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늘 공개하는 마지막 글은 지난 2012년 11월 이후로 친구사이 상근자 이면서, 홍보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낙타님의 글입니다. 친구사이 상근자 및 회원으로서 활동하면서 겪었던 일 들 중, '언니'라는 정체성(?)과 만나면서 느꼈던 점을 재밌게 솔직하게 잘 이야기해줬습니다.
---------------------------------------------------------------------------------------------
친구사이와 언니 – 낙타
친구사이가 생겨난 지 20년, 그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언니들이 친구사이를 거쳐 갔고 또 생겨났다. 아직 건재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충실하고 계신 언니부터 이미 고인이 되신 언니, 혹은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한 언니, 또 집나간 언니까지 친구사이에서 언니는 어떠한 존재였고 또 어떤 의미로 일컬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언니에 대하여>
과거의 친구사이에서 언니의 의미는, 우리 고유어가 아닌 ‘형’ 이란 표현을 대신하여 순수한 우리말로 알려져 있는 언니를 사용함과 동시에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에서 획일화 되어진 호칭에 반하고, 친밀감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어졌다고 한다.
2014년 현재 언니 혹은 성님(?)의 의미는 평균연령 30대 중반 이상, 친구사이 평균 활동 년차 10년 이상이며 사회적 혹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적 반열에 오른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에 속하지 않고도 스스로가 언니임을 자처하며 언니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고, 혹자는 저런 범주와 상관없이 스스로가 언니임을 자각하고 그것이 어색하지 않는 그 순간이 진짜 언니가 되는 때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듯 지난 20년 동안 ‘언니’는 회원들 간의 친교와 유대감의 표현에서 조직 내의 특정한 단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또한 이 ‘언니’들은 연남동 사랑방에서 시작한 친구사이가 대한민국 게이 유흥의 메카인 종로낙원동에 입성하게 만들기 까지 물심양면으로 힘을 써서 단체를 이끌어 온 실질적인 주역들이다. 친구사이가 걸어오며 겪은 결정적인 매 순간마다 선뜻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았다는 후일담을 왕왕 들을 때 마다, 이들이 이 단체에 가지는 애정이 얼마만큼 인지, 또 이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2014년 현재에도 언니들은 친구사이의 요직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단체의 운영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하여 이끌어나가는 실질적인 단위이기도 하다.
<언니의 은밀한 매력>
언니들의 특징은 대체로 목소리가 크고 음주가무를 즐기고 또 그것에 능하며, 신중한 듯 하지만 거침없고 뻔뻔하며, 오랜 시간 단련된 기갈과 노련함을 바탕으로 한 거침없는 독설로 회원들의 사기를 한 번에 꺾어버리거나 또 뜬금없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회원들의 마음을 녹여버리는 도통 그 속엔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 알 수 없는. 제갈량도 울고 갈 정도의 수완을 겸비하고 있다. 그에 반해 언니들은 또 굉장히 여리고 쉽게 상처받고 불편해하고 긴장하고 싸우고 또 화해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소녀와도 같은 심리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언니를 위한 나라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무궁무진한 매력을 지닌 언니들을 여전히 많은 회원들을 어려워하거나 먼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세대 간의 문제는 비단 우리 조직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회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언니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비교적 젊은 회원들의 단위에서 조차 점점 나누어지는 간극들을 보며 우리 모두는 그저 멀어져만 가는 언니들을 그렇게 속절없이 보고만 있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때때로 한다.
아이유의 좋은날을 듣고 자란 친구들에게 정미조, 김추자의 흘러간 옛 노래들을 들려주면 되는 걸까? 아니면 같이 손이라도 잡고 종묘로 남산으로 함께 뛰어다니며 과거의 힙 했던 크루징 현장 체험(?) 투어라도 함께 한다면 이 간극이 좁아질까?
왜 한창 흥이 무르익어가던 술자리에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언니가 앉으면 다들 그렇게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무는지, 왜 뒤풀이 에서 하나, 둘 빠져나와 모처에서 다시 모이는지. 술자리에 누가 있는지 미리 확인을 하고 언니가 있으면 그 자리는 피하는지.
이러한 고민 끝에 불현 듯 머릿속을 스쳐가는 언니의 한 마디가 있다. “야! 그러는 너는 안 늙을 줄 아니 이년아?”
<그렇게 언니가 된다>
그렇다, 굳이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려 아등바등 노력을 해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 ‘언니’가 될 것이라는, 나이 듦에 대한 충분한 대화나 이해가 없다면 ‘언니’라는 존재는 여전히 이 조직 내에서 권위적이고 꽉 막힌 융통성 없음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것들에 대한 소통만 있다면 우리가 더욱 가까워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언니’는 자연히 나에게 돌아오는 삶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우리도 함께 언니가 될 준비를 해나가게 되지 않을까?
또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굉장히 설레는 일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언니들과 그 언니들이 걸어 갈 다양한 길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즈음에 ‘언니’는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소중한 것이 되어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