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38 김종국 : 상 남자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이번 인터뷰 주인공인 김종국 형.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느릿한 말씨지만 중요한 말을 앞두거나 강조할 부분에서는 말을 멈추고 지긋이 한 곳을 응시하는 여유를 아는 형이에요. 쬐끔 많은 나이에 굴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이 있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용기를 내 돌진하는 멋진 사람이지요. 몸 짱일 뿐만 아니라 마음 짱이기까지 한 종국이 형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라이카 : 안녕하세요, 형.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우리가 격식은 있는 사이니까(웃음)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김종국 : 이름은 김종국 이구, 나이는 올해 마흔다섯 되었네.(김종국님과의 친분 관계로 존칭이 생략되었음을 양해바랍니다.)

 

라이카 :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김종국 : 태어난 거는 전라도 강진이고 고등학교 때 광주로 유학을 간 거지. 그 때는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많이 갔으니까.(웃음)

 

라이카 : 그렇군요. 바로 돌직구 질문 날립니다. 그럼 촌이고 해서 정보도 빈약했을 텐데 정체성은 언제 알게 되었나요?

김종국 : 스스로 게이구나 하고 느낀 건 서른다섯 때지. 난 스물두 살 때부터 서른다섯 때까지 음지에서 살았다고 생각해.

 

라이카 : 헉. 서른다섯 이라구요?

김종국 : 물론 데뷔 비스무리하게 한 건 스물두 살 때지만 그 때는 게이로서의 자각이 희미했고 방황을 많이 했으니까.

 

라이카 : 자각이 희미했던 거예요? 아님 인정하기 싫었던 건가?(웃음)

김종국 : 뭐 인정하기 싫었던 거지. 장남이기도 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도 얽혀있고 했으니까. 그런데 고등학교 때도 막연히 예쁘거나 귀엽게 생긴 친구들을 보면 맘이 설레고 그랬어. 잘해주고 싶기고 하고. 사실 여자애들에 관해서는 전혀 추억도 기억도 없어. 오로지 남자 아이들과의 추억 외엔 기억나는 게 없거든. 그래서 그런지 국민학교 동창 모임에 가서 그 시절의 여자 친구들을 만나면 상대는 어렴풋이 날 알아보는데 난 전혀 못 알아봐서 당황스럽기도 해.(웃음) 그 여자 동창이 아무리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 중에 인기가 많았어도 말이야.

 

* 선데이 서울로 데뷔를

 

 

라이카 : 아까 스물두 살 때부터 서른다섯까지를 음지라고 표현했는데 고등학교부터 썸씽(?)이 있어왔는데 스물두 살부터라고 규정짓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종국 : 있지. 선데이 서울.

 

라이카 : ‘선데이 서울’ 보고 파고다 극장을 갔군요. 선데이 서울이 게이 여럿 데뷔시켰다니까.(웃음)

김종국 : 그 때 제대했을 때는 도시가스 공급이 원활치 못했던 시절이었어. 그래서 퇴계로 근처에서 120CC 바이크로 가정용 가스통을 배달을 하는 가게에 취직해서 일을 할 때였어. 내가 바이크를 많이 좋아하거든. 학창 시절부터 동경하는 바이크를 몹시도 타고 싶어서 그 일을 한 거였지. 그 때도 거기서 알게 된 두 살 아래인 귀여운 동생에게 동생 이상의 감정이 생겨서 엄청 잘해줬지. 아무튼 그 당시에 그 잡지를 보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끌려서 가게 된 거지.

 

라이카 : 어땠나요. 첫 경험은.(웃음)

김종국 : 앞에서도 인터뷰이들이 얘기했지만 중년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영화는 안 보고 많이들 서성이더라구.(웃음) 화장실에서도 그렇고. 자리에 앉자마자 한 아저씨가 옆에 앉더니 양복으로 가리더니 슬슬 손이 접근을 하더라고. 근데 그 때는 좀 두려웠던 거 같아. 그래서 왜 이러세요, 막 이러면서 뛰쳐나왔어. 무섭더라고. 그래서 한 동안 안 갔는데.

 

라이카 : 안 갈 수가 있나. 그 때는 거길 가야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데.(웃음)

김종국 : 그렇지. 나도 모르게 또 가게 되더라고. 뒤로 한 두어 차례 가서 스킨십 비스무리하게 경험하게 되니까 다음엔 찜방으로 넘어가게 되더라고. 아까 말한 선데이 서울에서도 무슨 극장, 화장실, 찜방 이런 게 나오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서로 정보를 주더라고(웃음) 어디어디 가면 된다고. 그런데 그 땐 식이고 뭐고 없었어. 그냥 사람이 그리웠던 거 같아.

 

라이카 : 그럼 10년 정도를 그렇게 보낸 건가요?

김종국 : 참 그러고 보니 남산도 뛰었구나.(웃음) 내가 스물네 살 때 어떤 회사에 아는 형 소개로 들어갔거든. 그런데 그 당시로 보수가 좀 좋았어. 당연히 차도 갖게 되고. 그 당시에 장충단 공원 쪽에 트랜스 젠더나 여장을 한 게이들이 헌팅을 많이 했었거든. 그래서 차를 몰고 가서 헌팅해서 잠도 자는 거에 한동안 빠졌었지. 그 때 처음 깊은 잠자리도 가져보고.

 

라이카 : 또 어디어디 갔었어요. 빨리 얘기해요.(웃음)

김종국 : 서울 사우나 투어도 했지. 아까도 얘기했지만 한 군데 가면 다른 곳의 정보를 또 얻을 수가 있더라고. 그 때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 근처에 나름 유명한 사우나가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동갑 친구가 사귀자고 한 거야. 고민을 많이 했었지. 처음으로 내가 남자랑 연애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결국 그 친구랑은 잘 안 됐지만 그 즈음 첫 연애 상대를 만난 거지. 그래서 걔랑 서른 살까지 사귄 거야.

 

* 너무 아팠던 첫 연애

 

 

라이카 : 꽤 오래 만났네요.

김종국 : 연애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데이트하고 영화보고 이런 게 아니었지. 주로 만나서 잠만 자니까. 그리고 처음에는 그 친구에게 그닥 호감이 있지도 않았어. 그런데 자꾸 만나다보니 호감도 생기고 정도 들더니 사랑한다는 감정까지 생기게 되더라고. 그런데 그 친구가 내가 서른 되던 해에 결혼을 해버린 거지.

 

라이카 : 헉, 충격이 컸겠어요.

김종국 : 엄청 힘들었고 상처를 받았지. 어쨌든 연애 막바지에는 내 진심을 다해서 사랑한 거니까. 그래서 그 충격으로 서른다섯 살까지 이성애자 코스프레를 하고 산거야. 여자를 만나려고 노력도 해 보고.

 

라이카 : 그래서 만나봤나요?

김종국 : 두 명 정도 만났어. 한 명은 세 살 연상 누나였는데 집에 인사까지 시킬 정도였으니까 꽤 각별한 사이였지. 그런데 또 집에서는 그 분이 연상인데다가 궁합 이런 걸 보니까 별로였나봐. 그래서 반대를 하시더라고. 그 와중에 또 잠잘 남자를 찾는 나를 발견하게 된 거야.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이성애자 코스프레를 하고 산다고 해도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구나. 그래서 그 여자에게 집안에서 반대가 심하다는 핑계를 대고 헤어진 거지.

 

라이카 : 음... 복잡했겠네요.

김종국 : 그렇지 그 후에 시티를 통해 만난 남자와 1년여 사귀다 헤어져서 아픔을 겪다가 마침 2008년도 쯤에 **담배라는 국산 담배 체인점에 투자를 해서 광주로 내려가서 나주 대리점을 운영하게 된 거야. 그래서 시골로 다시 내려가게 된 거지.

 

라이카 : 아까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를 분명히 강조하면서 변화된 시기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종국 : 서른다섯에 결혼까지 생각한 여자와 헤어지고 그 후에 만난 남자와도 잘 안됐고 다시 광주로 내려가면서 한 6개월 만난 동생이 있었는데 잘 안 됐어. 그런데 여러 일들이 겹치다 보니까 많이 힘들더라고 그래서 아는 형한테 커밍아웃도 하게 되었지.

 

라이카 :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정체성을 이야기한 거였나요?

김종국 : 아니, 사귀던 여자랑 헤어졌을 때, 서울에 있는 각별한 고향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어. 난 여자보다 예쁜 남자들한테 관심이 간다고.

 

* 미술관에 간 날라리

 

 

라이카 : 그래서 나주 형에게 이야기할 즈음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김종국 : 그 즈음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어. ‘미술관에 간 날라리’라고.

 

라이카 : 날라리?

김종국 : 전에 읽은 소설 중에 주인공 여자가 게이바에 있는 게이들을 보고 날라리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어. 그래서 스트레이트들이 게이를 날라리라고 부르는구나 싶었어. 미술관에 간 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날라리라고 한 거지. 그런데 그 즈음 블로그를 통해서 샌더(현 지보이스 단장)와 광수 형(현 친구사이 대표) 블로그 등을 알게 되었는데 블로그 상에서 자신들이 게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더라고. 좀 놀랐지.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밝게 살아가는 게이들도 있구나 싶었던 거야. 그래서 2008년도인 그 때 처음 친구사이에 온라인 가입하고 1년 정도 홈페이지 눈팅을 한 거지. 그러다 2009년도 친구사이 워크숍을 처음 나가게 된 거고.

 

라이카 : 아 일영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했던 거요? 형 왔던 거 기억나네요. 어땠나요? 느낌이.

김종국 : 사실 그 전에 음지에 있었다고는 했지만 뭐 알 건 다 알았거든. 그런데 그 전에는 게이들하고 인맥이 잘 형성되지 않는 거야. 대부분 잠자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그런데 친구사이에 나오면 성적인 것 이외에 친구도 만나고 인맥도 만들어 나갈 수 있겠구나 싶었어.

 

라이카 : 또 뭐가 보이던가요?(웃음)

김종국 : 친구사이에 참여하면서 퀴어문화축제에도 참여하게 되고 퍼레이드 하는 것도 보게 되었지. 너무 멋있는 거야. 그래서 외국 퍼레이드 자료도 찾아서 보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몸에 관심이 가더라고.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지.

 

* 팬티만 입고 트럭 위로

 

 

라이카 : 그러다 드디어 작년(2012년)에 팬티바람(웃음)으로 트럭에 올라가게 된 거군요. 퍼레이드 행렬에 참여하다가 막상 트럭에 올라가는 것은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거잖아요. 게다가 작년 친구사이 트럭 컨셉이 ‘게이창조’여서 벗을 수 있는 만큼 벗는 거였는데 거부감은 없었어요?

김종국 : 내가 퍼레이드에 관심을 갖고 외국 자료도 찾아보고 했댔잖아. 그런데 거기 보니까 뭐 훌렁훌렁 잘 벗더라구.(웃음). 자유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큰 거부감은 없었어.

 

라이카 : 형이 입은 옷(?)을 보고 수영복이냐 팬티냐 논란이 많았어요. 팬티였죠?(웃음)

김종국 : 나름 고민을 많이 했지. 그러다 팬티를 입는 게 낫겠다 싶어 결정하고 사러 간 거야. **클라인. 색깔도 고민을 많이 했어. 빨간색이냐 파란색이냐 노란색이냐.(웃음)

 

라이카 : 그러다 결국 파란색으로 결정이 난 거군요.(웃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막상 트럭 위에 올라가니 떨렸을 거 같은데, 더군다나 예사 복장도 아니었잖아요?

김종국 : 음 나 혼자 올라간 거였다면 떨렸을 거야. 그런데 다섯 명이 같이 올라간 거니까 아무래도 좀 안심이 된 되다가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행사를 보겠나 싶었어. *톡도 못하는 애들인데.(웃음)

 

라이카 : 올라가서 보니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어땠나요? 아 저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구나, 대충 감은 오잖아요.

김종국 : 물론 무표정에 관심을 안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환호해주고 진심어린 눈빛을 보내줬어. 더군다나 트럭 위에서 보면 퍼레이드 행렬도 다 보이잖아. 좀 울컥했었던 거 같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고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해주는 구나 싶었던 거지.

 

라이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게이커뮤니티 안에서는 비판도 많았어요. 왜 벗고 난리냐고.(웃음)

김종국 : 물론 그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성애자들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거잖아. 글쎄, 근데 자유를 느끼고 표현하려는 행사에서 굳이 이성애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을까?

 

라이카 : 아까 서른다섯 이후의 삶에 변화가 있었다고 했는데요, 공교롭게 그 시기에 다시 광주로 내려가게 되었어요. 제가 알기론 거기에서도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들었어요.

김종국 : 그 당시에 친구사이가 보여주었던 인간관계, 인맥들이 좋아보였어. 전에 영수에게 갑작스럽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장례식장에서 같이 슬퍼해주고 서로 힘이 되어주던 모습이 특히 인상 깊었던 거 같아. 인권에 관심도 있고 지속적으로 친분도 쌓을 수 있는 모습들 말이야. 그래서 그런 관계를 내가 있는 지방에서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지. 그런데 나 혼자서는 만들 수 없으니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야 할 것 같았고 또 혹시 생각은 가지고 있는데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라이카 : 그래서 만든 게 뭐였죠?

김종국 : 그래서 처음에 지역 볼링 동호회에 들어갔어. 내 생각에 지역에서 동호회 활동을 할 정도면 어느 정도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내가 생각한 단계는 시티 활동에서 바, 바에서 동호회, 그리고 동호회에서 인권단체가 아닐까 싶었어. 그래서 퀴어영화를 보는 영화 번개 주최도 많이 했었어. 지방에서 남자들끼리 퀴어영화 보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거든. 그래서 그 영화모임에 나올 정도면 상당히 열린 친구들이겠구나 생각했는데 딱 거기까지인 친구들이 많았던 거 같아. 동호회 활동까지만 생각하는. 그것도 주로 20대 초 중반까지의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라이카 : 그래서 모임이 잘 안 됐군요.

김종국 : 그렇지. 제대로 활동을 하려면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야 하는데 그건 힘든 일이고, 지역에서 뭘 좀 해 보려고 하면 벅차다는 시선들을 던져주니까.

 

라이카 : 그럼 얼마 전에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온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김종국 : 그렇지. 그리고 내가 나주에 전원주택 단지를 사서 타운 비슷하게 만들어 볼까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준비를 하기도 했었어. 근데 난 서울과 지방에서 다 생활해 봤잖아. 준비를 하다 보니 집만 지어서 해결된 문제가 아니란 걸 느끼게 된 거지. 사람들도 모야야 하고 고지식한 지역 어른들과도 부딪쳐야 하고 또 상당 기간이 소요될 텐데 이미 나는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기도 했고. 애인하고 둘이서만 살 수 없다는 것도 이미 느낀 바였고. 그래서 서울이나 그 인근에서 인맥을 쌓고 살아가는 게 지금 상황에서는 더 적당하겠구나 생각한 거야.

 

라이카 : 그래도 일터까지 버리고 올라오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김종국 : 게다가 부모님하고 동생들도 다 광주에 살고 있거든.

 

라이카 : 부모님에게는 얘기 하셨나요?

김종국 : 아니 아직 못 했어. 몇 번 기회를 엿보기도 하고 게이 관련 책들도 펼쳐놓고 했는데도 모르시더라고. 그런데 지금은 나도 나이를 먹다보니 예전에 비해선 결혼에 대한 압박도 좀 줄어드셨고. 그래도 계속 속일 수는 없으니까 기회 봐서 말씀을 드려야겠지. 남동생에게는 얘기했어.

 

라이카 : 어떻게요?

김종국 : 내가 광주에 있을 때 동생하고 같이 살았거든. 어머니는 아래층에 사시고. 내가 집에 게이 관련 미술 서적이라든지 친구사이 관련 서적들을 막 펼쳐놓고 거기다 컴퓨터도 켜 놓은 채로 다녔어.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해서. 근데 어머니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시고. 동생이 나하고 네 살 차이인데 얘도 결혼할 생각이 없대.

 

라이카 : 혹시, 동생분도...(웃음)

김종국 :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면 많이 그런 반응을 보이더라고, 그래서 나름 조사(웃음)를 해 봤는데 아직 내 레이더에는 감지가 안 됐어. 예전에는 만약에 동생까지 게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지금은 뭐 그럴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

 

라이카 : 그래서 책들 보고 동생이 알게 된 거예요?

김종국 : 아니. 별 얘기가 없길래 둘이 술 한 잔 하면서 내가 본격적으로 얘기했지. 그런데 애가 가타부타 별 반응이 없어. 그 후로 한동안 어색하게 지내다가 지금은 가끔 술 한 잔 하는데도 내가 그 얘기를 꺼내면 그냥 묵묵부답이야.

 

* 지보이스 공연에서 커밍아웃을

 

 

라이카 : 그럼 친구들한테는 두루 이야기를 한 건가요?

김종국 : 친하게 지내는 고향 불알친구 8명 정도가 있는데 한 두 명에게는 직접 이야기를 했고 나머지한테는 새해 문자를 보내면서 커밍아웃을 했는데 애들이 잘 모르거나 장난친 줄 알아. 그게 뭐냐구.(웃음) 그래서 그 뒤로 만나서 자꾸 이야기를 하는데도 잘 안 믿어. 그래서 나는 한 번도 힘들었겠다. 괜찮아 이해해, 이런 반응을 못 겪어 봤어. 그래서 이번에 서울 올라오면서 친구사이 지보이스에 가입해서 연습하기 시작한 거야. 나중에 공연하면 친구들 불러서 자연스럽게 나를 각인시킬 수 있게 만들고 싶어. 이 인터뷰도 그렇고.

 

친구들 중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는데, 오히려 이 친구가 나를 가장 이해를 못 해. 화를 내면서 미쳤냐고, 정신 차리라 그러고 여자랑 결혼 못하니까 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러고. 오히려 마초 같던 친구들은 별 말이 없는데 말이지. 그래서 이 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하나 하는 것도 앞으로 과제 중 하나지.

 

라이카 : 많이 속상했겠네요.

김종국 : 그런데 이런 생각은 있어. 나처럼 40대 이상의 게이들은 어렸을 때 정체성 때문에 힘들고 고민이 있을 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잖아. 지금의 환경 정도만 되었으면 이렇게 숨어서 힘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싶어서 좀 안타까운 면이 있지. 내 친구들도 그렇고.

 

라이카 : 그럼 이런 활동에 대한 욕구가 서울로 올라온 큰 이유가 되겠군요?

김종국 : 그렇지. 그리고 아까 얘기했듯이 인맥을 좀 쌓고 싶기도 했고. 아까 말한 영수 건도 그랬고 내가 광주에 살 때 친구사이 행사 때문에 올라오면 잘 데가 없잖아. 그럴 때마다 재경이나 정한이형 정남이 등이 흔쾌히 집에서 재워주던 것에 따뜻함도 느꼈고 올라올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정남(현 친구사이 고문)이 바에서 술 한 잔 했었어. 근데 정남이가 그러더라고. 그냥 올라와 살라고.(웃음)

 

라이카 : 그래요. 고민할 때 누군가 옆에서 확 땡겨주면 의외로 쉽게 고민이 풀릴 때가 있어요. 그럼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활동해 보니 어떤가요?

김종국 : 내가 의외로 좀 소극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지 사실 벽이 느껴질 때도 좀 있어. 아무래도 요 몇 년 사이에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의 연령대가 넓어지다 보니 어린 친구들하고는 좀 친해지기 힘든 면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지금은 좀 참고 적응하는 시기로 생각해보려고.

 

라이카 : 더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김종국 : 집에 커밍을 완전하게 하고 나면 성소수자 가족모임에도 참여해보고 싶지. 지보이스도 더 열심히 해서 공연 때 커밍아웃한 친구들이나 해야 할 친구나 지인들도 많이 부르고 싶고.

 

* 입사 면접에서 남자를 좋아한다고.

 

라이카 : 참 얼마 전에 면접 중에 커밍아웃을 하셨다고...

김종국 : 올라왔으니 직장을 잡아야 하잖아. 얼마 전에 철강 관련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관들이 물어보는 거야. 나이가 적지 않은데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냐고. 그래서 사별을 했다고 할까, 결혼할 여자가 있다고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린 거야.

 

라이카 : 헐.. 반응 완전 싸했겠네요.

김종국 : 싸~~ 해졌지. 그래도 사장이 가족이 캐나다에 있고 외국 생활을 좀 해 봐서 그런지 알겠다고 하고 넘어가주더라고. 근데 결국 떨어지고.(웃음) 그래도 이 일을 겪으면서 내가 좀 단단해지긴 했구나 싶었어.

 

라이카 : 근데 집을 부평 쪽에 얻으신 이유가 있나요?

김종국 : 아, 세계 헬스대회에서 우승한 분이 차린 PT 샵이 거기에 있어. 그래서 이왕이면 직장도 그 쪽에 잡고 몸도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기도 했어. 그래서 헬스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가르쳐보고 싶기도 해. 아무래도 게이한테 배우는 게 편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한국엔 아직 게이 올림픽 같은 게 없으니까 내가 나중에 게이 헬스 대회 같은 걸 기획하고 개최해보고 싶기도 하거든. 그러기 위해선 일단 배우기도 하고 인맥도 쌓아야 하니까. 그리고 이제 친구사이를 포함한 커뮤니티에서도 퀴어타운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되고 있잖아. 나중에 퀴어타운이 형성되면 내가 체육관을 열어서 헬스, 에어로빅 등을 통해 몸을 관리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획도 있는 거고.

 

라이카 : 친구사이에도 몸에 관심이 있는 회원들 많으니까 소모임 같은 걸 만들어도 되겠어요.

김종국 : 안 그래도 생각은 해 보는데, 일단 장소, 기구의 문제가 걸리니까 쉽지는 않네. 간단하게는 홈 트레이닝 방법이라든지 다이어트 식단, 운동방법 등에 관해서 특강 비슷하게 강연할 수는 있겠지.

 

라이카 : 근데 작년에 비해선 몸이 좀 불었어요.(웃음)

김종국 : 작년에 급속히 몸을 만들면서 볼 살이 너무 빠진 거야. 그리고 살을 찌워서 근육을 만들고를 반복해야 근육이 커지고 좋아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좀 찌운 것도 있는데 또 갑자기 살을 찌우다 보니까 허리 무릎도 아프고 부작용이 많아. 그래서 다시 빼는 중이야. 한 8킬로는 빠진 것 같아.

 

라이카 : 그런데 몸이 좋아지면 아무래도 인기가 좀 많아지던가요?

김종국 : 솔직히 잘 모르겠어. 물론 좋은 몸을 선호하는 나이대는 분명히 있고 아무래도 요즘은 서로 사진을 보고 만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몸이 좋으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건 사실이지. 그러나 특히 애인이 되고 안 되고는 몸하고는 크게 상관은 없는 것 같아. 난 오히려 예전에 좀 통통하던 때에 더 잘 만난 것 같거든. 자기 건강을 위해서 관리 차원에서 몸을 만드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인기 있기 위해서 몸을 만드는 건 글쎄, 별로인 것 같아. 뭐 내 경험상의 얘기지만.

 

* 내 남자를 소개합니다.

 

 

라이카 : 자 오래 기다리셨어요. 상경의 큰 이유 중 하나는 애인을 만나고 싶어서일 텐데요, 쫙 읊어보세요.(웃음) 제가 아는 바로는 연애인으로 치면 UN의 김정훈, 키는 좀 작고 꽃미남의 마른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맞죠?(웃음)

김종국 : 그리고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커뮤니티에도 같이 긍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친구면 좋겠지.

 

라이카 : 음 그리고 성향은? 이건 신비주의를 위해 살짝 남겨두죠. 궁금하면 형한테 메일을 보내시겠지.(웃음) 나이는요?

김종국 : 나이는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어리지만 개념 있고 주관이 있으면 상관없고. 그리고 살짝 끼나 기갈이 있어야 좋아. 완전 마초 이미지는 안 끌리더라구. 친구사이에서도 맘에 드는 친구가 있는데 뭐 꾸준히 지켜보는 거지.(웃음)

 

이상형을 말할 때 살짝 수줍어하는 형의 미소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얼핏 보면 무뚝뚝하고 강한 이미지이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감성도 있고 상대방을 배려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런 김종국 형과 커뮤니티에서 즐겁게 만나고 활동할 수 있는 분을 빨리 만나시기를 기원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김종국님의 메일 주소 : bluedasan@hanmail.net

페이스북: http://facebook.com/khaijk

블로그: http://nalrari.tistory.com

 

※ 이 인터뷰의 내용과 사진은 김종국님과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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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