가 하면, 바이섹슈얼 혹은 레즈비언 커뮤니티는 닫혀 있거나 외부에서 활동이 쉽게 보이는 단체가 잘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찾은 게 바이모임인데 온라인상으로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어쨌든 뭔가 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 당시엔 온라인에서만 보니까 훨씬 더 인원이 많을 줄 알았어요. [다들 웃음] 의미 있는 일이고 힘든 일인데 여기까지 끌고 와 주신 것도 감사하고. 제가 어떤 형식으로 얼마나 참여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바이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해요.
크리스 그렇군요. 솔직히 저희도 소식지를 만드는 입장으로서 저희 소식지를 읽는 독자 분들의 반응이 되게 궁금하거든요. 근데 거의 잘 안 읽는 거 같고 반응이 별로 없어요. [웃음] 그래서 바이모임 웹진을 읽는 분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했구요. 저희도 친구사이 처음 나오는 친구들 중에 많이 얘기하는 건, 자기도 잘 몰랐는데 홈페이지에 올라온 소식지, 커밍아웃 인터뷰 같은 것들을 보고는 오고 싶어서 왔다는 친구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바이모임 웹진의 영향력도 그런 게 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쭤봤던 거구요. 필자 분들은 주변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주누 3호 때 이전에 없던 기획을 하나 했었거든요. 독자분들이 짤막하게라도 웹진을 읽은 여러분들 감상이나 반응을 두서없이 우리에게 써달라고 했었어요. 아… 근데 실패한 기억이. 많이 안 들어왔어요.
이브리 실패라고 하긴 좀 그래요 왜냐면 주신 분들이 좀 있었기 때문에. [웃음] 근데 저희 생각처럼 많이 들어오진 않았던 거죠.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개인적으로 듣는 건 ‘무슨 호에 어떤 글이 좋았어’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은 적은 없구요. 그냥 ‘웹진 나왔더라~’ 이런 굉장히 애매한 반응밖에 없어서.
황이 소식지팀으로서 되게 공감가는 얘기네요. ‘읽어봤니?’ 그러면 ‘어 그래 좋았어~’ 이런 반응들. 그냥 단순히 ‘글 좋아요’ 이런 거. [웃음]
이브리 저희는 댓글도 많이 달리는 편은 아닌데. 아 그런 반응은 좀 많았어요. 안팎으로 제가 들은 반응 중에서 좀 많이 들었다 싶은 건 폴리아모리 이야기를 다뤄줘서 좋았고 또 다뤄줬음 좋겠다 이런 거는 기억이 좀 나요.
그리고 재밌는 건 공식석상에서는 절대 그렇게 얘기가 안 나오는데, 어쩔 때는 끝나고 둘이 있을 상황이 되면 ‘나도 예전에 이성을 살짝 좋아한 적이 있는데 그럼 나도 바이섹슈얼일까?’라고 물어보더라구요. 상담 요청처럼. ‘근데 그거는 되게 잠깐이었으니까 아닌 거지?’ 이런 식으로 저한테 물어보는데, 그러면 ‘그건 본인이 결정해야지 난 모르겠다’고 얘기하구요.
주누 그냥 ‘글 읽었는데 좋더라’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는 피드백을 줘요. 근데 이걸 다른 온라인 공간이나 정식적인 피드백으로 보진 않고 뭐 어떤 글을 읽었는데 뭐가 좋았다, 그리고 약간 농담반 진담반으로는 ‘어디 익명으로 해서 글 썼던데 그거 내 얘기지?’ 이런 것도 있었고.
이브리가 말한 것처럼 폴리아모리에 대한 얘기는 어떤 포인트가 된 거 같기도 하더라구요. 그거에 대해서 더 써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자기가 폴리아모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피드백은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관련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었거든요. (글: [기획] 어떤 바이-폴리의 커밍아웃) 그리고 한 편의 완성된 글이 아니라 좌담회에 대한 피드백은 많이 듣는 편인 것 같아요. 왜냐면 그게 저는 사실 그렇게 생각 안 했었는데, 분량이 꽤 많거든요. 근데 그걸 다 읽으시고 그 중에서 어떤 부분이 좀 많이 와닿았다는 피드백을 주시기도 해요. 기존에 했던 편집진이 아니라 그 좌담회에 왔던 분의 이야기를 보고.
크리스 저도 개별적으로 쓰신 글도 좋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특히 최근 나온 3호에 ‘바이가 바이에게 궁금한 몇 가지?’가 너무 재밌더라구요.
근데 사실 요즘 온라인은 잘 안 읽고, 오프라인으로도 많이 내고 하잖아요. 그런 고민은 혹시 해보신 적 있으신지 해서요.
셀프 (기존 편집진 분들)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 같은데. [다들 웃음]
주누 아무래도 돈 문제가 있고. 저희가 기존에도 블로그에 그 공간에만 올리는 게 아니라 PDF버전으로 따로 편집해서 올리는 게 아쉬움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예요. 우리가 인쇄를 해서 판매를 하거나 뿌리진 못하는데 집에 칼라프린트가 있으면 뽑아서 볼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살짝은 있었던 거죠. 뭐 아직 구체적인 건 아닌데 언젠가 1호부터 쭉 냈던 것들을 한 번 편집된 걸 인쇄를 해서 그럴싸하게 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브리 그러기엔 저희가 예산이 없기도 하고, 회의도 그냥 자비로 하구요. 일단 인쇄비도 구해야 되고 해서 예산 문제가 제일 크죠. 기금 신청도 고민은 하고 있어요. 책 형태로 만들어서 퀴어문화축제에서 판매를 하거나 이런 아이디어는 고민하고 있는데요. 모금도 가능은 하겠죠.
주누 홍보를 위해서 명함도 돌리거든요. 예전에 만들었던 거 뿌리기도 하는데, 어떤 회의나 연대체 같은 거 갔다 끝나고 나면 누군가 쓱 와서 ‘근데 나도 바이야’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구요. 뭔가 상담의 형태처럼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고. 또 한편으론 뭔가 이런 걸 요청하는 분들도 있어요. 누군가의 눈에는 되게 불안정한 상태, 조직화가 되지 않은 상태로 보이기도 하나봐요. 그래서 ‘조직해볼 생각 없어?’라는 제안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니가 하던가’라고 말하기도 하고.
▲바이모임 3호 ‘바이가 바이에게 궁금한 몇 가지?’ 중 발췌
우리가 모두 다 다른 것처럼
크리스 그러고 보니 주제는 보통 어떻게 정하시는지. 그리고 기고는 많이 들어오나요?
이브리 일단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쓰고 싶은 얘기 아무거나 보내세요’라고 하는 거보다는 생각의 씨앗을 던져주는 편이 사람들도 편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사실 꼭 정해진 주제만 중점적으로 다뤄야 한다거나 그건 아닌데 그냥 약간 생각을 시작하는 의미에서 그때그때 당시 회의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꽂혀있는 걸로 (했구요).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성애나 동성애가 아닌, 혹은 거기에 확고하게 들어가 있지 않은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진 분들이 글을 쓰면 좋겠다 해서 시작을 한 거였어요.
2호 같은 경우엔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많이 기고받고 싶어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얘기하고 싶어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다가 ‘연애’ 얘기하자고 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했는데. 꼭 연애를 하는 얘기만 아니라 나는 왜 연애를 안 하는가 그런 얘기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3호는 이제 다루고 싶은 주제가 뭘까 트위터에서 막 설문도 하고 이메일 보내주세요 했는데 아무도. [웃음] 그래서 그냥 우리도 모르겠다, 보내고 싶은거 보내보세요 해서 ‘아무거나’가 됐죠. 기고하시는 분들이 더 감을 못 잡긴 했지만.
주누 3호 같은 경우 우선 주제를 ‘아무거나’로 던져 놓고 나서, 기존 필진들 같은 경우엔 ‘아무거나’를 비틀어서 다른 식으로 글을 쓸 수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냥 외부에서 섭외 없이 기고를 하신 분들은 되게 어려워 하시더라구요.
이브리 사실 ‘아무거나’가 제일 어렵잖아요. “뭐 먹을래?” “아무거나.” 이러면 진짜. [다들 웃음]
주누 기고 같은 건 직접 섭외하거나 부탁하거나. 한 건은 이브리가 인터뷰를 해오기도 했죠. 글을 써주시기 힘든 상황이거나 인터뷰가 더 편하시면 직접 가서 인터뷰할 수도 있구요. 그리고 글만 받는 게 아니고 형식은 다 열어놨거든요. 영상은 딱 한 분 들어왔었고, 그 외 나머지는 아직 텍스트 형태로. 아, 그림이랑 같이 글이 실린 것도 하나 있어요.
크리스 저희랑 상황이 비슷하시군요. [웃음] 근데 바이모임은 뭔가 개개인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에요. 그게 어찌 보면 편할 수도 있는 반면에 개인 속사정을 끄집어내야 하는지라 부담스럽기도 하지 않으신가요? 예를 들어 마치 자신이 하는 얘기가 바이를 대표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잖아요 외부에서 봤을 때는.
이브리 그런 이유 때문에 다양한 분들에게서 기고를 받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사실 여기 편집진만 글을 쓰면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를 수도 있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으면 저희 목소리도 그냥 그 중에 n분의 1이잖아요. 그리고 또 모든 목소리가 웹진에 실리는 것도 아니구요. 그건 보시는 분들이 감안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그렇게 하는 거죠.
주누 2호 때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간담회 관련 글을 써는데, 실제로 그때 섭외가 들어와서 같이 준비했었어요.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 불러줘서 감사하다, 이런 조사 없었는데 여기까지 해줘서 참 좋다와 더불어서 읽는 분들에 따라서는 되게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뉘앙스도 썼었거든요. 고민고민하다 좀 그런 말투로 썼었어요. 저 혼자의 판단이었거든요. 같이 그에 대한 평가는 했었지만 글 자체는 저 혼자 썼고요. 글을 보면 개인 얘기 같은 게 나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개인 얘기를 안 쓰기도 하고. 각각에 따라 다른데 저의 글에서는 주로 제 얘기를 살짝살짝 집어넣어요. 대표성에 대한 걱정은 없어요. 누구도 저를 전형적인 바이 시스젠더 남성으로 보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냥 거기 써놓은 글 보면 아니거든요. [다들 웃음]
계속 드는 생각은 아주 어려운 줄타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왜냐면 어떤 이야기를 할 때는 분명 이 목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거거든요. 전부를 대변하냐 안 하냐 그에 대한 판단보다도 어쩌면 그 이야기가 어딘가에서는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써야 한다는 목적이 있는 건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그럼 바이섹슈얼을 전부 대변? 그래서 너희 이제 활동?’ 이런 식에 대한 부담이 왔다갔다하는 게 있어요.
이런 입장에서 보면, 바이섹슈얼 그룹을 “남성과 여성에게 성적 이끌림을 느끼고, 깊은 관계를 맺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정의에 국한하여서만 보고, 이 정체성과 경험과 맥락을 여타의 다성애적 정체성과 분리된 집단으로 별도 논의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지요. 특히나 이번 집단별 워크숍에 참여를 하면서 저를 비롯하여 바이모임 웹진의 필진들이 '바이모임'이란 타이틀을 가진 집단 소속으로서 참여하고 동시에 젠더퀴어 정체성을 가지신 분이 섭외되셔서 또 다른 패널로 참석을 하셨기에, 모양새는 바이섹슈얼 패널과 비LGB 퀴어 패널이 병렬적으로 위치되는 구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설령 이러한 분리/분절과 병렬화된 배치 방식이 애초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워크숍 현장에서는 사실상 그렇게 된 것으로 포지셔닝을 하게 되었고요. 저 스스로도 거기에 맞춰진 역할을 스스로에게 주입하고 있진 않았나 생각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기회였음에도 어디까지만 말해야지라며 말할 수 있는 범위를 한계 지은 채 거짓된(?) 패널 노릇을 하고 말았었지요.
- 바이모임 2호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발표회 참관 및 집단별 워크숍 참여 후기: 이번엔 과연 바이섹슈얼이 감춰왔던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중 발췌
황이 저는 소식지팀에 한 번 어떤 웹툰을 연재한 적이 있는데, 동성애자들이 종종 하는 음란한 얘기들을 주변 사람들이 보고는 ‘왜 그런 얘기들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냐’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제 생각을 웹툰으로 만들었거든요. 근데 그게 한번 다른 데 공유가 됐는데 거기에 대한 댓글이 너무 제 생각이랑 반대되는 게 남겨져 있는 거예요. 딱히 악플도 아니었는데, 그거 보고 제가 되게 상처받았어요. 이게 그러니까 대표성을 띤다는 게 너무 위험한 건 알겠는데. 아까 하신 말씀처럼 이런 생각도 있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끝까지 다 끝내긴 했거든요. 그래서 얘기하실 때 어떤 공감가는 게 있었어요. 아, 아름답다. [다들 웃음]
이브리 사실 저희가 또 인권단체라든가 그런 건 아니고. 저희 스스로도 글을 쓰지만 일단은 우리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딱히 우리가 대표다 이런 것도 아니고, 대표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어떤 정체성 집단이든, 한 개의 단체나 단 몇 명이 대표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크리스 웹진 만들면서는 뭐가 제일 힘드세요?
이브리 힘든 점을 막상 한 가지만 생각하려고 하니 힘드네요. [웃음] 말씀드렸듯이 예산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고 그런건 있는데 또 이게 사람이 엄청 많다고 잘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하면서 나름 재밌는 것도 있었고. 힘든 건 아닌데 그냥 가끔씩 온라인으로 반응을 보여주시는 몇 분 빼고는 거의 아무도 안 읽는 거 같다는 거.
크리스 맞아요. 우리가 그래 우리가. [다들 웃음]
이브리 그래서 가끔씩 ‘이거 왜 하지?’ 이런 거. 블로그 보면 검색 키워드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관리자 계정으로 들어가서 보면 뭔가 이 분은 우리가 하는 얘기를 궁금해해서 오신 게 아니라 뭔가 굉장히 막 기대한 게 없어서 화를 내고 가셨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블로그 방문자 수가 하루에 15명, 이렇게 찍힌다고 했을 때 진짜 게시물을 읽어보는 사람은 그 중에 또 얼마나 될까 하는 거죠. ‘한 호당 한 10명은 읽어줄까?’ 이러면서 혼자 삽질을 하고 일기를 쓰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고, 기고자 분들도 어쨌든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기고를 해주신 건데 홍보가 너무 미진해서 공유가 원활히 안돼서 그런 점은 굉장히 죄송하죠.
주누 1호, 2호가 4500, 5000씩 방문자가 있어요. 현재 3호까지 다 합치면 12,000쯤 되는데 이게 12,000명이 아닌 거잖아요 절대. [웃음]
크리스 다른 두 분은 혹시 가장 재밌었던 글이 어떤 거였는지요?
셀프 저는 ‘상상의 동물 바이섹슈얼 생태보고서’? (글: [특집] 상상의 동물 바이섹슈얼 생태보고서) 약간 꽁트처럼 풀어서 쓴 글이 있는데 재미있게 읽었어요. 바이마다 각자 다른 경험들과 생각들이 있으시지만 또 어떤 공유되는 지점들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크리스 저는 아까 주누님이 쓰셨다는 ‘어떤 바이-폴리의 커밍아웃’이 가장 좋았던 게, 얘기만 들었던 폴리아모리에 대한 글을 본 건 처음이거든요. 되게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론 참 용기가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했어요.
주누 사실 그게 밝힐 계획이 없었는데 글을 써야 되니까. [웃음] 물론 많이는 안 읽었지만 글을 썼다는 핑계로 이제는 까놓고 다녀요. 그래서 이상한 상담요청을 받기도 하고. 바이모임의 글들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악취미의 요소가 한 방울씩은 들어가 있거든요. 근데 그 글도 그런 요소가 있었어요. 왜냐면 바이섹슈얼이니까 남자 여자 다 만나니까 남자 여자 동시에 다 만나는? 뭐 쓰리썸을 한다든지 등의 스테레오 타입이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다라고 주로 많이 얘기되어 왔던 거 같아요. 바이섹슈얼은 여러 명을 만나니까 문란하거나 난잡할 거라는 얘기를 하셨었지만. 그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아니야. 우린 바이섹슈얼이어서 성적 지향이 그런 거지 둘이만 만나서 지고지순한 영원한 사랑을 해’라는 식으로 방어를 하시기도 하거든요. 그거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게 뭐 어때서?’라는 빡침도 사실 있었던 거예요. 셋 만나는 게 뭐 어때서 이런 거. 근데 그거를 어딘가에 풀고 싶었는데 너무 풀어버린 거죠. [웃음]
카노 여러 가지 읽어봤는데, 저도 이제 친구사이 나오기 전에 했던 고민이랑 나와서 했던 고민들이랑 그 다음에 커밍아웃할 때 친구들의 반응 이런 것들이 좌담회든 뭐든 모든 글들에 조금씩 다 걸쳐있는 거예요 제가 느꼈던 부분들이. 그래서 부분부분 공감하면서 특정 글보다는 전체적으로 다 (좋았어요).
크리스 친구사이 활동하면서 느낀 것들도 좀 있지 않아요?
카노 네, 물론 게이인권단체지만 성소수자 모두가 마음 편히 오갈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내면서 '아, 여기 인권단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했죠. [웃음] 저 같은 경우는 그 시청에서 농성했을 때, 게이 레즈비언 바이 등 모두가 같이 있던 공간에서 뭔가 큰 감동을 받고 마음을 크게 열었는데 다가온 게 너무 큰 상처였어요. 그리고 쉽게쉽게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들도 워낙 많아서, ‘그럼 너 여자 좋아하지 왜?’라든지, ‘넌 그럼 결국 결혼 할 거지?’라는 등 온갖 질문들이 있었어요. 아직까지도 저에게 친구사이 몇몇 사람들은 바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근데 저도 이제 처음에 게이라고 생각을 했다가, 그 다음엔 바이라고 생각을 했다가. 군대 갔다오고 이런저런 생활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
그러다가 트랜스젠더 모임이 있었는데 우연찮게 그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가 그럼 도대체 나는 뭘까 생각했어요. 게이들 사이에선 소위 ‘식’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저는 까놓고 말하면 잡식 같은 거죠. 어디에도 낄 수 없고, 얘기를 해도 누군가 내 얘기를 공감하면서 들어줄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혼자 붕 떠 있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저도 바이모임이나 행성인 같은 거 검색해서 알아보고 그랬어요. 다 알아보긴 했는데 일단 처음에 제가 정착하게 된 게 친구사이라 어디 가기가 무서운 거예요. 어디 가면 또 막 설명해야 하는데 이게 워낙 상처가 되니까요. 그럼 내 정체성과 관련된 모임은 없나 찾아봤는데 거의 없더라구요, 그냥 개인 블로그에 몇 개 말고는. 그게 없어서 항상 약간 겉도는 느낌? 그래서 바이모임을 나가볼까 생각을 했었는데 모임이 잘 없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친구사이에 계속 나가고 있고, 농담인 걸 알지만 가끔씩은 좀 버거울 때가 있죠.
이브리 네. 그래서 그런 느낌들을 좀 바이모임에 싣고 싶은데 어떠신지. [다들 웃음]
성소수자 통계가 놓치고 있는 건
황이 제가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친목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얼마 전 단톡방에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최근 어떤 사람이 성적인 플레이를 하다가 죽은 게 뉴스에 나온 거에 대해서 아무 밝혀진 것도 없는데 ‘얘 게이다, SM플레이를 하다 죽었다’ 이런 식으로 막 논의가 되니까 너무 빡치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나는 동성애자고 이런 식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논의되는 게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마침 내가 있고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 방 나가버렸거든요. 근데 나가자마자 그 방에 있던 3~4명이 ‘사실 나도 바이다’라고 말을 하고는 다시 초대해줘서 아직 그 단톡방에서 얘기하고 있어요. 진짜 보면 주변에 있는 거예요. 몇 년 동안 서로 몰랐는데.
무명 저도 예전에 고시반에 있었는데 거기 정원이 40명이거든요. 그럼 평균적으로 생각했을 때 3~4명은 있을 거 아니에요. [다들 웃음] 근데 얘기를 할 때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노골적으로 혐오 관련 얘기는 안 해요. 그러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잖아요. 그 얘길 하면서 ‘그럼 우리 학교도 그런 거 아냐?’, ‘생각해보니 걔도 레즈비언이었던 것 같애’라는 등의 얘기를 막 엄청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얘길 듣다가 ‘야 근데 여기 정원이 40명이니까 3~4명은 있을 거 아냐. 그럼 걔가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라고 얘기하니까 갑자기 막 충격을 받으면서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웃음] 저도 그 얘기를 하면서 순간 나 빼고 39명 중에 2~3명은 더 있을 건데 나도 모르고 있었구나 했던.
크리스 재밌는 경험들이네요. 안 그래도 인터뷰 준비하면서 미국에서 실시한 한 설문조사를 봤는데, 미국 성소수자 인구 중 본인을 바이섹슈얼이라고 표현한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또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서도 자신을 바이섹슈얼이라고 밝히고 참여하신 분들이 게이, 레즈비언만큼 많았잖아요. (* 바이섹슈얼(29.0%), 레즈비언(29.5%), 게이(31.5%)) 그래서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근데 왜 바이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하고 또 오픈하고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좀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해서요. 그게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인 건지, 왜냐면 제가 알기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인근 아시아 국가나 다른 곳은 바이섹슈얼 관련 단체도 많고 활발히 활동하는 것 같더라구요.
이브리 제가 그 미국에서 나온 조사결과를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영국에서 비슷한 조사를 작년에 했었어요. 근데 그냥 퀴어 커뮤니티뿐만 아니고 전체적으로 다 한 건데, 이성애자가 제일 많았고 바이섹슈얼을 뭐라고 해야 될지, 예를 들어 ‘나는 동성과 이성, 그러니까 여러 성에 끌려본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25세 이하 집단에서 기억하기로는 40% 가까이 됐고, 전체로는 한 20% 정도 됐어요. 근데 ‘그래서 당신은 성적 정체성을 뭐라고 표현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바이섹슈얼은 2%였거든요. 그래서 바이섹슈얼 관련 통계가 얼마만큼 나왔다는 것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거고, 제가 알기로는 어떤 통계치 같은 걸 보면 항상 MSM(Men who have sex with Men)이 게이+바이 남성보다 많잖아요.
욕망을 느끼는 거랑 정체화는 되게 다른데, 그런 바이섹슈얼로 정체화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하는 부분에서 사실은 모르겠어요. 흔히 우리가 바이섹슈얼적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느낌을 갖는 사람보다 실제로 ‘나는 바이섹슈얼이야’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은 엄청 적다는 거죠. 근데 그 과정에서 굳이 단어로 표현한다면 바이포비아가 많이 개입한다고 생각하고, 저희가 웹진에서 고민을 하거나 표현을 했던 얘기도 상당 부분 그런 거였던 거 같아요. 무명님이 말씀하셨듯이 ‘나 바이섹슈얼이야.’라고 하면 ‘너 중증 중2병이야. 니가 뭘 알겠니. 앞으로 살다보면 말야 니가 확고한 이성애자/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될 거야.’라고 하든지. [웃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다고 의심을 하는 거죠.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제가 들었던 말 중에 ‘동성애자는 너무 차별을 심하게 받으니까 그게 싫어서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는 거 아니겠느냐’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고 막 그런데. 차별을 피하고 싶으면 이성애자인 척 하는 게 제일 나을 텐데 말이에요.
황이 그런 말을 저는 고등학교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바이는 보통 동성애자인데 그걸 약간 감추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이브리 근데 뭐 비슷한 논리로 어떤 분들은 쟤들 다 이성애자인데 바이섹슈얼인 척 하는 거라고도 하고, 어쨌든 굉장히 진실되지 못한 뭔가로 여겨지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소위 말하는 이상한 정체성을 표방한 애들은 뭔가 뒤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관심 받고 싶거나 불순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고. 그리고 불안정한 정체성을 보이는 걸로 여겨진다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상 불안정한 정체성인 건 맞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런 불안전성을 받아들이고 살아야지라고 결심하고 사는 사람이 아직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을 수 있는 건데. 그렇다고 저는 막 ‘이렇게 해야 돼. 뭐로 정체화해야 돼’ 이렇게 얘기하고 싶진 않네요.
주누 아까 그 얘기 꺼내셨던 게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조사였던 것 같은데.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때도 그랬었고, 그 사람들이 되게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몇 명 중의 몇 명 혹은 각각의 정체성들이 몇 퍼센트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는 거잖아요. 근데 오히려 지금 얘기 나온 것처럼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는 뭐라고 묻는지에 따라서 어디에도 이게 숫자를 편입시킬 수 있는 애매모호한 질문들을 꽤 할 수 있는 상황인 거예요. 이게 뭐 악의적인 조작이라는 게 아니라, 대답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겠다는 거고 그래서 과연 우리가 전체 표집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계속 물음표가 하나 있기도 하고요.
다른 하나로는 때때로 그게 유행을 타기도 한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적어도 지금 미국의 어떤 세대 어떤 집단에서는 꼭 이성에게만 끌리지 않는 무언가 되게 힙(Hip)한, 시크한 걸로 여겨지기도 하고 누군가 어떤 셀럽이 바이섹슈얼이라고 미디어에서 밝힐 때에도 ‘저 사람이 예전엔 남자랑 사귀었는데 지금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와 키스를 하는 장면이 파파라치한테 찍혔다’는 얘기들이 뜨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러한 식의 언어들도 무관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저 같은 경우에도 그런 설문이 왔을 때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르겠는 거죠. 일단 사회적으로 생활하는 건 남자로서 큰 불편이 없긴 한데 내가 성별부터가 뭐라고 답변하면 편할지 모르겠는 거고, 그냥 연애 경험을 싹 뒤져봤을 때 왠지 항목이 서너 개만 있다고 한다면 그 중에서 못 골라서 그냥 편한 거 하나 고를 수도 있는 거구요. 물론 그것까지도 다 감안을 하고 보정을 해야하는 게 통계치이긴 한데 그걸 보정을 할 수 있는 원자료가 없다라는 게 성소수자 관련 통계에 대한 맹점이기도 할 테구요.
셀프 거기에 좀 더 덧붙이고 싶은 게 저는 이제 바이모임이라는 웹진의 구성원으로 이 자리에 왔으니까 바이라고 지칭하는 데 사실 불편함은 없지만, 그래도 제가 가장 편하게 저를 인정할 수 있는 정체성 범주는 어찌 보면 범성애자에 가깝거든요. 예를 들어 이제는 양성평등이란 말도 구시대적인 언어가 됐잖아요. 제3의 성과 그 이상을 포함해서 양성평등이라는 말 대신 “성평등”이라고 표현하자는 흐름이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바이섹슈얼이라는 단어는 성별이분법적인 양성애자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영미권에서는 바이섹슈얼이라는 용어 자체가 논-모노섹슈얼(non-monosexual)의 더 넓은 의미로 쓰이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팬섹슈얼(pansexual), 즉 범성애는 커녕 바이라는 용어조차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거죠.
웹진팀에 계신 분들은 적어도 그런 용어나 성소수자 인권감수성에 대한 이해가 일반 대중보다는 익숙하신 편이니까 괜찮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특정 용어 안에 가두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의미없는 일일 수도 있고요. 또 사회가 각각의 단어들을 어떻게 보는지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에 다양한 생각이 들어요.
황이 이름 짓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올해 LGBTI인권포럼에 갔을 때도 포럼 중 한 꼭지를 진행한 레즈비언 분들이 걱정을 하는 게 뭐였냐면 자기 모임 이름을 어떻게 정하고, 그렇게 정했을 때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 또 레즈비언 단체들 안에서도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팸이나 부치 간의 어떤 알력 같은 게 있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또 이름이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이브리 사실 저희도 바이섹슈얼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고민이 없는 건 아닌데, 일단 바이(bi)니까 둘이니까 남자와 여자다 이런 식으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사실 미국에서 어떤 바이섹슈얼 활동가들이 주장했던 정의는 그게 아니었던 거고 그들은 그걸 알리기 위해서 정말 힘들게 싸워왔는데요. 미국에 살았던 적도 없는데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웃길 수도 있지만. [다들 웃음] 지구상 어딘가에서 이제 굉장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바이섹슈얼이라는 단어가 성별이분법에 갇히지 않는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정말 긴 세월을 투쟁해 왔던 역사가 있는데 제가 ‘바이섹슈얼은 이분법적이니까 저는 안 할게요.’ 이러면 이건 너무 어떻게 보면 잔인한 처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미국 영어에서 활동가들이 쓰는 ‘bisexual’하고 한국에서 쓰는 ‘바이섹슈얼’이 서로 다른 뜻이고, 한국에서 쓰는 바이섹슈얼은 성별이분법적이니까 바꾸자, 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요. 그런데 저는 여전히 그게 그렇게 딱 나눠진다고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되게 큰 고민을 해보면서 일부러 ‘양성애자’라는 번역어를 공식적으로는 안 쓰려고 노력하고, 저희는 계속 영어로 부르는 이름인 ‘바이섹슈얼’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주누 아까 대표성 얘기가 나왔던 것처럼. 뭔가 바이섹슈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뭔가 하고는 있지만 이 작은 집단이 전부를 대변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실 그 전부가 뭔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이게 아까 얘기 나왔던 폴리아모리, 판섹슈얼, 뭐 멀티 어쩌고 이런 걸 다 제외한 순수한 바이섹슈얼들을 말하는 건지. [다들 웃음] 그래서 바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다 포괄시켜서 전부 다 대변하려는 것도 아닌 거고. 그래서 사실 답변해줄 수 있는 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거밖에 없어요. 그 중에서도 어떤 거라고 말을 못 드리는 거죠. 답을 못 찾은 게 우리가 잘 몰라서가 아니라 못 찾았다고 하는 게 현재로써는 맞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 그 대표성이라는 단어가 폭력적이라고까지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단어로 대체를 할까 아님 여러 가지 단어를 다 나열해버릴까 같은 것도 고민하고, 이거에 대해서 우리가 정의를 새로 해야되나 하는 고민도 하긴 하지만, 뭐 우리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권위도 없어요. ‘A=B’라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도 참 웃기긴 한데, 그냥 우리는 이걸 어떻게 보려고 하는 건지 정도로만 말하는 게 현재로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바이모임이 바라는 것들
크리스 웹진 ‘바이모임’의 발행이 반가웠던 것 중 하나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등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젠더 범주의 사람들 외 다른 젠더를 지닌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일 텐데요. 바이모임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브리 아,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목표가 10호까지 발행하는 게 목표구요.
주누 꿈도 야무지시군요. [다들 웃음]
이브리 항상 이렇게 타박을 들어요. [웃음] 일단 10호까지 발행을 하고, 저 개인적인 목표라 하면 못할 얘기가 거의 없는 플랫폼을 만드는 거. 예를 들어 ‘내가 레즈비언인데 남자 사귄 얘기는 L커뮤니티에선 하면 안 되겠지’ 이런 게 있을 수 있잖아요. 혹은 ‘내가 게이인데, 아님 바이섹슈얼인데 이러면 안 되겠지’ 하는 제한 같은 게 없는 창구나 플랫폼을 만드는 거구요. 물론 혐오라든지 그런 그런 걸 무비판적으로 실을 수는 없지만. 그런 걸 빼곤 누구나 어떤 얘기든 할 수 있는 걸 만들어서 10호까지 가는 게 목표구요. 그 이상은 잘 모르겠어요
주누 당장 10호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4호부터 우선 만들어야 하는데. [웃음] 타이틀은 계속 웹진 바이모임이라는 걸 가지고 가고 있긴 한데 사실 바이 얘기만이 아닌 다른 얘기들이 섞여 있는 창구였으면 좋겠다는 비슷한 생각이구요. 첫 시작할 때 제가 폴리아모리 얘기에 좀 더 무게를 실어보았는데요. 사실 이건 첫 창간호에 바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웹진을 발행하면서 모험이었는데, 그렇게 하니까 좋았어요.
그 외에도 젠더 다양성 측면에서 바라보는 성적 지향이 얼마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좀 불확정한 이야기니까 그런 얘기도 우리 안에서 펼칠 수 있을 거구요. 기존에 있던 성별 정체성/성적 지향이라는 약간 딱딱한 언어들 말고, 다른 형태의 실천들에 대해서도 ‘왜 이거를 굳이 바이모임 안에서 못 풀지?’라고 생각하면서 바이라는 단어가 되게 무게감 있고 중요한 단어가 되는 것보다도 그 단어를 경유하되 그 단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형태의 이야기들이 꾸준히 쌓여가거나 담겼으면 좋겠네요. 또 지금까지는 우리가 기획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소수이고 기고를 받는 글도 건너건너 오는 경우가 꽤 많았기 때문에 약간은 입장이 좀 한 쪽으로 치우쳤을 수도 있어요. 근데 한편으론 서로 충돌되는 이야기가 한꺼번에 서너편씩 실리는 컨셉도 한번 발휘해봤으면 좋겠고요.
크리스 바이모임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게 약간은 느슨한 형태의 모임 같아요. 저희 같은 경우엔 단체 내에 속한 소식지고 주 활동은 친구사이 소식을 알리는 것과 성소수자 관련 주요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담는 것이거든요. 근데 바이모임 보면 몇몇 고정 편집진도 계시지만 기고도 많이 받으시고 한편으론 이렇게 새로 오신 분들도 있구요. 그게 또 하나로 딱 일치될 수 없는 테마여서 그런지 개별적인 이야기를 많이 다루시는 것 같아서요. 제 개인적인 희망은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거고요. 혹시 셀프, 무명님 두 분은 앞으로 쓰고 싶은 얘기 같은 게 있으세요?
셀프 전 우선 올해 4호를 같이 잘 만들고 싶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시스젠더라든가 혹은 제 직업같은 여러 가지 정체성들이 있지만 그 중에 바이라는 정체성도 굉장히 소중하거든요. 그런데 그 바이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편하게 발언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바이모임이라는 웹진 공간에서 저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지금은 비록 별칭을 사용하고 온라인 상으로만 가능한 일이지만, 이 경험을 발판으로 제가 활동하는 다른 공간에서도 조금 더 진짜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명 저도 비슷한 게, 바이라는 게 저한테는 어떻게 보면 드러내면 안 되는 그림자 같았는데. 뭔가 그게 드러나는 제 일상 삶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고 그래서 이렇게 글로나마 내가 숨겨왔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고 소통이 될 수도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랑 좀 더 큰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면 그게 저 개인한테도 의미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제일 강하구요. 또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크리스 혹시 바이모임 외에 다른 걸 하고 싶은 계획은 있으세요?
무명 저는 사실 이게 거의 처음이어서요. 근데 되게 웃긴 게 아까 말했지만 평생 그냥 혼자 가고 아무한테도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한 번 신기했던 게, 올해 1월에 만나 뵙고 나서 저는 그때 처음 봤거든요 바이를. [웃음] 기분이 되게 묘했고, 원랜 집안도 보수적이고 내 사회생활과 평판을 위해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친구에게 얘기를 하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밝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얘길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발전이고. 그렇게 계속 하다 발전하다 보면 저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일동 박수]
셀프 전 직업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인권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의 고민도 많아요. 당장 뭔가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어떤 캠페인이나 행사를 기획한다고 해도, 저 스스로는 퀴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제가 커밍아웃을 하고 퀴어로서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여전히 이 사회는 지극히 이성애 중심적이고 그런 발언들을 들을 때면 ‘나 여기 있는데’ 혹은 ‘여기 나 말고도 더 있을 수도 있어요’하는 생각이 들어요.
바이모임이나 이런 성소수자들과의 모임에서 마주하는 저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제 모습과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고 싶은 거죠. 그 경계를 허물고 싶은 욕구와 함께 그만큼 또 걱정스러운 부분은 예를 들어서 바이라고 말씀드리면 이성과 연애를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일반적인 연애로 비춰지는 것이고 만약에 정말 이성과 결혼까지 하게 될 경우 일반적인 삶을 산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죠. 그것과는 별개로 저의 정체성은 계속 남아있는 거잖아요. 그럼 그런 삶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남들은 쉽게 ‘탈반’했다고도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바이포비아에 대한 두려움만큼이나 그런 시선도 무서워요. 어느 쪽에서는 지워져버리는 정체성이 되는가 하고요. 지금은 행성인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예전엔 동인련이라는 이름 때문에 선뜻 가보지 못했던 것도 있거든요. 어찌 되었든 다양한 분들과 더 만나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이섹슈얼이기 전에 저는 한 사람의 개인이고 각자가 가진 고유성이 있잖아요.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그렇고 자꾸 만나고 우선 낯설지 않게 알아갈 수 있다면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크리스 와. 좋네요. 사실 저희가 이번에 바이모임 분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도 그런 부분들이 좀 있었어요. 계속 주위를 둘러봐도 다 게이밖에 없는 거예요. 스스로를 밝히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거죠.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마지막 얘깃거리는 바이포비아에 대한 생각들이에요. 친구사이 내외 게이들 중에 일부도 뭐 ‘바이는 이렇지 않아? 저렇지 않아? 결혼은 뭐 언제든지 할 수 있지 않아?’ 하는 얘기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뭔가 낯설어 하거나 오해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서 여러분들은 다른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하구요. 꼭 우리나라에서,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바이섹슈얼에 대해 이런 부분만은 변했으면 좋겠다는 게 있으신지 해서요.
이브리 와. 마무리치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저는 꼭 바이섹슈얼에 대한 생각만 변한다고 뭐가 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구요. 그냥 성적 지향이나, 취향이나, 성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이 변해야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차별이나 혐오는 그대로 둔 채로 바이섹슈얼을 보는 기준만 변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걸 다 냅두고. 마치 ‘우리는 굉장히 착한 사람들이니까 잘 봐주세요’ 이런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진 않고. 저는 바이섹슈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하면서 그런 광범위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주누 일단 뭐 바이섹슈얼에 대해 사람들이 다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고, 이게 성적 지향만의 얘기가 아닌 거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가를 어떻게 파악할 거냐라는 것도 있는 거고 각각의 성별을 어떻게 볼 것이냐, 좋아함이라는 게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 것이냐 등등이 다 섞여있는 게 그 사람 개인을 정하는 어떤 속성일 건데, 마찬가지로 바이는 그러한 요소들이 좀 더 다양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고민점들을 많이 던져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설령 그게 바이에 대해서 깊은 관심까지는 없더라도 그냥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면 그게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요소인 것 같아요. 나는 바이가 아니더라도 바이섹슈얼이라는 단어는 내 정체성을 떠나서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힘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해요. 그래서 그냥 남한테 말 걸 수 있는 얘깃거리로 쓰고 싶다고 생각은 해요.
무명 글쎄 뭐, 포비아든 뭐든 일단 잘 모르니까 편견이 생기는 거고 자기랑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배척하는 마음이나 특별하게 보는 마음이 든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무래도 그런 게 싫다고 그러면 많이 얘기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저도 요만큼이나마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네.
셀프 음 이제 뭐… 총선도 다가오고 있고. [다들 웃음] 레인보우 유권자 선언(http://rainbowvote.org)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요. 근데 제가 얼마 전 어떤 후보 플랜카드에 ‘동성애, 세월호, 이슬람 척결’ 이런 문구를 봤어요. 굉장히 다른 세 집단을 몰아서 척결하겠다고 내걸었는데 사실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애초에 척결이 가능한 대상도 아니며 그런 것이 가능해서도 안되고... 어쨌든 그런 걸 생각해볼 때 바이든 여기 함께하고 계신 게이든 여타 다른 정체성의 문제라기보다 어떤 사회구조적인 폭력, 시선의 차별 같은 게 더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순히 바이만의, 게이만의,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젠더 이슈까지 포함해서 서로가 서로를 좀 더 돌아보고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같이 소통하면서 더 배워갔으면 좋겠어요.
크리스 네. 총선 때 꼭 투표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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