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보이스를 처음 만난지 일년이 다 되었습니다.
십년 넘도록 혼자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지쳐있던 저였습니다.
큰 기대없이 두려움반 설레임반으로 참석한 2012년 씽씽캠프, 날짜도 기억해요. 3월 10일 토욜이었죠.
어떤 점이 편했던건지 딱히 기억은 안나지만 전 첫 만남, 처음 보는 단원들에게 맘껏 웃고 깊은 제 이야기를 하게되었습니다. 신기하죠.
그리고 전 그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보았습니다. 너무나 재밌고 유쾌한 사람들이었어요. 연습시간이 되자 그들은 한 목소리를 내어 슬픔을 노래하기도 하였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개구장이처럼 춤을 춰 보이기도 합니다. 술을 좀 마시는거 싶더니만 밤새 건반을 치며 목청껏 서로의 신청곡을 합창합니다.
사방이 깜깜했던 외딴 유스호스텔에서의 그 왁자지껄한 모습이 저에게 숲속 요정들을 보는 것처럼이나 신기하고 신비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 오후5시 저의 행복한 발걸음이 계속 되게되죠. 씽씽캠프 첫날의 무거웠던 발걸음보다는 많이 가벼웠습니다. 아니 날라갔을수도요~
한자리에 모인 수십명의 게이들은 이제 생소하지 않았습니다. 악보는 여전히 어렵고 음 맞추기는 저에게 추상화만큼이나 어려웠지만 노래가사에 제 진심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웃는 날은 점점 많아졌습니다.
일주일이 점점 길게 느껴져 중간중간 짬을 내어 단원들과 연락하는 시간이 잦아졌습니다. 수업시간에 필기를 하다 저도 모르게 합창곡 가사와 단원들 닉네임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하구요. 그런 절 보고 또 혼자 씨익 웃습니다.
이반씨티에서 기웃거리는 시간은 줄고 항상 새 글 지지리 없던 지보이스 게시판을 들락날락하게 됩니다.
아직 신입이었던 전 지보이스 단원들과 더 자주 만나고 싶었지만 번호도 모르고 다들 일요일 오후 5시말고는 바쁜거 같아 답답해집니다..
'휴 뭔 핑계로 이 사람들을 더 만나지.. 아 맞다!'
그들은 친구사이(지보이스의 모체)의 여러 행사에 적극참여중이었던거죠. 거기가서 나도 참여하는 시늉을 해보자는 결론이 섭니다ㅋㅋ
또 열심히 나가게됩니다. 그 곳엔 역쉬 모체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곳곳에서 지보이스 단원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쏠쏠했습니다.
큰 의도없이 나갔던 활동들 속에서 전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경험들로 과거 제 맘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상처들을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거라 그게 두렵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습니다.
숨기기 급급했던 과거 제 모습에 실망감이 들 때도 있었으며 또 그러한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게 맘 편할것 같은 결심이 들때도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게이로서 도대체 어떻게 사는게 맞게 사는건지 마음속에 혼돈이 일었을때,
그래도 일요일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어떻게든 용기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고 그런 제 모습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그리 방황하며 찾고있던 행복이 막연하지만 이런거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전 제 모습을 찬찬히 찾아가고 있었고 에너지도 많이 회복했습니다. 그때쯤해서.. 사랑하는 저의 마더 파더가 아들이 일요일마다 다니는 수도권대학생연합합창모임 미러볼 합창단의 실체를 알게됩니다.
게이합창단, 지보이스의 존재를 알게 되신거죠. 휴..
그 전엔 긴긴 잠을 자고 있었던 것 마냥 한꺼번에 많은 일이 일어나버린 지보이스에서의 1년. 그 1년의 피날레가 부모님에게로의 커밍아웃이 되어버립니다.
갑자기 밤 열시에 퇴근준비를 하고 있는 절 찾아오신 아버지, 어머니. 속 안좋아 배도 안 고프다는 절 데리고 다급하게 우리동네 순대국집까지, 그것도 짠돌이 아빠가 택시를 잡아 동네로 향할때.. 뭔지는 몰라도 폭풍전야임을 느끼긴 했었습니다.
순대국을 어느정도 비우고 막걸리 반병을 비울때 쯤, 아버지께서.. 먼저 합창단 이야기를 꺼내셨고 다음 어머니 입에서 한번도 두분께 말씀드리지 못한 지보이스라는 네글자가 결국 나와버렸습니다.. 두둥
그리고부터 전 뚝배기그릇에 시선을 떨구었습니다. 멍해져서 아무 생각이 안났고 이내 계속해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한동안은요...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눈물을 닦고 두 분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은 역시나 횡설수설 하셨고 서로 그런 말을 왜 하냐며 싸우기도 하셨고 또 멍하니 먼 산을 응시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이었죠.
10년동안 꽁꽁 숨겨온 비밀이 탄로나던 충격적인 그 자리! 그곳에서 제가 뛰쳐 나가지 못한 것은 제가 들려드려야할 이야기, 설득해야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였습니다.
헌데 그때 만약 지보이스가 없었더라면 제가 해야할 숨겨둔 이야기는 사실 참 슬프고 초라했을 것입니다. 위로만 내내 받기 충분한 그런 이야기.. 였을꺼에요. 암요
지보이스를 만나게 되어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저는 많은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었고 그 마지막에 지금 행복하다는 말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으니깐요.
이번 커밍아웃을 다들 축하해주셨지만 사실 이제 시작인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커밍아웃은 입을 떼기까지도 큰 산이지만 그 후로도 또 넘어야 할 산 천지거든요..
숨기고 살았기에 전에는 나몰라라했던 모습을 버리고 더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할 것이고, 게이로서 곁에서 그들이 제 모습을 존중하게끔 또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열심히 살아가야....으악ㅍㅇ퓨ㅗㅇ 뭐 사실 열심히 사는건 다 마찬가지죠. 머리도 나쁜게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ㅋ
지금 내 삶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난 나로서 지금 행복한가.. 매순간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제 맘 속에선 NO라는 대답이 쉽게 튀어나오곤 하죠.. 착각속에 빠져 살기 너무 좋은, 정신없는, 쏘울없는 세상이거든요. 고러한 세상살이중인 전 맘 아픈 NO란 대답이 나올때마다 의식적으로 반성해봅니다. 또 가끔씩은 새로운 시도도 해보곤 하죠.
지금은 그 시도로 잡힌 가장 대물이 지보이스였다고, 자신있게 YES라 외칠 수 있습니다.
뭐, 그래도 날 위해서 사는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드는 생각! 이 모질이 만루는 계속 움직여야 하고 해봐야할, 느껴봐야할게 많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실컷 웃었지만 뭔가 또 더 배꼽빠지게 웃고싶고, 또 가끔 질질짜기도 했지만 언젠가 또 더 속 시원히 울고도 싶습니다. 이렇게 계속 꿈틀대고 있을 절 알기 때문에 전 지보이스를 또 나갑니다.
거기선 꿈틀대고만 있던 징그러운 나와(ㅋ)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되는한, 상황이 되는 한 이 게시판, 그리고 일요일 오후 다섯시에 전 어떻게든 단원들을 보러 갈 것입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사랑인것 같습니당
G - Voice 사랑해~
오늘 아침엔 페북에 뜬 낙타의 감동글에 이어... 지보이스 게시판에 만루의 글까지...
눈물바다입니다. 폭풍 감동의 연속이군요...
# 참고로 "만루이야기" 요점 정리!
1. 지보이스 단원들 = 숲속의 요정
(그 중 특히 코러스보이 언니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됨)
2. 지보이스의 다른 이름 = 미러볼합창단.
(수년 전 글로리아합창단이라고 노르마 지휘자에 의해 왜곡된 지보이스의 다른 이름도 있었더랬죠.ㅎ)
3. 지보이스는 대물이다.
(지보이스에 대물이라니... 이해가 안가는데 숨겨둔 다른 단원이 있는 듯?)
4. 만루는 여전히 꿈틀대고 징그럽다.
만루야
이거 로그인 안한 사람도 볼수 있게 자유게시판으로 옮겨주면 안되나??
트위터에도 링크 걸어 감동받은 사람들이 후원을 할수 있게 ...
지갑을 열수 있는 글 같아서 말야...ㅎㅎㅎ
그래 인제 너만의 길을 이렇게 찾아가는 너를 보니 좋구나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 늘 함께 친구가 되어야 안 흔들리고 갈 수 있을거야
당장에 애인이 있고 없고가 크게 느껴지겠지만 친구를 많이 만들다보면
애인도 저절로 만나지는 것 같아
승구는 사심이 느껴지는데.... ㅋㅋㅋㅋ 언니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글만 봐도 표정만 봐도
읽어내는 편이라서
아 만루야 아버님 가족모임에 꼭 나오시라고 하면 좋겠어
조만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아 만루,
그나저나 미러볼 합창단은 정말 대ㅡ단하다.
만루는 정말 사랑스러우세요! 그걸 다 아는거지~~~!!
추천 꾸욱. 긴 이야기 들려줘서 고마워.
눈물이 찔끔 났어.ㅎ
그리고... 수도권대학생연합합창모임 미러볼 합창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의 창의력에 경의를 표한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