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에서는 단체 발기 20주년을 맞이하여 게이인권운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담론팀을 조직하였습니다. 반년간 팀 내에서 축적된 논의 끝에, 2015년 상반기에는 총 4차의 기획토론이 계획되었고, 지난 1월 16일에는 "동성애혐오"를 다룬 제1차 기획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2014년은 동성애혐오세력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 거세었던 해였습니다. 퀴어문화축제, 친구사이 20 퍼레이드에 등장한 혐오세력의 준동을 비롯하여, 서울시민인권헌장의 폐기로까지 이어진 공청회에서의 폭력 점거 등이 연중 내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동성애혐오 활동의 실태와 대응 방안을 다듬기 위해, 친구사이 정회원들을 비롯하여 계덕(신문고뉴스), 타리(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나라(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의 언론인 및 활동가 분들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아래는 기획토론 때 언급되었던 내용 중 일부를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 친구사이 담론팀 제1차 기획토론 : "혐오" (친구사이 사정전, 2015.1.16.)
1. 드러난 혐오세력 VS 구조화된 혐오세력
동성애혐오세력의 활동은 2007년 차별금지법 반대운동 과정에서 태동되었고, 2010년을 전후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때 조직화되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2013-4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들의 활동이 과격화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른바 반동성애운동만 전담하는 '활동가층'이 형성된 것이 주목되지요. 이들은 작년 퀴어 이슈 관련 각종 행사에서 꽤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들 중에는 하도 여러 자리에 출몰하여 얼굴이 익어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 '활동가'들은 주로 ㅇ본부, ㄷ위원회, ㅂ연합, ㄱ연대, ㅇ재단 등의 단체 소속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들 단체들이 사회에서는 물론, 기독교 내부에서도 주변화된 존재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어떤 순교자적 자세, 비주류의 저항정신, 울분 등이 그것을 대변합니다. 더구나 보다 주류적인 민주진보단체보다 동성애인권단체를 저항의 대상으로 선택하는 것 또한, 어떤 '보여주기'의 전략으로 기능하는 셈이지요. 이들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런 짓까지 벌여가며 인정을 얻어내려고 하는 그 주체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한국의 사회적 기반시설, 사회안전망을 장악한 채로 반(半)정치화되어있는 보수 기독교 세력입니다. 기실 각종 행사에서 먼저 눈에 띄는 세력들은 앞서 언급한 동성애혐오단체들이지만, 그들이 어떤 사회정책에 대한 결정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작 힘이 가진 세력은, 서울시장에게 직접 연락해 서울시의 인권헌장 제정을 실제로 중지시킬 수 있는 보수교회 세력들입니다. 작년 세밑에 불거졌던 성북구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의 좌초 또한, 성북구 내 개신교 교구협의회의 반대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일견 이성적으로 보이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동성애혐오적인 결과를 낳고, 그들이 복지를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동성애혐오 활동은, 쇼맨쉽은 있으나 실질적인 힘은 부족한 혐오단체들의 시위와, 그 뒤에서 동성애자들을 향한 복지의 배제를 실제로 결정하는 보수기독교세력의 '실세'가 조합된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드러난 혐오세력이라면, 후자는 구조화된 혐오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 <친구사이 20> 종로 퍼레이드 때의 혐오세력 (2014.8.30.)
2. 혐오 VS 포비아
이 글에서도 '혐오'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폭력적 상황을 '혐오'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한 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상황에 비할 때 다소 추상적이고 말랑말랑한 단어가 아니냐는 것이지요. 가령 서구에서는 유사한 경우에 'hate', 혹은 'hate crim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이는 혐오보다는 '범죄'의 뉘앙스가 보다 강조된 것입니다. 물론 이는 서구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폭력적 린치가 보다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현실과 연결되는 것이지만, 한국 또한 작년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동성애혐오적 행동이 좀더 폭력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기에, 이런 행위를 어떻게 명명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먼저 동성애혐오와 유사하게 사용되는 말로 '호모포비아'를 들 수 있습니다. 근래에는 동성애가 '병'이 아니라 호모포비아가 '병'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하기도 했었지요. 이러한 구호의 문법은 당장에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편견을 깨주는 데에 잠시 유의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래 '포비아'는 의학적·병리적 개념이기 때문에, 이런 용어를 정치적인 의미로 쓰는 것이 '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보태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들의 행위를 '동성애혐오'라 명명해온 사정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그들이 유독 '동성애'만 미워해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성소수자 혐오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 이를테면 "종북(?)", 외국인노동자 등에 대한 혐오 또한 표출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그러한 소수자들을 '기독교', 혹은 '국가'를 망치는 존재로 지목하는 과정에서 그러하지요. 인권헌장 공청회 때 혐오세력이 외친 "동성애 해서 우리나라 어떻게 되려고요?"와 같은 '나라 망치는 종북 게이'의 프레임이나, 당시 사회자를 맡았던 박래군(인권중심 사람 소장)씨에게 "종북좌파적인 활동을 계속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발언들이 이를 잘 대변해줍니다. 사실 혐오세력들의 기이한 세계관 속에서, 혐오의 대상은 '동성애자' 이외에도 어떤 소수자 집단이건 소환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각 혐오단체, 혹은 그들이 지목한 혐오의 대상에 따라 혐오의 맥락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약한 집단에게 혐오를 쏟아내고 희생양을 삼으면서,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에서 그들은 똑같은 양태를 보여왔습니다. 더구나 이들 혐오세력의 행동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혐오의 대상이 어떤 것이건 혐오의 효과는 대개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결과로 불거진 상처와 경험들을 다른 분과의 운동단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여지도 이 "혐오"라는 말을 통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혐오'라는 말은 본래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그것이 사용되고 또 행위됨에 따라 그 사회적인 내용이 일정하게 채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질병인듯 질병아닌 질병같은 너... (2014.8.30.)
3. 혐오적 행동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 : 드러난 혐오에 대하여
토론회를 통틀어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목소리가 뜨거웠습니다. 어느 때보다 혐오가 뚜렷하게 가시화되었던 작년을 겪고 난 후의 후유증을 나누면서, 각자가 가졌던 무력감과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였습니다. 가령 인권헌장 공청회 때 혐오세력이 벌인 폭력 행동 동영상을 언니네트워크의 소모임 "아는언니들"의 정기공연 현장에서 상영했을 때, 거기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탄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듯 혐오세력의 행동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저건 진짜 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수위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 혐오세력의 반복되는 구호와 고성에 직면한 이들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큰 상처를 받았으며 그 때의 그런 상황이 이후에도 계속 뇌리에 반복되었다는 트라우마를 호소하였습니다. 또한 혐오세력들이 그런 행동을 하면서 저토록 고고하고 당당해보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들의 배짱 뒤에 있는 뒷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성소수자들이 현장에서 그런 행위에 대해 '무대응' 원칙으로 일관하다 보니, 가만히 듣고 있는 것보다 어떤 반응이라도 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하여 올해에도 예상될 혐오세력과의 충돌에 대해, "개별대응 지양", "무대응" 이외에 다른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에 자연스레 초점이 모아집니다. 반복되는 충돌 과정에서 야기되는 회의감과 무기력증을 이겨낼 만한 대응 원칙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성소수자 인권단체 차원에서 집단적인 대응 정책이 이제껏 제대로 고민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에, 집단적 대응 매뉴얼이 개발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2014 퀴어퍼레이드, 경찰과 성소수자 단체들에 포위된 혐오세력 (2014.6.7.)
4. 혐오적 행동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 : 구조화된 혐오에 대하여
더불어 이러한 가시적 형태의 혐오 이외에, 앞서 보았듯 '구조화'된 형태의 혐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도 함께 의견이 오갔습니다. 어쩌면 당장 눈앞에 있는 혐오세력보다, 그들을 제재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공무원, 신고해도 오지 않는 경찰들, 심지어 국회의사당의 공간을 빌려 동성애혐오 관련 세미나를 여는 보수·기독교 국회의원 등이, 실은 그런 구조화된 혐오세력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과 대응하기 위해,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인 판례나 행정적 선례가 축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혐오발언을 일삼은 국회의원 후보를 향한 낙선운동을 기획하며, 국회에 '혐오방지법' 등을 청원하는 방안들이 고민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구조화된 혐오세력들은 사회의 기득권층과 광범위하게 결탁해있기 때문에, 사실상 요령있게 대응하기 힘든, '힘있는' 상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력들과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차별, 다른 혐오에 노출된 단체들과의 연대가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작년 12월 서울시청의 무지개농성의 경험에서 보듯이, 어떤 행사에서 다른 연대단체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가시화된 혐오에 대한 대처도 더 쉬워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성소수자 운동이 굳이 다른 운동과 연대해야 하는 까닭은, 앞에서 보았듯 '구조화'된 형태로 동성애혐오를 일삼는 세력들이 생각보다 뿌리깊고 강력하다는 바로 그 점에서 출발합니다.
마지막으로 혐오세력들에게 번번히 잘못 표현되고 있는 '동성애자'의 이미지에 맞서, 동성애자 스스로 동성애의 '진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커밍아웃'이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동성애자도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동성애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전제가 혐오세력들에게는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도 아직 잘 이해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커밍아웃을 통해 스스로 동성애에 대해 알리고 그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인권의 제도화 운동이나 정치 운동 또한 뚜렷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 이 양반들은 얼굴마담일 뿐이었다는 서글픈 진실... (2014.8.30.)
올해에도 틀림없이 여러 자리에서 마주하게 될 혐오세력의 준동에 맞서,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단체들이 보다 준비되고 정리된 형태로 그들의 행위에 대응해나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이것은 그들의 사회적인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덜 상처입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그들을 통한 트라우마를 덜 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혐오세력들 뒤에 누가 숨어서 실질적인 정치력을 구사하고 있는지 명민히 살피는 것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러한 현실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남깁니다. 성소수자들이 혐오에 대응한다고 했을 때, 앞서 보았던 혐오세력의 두 갈래에서 보았듯이,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응할 것인가가 고민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어떤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혐오세력과 싸우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동성애인권운동, 혹은 동성애자 스스로 만들고 싶은 미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에 대한 목표와도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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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팀에서는 제1차 기획토론에 이어, 지난 2월 13일 HIV/AIDS를 주제로 한 제2차 기획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 달 소식지를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향후 열릴 제3,4차 기획토론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