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그리고 창조론. 물과 기름 같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관계지만, 어찌보면 또 엄마 아빠 같이 함께 해야만 완벽한 존재. 이처럼 모순적인 개념이 또 있을까.
두 이론은 저마다의 논리와 증거를 내세워 인류의 역사 내내 논쟁을 이어왔다. 인간 이전의 세계를 다루다보니 누가 옳고 그르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가운데, 결국엔 개인의 관점과 신념이 개입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해묵은 다툼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와 같다.
여기 대놓고 진화론의 입장에서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에 비유한 책이 있다. 창조론자 및 일부 기독교인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 만무했음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털 없는 원숭이>가 판매 금지되었고, 교회는 이 책을 몰수해 불태웠다. 인간 진화론은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이 책은 소름 끼치는 악취미의 농담으로 여겨졌다. 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종교적 선전물이 홍수처럼 저자에게 쏟아져 들어왔다.'는 책소개가 이상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진화론을 거부하게 만들었을까. 왜 종교인들은 창조론을 목숨 같이 여길까.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진화론도 모자라 인간을 원숭이 및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까. 이런 생각으로 자연스레 작품을 마주하게 되었고, 답은 찾지 못했지만 고개는 계속 주억거리게 만들었다.
짝짓기, 기르기, 모험심, 싸움, 먹기, 몸손질 모두 인간이 여타 동물들과 다를 바 없이 하는 것들이며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짝짓기는 자손의 번성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육체적 흥분을 위해 필수적이며, 그렇게 해서 나은 아이를 기르는 것도 동물적 본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모험심(네오필리아)과 싸움은 인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 되었고, 영장류의 입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몸손질은 털손질을 대신하는 원시적 욕구 표현이라는 점이 참 인상적이다.
게다가 책은 진화론과 창조론을 넘나든다.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역사 속 예를 들면서 나오는 것들이 창조론에서 주장하는 에덴 동산, 무화과 따먹기, 수치심을 느껴 옷으로 성기 가리기 등인 것이다. 이 무슨 막돼먹은 장난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으로써 창조론자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매력을 잘 살린다. 위트도 있고.
50여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 현대와는 맞지 않거나 어색한 부분이 더러 있기는 하다. 동성애를 유전적으로 보거나 생물학적으로 건전하지 못하다고 한다거나, 출산율을 줄여야 사회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한 발상, 인간은 정해진 식사 횟수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점점 늘어나는 채식주의자/반식주의자들, 인류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영장류인 침팬지/원숭이라는 조사 결과(지금은 분명 개,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일 것이다.) 등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또한 사실과 추론의 나열 속에 정작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결론은 마지막에야 나온다는 부분이 조금은 맥 빠진다.
그래도 주장은 명확하다.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인정하자'고. (대부분 창조론자들이 더 그런 것 같지만) 인류가 다른 동물보다 위에 있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동물학대, 유린, 멸종 위기 동물 포획 및 식용/장식용으로 사용하는 등의 행위는 죄악에 가깝다. 창조론으로 봤을 때도 신은 인간을 그런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 우주 만물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디인가, 역할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가장 위약하지만 가장 위험한 동물, 인간은 그래도 좀 더 현명하게 진화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