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서 감동에 불순물이 섞이기 전에 짧게라도 한 마디 남겨야 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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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직장에 출근해서 멍한 상태에서 일하다가 퇴근하면 농성장에 출근하며 그렇게... 6일이 지나갔다.
시청을 점거한 비현실적인 상황에 취해있다가 고개를 돌리면 혐오세력의 독설과 농성에 다시 정신이 퍼뜩 들었다가,
농성장에서 함께 하고 있는 젊은(대체로 조카뻘...ㅜㅜ) 친구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시민사회 단체나 노동운동판에서 오는 연대의 손길을 보면 다시 울컥울컥 하고...
이렇게 낯설어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는 말은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었구나 절감했다.
현재까지 얻은 물리적 결과에 아쉬움이 없을순 없지만,
정치보다 운동이 아름답다는 건 확실하다.
단어 하나, 문서 하나가 갖는 힘보다 우리의 사랑이 더 강력한 것이고,
사랑을 지키는 사람들의 힘이야말로 무엇보다 위대하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6일 동안 모인 동력들의 혹시 흩어질까 아쉽다고들 말하지만,
이미 우리는 성소수자 운동 시작후 이십년 동안 오늘이 가능케 한 힘을 키워오지 않았던가.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과소평가 하고 있었고 이제 자신감을 얻었으니,
앞으로 또 어떤 혐오의 기운을 만나더라도 지금 이상의 힘을 발휘하리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십여년 전 코딱지만한 사랑방에 모여서 돈 한푼 없이 기자회견 준비하던 활동가들을 옆에서 감탄의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다.
네개 단체가 겨우 모였던 '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에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농성단'으로의 변화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열개가 넘는 노트북과 촬영장비들이 주는 가오(!) 미디어팀. 국제연대팀 등 전문적 역할분담, 며칠만에 수천만원을 훌쩍 넘기는 지원금, 무엇보다 퀴어감수성 듬뿍 묻어나는 전시회장 겸 축제의 장, 댄스클럽으로 변신한 농성장!!
개인적으로는 마냥 감동적인 경험이고 너무 고마운 일이다.
(단점을 찾으라면.............
너무 재미 있어서 가끔 우리가 왜 여기 와 있나 하는 걸 깜박깜박 잊기도 했다는 것 정도다
등은 따뜻하지만 천장은 높은 집에서 잠 자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소원도 풀었고,
대체로 다른 농성장에 남편이 있으면 아내가 도시락들고 찾아오거나 하는데, 배우자랑 같이 출근도장 찍어보는 감동도 맛보았고, 래퍼토리 바꿔가면서 지보이스 동생들이랑 노래했던 것도 즐거웠고, 특히 마지막에 로비에서 춤판으로 마무리 한 건 대박이었다능...)
이런 역사의 순간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고맙고, 우리들이 자랑스럽다.
하기는 이십 년이 짧은 세월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긴 했지만...ㅜㅜ)
마지막으로... 그동안 우리 곁을 스쳐지나간 많은 친구들, 오준수, 육우당. 스파게티나 돌맹이형 등이 생각난다.
하늘나라에서 이 벅참을 같이 느끼주기 바란다.
당신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