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스케치 #3] 퀴어문화축제 이벤트 - ‘동성 파트너십 권리’ 국제 심포지엄 참관기
오랜 가뭄에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던 아침, 파란 눈을 가진 백인 남성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헤매고 있었다. 출입을 위해 1층 로비에서 여권을 맡겼지만, 한글로 된 출입신고서를 들고선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이름은 여기, 연락처는 여기에 쓰세요’라는 나의 짧은 영어에, 그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벽에 붙은 안내포스터를 한번 스윽 보곤 성큼성큼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난 6월 20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8시까지,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법 앞에 선 커플 : 동성 파트너십 권리 국제 심포지엄’ 행사가 개최되었다.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의 이호림씨의 개회사로 열린 이번 행사는 ‘동성결혼/파트너십 법제’, ‘성소수자 권리와 정당의 역할’, ‘동성커플의 권리와 아시아 성소수자 커뮤니티’라는 세 가지 세션으로 진행되었으며 뒤이어 종합토론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조남웅 대표의 폐회사로 막을 내렸다.
첫 번째 세션인 ‘동성결혼/파트너십 법제’에서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조혜인 변호사의 진행으로 서종희 국민대학교 법학부 교수와 타니구치 히로유키 타카오카 법학대학 교수 그리고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패널로 참여하였다. 서종희 교수는 ‘한국에서의 동성혼’이라는 주제로 동성혼과 관련된 법원의 판례와 헌법 제36조 제1항의 해석을 다루며 발표를 시작했다. 서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혼인의 합의의 부존재’, ‘민법 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위반여부’, ‘아이의 최대 복리 위반여부’ 등 동성혼을 둘러싼 국내주요쟁점을 다루었다.
타니구치 히로유키 교수는 ‘일본에서의 동성결혼/파트너십법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는데 시부야 조례와 일본 내에서의 조례에 대한 반응을 소개하고 동성결혼를 둘러싼 일본법상의 문제들을 짚으며, 현재 일본 내에서 동성결혼의 대체로서 운영되는 ‘성년 양자 결연’, ‘공정증서에 의한 관계 증명’, ‘임의후견계약의 체결’ 등을 소개하며 발표를 진행하였다. (시부야 조례는 구청장이 ‘파트너십 증명’을 발행하는 것으로 혼인과 같은 법적효력은 없으나, 시부야 구와 구내의 사업자는 파트너십을 최대한 배려해야하는 의무를 지닌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세부절차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후 한상희 교수의 ‘혼인신고 불수리처분에 대한 불복신청과 관련한 의견’이라는 주제로 열린 지정토론을 끝으로 첫 번째 세션이 마무리 되었다.
두 번째 세션 ‘성소수자 권리와 정당의 역할’에서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의 진행으로 정혜연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량이치 대만 녹색당 운영위원, 카미카와 아야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의회 의원 그리고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참석으로 진행되었다. 정혜연 위원장은 이날 세션에서 ‘한국 진보정당과 성소수자 권리’라는 주제로 동성 파트너십 권리가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 보며 발표를 진행하였다.
뒤이어 량이치 대만 녹색당 운영위원은 ‘NGO부터 정치까지 LGBT 권리 증진의 경험’이라는 주제로 대만에서 일어난 동성결혼과 관련된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되짚어보는 자리를 가졌다. 특히 이날 발표에서 량이치 운영위원은 ‘대만은 아시아에서 성소수자에게 가장 우호적인 나라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장에서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소회를 밝혔으며, 한 행사에서는 ‘대만 기독교는 인구의 3%밖에 되질 않는데 영향력은 왜 이리 크냐?’라는 미국인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만에서의 LGBT 정치참여 현황을 소개하며 발표를 마무리 지었다.
카미카와 아야 의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의 성소수자 권리의 증진’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카미카와 의원은 MTF 트랜스젠더로서 2003년도부터 도쿄 세타가야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급 주택가의 이미지로 유명한 인구 88만명의 세타가야구는 시부야 구와 함께 도쿄의 23개 구 중에서 동성파트너십 승인을 준비하는 유일한 곳이다. 이날 발표에서 카미카와 의원은 본인이 주도하고 있는 성소수자 상담센터 운영 및 ‘세타가야구 남녀공동참여플랜’의 성과와 동성파트너십 진행상황에 대해 다루었다. 그리고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녹색당과 성소수자 정치 세력화’라는 주제의 지정토론으로 두 번째 세션은 마무리 되었다.
세 번째 세션 ‘동성커플의 권리와 아시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희망법’의 한가람 변호사의 진행으로 대만 TAPCPR의 빅토리아 쉬씨와 첸씨씨가 준비한 대만의 ‘다양한 가족’운동에 대한 발표와 ‘희망법’ 류민희 변호사의 ‘한국의 동성결혼 및 파트너십 권리의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 진행되었다. 이윽고 종합토론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조남웅 대표의 폐회사로 여섯 시간 가량의 심포지엄이 마무리 되었다.
세차게 내린 비를 뚫고 심포지엄에 참가한 백인남성과 우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심포지엄이 마무리가 되고 일주일 뒤,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이 발표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후보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 뒤 SNS상에선, 동성결혼을 허용하거나 동성애를 차별하는 극과극의 뉴스들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후자에 속한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겐, 비슷한 문화적 경제적 배경을 가진 일본 그리고 대만의 사례를 중심으로 꾸려진 이번 심포지엄은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공감의 장이자, 그 간의 전투기록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전략을 수립하는 사투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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