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3주 전]
지난 7회 공연 땐 하마터면 관람을 하지 못할 뻔 했었습니다. 이번엔 기필코 느긋하게 도착해서 여유있게 관람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던 터에 8회 공연은 유료 공연이고 예매를 한다는 것을 우연히 들어온 자유게시판에서 알게 되었을 때 안도의 한 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아직 공연은 3주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기분은 들떠버렸고, 어디선가 연습실을 빌려 구슬 땀을 흘리고 있을 지-보이스 단원들을 생각하니 뭐 좀 먹을 거라도 사서 연습실을 방문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음.. 이건 좀 오버 같아서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보이스 창단 10주년을 기념하는 여덟 번 째 정기 공연의 제목 열, 애 를 어떻게 읽어야 할 지.. 포스터를 보고 잠깐 시간이 멈춘 듯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_보이스 창단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부여해서 10번 째 사랑이라는 뜻으로 읽히길 원한 것일까? 열정적인 사랑을 주제로 공연을 한다는 의미를 담은 제목일까? 엉뚱하게도 이런 것에서 쉽사리 멈추질 않는 궁금중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공연 3일 전]
표 2장을 예매했지만 아직 같이 갈 사람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좁고 엷은 나의 인맥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괜히 2매를 예매했나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꿈틀댑니다. 스마트 폰 속의 연락처를 뒤져 마침내 거절하지 않을만한 사람을 발견하고 전화를 겁니다. 예상은 적중했고-비록 그냥 동생일뿐이지만-혼자 관람하지 않게 돼서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 3분 전]
처음 실시하는 유료 공연이라 그랬는지 주최측의 행정적인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왜 내게 이런 일이...!"라며 공연전 불평으로 마음을 상하게 할 뻔 했지만, 공중으로 사라진 저의 예매 표를 대신할 표를 구해주느라고 친절하게 애써 준 이쁜이 형과 데이에게 너무너무 고맙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불어 이 자리를 빌어 못하면 티나고 잘해봐야 본전인 스탭으로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입에 발린 소린 같긴 하지만 스탭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공연은 상상도 못할 거란 걸 경험으로 잘 알기에 다시 한 번 정중히 감사드립니다. 표를 손에 쥐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해마다 와서 그런지 이름은 몰라도, 인사는 하지 않아도 얼굴을 익히게 된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그저 얼굴만 낯익을 뿐인데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 처럼 마음 속으론 반갑기만 합니다.
[공연 3분 후]
공연 시작 시간은 지났지만 객석은 아직 빈 자리가 많이 눈에 띕니다. 역시 처음 시도해보는 유료 공연 탓일 거라고 의자에 기대어 짐작을 하며 어서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립니다~
"이번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 <열, 애>는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스스로 정리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조정하여, 더 많은 소통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획했다"는 기획의도를 설명한 글을 보며 <열, 애>를 어떤 마음 가짐으로 관람해야 할 지 저도 방향을 정해 봅니다.
나와 같은 성소수자들에게 지_보이스의 공연과 지_보이스는 희망이 되겠지만, 호모포비아들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이렇듯 지_보이스를 향한 상이한 감정은 아마도 공감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요~ 공감! 그런데 사실 말이나왔으니 말이지만 성소수자 아니 그 보다 범위를 좁혀 게이 커뮤니티로 한정 짓는다해도 모두가 지_보이스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좀 충격인가요? 아직 함께 공연 보러 갈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때 오랜만에 말 좀 통하는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공연을 함께 보러 갈 의중으로) "지_보이스 아냐?"고 슬쩍 운을 떼어 보았지만 "그게 뭔데?" 그럽니다. 그래서 이번엔 "그럼 혹시 친구사이는 알아?" 그랬더니 "나 그런 거 관심없어." 쩝...
피스맨이란 노래가 처음 정기 공연 무대에 올려졌던 몇 해 전의 공연에는 함께 간 동생-190cm에 100kg가 훌쩍 넘는 거구인데 농구와 당구를 함께 즐기다 친해진 녀석-이 이 노래에 화를 삭이지 못하고 인터미션 때 집으로 가려는 걸 겨우 달랜 적이 있었는데 그 녀석을 그렇게 만든 건 아마도 게이들은 운동을 못하거나 싫어할 거라는 이성애자들의 편견을 이런 단체에서 앞장서 수용하고 확산하는 것데 대한 우려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녀석의 기우가 달을 가리킨 손가락을 본 자의 일방적 오해일 수 있지만 분명한 건 그 부분에서 공감대를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소통을 원하고 희망을 전하는 친구사이 혹은 지_보이스이지만 녀석에게는 "나"에게 공감해 주지 않는 커뮤니티에서 평화나 희망의 멧시지는 공허하게 맴돌다 여운만 남긴채 관객들의 박수소리 속으로 사라질 뿐입니다. 음..그 때의 나는 그 가사를 통해 체육 시간을 싫어했던 이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는 계기로 삼았지만 분명 어떤 이들은 녀석과 같은 마음일 수 있습니다. 공연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년 관람하러 오지만 제가 아는 농구, 당구 커뮤니티 사람들을 좀 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건 그들의 수가 적어서라기 보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가리키는 달은 안보고 손가락을 본다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왜 그런 일이 생겨나는 지 부터 상대의 입장에서 서로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람하러 오는 각자는 지_보이스 혹은 친구사이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소수이니 관용을 베풀어 다양한 게이들의 가치관을 수용해 줄 수 있을만큼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어머, 게이가 무슨 당구야?" 그런 말은 나로 하여금 게이커뮤니티 내에서 나를 혼자인 것 처럼 느껴지도록 합니다. 그것이 농담이든 진담이든 그 말은 마치 "야, 남자새끼가 이게 뭐야?" 하는 이성애들의 그것과 하등 다를 게 없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이들의 그런 말은 상처가 됩니다. 음... 전 지금 비판이나 비난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발 그렇게 읽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만, 더 많은 소통을 만들기 원하는 기획의도에 의지해 용기를 내는 중입니다. 나란 놈은 이런 사람이라고... 운동을 좋아하는 게이도 있다고, 언니란 말이 여전히 어색하고, 여긴 남자가 없어! 라는 가벼운 농담에도-그건 마치 성소수자를 향한 이성애자들의 조롱을 자조하는 것 같아- 웃을 수 없는 게이라고 조심스럽게 진심을 담아 나를 여러분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입니다. 이런 나는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조차 남들과 달라 혼자인 줄 알았었고, 아, 아, 이런 모습의 내가 게이가 맞나 한적도 많았었고 어줍잖게 소통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만 깊게 남기기도 수차례였지만, 이 거리 누군들 그 정도 슬프지 않은 사람 없으니 혼자서 궁상은 그만 떨고 고개를 듭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철없는 40대이지만 어딘가 있을 지 모를 내 손을 잡아주고 싶은 사람을 위해 Up 독하게 웃으며 일어서서 다시 시작 할 수 있도록 지_보이스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믿음으로 여러분에게 나를 커밍아웃합니다.
더욱 더 많고 다양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게이들이-당신들이 제시하는 희망에 기꺼이 동참하고 지지하고 응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오던 사람뿐 아니라 매회 공연 때 마다 처음 오는 관객들의 수도 점점 더 늘어나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꿈꾸는 세상이 곧 나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길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공연도 저의 작은 가슴에 다 담지 못할만큼 너무 좋았지만 앞으로의 공연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고 감동을 주는 희망의 공연이 되길 바랍니다.
추신.
이번에 함께 보러 간 녀석은 나와 같이 지_보이스에서 1회 때 공연을 한 녀석인데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합니다. 녀석의 마음에 적잖이 감동이 되었나 봅니다. 사실은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이가 많기도 하고... 그보다는 여러가지로 조심스러워 그런 마음은 얼른 다시 집어 넣습니다.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늘어 조금은 놀랐지만 여전히 지_보이스에 알아보는 얼굴이 있다는 건 또 그런대로 편안하고 즐거운 관람이 되었습니다.
광수형과 데이의 결혼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꼭 참석해서 멀리서라도 축하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질 않았네요.
재우형도 달콤한 신혼인 것 같네요~ 부럽고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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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게이들은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즐기지 않는다는 편견에 저역시 엄청나게 사로잡혀 있었던것 같습니다.
요 근래 만났던 동생이 야구를 좋아했는데 그 친구에게 너 일반남자 같다고 해버렸거든요.
결국 그 지점에서 보편적인 게이들의 성향과 소수(?)인 게이들의 성향으로 다시한번 차별해 버렸구나 라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됩니다. (이것역시 제 개인적인 생각일뿐입니다 ㅎ)
좀 더 의식있는 그리고 소수의 소수가 생겨나지 않도록 주의깊게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야 할것을 단비님의 글을 통해 배웁니다~
또 친구사이에 수영말고 다른 운동모임이 생기길 바라며 ㅎ
공연에 참여한 이로써 그래도 감동을 드렸음에 뿌듯하고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할것을 다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