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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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웬일이냐? 친구사이 정기모임에 다 오고?”
나의 오랜 벗 무진이 다가오며 물었다.
“자긍심의 절정, 대안의 공동체, 가슴 벅찬 변화에 동참하려고 그러지.”
“내가 널 한 두 해 보냐. 이번엔 누군데? 니 마음에 들어온 사람이 누군데?”
“아니라니까. 자긍심의 절정, 대안의 공...”
“누구냐고.”
하여간 남자들 양기 빨아먹으면서 눈치만 키웠나...
나는 다른 사람들은 눈치 못채도록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그 사람을 가리켰다.
"누구?"
"저기 흰 티에 하늘색 청바지 입은 애. 검은 테 쓰고."
"민경이? 쟤 바텀같은데?"
"야. 너 겉모습만 가지고 성향 판단하면 안돼. 저래 봬도 침대에선 야수같을 수도 있어."
"그건 니 희망 사항이고."
그런가. 내 희망 사항일 뿐인건가. 바텀일까.
"너 쟤 전 애인 몰라? 철이잖아. 철이가 바텀같진 않진 않냐?" 무진이 말했다.
"그런가."
어쩌지. 철이는 바텀같진 않은데. 아니야. 어쩌면 둘이 헤어진 이유가 그런 것 때문일 수도 있어. 둘 다 탑이라서. 괜히 넘겨짚지 말자. 차라리 직접 물어보자.
나는 슬쩍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민경이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그 테이블에선 우성이 한창 섹드립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대뜸 우성이 나에게 물었다.
"너 성향이 뭐지?”
왜 내 성향을 묻는거야. 민경씨한테 물어보라고. 어라? 근데 민경씨가 궁금함에 가득찬 눈망울을 하고 있네. 나한테 관심있나? 이런 젠장. 뭐라고 하지. 너무 오래 끌면 안되는데. 그럼 바텀같잖아...
"뭘 그런 걸 물어봐. 그런 질문은 '게이는 애널 섹스'라는 편견을 전제하고 있는거라고."
"그래? 얜 애널 섹스 안 한대."
시X. 한다고. 하는데, 그 질문은 그렇다는 거라고.
"아니,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안한다는게 아니라. 그리고 니가 나랑 잘 것도 아닌데 성향은 왜 묻냐?"
"누가 알아? 잘지도? 깔깔깔. 그럼 민경씨 성향은 뭐예요?”
오 그래. 그렇게 하란 말이야.
“저 올이요.”
바텀..인가...아니야. 올이야, 올. 올이라잖아.
"민경씨 바텀이에요? 어쩐지. 깔깔깔"
우성이가 깔깔거리며 치는 드립을 저지하며 내가 대꾸했다.
“올이라잖아. 너 같은 천마나 탑 바텀 따지는 거지 보통 사람들 대부분 올일 걸?”
“내가 원나잇한 애들도 처음에는 다 올이라고 하더라. 심지어는 올탑이라고 하는 애도 있어. 근데 일단 침대에 엎드리면 붙어서 떨이지질 않아요. 그러면서 곧 죽어도 올이라고. 내가 그것들 때매 탑질 하느라 고생한 거 생각하면. 쯧쯧.”
“바텀들 구원하느라 고생하셨다. 근데 왜 사람들은 올이라고 하면 바텀이라고 생각하지?”
“뻔하지. 바텀들은 여자잖아. 여자랑 어떻게 자? 남자랑 자야지. 그리고 이 바닥 바텀 밭이잖아. 다 똑같은 자세로 엎드려 간택받길 바라는 거보다는 고르는게 낫지 않겠어?”
이것아. 니가 내 친구라니. 부끄럽다.
웃으면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민경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데 올이라고 하면 바텀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니까 저는 오히려 성향 말 하는게 꺼려지더라고요. 뭐 너무 사적인 거라서 말하기 불편한 것도 있는데, 저는 바텀이 좋지만 탑을 못하거나, 탑을 하면서 쾌감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근데 또 탑이 더 좋은 거 아니니까 탑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올이라고 얘기하는 건데 그냥 바텀이라고 생각해버리니까... 차라리 잘 말 안 해요.”
잘 생긴 데다 말도 잘하네.
민경의 딱 부러지는 모습에 감동하며 내가 말했다.
“그래. 이 천마야. ‘자긍심의 절정’도 좋지만 ‘가슴 벅찬 변화’도 있잖니? 난 니 친구로서 니가 좀 더 생각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올이 무슨 원카드 ‘조커’냐? 아무 데나 다 붙게? 그래서 니 성향은 뭔데?”
우성이 갑자기 화살을 다시 나에게 겨냥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 나 올이지.”
“올??? 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 번 받고 한 번 찌르면 올이냐? 너 저번에 나랑 통화할 때 뭐라고 했어? 너 개바텀이라며? 그러면서 나한테 여자들의 의리가 더 강하다며. 사랑 비키라며.”
“그건 옛날 일이지. 나 이제 탑도 해보려고.”
“그래 한번 열심히 해봐라. 그래서 니가 어제 노래방에서 <넌 할 수 있어>를 그렇게 불렀구나. 비장하더라니.”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굳. 이 정도면 성향의 문제는 괜찮아. 약간 삐걱대긴 했지만 예선 통과. 2차 가선 번호를 따봐야지.
-End-
박재경
페니스 윤의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글이네 힘내 ^^소식지 항사 잘 읽고 있고 ... 사람들의 관심도 커져서 아...
damaged..?
엄훠, '*니스 윤'이라니... 언어 순화하세요, 구 대표님! ㅋㅋㅋ
damaged..?
마감 있는 일만큼 스트레스 주는 게 없는데,이렇게 내부 사정이랑 고충 알려주셔서 고맙삼~다들 개인적으로...
윤기성
이건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나전 허구입니다. 원 헌드레드 퍼센트 제 머리 속에서 나온 픽션..ㅋㅋ
damaged..?
앗, 속았네...! 글재주 덕이군 ^ㅁ^그래도 고충도 있겠고 자유롭게 얘기하고도 싶을 텐데즐겁고 편하게 쓰삼~
ㅋㅋㅋㅋㅋㅋㅋ ^0T
이 시트콤스러우면서도 예리하게
게이들 사이의 편견을 꼬집는 능력이라니...!
애널을 하든 안 하든, 탑이든 바텀이든 올이든
사람을 선입관 없이 봅시다~ ^.^
(근데 위의 상황이 얼만큼 가상이고 실제인지 궁금하네요 ㅎㅎ
암튼 고생 많으셨어요, 윤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