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발 지시 불이행 징벌이 부당함을 확인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트랜스젠더 수용자 징벌취소소송 항소심 승소에 대한 논평
강제이발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벌을 받은 트랜스젠더 수용자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16일, 광주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박병칠)는 소측의 이발 지시를 거부했다는 등의 이유로 징벌방에 감금되었던 광주교도소 트랜스젠더(MTF) 수용자 김아무개씨가 교도소장을 상대로 낸 징벌처분취소 행정소송에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징벌 원인 가운데 미허가 물품을 소지한 규율 위반은 인정되지만, 김씨가 이발 지시를 따르지 않은 데는 정당한 사유가 있어 이를 따르지 않은 규율 위반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애초 강제이발은 현행법에서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아래 형집행법) 제32조는 “수용자는 자신의 신체 및 의류를 청결히 하여야 하며, 자신이 사용하는 거실·작업장, 그 밖의 수용시설의 청결유지에 협력하여야 한다”(제1항), “수용자는 위생을 위하여 두발 또는 수염을 단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정이 없는 한 두발이 길다고 해서 곧바로 위생 등에 해롭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는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법무부령인 교도관직무규칙 제33조 제1항은 “교정직교도관은 수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와 의류를 청결하게 하고, 두발 및 수염을 단정하게 하는 등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여기서 ‘지도’란 권력적·법적 행위에 의하지 않고 행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정객체에게 협력을 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 또한 수용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는 될 수 없다. 강제이발은 법적 근거 없이 수용자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위법하며 따라서 교도관의 강제이발 지시도 정당한 지시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소측은 부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씨에게 금치 징벌을 결정했던 것이다.
구 행형법 제23조는 “수형자의 두발과 수염은 짧게 깎는다”고 하여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를 뒀다. 당시 법무부예규 ‘수용자 이발 등 지침’에 따라 남자 수형자는 앞머리 10㎝, 뒷머리·옆머리는 각 2㎝, 여자 수용자는 단발카트형 또는 파마웨이브형으로 이발해야 했다. 하지만 강제이발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구 행형법이 2007년 형집행법으로 전면개정되면서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는 사라졌다. 이미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도 구치소 수용자에 대한 강제이발 사건에서 “타인에게 위해를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진정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고 “신체의 외형적 형상이 물리적인 힘에 의해 침해당하지 않을 자유 즉 진정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09진인4676).
이번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수용자는 성별에 상관없이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두발을 길게 기르는 것도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반드시 두발의 장단과 불가피하게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두발이 길더라도 관리 여하에 따라서는 충분히 단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률유보가 없어졌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라고 판단함으로써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는 “(형집행법은) 수용자는 위생을 위하여 두발 또는 수염을 단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구 행형법과 같이 두발의 길이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수용자는 성별에 상관없이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두발을 길게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라며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1심 판결과는 배치된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는 원고와 협의하여 상고심에서 적극적으로 다툴 것이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교정시설에 만연한 강제이발 조치를 근절하고 소측이 수용자를 부당하게 복종시키기 위해 징벌 권한을 남용하는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5년 4월 22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