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동성애자 연예인이 커밍아웃한 지 12년. 이제 커밍아웃은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으로 커밍아웃을 주저하고 있는 성소수자나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수많은 이성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커밍아웃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 그 이후 삶의 변화나 생각들을 들어보고, 왜 커밍아웃이 필요한지에 대해 얘기해본다. - 기자말
(오마이뉴스에 '이종걸의 커밍아웃'이란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는 일곱번째 인터뷰 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도 있는데 그 부분은 또 추후에 공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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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들의 커밍아웃 솔직대담. 켠(왼쪽)과 벤(오른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이종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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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페이스북에서 자주 논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인권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인 '친구사이' 회원들이나 주변 친구가 아닌 게이 커뮤니티의 소리를 직접 들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페이스북이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타고 타다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사랑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또한 무엇을 꿈꾸는지 알게 된다.
사진들을 통해 눈요기도 하고 글을 보며 웃고 울고 하는 와중에, 성소수자 운동을 직접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살고 있는 평범한 게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다 그들은 커밍아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이 실천하고 있는 커밍아웃은 어떻게 시작됐고, 그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결국 지난 21일 수요일 저녁, 종로의 한 게이바에서 평범한 사회인 게이 '벤'(30)과 '켠'(28)을 만났다. 벤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온라인 친구였고, 켠은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뒤 4년째 형 동생하며 지내는 친구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인터뷰는 다음 기획의 전초전이다.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면서 커밍아웃한 게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그 전에 인권단체 밖 게이커뮤니티에서 커밍아웃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번 인터뷰를 기획했다.
"친한 친구에게 커밍아웃 했더니, 퀴어영화도 보고..."
첫 질문으로 어떻게 '게이 씬에 데뷔'(자기 성정체성을 받아들여 처음 동성애자를 만나는 것)했는지 물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첫 커밍아웃이었을테니 말이다.
벤 : 6살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어요. 이후 초등학교 3학년 때 마을버스에서 누가 놓고 간 <선데이서울>이란 잡지를 보며 동성애와 관련된 글을 읽었죠. 이게 정확히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나랑 비슷한 얘기인 것 같다고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 중학교 때 좋아하던 친구도 생겼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종묘공원(종묘공원 앞 광장은 게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에서 있었던 백일장 대회를 나갔다 거기에서 만난 게이의 모습을 보면서 고민이 심해졌죠. 고 1때는 한 남성으로부터 대학 입학 이후까지 제 생활을 스토킹 당하기도 했어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어요. 그러면서 이후부터 만나는 사람에게 제 개인 정보를 밝히는 데 많이 신중한 편이 되었죠.
켠 : 저도 어렸을 적부터 '내가 이쪽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5, 6살 때 쯤 집에서 어머니가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셨어요. 그때 피아노를 배우던 나보다 5, 6살 많은 형과 친하게 지냈어요. 그 때쯤 남자의 몸에도 더 많이 관심이 갔어요.
그러면서 인터넷에 '섹스, 동성애'를 검색하면서 조금씩 궁금한 것들을 해결해 갔죠. 첫 짝사랑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에요. 너무 좋아해서 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담임선생님 시간표를 다 외워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파악한 후 하루에 한 번씩은 마주 치려고 노력했죠. 지방 소도시에 살아서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만날 수 없었는데 대학교를 합격한 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분을 만나기 위해 입학 전에 서울에 와서 첫 만남을 가졌어요. 서울에 가기 위해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3일 정도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 때가 지금도 기억이 많이 남아요.
- 두 분 다 빨리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신 것 같네요. 첫 커밍아웃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벤 : 1998년도에 자주 가던 인터넷 사이트 중 '구야 홈 닷컴'을 통해 커밍아웃이란 단어를 처음 알았어요. 그때 당시 개봉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장국영, 양조위 주연의 <해피투게더>란 영화를 보면서 무엇인가 커밍아웃이란 단어에 공포감을 느꼈어요. 나를 드러낸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그런데 그 이후 1년 동안 게이로서 사람을 만나고 생활하다보니 내가 나를 받아들이기 편해지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반응도 궁금해졌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한테 처음으로 이야기했어요.
같이 길을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발을 헛딛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는 친하게 지냈어요. 그 이후로 고등동창 중 대여섯명에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당시가 홍석천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는 내가 이야기를 했을 때 동성애자를 외계인으로 생각하는 단계였지 않았나 싶어요. '아!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어?' 정도의 분위기였죠. 그리고 저는 영악해서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고 덧붙였죠. 하지만 이후 제가 커밍아웃한 이야기를 그 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말한 것을 알게 됐을 때부터 따로 보지 않게 됐어요. 한참 뒤에 알게 된 것이긴 하지만.
켠 : 저는 저희 누나들에게 처음 커밍아웃을 했어요. 20살에 첫 연애를 했죠. 200일 동안 연애를 했는데, 사귀는 도중 방학 동안에 잠깐 집에 갔어요. 가족들이 다 있는데 내가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하겠는 거죠. 문자나 전화가 계속 오니깐. 그래서 가족들이 '연애하고 있구나' 눈치를 챘죠. 그래서 누나들이 따로 불러서 '너 애인이 누구냐, 왜 말을 못하니, 연상이냐?' 하고 자꾸 묻는 거예요. 그러다 갑자기 '남자야?' 하고 물어서 '어 그래'라고 대답을 해버렸어요.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둘 다 당황을 했죠. 그런데 제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인정했고, 지금 힘들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했어요. 그러자 누나들이 우리가 너를 대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걱정 말고 내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라고 했어요. 몇 살이고 직업은 뭐니 하면서 묻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모범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누나들이 내가 사귀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그 문제에 초점을 두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때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 그런데 연애한 지 얼마 안 된, 그것도 20살 대학생의 연애에 남자친구 직업은 뭐냐고 왜 물었을까요? 하하 (좌중 웃음). 그때 어떤 이유로 커밍아웃을 했나요?
벤 : 저같은 경우 제 정체성에 대해 누군가와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제3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지 했죠.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알아보는 일종의 시험문제였어요. 이럴 때 그 친구가 생각하는 답은 무엇인지 듣고 싶었던 때였죠.
켠 : 그때 너무 답답했어요.
누나들은 나를 너무 좋아하고, 서로 사랑하는 남매들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괜찮았어요. 무슨 일을 해도 누나들은 나를 사랑할 거라고 믿었어요.
- 커밍아웃을 하면 그 이후 자신이 생겨 계속 하게 되는데 그런 경험들이 있나요?
벤 : 21, 22살 때 만난 친한 대학교 친구들은 다 알고 있어요. 지금도 보고 있는 친구는 대부분 이때 친구들이에요.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뉴욕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당시에 메신저로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 이후로 이 친구가 뉴욕에 있는 게이바에 가보고 동성애를 다룬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이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이 친구가 나를 만난다고 하면 아내가 견제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좌중 웃음).
그런데 같은 시기에 학교 후배 중 저처럼 게이였던 친구가 있었어요. 이 친구가 여자로부터 고백을 받아서 거절을 했는데 이 때 나를 이야기하면서 끌어들이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게 되는 상황이 생겼죠. 그 때 일로 다시 커밍아웃에 소극적이었는데 어릴 때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면서 조금씩 나아졌어요. 그리고 작은 누나가 심리학 전공이라 자연스럽게 커밍아웃 했어요. 저같은 경우는 취사선택을 제대로 해서 커밍아웃을 한 경우죠. 커밍아웃 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사전 교육을 많이 했고, 동성애자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난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알리고 있어요. 괜히 나를 놓고 기도하는 상황을 연출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그래서 커밍아웃 하게 되면 상대방과 한 단계가 더 나아지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켠 : 누나들에게 커밍아웃한 상황이 나에게는 성공적이어서 너무 좋았고, 그 이후로 나름의 기준을 세웠어요. 우선 포비아가 아닌 사람, 동성애에 대한 개념이 있든 없든 동성애에 대해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어디 가서 실수로라도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만큼 입이 무거운 개념이 있는 사람. 이렇게 세 가지 기준을 두고,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더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했죠.
그렇게 기준을 세우다 보니 고등학교 친구들한테는 거의 못한 상황이었어요. 너무 친하고 더 가까이 지내고 싶은 친구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비아적인 표현이 부지불식간에 나오니 말해서 좋을 것이 없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부모님께는 군인 시절 커밍아웃을 했고, 제대 후 좀 더 커밍아웃을 자유롭게 했어요. 대학에서는 나와 성향이나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이라 더 편하게 했어요. 제대후 연극반 활동이나 글쓰는 모임에서 활동하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잘 이야기할 수 있었죠.
"진보적인 교수도 학생 중 성소수자 없을 거라 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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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잇 온 미>의 한 장면 |
ⓒ 영화사 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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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커밍아웃이 실패했거나 기분이 나빴던 경우는 없었나요?
벤 : 2차 커밍아웃(당사자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커밍아웃한 사실을 알리는 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에게 기분이 상한 경험은 있지만 처음 대상에게 거절당한 경험은 없어요.
켠 : 이때까지 커밍아웃이 실패한 적은 없어요. 아마도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다만 커밍아웃 이후에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도 친구들이 결혼을 해서 더 친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아쉬웠죠.
-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커밍아웃 하고 싶은 대상은 없는지?
벤 : 대학교 때 교수님이요. 굉장히 존경하는 교수님이었고 진보적인 분이기도 했죠. 그런데 수업 중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소수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성소수자를 타자화시켜서 말할 때가 있었어요.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는 성소수자가 없을 거라는 전제로 하는 말 인 거죠. 하지만 저처럼 어디에나 그러한 사람은 존재하잖아요. 그럴 때 갑자기 불끈 불끈 용기를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많이 아쉽죠.
켠 :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예 지금의 관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애인이 있다는 이야기도 못해요. 남자가 아닌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 이래 저래 꼬치 꼬치 물을 것이기 때문에 안 하는 거죠. 연애 한 번 섹스 한 번 못한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뭐 뒤에서 호박씨 깐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 커밍아웃을 하는 것에 있어서 사람들 마다 입장차가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현재 놓인 상황에 따라 커밍아웃을 하든지 안 하든지 하는 것인데. 그 차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벤 :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마다 다른 것 같아요. 어차피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죠. 직업군 따라서 그러기 쉬운 직업이 있고 아닌 직업이 있는 것 같아요.
켠 : 안타까움이 많아요.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도 많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있고. 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에 그것은 존중을 받아야 하는데, 그럴수록 용기를 갖고 이야기하라고 하는 것은 폭력적일 수 있어요. 용기를 갖고 당당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 주변 사람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회가 사회적으로 게이가 게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당사자로 하여금 막연한 두려움을 갖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 그럼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게이들이 커밍아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벤 : 게이로서의 자존감을 갖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는 어떻게 보면 선택적으로만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라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내 성격이 다른 사람을 잘 신뢰하지 않는데 커밍아웃하기는 쉽지 않죠. 어떻게 보면 이반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 때문에 갖게 된 성격인데, 굳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켠 : 나는 커밍아웃을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할수록 행복하고 경험치가 쌓이고,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답답한데,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한 고통을 겪어봐서 알고 있으니까요. 그 답답함에서 해방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지. 그걸 좀 겪어봤으면 좋겠는데 그걸 두려워하는 게 안타까운 거죠. 그렇다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제가 나온 대학교 게시판에 글을 많이 올려요. 커밍아웃에 대한 이야기나 저와 제 파트너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실제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글을 보고 은둔형 게이들도 뭔가 용기를 가지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죠.
- 마지막 질문이에요. 혹시라도 본인이 게이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벤 : 50대 이후에 사회적인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그때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그런데 사실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 흘리고 싶지는 않아요. (웃음) 제가 커밍아웃을 한 사람 숫자를 보면 30~40명이 되는데. 그 사람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싶어요. 이 사람들도 자기 주변에 동성애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커밍아웃을 했거든요. 그리고 제가 게이 커뮤니티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런 드러냄이 아닐까 싶어요.
켠 :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숨기지 않고 다니고 싶어요.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제가 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아는 것을 즐기는 편이에요. 핑크 트라이앵글(동성애자의 상징)이 그려진 티를 입고 다니거나 6색 무지개(동성애자의 상징) 배지를 들고 다니는 것 말이죠. 앞으로는 애인하고도 자유롭게 팔짱끼고 걸어 다니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에 최근 개봉한 퀴어영화 <라잇 온 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영화를 본 소감이 어땠냐는 질문에 벤은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했다. 기존의 퀴어영화가 갖고 있는 클리셰가 많지 않은 영화라서 좋았다고. 연차가 오래된 게이들의 현실적인 사랑이야기라 좋았다고 했다. 켠은 동성애자인 주인공의 마약 중독 설정이 불편했다고 한다. 게이에 대한 또다른 편견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게이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원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도 하고, 섹스도 하고 그러다 이별도 하고 상처도 받는 평범한 게이들의 이야기를 보고싶다는 것이다.
평범한 이 두 남자에게 커밍아웃은 삶의 큰 기폭제가 되었다. 이들의 솔직한 인터뷰로 많은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다시 고민해보고, 이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택적 커밍아웃', 이 두 사람의 커밍아웃 성격을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선택적 커밍아웃이 이제는 좀 자유로워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럴 때 정작 나같은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는 이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 해답을 다음 인터뷰 때 들어보고자 한다.
기즈베도 수고했고.....
내용은 내일 자세히 읽어 볼게요 오늘은 일이 급해서맇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