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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가 ‘대세’였던 시절 있었다

정의길 기자  

  
» 〈역사 속의 소수자들〉

  
〈역사 속의 소수자들〉
곽차섭·임병철 엮음/푸른역사·1만6500원

최근 들어서야 우리 사회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소수자’ ‘소수집단’ 혹은 ‘마이너리티’ 는 “자신이 지닌 어떤 특징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주류·지배 집단으로부터 차별받는 비주류·하위 집단 혹은 그 구성원을 말한다.” 문제는 이 정의처럼 ‘자신이 지닌 어떤 특징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소수자로 자리매김되냐는 것이다. 소수자는 분명 다수 혹은 주류와는 다른 차이를 지니고 있으나, 그 차이가 소수자를 규정하는 요인으로 되는 것은 역사적·사회적 산물이다. 즉 소수자의 차이가 처음부터 소수자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소수자가 역사와 사회에서 주류와 다수들에 의해 어떻게 자리매김됐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동성애의 지배적 양태인 남성 동성애는 애초 서구에서 근대가 확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소수자 취급을 받지 않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리스 시대에는 미소년과 관계맺는 것은 당시 주류 남성들의 일반적 풍속이었다.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 1700년대 이전 영국에서 성인 남성이 소년과 관계를 맺거나, 양성애 성향을 보이는 것은 난봉꾼이라는 지탄, 곧 도덕적 측면에서 지탄을 받기는 했으나 소수자 취급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당시까지 동성애는 젠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젠더를 강화하는 행위였다. “1690년대에는 윌리엄 3세의 동성애가 군사 영웅의 ‘마초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구실을 한 반면, 1790년대에 가면 동성애는 전적으로 비겁하고 약한 자들 혹은 남자답지 못한 자들의 구역질나는 행위로 여겨지게 됐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전복되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18세기 말에 남성의 젠더적 역할이 난봉꾼적 폭력성이 배제된, 곧 바람피우지 않고 술 적게 마시며 점잖은, 가정적이고 충직한 남편이 되는 것으로 자리매김되면서”, 동성애는 죄악을 저지르는 소수자 특성으로 바뀐다. 자본주의 발흥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대적인 가족을 정형화하는 이데올로기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이다.

그사이에 동성애의 양태가 어린 소년과 성인 남자의 관계에서 전적으로 성인 남자들 간의 성애를 추구하는 ‘호모’ 혹은 ‘게이’로 바뀌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뀜에 따라 소년을 성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이 당시 영국에서 자본주의 발흥에 따라 몰락하는 하층 민중 남성들은 자신들의 남성성의 위기의 탈출구를 동성애자, 당시의 ‘몰리’로부터 찾았다. “몰리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하층 민중 남자들도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를 지니고 있으며, 가정에서도 정상적인 젠더 역할을 하는 남자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줬다.”

<역사 속의 소수자들>은 인류 역사의 다양한 소수자들인 동성애자, 지적 소수자들, 사회·문화적 소수자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소수자로 자리매김되게 됐는지 살핀다.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의 소수파인 재세례파, 기독교 사상을 회의한 조르다노 브루노, 노예제 폐지론자인 흑인 역사학자 프레데릭 더글러스, 아나키스트, 아우슈비츠의 ‘무슬림’, 유대인 등을 조망한다. 34년간 한양대와 서강대에서 재직한 김영한 교수로부터 학문적 세례를 받은 제자들이 선생의 정년퇴임을 기려 책을 엮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626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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