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감염사실을 알고나서, 도저히 혼자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상담했던 친구사이 회원분이 제게 보낸 이메일입니다.
이런 분들이 제 옆에 있다는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의 타이틀은 제가 나름데로 붙여본 것이구요,
이 글을 읽는 많은 PL분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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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눌리고 잠을 설쳤더니 상태가 메롱하다.
며칠 전 계속 아프다고 할 때 아무래도 이상해서 염려가 되긴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니 올 것이 왔나 싶기도 하고, 속도 상하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그랬어.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지금 니 심정에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조언이나 위로 같은 거 말고 솔직한 내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고,
그냥 니가 속상한 부분들 힘든 부분들을 모두 혼자서만 감당하려 말고 나누어 받을 사람 있다는 걸 한 번 더 말해주고 싶기도 해서야.
게이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HIV는 당연히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의식하고 살았고,
이십여 년 동안 계속 여러 현장에서 질병이나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면서 꽤 무디어진 부분도 있는데,
그래도 매번 누군가의 감염 사실을 들으면, 동요하는 건 사실인거 같다.
선배나 형들한테 이야기 첨 들었을 땐 낯섬과 함께 도와줘야한다는 의무감과 공감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고,
가까운 친구들한테 들었을 땐 미안함과 서운함이 커지면서 스스로를 다시 돌아봤던 것 같고,
이제 또 친동생처럼 생각했던 사람한테 들으니 안타깝고 안쓰러움과 죄책감 같은 감정이 제일 큰 것 같다.
뭐 이건 그냥 내가 처리해야 할 감정이지.
매일 출근하면 컴퓨터 켜고 확인 하는 일이 의사들 들어가는 메인 싸이트에서 자유게시판 훑어보는 건데,
오늘 아침에는 어떤 보건소 의사가 감염인 상처 드레싱을 거부할 구실 좀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어.
저따위 의사가 다 있나 싶어 황당해서 댓글들을 보니 더 가관인거라.
흥분한 티 안 나게 조목조목 차분히 댓글 달아놓고 나오긴 했는데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네.
원래 거기가 의사 사이트들 중 제일 일베스럽게 막나가는 곳이고 인턴 공보의 등 젊고 무식한 애들이 설치는 곳이긴 했지만 새삼 눈으로 확인하니 쪽팔리기도 하고 열 받는다.
결국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팩트 두 가지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고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가보다 싶었어.
첫째로 에이즈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에 불과한 것이고 성가시지만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는 당연한 진리.
두 번째는 여전히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저급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흉한 도덕적 비난이 따라온다는 거.
넌 현명하니까,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누구를 탓하거나 혹은 미안해하거나 그러진 않겠지만, 내가 모르는 감정으로 힘든건 말할수 없이 크겠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눈앞에 닥친 일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물 흐르듯이 재미나게 살자.
속상해서 풀고 싶은 일 있으면 언제나 말해. (물론 늘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진 않겠으나.^^)
잡소리가 길었네. 행복한 금요일 보내고 ~~ 바쁜 일정 좀 지나가면 맛있는 밥 한번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