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 사무실을 방문하면 늘 조용히 맞아주는 청년이 있다. 새침한 듯하지만 알고보면 안경 너머 다정한 눈을 가진 청년. 친구사이의 상근자로 오며가며 많이 알고있을 얼굴이지만, 불필요한 말은 잘 하지 않는 성격 탓에 여전히 궁금한 것 투성이인 그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김찬영’이고 그의 만남 어플 프로필은 '172/54/29, 친절한 호구'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른아홉 번째, 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이 되었다. 기분이 어떤가.
- 사실 별생각이 없다.
(…) 질문이 짧으니 대답도 짧은가 보다. 다시 묻겠다. 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현재 아주 논쟁적인 이슈가 바로 동성애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는 개인을 드러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 인터뷰를 수락하게 되었나.
- 친구사이 사무국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일거리를 빨리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컸다.(웃음) 사실 그렇다기보다는, 누군가는 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당장 안 하더라도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있고.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젊고 예쁠 때, 머리가 총명할 때 해야겠다..하고.(웃음) 가장 중요한 건, 좀 더 스스로 ‘날 것’이라고 생각될 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는 지금과는 또 다를 것 같고. 그것도 좋지만 지금, 20대의 나를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그런 거.
예전에 이 인터뷰를 했던 이들,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게 좀 계속해서 남는 것 같다.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이나 애인이 검색했다가 이 인터뷰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그 덕분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과거사를 알게 되고.
- 이게 과거에 내가 알아왔던 사람들이나 혹은, 앞으로 나를 거쳐 갈 사람들이 이걸 본다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을 하긴 했었다.
알겠다. 너무 들춰내진 않는 걸로.(웃음) 그나저나 ‘낙타’라는 닉네임은 어떻게 지은 건가.
- 학부 때 후배가 낙타를 닮았다고 지어줬다. 그렇게 친구들이 계속 별명으로 쓰다가 친구사이에 왔는데, 다들 닉네임을 쓰더라. 그때는 그게 좀 어색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무튼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그 별명을 쓰게 됐다. 그 후배도 그냥 가볍게 지어준 건데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을 거다. 다른 얘긴데, 얼마 전에 그 후배한테 안부 엽서가 왔는데, 그냥 뭔가 고맙고 그렇더라.
# 부산에서 서울로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하겠다. 다들 알다시피 현재 친구사이 상근자로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나.
- 그전에 계속 부산에서 일하고 있었다. 디자인 쪽 일이었는데, 편집일이 나랑 너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창 이직을 생각 중이었는데, 그즈음에 게이 포털 사이트에서 친구사이 상근자 채용 공고를 봤다.
그래서 바로 지원하기로 결심했나.
- 아니다. 나는 사실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 단체가 큰 것 같지도 않고, 내정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에 나는 지리적으로 좀 멀리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부담이었다. 그래서 그냥 지원하지 말까..하고 그냥 놔뒀다. 그렇게 공고 마감 전까지 고민하다가 막판에. 지금 다시 그 자기소개서를 보면 앞뒤가 하나도 안 맞고, 오그라드는데.(웃음).
당시 직장은 부산이고, 집은 김해라고 알고 있다. 서울까지는 먼 거리인데.
- 사실 그 당시에 다른 비영리 단체에 같이 지원했었다. 근데 우연히 면접 날이 겹쳤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어쨌든 일주일 정도 후에 친구사이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는데, 마침 면접비까지 준다고 하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냥 놀러 가는 셈 치고 가보자 했는데, 며칠 뒤에 연락이 바로 오더라. 11월부터 출근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까 여기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여태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시작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 그렇다. 면접 이후에 좀 몰아치듯이. 안 그래도 거의 무작정 면접을 본데다가, 지낼 집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문제였다. 그 걱정을 하고 있는데, 집 구하기가 어려우면 회원분 중에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믿을 만한 분이 있으니 한 번 생각해보라고 연결을 시켜줬다. 그 고민이 해결되자마자, 집에다가 서울에 갈 거다. 서울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 통보를 했다. 갑작스러웠을 텐데 부모님은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라. 그런 것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와서 지내보니 좀 어떤가.
-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둘째이고, 친구도 없고 연고도 전혀 없고. 좀 어려웠다. 어쩌다 보니 당시에 서울에 오자마자 연애를 시작하게 됐고, 이곳과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데에 그 친구의 도움이 정말 컸다. 아. 그리고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다. 그냥 종로를 걷는 것도 내겐 너무 힘들더라. 워낙에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도 않고.
지금은 조금 나아졌나.
-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힘든 부분들은 여전히 비슷하고, 늘어나는 건 카드값이고. (웃음) 아무튼 자꾸 일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여기가 후원으로 움직이는 단체이고, 그전까지는 비영리 단체라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만 하다가 막상 일을 하고, 월급의 출처를 알고 그러니까 일하는 것에 있어서 예전과 좀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건 있더라. 다달이 들어온 급여에 대한 가치. 소중함이 예전 회사와는 전혀 다르다.
이제 2년이 넘는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 사이에 기억에 남는 일도 있었을 텐데.
- 기억나는 건 작년 광수 형 결혼식 날, 뒤풀이 자리에서 왜 그렇게 울었을까..하는 것. 그날 광통교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면서 느꼈던 마음에 대해 지금도 많이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내가 게이로 살아오며 차별이나 혐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 그냥 게이씬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번개도 하고, 사람도 만나며 지내왔는데. 그날은 우리를 이렇게 혐오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몸에 각인이 되었다고 할까
다른 사건이지만, 지난 퀴어퍼레이드 때에도 반대집단과 대치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땐 어땠나.
- 꽉 막힌 도로에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나가는 상황이 마치 정말 우리가 처한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길 위에서의 시간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퍼레이드를 마치고 다시 신촌으로 돌아올 때를 기억한다. 작년 광수형 결혼식 때 몸으로 겪은 혐오처럼 이번엔 사랑이 혐오를 이긴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고나 할까? 그렇다. 뭐든 몸소 겪어봐야 아는 거다.
알겠다. 어쨌든 서울에 와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혐오라니. 웃프다.
# 상근자의 고민
친구사이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활동하면서 어렵거나 힘든 점은 없나.
- 힘든 것? 글쎄. 사실 상근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서울에 왔다. 면접을 볼 때도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는데. 다만 활동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고, 어울려야 할 일이 있는데..여기는 뭔가. 직장과 사적인 관계의 경계에서, 포지셔닝이 어려운 것 같다. 그냥 편하게 하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사적인 자리에서 편하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은, 내 입장에선 일처럼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건 회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나에게는 말 한마디를 해도 조심스럽게 하는 것 같고. 그렇게 서로에게 조심조심하는 부분이 서로 배려하는 동시에 거리를 두게 되는 그런 게 있더라.
공감하고 동의한다. 스스로 느끼는 다른 부담은 없나.
- 올해는 특히 몸도 마음도 슬럼프? 그런 느낌이 있다. 이제까진 정신없이 지냈는데, 해가 바뀌면서 조금씩 일들이 쌓이면서 늘어지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내가 가진 욕망과 능력의 간극을 느낄 때나, 연대활동을 통해 주변의 활동가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이 좀 많아졌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는 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스스로 관리하면서 해야 할 일도 생기니깐. 안팎으로 조금씩 부담스럽긴 하다.
친구사이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했다. 사무국 입장에선 그게 부담이기도 할 것 같고, 업무가 많아질 것 같기도 하다.
- 지금은 주로 20주년 기획팀. 처음엔 그냥 20주년을 맞아 기념식 같은 걸 진행해보자 하는 거였는데, 그 의미가 좀 모호하고 어렵더라. 그래서 좀 더 의미를 새겨보자고 이야기가 됐고, 지금은 친구사이가 했던 유의미한 길들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목적은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아. 그리고 홍보팀. 여기선 후원과 관련해서 마케팅이나 모금 전략에 관한 것들을 공부하고 있다. 20주년 기념 사업으로 커뮤니티 욕구조사도 진행했는데, 이 수치들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도 숙제가 될 것 같다.
친구사이라는 단체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나. 상근자로서 활동 회원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다.
- 사실 20년이라는 것이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예전에 포스터를 붙이러 종로를 돌아다닐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 게이바에 처음 가봤는데, 거기에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들이 계시더라. 거기서 어떤.. 흘러온 시간을 보게 된 것 같다. 이분들은 과거는 어땠을까.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그냥 처음부터 저절로 생겨난 것들이 아닐 텐데. 오래전 이곳에 숨어들어 처음 모이고, 시작하고 그런 생각 하면 좀 짠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20년을 버텨온 형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해보고 싶은 건 있나.
- 지금 기록물 사업을 하고 있는데, 좀 더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들이 기록이 되면 어떨지. 이태원 게이 클럽의 역사, 종로 번개 방장들의 연대기나 뭐 대대로 유명한 역대들. 그런 것들도 모아놓으면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 어린 시절과 커밍아웃
지난 아이다호에 친구사이는 어린 시절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 나도 그 프로젝트에 사진과 사연을 보냈다. 음.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고, 할머니 밑에서 컸다. 부모님이 평가하시길, 순하고 말 잘 듣고.. 게임기 같은 것도 한 번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 부모님은 나한테 가끔 사내애가 그렇게 물욕이 없어서 어떡하느냐고 하신 적이 있을 정도다. 근데 그러면서 고모 백을 그렇게 탐을 냈다고 한다.(웃음) 화장품이랑 파자마 같은 거. 그래서 고모가 그런 것들을 내 손에 닿지 않는 선반 위에 올려놓고 그랬던 생각이 난다. 애가 조용하긴 한데, 좀 이상한 거지(웃음) 사자 다섯 마리를 합체하면 완성이 되는 로봇 장난감이 있었는데, 합체된 로봇을 해체해서 다리 한쪽과 아는 여자아이가 가지고 있는 인형이랑 바꿔오고 그랬던 생각이 난다.
아. 엄청 귀여웠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커가면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일이 있나.
- 고등학교 1, 2학년 때쯤이었나. 영화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를 굉장히 좋아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어떤 열병 같은 것이 시작됐었다. 일부러 책이나 체육복 같은 걸 빌리러 가기도 하고 그러면서..그러다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게 같은 공간에 같이 있으니까 더 힘든 그런 게 있었다. 그 친구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 내가 자신에게 갖는 감정까지,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게 스트레스가 되고 그래서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어지다 실신을 한다거나. 내 몸이 통제되지 않는 일들이 몇 번 있었다.
뭐랄까. 정신적 고통이 신체적으로 작용할 정도였다니. 뭔가 내가 방금 엄청난 걸 들었구나 싶은데.
- 처음엔 그저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걸로 생각해서 검사도 받고 그랬는데 결과를 보니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검사를 담당했던 의사선생님이 조심스레 정신과 소견서를 써주셔서 정신과로 찾아가 상담 후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한 달 정도 입원을 했었다. 부모님은 이 모든 게 학업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 생각하시곤 자책을 하시면서 괴로워하시고.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
어떻게 해소가 됐나.
- 특별한 건 없다. 사실 병원에서 퇴원 후, 그 친구에게 커밍아웃과 함께 고백했고 예상했던 대로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그런 시기가 지나고 어렵게 입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 친구에게서 화해의 내용을 담은 메일이 왔다. 그래서 같이 만나 자주 가던 럭키오락실이란 데를 가서, 오락실 안에 있는 노래방에 갔던 생각이 난다. 거기서 ‘거위의 꿈’을 불렀다.
아. 독립영화 같은 이 결말.(웃음) 뭐랄까. 정체성을 인지하는 과정을 정말 몸으로, 신체로, 그 고통을 겪어낸 것 같다. 본인에겐 몹시 괴로웠겠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기엔 흐릿하게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아. 그리고 작년에는 돌연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고 올라왔다. 좀 놀라기도 했는데, 그 이야기도 좀 듣고 싶다.
- 사실 그건 ‘돌연’이라기 보다는, 그전에 유언장 쓰기 행사에 참여했던 게 컸다. 유언장 쓰기를 해보니까 내가 이제 어떻게 살겠구나, 혹은 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해야 할 것을 미루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는 곳이 또, 문밖을 나서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각박한 도시이기도 하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이제 부모님 집을 떠나 살고 있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정한 것 같다.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 굉장히 갑작스러우셨을 것 같은데.
- 부모님이 정말 순박하신 편이다. 커밍아웃을 한 순간에는, 어머니가 굉장히 놀라셨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럼 너희는 성장난을 어떻게 하니?’ 하고 물으셨고, 아버지는 편지와 함께 가져간 단체 사업보고서를 보시더니 대뜸 ‘그래서 네가 일한다는 회사는 야당이냐.’라고 했다.
부모님 반응은 마치 유럽영화 같다.(웃음) ‘성장난’이라는 표현도 재미있고. 커밍아웃과 ‘야당’의 관계라니.
- (웃음) 아. 그런데 그 순간에도 예전 내 모습들을 떠올리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뭔가 그게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끼워 맞추시는 느낌.(웃음) 다음날 새벽에 아버지가 목욕탕에 가자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예전에(고등학교 시절) 아프고 힘들어하던 모습들이나. 계속해서 집을 떠나려고 했던 것들이나.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기분이 드신다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그냥 몸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지금은 내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작년 지보이스 정기공연 때, 부모님이 공연을 보러 오신 것을 봤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공연 전날, 부모님이 올라오셨는데, ‘다 자란 자식이 그렇다는데 말릴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이 유감이다. 그리고 너의 삶에 보탬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 어머니는 옆에서 그냥 눈물을 흘리시고. 우리 부모님이 굉장히 순수하단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싸우는 그런 과정은 없었다. 다만 다른 친척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 어려워하는 부분들이 보이긴 한다. 다른 친척분들께 ‘얘가 지금 인권운동에 미쳐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씀을 하시더라.
당연히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몹시 사랑스러운 관계라는 느낌이 든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느낌도 있고. 앞으로는 어떨 것 같나.
- 더 나빠질 것 같진 않다. 이번에 집에 내려갔다 왔는데, 배웅하시면서 ‘그 아이는 잘 있니.’ 하면서 헤어진 애인 이야기를 하시더라. 헤어졌단 말은 차마 못 드렸다.
# 이기고 지는게 어디있나. 그냥 하는 거지.
너무 들추지 말라고 해서 좀 망설여지는데, (웃음) 우리가 연애하려고 이걸(성소수자 인권운동) 한다는 이야기를 우스개로 많이 한다. 연애는 언제 처음 했나.
- 좀 더 어릴 때, 처음 만났던 형이 있다. 포털 사이트의 온라인 카페에서 만났고, 한 일 년 정도 만나다가 그 형이 복학하고, 나는 군대에 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연애에 대한 걸 물을 때는 늘 망설여진다. 이게 왕도가 없지 않나. 좋다고 느끼는 부분이나 옳다고 느끼는 부분도 다 다르고. 어떤 편인가.
-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 경우에는 주로 둘이 만나지 외부로 관계를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다. 아. 최근에는 본의 아니게 상황상 공개적으로 하게 됐다. 아무래도 활발하게 활동을 해야 하다 보니, 주변에 관계없는 사람들도 알게 되고.
예전까지는 알아서 조심스럽게 했겠지만, 지금은 친구사이 상근자다. 이게 연애할 때 걸림돌이 되지는 않나.
- 물론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다. 이건 상근자뿐만 아니라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들이면 누구나 느끼는 부분이 있을 거다. 내 경우에는 어플에서 블락 당한 경우도 있었다. 그게 좀 충격이긴 했다. 친구사이 활동가는 블락? 이 공식이 웃겼다. 그래도 그냥 받아들인다. 그게 현실이구나. 그럼 나는 어디서 누굴 만나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웃음) 그런데 거짓말은 하기 싫으니까.
맞다. 그런 게 좀 우습다. 그 부담의 정체가.. 불안, 의심, 공포 그런 것들일텐데. 우리가 해야 할 게 참 많다.(웃음) 그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 지금 당장은 외모 같은 것보단, 나의 이런 생활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어플 자기소개에는 ‘오디너리 게이’라고 적어놨지만, 게이 커뮤니티 내부에서 볼 때는 우리는 정말 독특하고 튀는 아이들인 것 같다. 나를 이 직업이나 활동 같은 것으로 보지 않고 그냥 나 자체로만 봐주면 좋겠는데, 뭐 때 되면 생기겠지. 하고 있다.
별로 조급한 마음은 없어 보인다. 당장은 연애 욕구가 없나 보다.
- 아니다. 조급하다.(웃음) 기회가 되면 하고 싶은데, 지난 이별을 정리하기도 해야 했고 스스로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 시기인 것 같다.
알겠다. 이건 그냥 요즘 유행이라 물어보는 건데, 낮이밤져인가, 낮져밤이인가. 노코멘트 해도 된다.
- 이 질문 어디선가 받은 기억이 있는데, 나는 낮에도 이기고 밤에도 이기고 싶다.(웃음) 농담이고 모르겠다.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나. 그냥 하는 거지... 그렇다. 그냥 한다.
# 또 다른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기다리다.
이제 슬슬 인터뷰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오디너리 게이’라고 하니, 오디너리한 질문들로 마치겠다. 숨도 돌릴 겸. 일단은, 최근에 관심을 두는 것들이 있나.
- 최근에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다. 아침 출근길은 항상 스트레스다. 사람도 많고 부대끼고. 사소하지만 그런 스트레스에서 좀 벗어난 삶.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걸어서 출근을 해봤는데 너무 좋았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밤에 잠도 잘 온다.(웃음) 그리고 한 번도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 체감을 하지 못하고 살다가, 이제는 집을 나와서 스스로 삶을 꾸리면서 살아가야 하다 보니, 거주하는 공간이나 공동체, 어떤 자급자족적 삶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 가급적이면 내 일터가 있는 서울 안에서의 그런 삶을 모색해보는 중이다.
아. 사진찍는 것도 참 좋아하는 것 같던데.
- 그렇다. 우선 추억을 남기는 용도로 좋아한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뭔가 사람들과 친해지는 매개체로 늘 사진을 사용한 것 같다. 쾌활한 성격도 아니고 조용한 내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나름의 자구책이랄까? 사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찍은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할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들이 더 좋다. 그런 재미로 사진을 찍는 것 같다. 풍경보다는 사람들을 찍는 것이 더 좋고.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 어떤 상대를 실제로 눈 앞에서 볼 때와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볼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그 때의 그런 느낌이 참 좋다.
인터뷰 중간에도 많이 느꼈지만, 서울이 워낙 대도시이기도 하고, 인구밀도도 어마 무지하고. 그러다 보니 그런 것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 그렇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은 게 정말 괴롭다. 그런데 괴로워만 하기보다는 그것을 기회 삼아보고 싶기도 하다. 이 낯선 공간에서, 지금은 친구사이 인맥이 내 커뮤니티의 거의 전부인데 그것을 벗어나 관계를 좀 더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삶에 대해서도 참 많은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그리는 삶이 있나.
- 일단 내가 선택한 것들. 하기로 한 일들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좀 더 갖추고 싶다. 최근에 이런저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마 올 한 해는 그렇게 지낼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정리를 좀 해보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모금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고, 음. 내가 나중에 어디를 가더라도 도움이 될 것들을 더 찾아서 배워보고 싶다.
예전에 친구사이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정말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나도 그것에 많이 동의했다. 좋은 방향인가?
- 음. 뭐 그렇다. 나는 사실 서울에 오고 친구사이 일을 하면서부터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서.. 뭐랄까. 인생의 방향이 어느 순간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큰 변화가 또 찾아올지 모른다. 그냥 어떤 상황이나 변화에 놓이더라도 일관성과 자아 성찰을 잃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가벼운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는데,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이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믿음은 있다.’고 대답을 했었다. 그 믿음을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좋은 이야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지켜내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내길 바란다.
인터뷰/편집 : 샌더
김찬영님 메일 주소 : deepnote@naver.com
※ 이 인터뷰의 내용과 사진은 김찬영님과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
에디를 처음 본 건 2014년 신촌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였다. 부스를 지키고 있던 친구사이 언니들을 보고선 저 멀리서 한달음에 달려와 반가움을 표시하던 그녀. 이후 다양한 활동들 속에서 늘 밝고 넘치는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활력을 불...
41번째 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은 차세빈 님입니다. 이태원의 클럽 Le Queen, Looking-Star, 호텔포차 대표를 맡고 있으며, 이태원의 게이들에게는 이미 유명하신 분입니다. 더불어 근래에는 퀴어퍼레이드 무대를 비롯, 올랜도 LGBT클럽 총격사건 추모문화제에서도 ...
40번째 커밍아웃 인터뷰는 해영님입니다. 여러 해 동안 <지보이스> 객원으로도 활동해서 우리에겐 많이 친숙하기도 하고, 커뮤니티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지난 겨울 서울 시청 농성장에서도 볼 수 있었던 얼굴이었습니다. 평소 수더분한 이미지의 그에게 어떤 이...
친구사이 사무실을 방문하면 늘 조용히 맞아주는 청년이 있다. 새침한 듯하지만 알고보면 안경 너머 다정한 눈을 가진 청년. 친구사이의 상근자로 오며가며 많이 알고있을 얼굴이지만, 불필요한 말은 잘 하지 않는 성격 탓에 여전히 궁금한 것 투성이인 그 남자. 그 남...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이번 인터뷰 주인공인 김종국 형.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느릿한 말씨지만 중요한 말을 앞두거나 강조할 부분에서는 말을 멈추고 지긋이 한 곳을 응시하는 여유를 아는 형이에요. 쬐끔 많은 나이에 굴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이 있거나 옳다...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2013년 5월 15일 문화대통령이라 불린 가수 서태지의 결혼발표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친구사이 현 대표이자 영화감독 겸 제작자인 김조광수 대표님의 결혼 발표였지요. 이와 함께 그동안 열...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낙타 여행노동자 김기민 씨, 친구사이나 LGBT 행사에서 몇 번 그를 마주쳤을 땐 새침하게 말하기를 싫어하는 미소년인 줄 예상했었어요. 그러나 그가 손수 내온 홍차와 샌드위치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질문의 요지에 맞춰 달...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선가드 마흔이 넘은 사람의 인생은 얼굴에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그렇다. 이십대 시절의 그는 우수에 젖은 표정의 순정만화 속 창백한 청년 이미지 그대로였다. 소녀들이 꽤나 따라다녔을 게다. 인터뷰이의 친구인 이성애자 여...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법 없이도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지나다니는 차 한대 없던 한적한 거리에서 교통법규를 지키기 위해 먼 길을 종종걸음으로 돌아 친구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이 꽁초를...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선가드 지난 6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국내 최대의 성소수자 행사인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그날 저녁 각종 뉴스 사이트의 첫 화면에는 이 퍼레이드에 대한 기사들이 속속 올라왔고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댓글들 역시 봇물처럼 ...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차돌바우 서른 두 번째 커밍아웃 인터뷰의 손님 역시 레즈비언이다. 그는 아직 학생이고 꽤 젊다. 인터뷰이와는 안면만 겨우 익힌 사이라서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기대반 불안반.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안방처럼 생긴 찻집...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썬가드 서른 한 번째이자 두 번째 레즈비언 커밍아웃 인터뷰어는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이하 센터)의 활동가이자 엘지비티(LGBT)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인 ‘홀릭’님이다. 십여 년 전 조용히 나타나 어느새 국내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대...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차돌바우 도발적이고 섹시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채식주의자, 소셜테이너, 게다가 품절녀인 삼십대 여성을 한명만 꼽아보시라. 이효리? 이효리라면 너무 쉽지 않은가, 오늘 우리가 만날 사람은 이효리보다 앞서서 가수로 데뷔했고, 채...
인터뷰 및 정리 : 샌더 사진 : 선가드 얼굴은 낯익지만 대화를 나누어 본적은 없다. 고백하자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10여년 전부터 친구사이 활동을 했다기에 따분하고 고지식한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었다. 하지만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의 인상은, 내 생...
인터뷰 및 정리 : 샌더 사진 : 동하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의 지휘자.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오케스트라와 몇 개의 합창단을 오가며 학업도 병행하고 있는 욕심 많은 젊은이. 커밍아웃 인터뷰 중에도 일을 하는 일 중독자. 무대 위에서 지휘할 때가...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네 명의 게이들의 커밍아웃을 다룬 다큐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 부산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후, 그와 영화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여요. 지난 이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듬직한 체구에 늘 카메라를 짊어지고 다니던 그의...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이번 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은 이종걸님입니다. 현재 친구사이 상근간사이자 인권팀장, 회원지원팀을 맡고 있고 무엇보다 친구사이에서 미모가 돋기로 유명한(?) 게이코러스 모임 G-Voice(이하 지보이스)의 단장이기도 하지...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열심히 활동하는 게이들’이라는 주제로 실시된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정욜 씨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의 초창기 활동가이면서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굳건히 활동을 지속하는 열혈남입니다. 우연하...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안녕하세요. 2010년도에 커밍아웃 인터뷰를 담당하게 된 라이카입니다. 잘 읽어주세요.^^ 이번 인터뷰는 게이 커뮤니티나 인권단체 혹은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게이들’ 이라는 주제로 진행이 되었...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스물두 번째 인터뷰, “꽃중년시리즈”의 세 번째 인물은 김성진입니다. 훈훈한 외모와 행동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스캔들을 일으켰던 문제의 인물. 항상 바쁜 듯 보여 사생활이 궁금했던 인물.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