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은 미래다] 2부 <3> 동성애는 왜 존재하는가
種의 번식 가로막는 치명적 유전자 존재는 '다윈의 역설'
베일에 쌓인 동성애 유전자 모계 유전돼
남자-게이 성향, 여자-다산성 갖게
유전자 순기능·역기능도 결국 생존전략
김희원기자 hee@hk.co.kr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 연합군에게 유리하도록 전세를 뒤집었던 이면에는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있었다.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1954년 42세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동성애가 위법이자 혐오의 대상이었던 당시 그는 재판을 받고 동성애 치료를 감수했다.
호르몬치료 결과 여자처럼 가슴이 커지는 등 부작용에 시달리자 튜링은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베어물고 자살했다. 20여년 후 설립된 PC회사 애플은 컴퓨터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이 비극적 천재를 기려 한 입 베어문 사과를 로고로 만들었다.
불과 반 세기 전만 해도, 동성애는 이처럼 치료해야 할 질병이자 처벌받아 마땅한 범죄였다. 동성애자에게는 비정상적 성적 취향을 선택한 책임을 지웠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연구를 통해 동성애에 생물학적 근거가 있으리라는 시각이 적잖이 퍼져있다.
동성애 유전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연구들은 동성애자의 권익을 보호할 명분이 된다는 점 때문에 더욱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진화론적으로는 더 큰 딜레마에 부딪힌다.
생물체의 지상 목적인 번식을 막는 동성애 유전자가 도대체 어떻게 자연선택 과정에서 도태되지 않고 진화하고 보존될 수 있었을까? 바로 '다윈의 역설(Darwinian Paradox)'의 대표적 사례가 동성애인 것이다.
■ 동성애는 유전적인가 아닌가
동성애가 유전적으로 결정돼 있을 것이라는 연구는 19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흔히 어떤 특질이 선천적 본성이냐, 후천적 환경의 영향이냐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쌍둥이 연구가 제격이다. 일란성 쌍둥이가 따로 자랐어도 공통점을 갖는다면 이는 유전적인 것으로, 차이점이 나타난다면 양육의 결과로 볼 수 있다.
199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정신과 전문의인 마이클 베일리는 쌍둥이 형제 또는 입양된 형제를 갖는 161명의 게이(남자동성애자)를 조사한 결과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한 명이 게이이면 나머지 쌍둥이 형제가 게이일 확률이 52%나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란성 쌍둥이는 이 확률이 22%, 게이의 입양된 형제의 경우는 11%에 불과했다.
비슷한 시기 소크연구소 시몽 르베이 박사는 뇌 시상하부의 신경세포다발 크기가 남자가 여자보다 2배 이상 큰데, 게이는 그 크기가 여자만큼 작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베일리는 모종의 동성애 유전자가 태아의 뇌가 발달하는 시기에 남성화를 가로막아 유전적으로는 남성(XY염색체를 갖고 있지만)이지만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여성으로 여기는 게이를 낳는다는 가설을 세웠다. 보통 남성은 태아 적에 Y염색체에 있는 SRY유전자가 뇌의 남성화를 진행시켜 남자다운 외모와 행동이 발달한다.
형이 많을수록 게이가 될 확률이 높다는 또 다른 연구결과(레이 블랜차드)는 어머니와 태아 사이의 면역반응을 의심한다. 아들을 임신할 때마다 어머니의 반응이 강해지면서 늦게 낳은 아들이 게이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1993년 게이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딘 해머(미 국립암연구소)의 발표는 결정적이었다. 게이 76명의 가계를 조사한 결과 13.5%가 게이였는데 모계쪽 친척 즉 외사촌이나 이종사촌 중 유난히 게이가 많았다.
동성애 유전자가 모계로 유전된다는 사실에 착안한 연구팀이 40쌍의 동성애자 형제가 X염색체에서 어느 부위를 공유하는지 분석한 결과 염색체 말단의 q28 부위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물론 이 부위에 들어있는 유전자는 수백 개에 달하지만 게이 유전자를 찾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다른 연구팀에 의해 재확인되지 않고, 해머 팀이 임의로 데이터를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게이 유전자는 안개에 가려졌다. 해머는 2005년 일리노이대 브라이언 무스댄스키 교수와 함께 비슷한 방법으로 게이 형제 456명을 조사해 X염색체만이 아니라 7,8,10번 염색체의 공유부위를 찾아냈다.
■ '다윈의 역설'을 해결하라
결론적으로 동성애자를 유발하는 구체적인 유전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물학적인 원인이 관여한다는 것이 대다수 생물학자의 견해다. 고대부터 어느 사회에나 동성애는 존재해왔다. 돌발적으로 생겼다 사라진 돌연변이라고 보기엔 역사가 유구하다. 전체 인구 중 동성애자의 비율은 조사에 따라 2~10%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종의 번식에 치명적인 동성애 유전자가 어떻게 도태되지 않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최근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의 안드레아 캄페리오 치아니 교수로부터 나왔다. 동성애 유전자가 남자에게는 게이 성향을 낳지만, 여자에게는 왕성한 출산력을 갖도록 함으로써 유전자 풀에서 제거되지 않고 존속해왔다는 것이다.
2004년 치아니는 98명의 동성애 남자와 100명의 이성애 남자의 친척 총 4,600명을 조사한 결과 게이의 모계쪽 여자 친척이 아이를 훨씬 많이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게이의 부계쪽 여자나 이성애자의 여자 친척(모계와 부계를 통틀어)은 그만큼 다산성을 보이지 않았다. 출산율을 높이는 동성애 유전자는 X염색체를 통해 전달된다는 결론이다.
동성애 유전자가 모계로 유전되고 남자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게이가 될 확률이 높다는 기존의 연구와 더할 나위 없이 앞뒤가 맞는 설명이다. 치아니는 2008년 동성애 유전자가 남녀에게 각각 대립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존속한다는 수학적 분석모델도 발표했다. 자살과도 같은 동성애 유전자의 '다윈의 역설'이 설명되는 셈이다.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대 교수는 거꾸로 "동성애 혐오가 더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성애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어떤 멋진 남자가 게이라면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어서 반가워해야 마땅한데도 통상 극도의 혐오를 보이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해로운 유전자가 존속하는 이유
동성애처럼 생존과 번식에 치명적이거나 순기능이 없어 보이는 생물학적 형질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낸 직후부터 자연선택론을 반박하는 근거로 꼽혔다. 1만년 전 멸종한 사슴의 일종인 아일랜드엘크의 뿔이 대표적 사례다.
아일랜드엘크의 뿔은 점점 커져 길이가 최대 3.6m에 달했는데, 거대한 뿔이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고개를 짓눌러 결국 멸종했다고 여겨졌다. 반(反)다윈주의자에게는 '진화가 환경 적응의 결과'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였고, 오히려 '진화는 정해진 방향대로 나아간다'는 정향진화설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생물학의 발전과 함께 적응과 선택의 과정이 일방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일랜드엘크의 경우 뿔과 함께 몸집도 커졌기 때문에 뿔이 주는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았다는 것.
또한 최근 동물행동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슴 뿔은 실제 수컷 경쟁자와 싸우는 무기라기보다 부상 위험이 없는 의례적 싸움(ritualized combat)에 쓰이는 과시물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거대한 뿔은 암컷을 차지하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적응의 산물'이다.
치명적 유전자의 긍정적 기능이 밝혀진 연구사례도 많다. 적혈구가 낫처럼 길쭉하게 생긴 낫모양적혈구 유전자는 빈혈과 혈전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이 유전자를 쌍이 아닌 하나만 갖고 있는 보유자는 빈혈도 없을 뿐 아니라 말라리아에 강하다. 말라리아가 많은 환경에서는(실제로 이 유전자는 흑인에게 많다) 이 유전자가 생존율을 높이고, 그래서 치명적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진다.
유전자 수준에 초점을 맞춰보면 순기능, 역기능이란 교묘한 유전자의 생존전략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개체가 건강하든 말든 자손을 낳을 때까지만 살아남으면 되고, 개별 유전자들은 2세가 될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 껴들기만 하면 된다. 낫모양적혈구 유전자 같은 해로운 유전자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말라리아에 저항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생물학에 담긴 정치적 함의
원인 유전자를 밝히는 생물학 연구는 정치적 함의를 갖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논란이 된다. 질병이나 약효의 차이를 일으키는 유전자라면 모르지만, 한때 윤리적 잣대로 평가했던 동성애의 원인 유전자는 다분히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하물며 남녀의 능력과 행동의 차이, 폭력성이나 범죄성향과 같은 반사회적 성향, 지능이나 학습능력의 차이에도 유전적 근거가 있다면 어떨 것인가?
가령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에게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채근하는 대신 운 나쁜 유전자 조합을 원망해야 옳은 것일까? 자칫 유전자 결정론으로 흐를 수 있는 사회생물학을 두고 생물학계 안팎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의 많은 특징들이 유전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유전자의 지배를 얼마나 받는지를 놓고 논쟁하는 인간의 모습은 더욱 놀랍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행동은 분명 유전자가 예상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한국일보와 함께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09/03/18 03:14:51 수정
시간 : 2009/03/18 03:18:37
http://news.hankooki.com/lpage/it_tech/200903/h200903180314492376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