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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려던 ‘동성애 편견’ 에 갇히다  

뮤지컬 ‘자나, 돈트’ 리뷰  


웃고 나면 찾아오는 공허 원작에 대한 지나친 집착

노골적 표현 공감 어렵고 극중 신데렐라 코드 찜찜



이성애가 비정상이고 동성애가 정상인 세상을 가정한 뮤지컬 ‘자나, 돈트’의 핵심은 ‘전복(顚覆)’이다. 그리고 ‘전복’의 핵심은 ‘통쾌함’이다.


그러나 ‘자나 돈트’는 유쾌하되 통쾌하지 않다.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신나는 춤과 노래’로 무장했지만 웃고 나면 어딘가 공허해진다. 왜일까.


‘자나, 돈트’는 동성애자인 주인공들에게 무한의 자유를 부여한다. 현실에서는 손가락질 받기 십상인 ‘동성간 길거리 키스’, ‘여장(女裝)’을 얼마든지 허용한다.


또, 현실에서 동성애자를 옥죄는 편견의 철창 안에 역으로 이성애자를 가두고 ‘너도 한 번 당해보라’는 듯 대한다. 좋게 말하면 ‘역지사지’ 나쁘게 말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스타일의 ‘전복’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자나, 돈트’가 지극히 미국적, 뉴욕적, 오프브로드웨이적 작품이라는 점이다. 뉴욕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비주류인 게이 문화가 독특하게도 주류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 곳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창작진의 태반이 게이’라는 것은 상식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뉴욕에서조차 게이들의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게이 문화를 뮤지컬 안에 이식하면서 주류에 대한 저항감을 드러내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자나, 돈트’의 출현은 일종의 방점을 찍은 것이자 묵은 한을 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뉴욕에서 수많은 성적소수자와 마이너리티에게 ‘위로’ 혹은 ‘달콤한 캔디’가 돼줬을 로맨틱 뮤지컬 ‘자나, 돈트’가 서울에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와이에서 맛있게 따 먹었던 코코넛 나무를 서울 한복판에 심는다고 제대로 자랄 수 있겠나. 간신히 열매를 맺는다고 한들 열대의 태양이 작렬하는 하와이에서 먹었던 그 맛이 느껴질 리 만무하다.


공연을 보고 난 뒤 ‘그들의 이야기’가 말 그대로 ‘그들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럴 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연출가의 손길’인데,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리지널 연출가(드버낸드 잰키)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동성애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이저리티(majority)’에 대한 ‘마이너리티(minority)’의 전복을 강조했다면 공감대 형성이 차라리 쉽지 않았을까. 뮤지컬 ‘뷰티풀게임’이 한국 공연에서 호응을 얻은 것도 원작 그대로 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을 강조하지 않고 한국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한국인 연출가와 작가가 다듬었기 때문이 아닌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신데렐라 코드’도 찝찝함을 남겼다. 보석으로 반짝이는 여성 구두(유리구두의 상징)를 신고 마술봉을 흔드는 남성 동성애자 자나는 동화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신데렐라와 요정이 결합된 형태다.


하지만 이는 작품 스스로 게이 문화의 한계를 규정 짓는 족쇄가 되고 만다. 왕자의 간택을 기다리는 신데렐라처럼 ‘자나, 돈트’는 스스로 이 세상과 맞서지 않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치는 순간 신데렐라의 마차가 호박으로, 드레스가 누더기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작품의 끝부분에서 세상은 다시 이성애자들의 것이 되고 동성애자인 자나는 따돌림을 받는다. 그 때 자나가 흘리고 간 구두 한 쪽을 주워서 건네는 것은 백마탄 왕자의 ‘화신(化身)’인 마크. ‘모든 여성(마이너리티)은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라는 편견에서 한 치도 진전하지 못했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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