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스케치 #1] 2015 LGBTI 인권포럼 <우리는 원한다> 3인 3색 참관기
'우리는 원한다!'
2015 LGBTI 인권포럼의 메인타이틀이다. 아직 이른 봄이던 지난 3월21일(토)와 22일(일) 이틀 동안, 서강대학교에서 2015 LGBTI 인권포럼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열렸다.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돌아보며, 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욕구를 들여다보고 표출할 수 있는 장이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2015년 현재 대한민국의 인권 담론의 위치를 참가자들과 함께 가늠해보기 충분했다. 친구사이 소식지팀의 3인도 각각의 섹션에 참가해 3색 포럼 참여기를 써보았으니, 생생한 인권의 현장을 느껴보시길.
#1. <띵동, 앞으로 뭐 할 건데?> - 띵동 설립의 의미와 기대
‘띵-동’, 당신을 부르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 지난 2014년 12월 설립되었다. ‘무지개청소년세이프스페이스’라는 이름으로 1년 가까운 모금 활동과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띵동’이 탄생할 수 있었다. 한국 성소수자 인권 역사에서도 이제 ‘돌봄’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의미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특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청소년 성소수자를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띵동’은 1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후원바자회, 해외모금, 각종 행사 등을 통해 모금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인테리어 공사를 어렵사리 마치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개소식을 열었다. 이제 숨을 돌리고 본격적인 활동의 첫 걸음마를 뗄 시기. ‘띵동’의 시작의 다짐과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2015 LGBTI 인권포럼 둘째 날인 3월22일(일) 오전 10시 30분, 서강대의 한 강의실에서 <띵동, 앞으로 뭐 할 건데?> - ‘띵동 설립의 의미와 기대’를 주제로 한 이야기방에서 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띵동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필요한 이유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쉼터가 생긴다는 것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존재 증명의 문제다. 그들의 존재를 사회가 받아들이고, 돌보는 데까지는 많은 역경과 시련이 함께했다. 물론 지금도 갈 길이 멀다. 우선, 청소년 성소수자는 다른 취약계층(다문화 가정, 탈북이주민, 장애인 등)에 비해 차별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아동인권실태조사(2012)에 따르면, ‘또래친구로 사귈 생각이 있다, 인정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 취약계층 평균 42.3%에 비해 성소수자의 경우, 턱없이 낮은 25.5%로 집계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존재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10대인 당사자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인 압박감과 차별은 차마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인권 이야기를 하기에도 앞서, 청소년 성소수자를 불완전한 자아의 존재로 여겨왔다. 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2007)에서는 5.8%의 청소년이 동성애 성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수치만 보았을 때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자살, 우울증 등에 무방비상태로 방치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생활실태조사(한국청소년개발원, 2006년)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77.4%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고, 47.4%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체 청소년들 중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10% 인 것에 비해 거의 다섯 배가 높은 수준이다. 이젠 사회가 그들을 인격 주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집밖으로, 학교 밖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보듬고, 보살펴야할 자원과 공간을 만들어 나갈 것을 다 같이 고민해야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띵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요
‘띵동’이라는 이름은 은어다. 10대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게이다’가 돌았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누군가를 부르는 초인종 소리와도 같은 이름이다.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어려움, 고민 등을 나누는 존재. 빛나는 감정을 모두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 ‘띵동’은 그런 공간이 되고자 한다.
이날 이야기손님으로는 정욜(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이나경(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 안영신(즐거운교육상상), 윤영호(서울시립청소년건강센터 나는 봄 활동)님이 직접 나섰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화두였다. 설립 이후의 자립의 고민부터, 위기지원을 맡을 사람들도 찾아야 한다. 성소수자 단체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위기지원 단체들과의 연대도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 그간 서로의 고민과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였다. 참석한 사람들에게도 자유로운 발언과 질문의 기회가 주어졌다. 제한된 시간이 아쉬울 정도였다. ‘띵동’이 한국에선 처음 시도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히, 또 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인권 문제는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으로든 청소년 시기를 거치지 않은 성소수자는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우리는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하듯, 항상 내곁에 있다는 마음으로 띵동의 활동을 지켜보고, 응원하려 한다.
#2. <성소수자 자살예방 활동을 위한 커뮤니티 간담회>
차가운 바람이 가고, 나들이를 계획하는 계절, 봄. 하지만 봄이야 말로 자살의 계절이다. 흔히들 겨울에 자살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자살자가 가장 많은 시기는 3월로, 138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4월, 5월에도 이와 비슷하게 자살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조량이 부족해 우울증이 극에 달하는 겨울에는 자살할 힘조차 없지만, 봄이 되고 우울증 증상이 조금 나아지게 되면 에너지가 생겨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살이 한 가득 내리쬐던, 2015년 3월 21일과 22일 양일간, 서강대학교에서는 <2015 LGBTI 인권포럼>이 열렸다. 두 번째 날인 22일의 첫 섹션에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활동을 위한 커뮤니티 간담회>를 주제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특히 <성소수자 자살예방 활동을 위한 커뮤니티 간담회>에서는 논문 <소수자 스트레스가 한국 성소수자(LGBT)에게 미치는 영향>이 소개되었다. 논문에서 주로 다뤄지는 <소수자 스트레스>는 소수자의 지위에서 기인하는 심리적 스트레스로, 성소수자와 같은 낙인을 받는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직면하게 되는 높은 수준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말한다. 크게 사회적 낙인 인식과 내재화된 동성애 혐오에 비롯된 직접적인 소수자 스트레스와 반동성애 폭력 경험으로 인한 간접적인 스트레스로 구성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인식의 수준이 높을수록, 스스로 내재화 한 동성애 혐오의 수준이 높을수록, 반동성애 폭력 경험이 많을수록 성소수자의 우울과 불안의 수준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며 성정체성의 수용은 내재화된 동성애 혐오와 우울ᆞ불안의 관계에서 강한 조절효과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논문의 주된 골자였다.
논문결과발표 후 박재완님의 <마음연결>의 소개가 이어졌다. <마음연결>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성소수자자살예방프로젝트로, 성소수자의 자살위험 인식을 커뮤니티가 높이고, 자살예방이라는 공동의 활동 목표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소개시간에서 이성애자에 비해 심각한 자살위험에 노출된 성소수자들이지만 마땅히 이에 대한 연구도, 국가적 차원의 예방노력이 없음을 언급하며 다른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자살예방 사례를 소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2시간 가까이 이어져온 간담회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과연 내 주변에서 자살한다는 사람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할까?’였다. 물론 112/119와 <마음연결>에 도움을 요청해야겠지만, ‘나의 어설픈 위로나 설득이 오히려 자살을 더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간담회장을 빠져나가는 길에 나를 엄습해 왔다.
나들이 인파를 해치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 두려움은 오히려 희망의 씨앗으로 바뀌었다. 작년까지의 봄은 나에게 나들이의 계절이었지만, 올해부턴 봄은 나에게 자살의 계절이 되었으니깐 말이다. <자살>을 <살자>로 바꿀 고민의 계절로.
#3. 내게 오라 퀴어정치학 - ‘성소수자 정당 정치의 과거, 현재, 미래’토론회
2002년 대선 당시 기호 1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내가 생전 처음 참여했던 국민선거에서 투표한 정당이자 인물이었다. 틀에 밝힌 정규교육과정을 막 벗어나 대학캠퍼스의 자유를 만끽하던 때라 ‘잘 몰라서 그냥 겉만 보고 찍은’시절이었다. 대쪽 같은 이미지가 반절, 집권당 소속이기 때문에 선택하면 될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반절이었다. 그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이미 관심 밖의 대상이 다시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 ‘먹고 살기 바빠서’라기보다 ‘그래서 뭐?’가 더 컸다. 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 다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그런 내가 이번 포럼에서 듣기로 한 섹션은 성소수자 정당 정치 관련 토론회였다. 왜일까? 지난해 퀴어퍼레이드와 친구사이 20주년 행사 때 혐오세력과 마주하고, 서울시민 인권헌장 폐기반대 무지개농성에 함께 하면서 내 성 정체성이 내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그래서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부분이나 단체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힘도 절실함을 잘 알기에 더 이번 토론회에 마음이 갔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의 각 관계자들은 10년을 지나온 우리나라 성소수자 정당 정치의 역사부터 각 정당 성소수자 관련 위원회1)의 특징, 성소수자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언급까지 다양한 얘기를 쏟아냈다. 하지만 아직 이제 막 성정치(gender politics)2)라는 용어에 눈을 뜬 입장으로서 물어보고 싶은 건 현실적인 부분이었다. ‘성소수자 의제를 내세우는 진보정당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일까?’도 궁금했지만, ‘과연 얼마나 (성소수자/비성소수자 포함) 많은 유권자들이 성소수자 관련 의제에 관심 있을까?’가 가장 의문이었다.
이와 관련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하나는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사회 변화를 위해 원하는 기여방법을 묻는 질문에 ‘선거와 정당참여’가 최하위 응답(8%)을 기록했다3)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 유권자와 이슈 III: 성소수자 인식> 조사4)에서 젊은 층인 20대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지게 좋아졌다는 것이다(동성애 거부감 없음 26.7%(2010)→47.4%(2014), 동성결혼 지지 30.5%(2010)→60.2%(2014)). 물론 인식 변화가 직접적인 관심으로 이어지는 건 녹록지 않고, 관심이 투표권 행사로까지 표현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성소수자 의제를 생활 속으로 녹여내 성소수자/비성소수자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과제를 던져주는 대목이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에 씁쓸해하면서, 퀴어정치학은 정치 영역으로 성소수자가 ‘끼어들기’가 아닌 ‘새판짜기’라는 엄청난 목적이 있다는 토론문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런데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까지 안고 나선 길거리, 낮게 걸려있는 플랜카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왜 이런 토론회에 소위 ‘거대정당’의 당원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오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을 싹 사라지게 한 문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구가 현실이 될 그 날을 그려본다.
1.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녹색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2. 상위 개념으로 상정된 정치를 하위 개념, 사적영역으로 간주돼 온 성적인 관점
(젠더, 섹슈얼리티,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서 해석하고 의제로 삼는 것을 말한다.
3.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 p. 39,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014
4. <한국 유권자와 이슈 III: 성소수자 인식>, 아산정책연구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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