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동성애 반대 집회에 참석한 사람. 이들 중 상당수는 탈북자를 중국에서 데려오는 북한인권운동에도 관여한다고 말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이슈추적- 조직화하는 소수자 반대운동]
반대단체, 인권위 앞 시위… “부당한 차별 구제 위한 최소한 규정” 반박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미국의 풍경이,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추방을 요구하는 유럽의 집회가 2008년 한국에도 출현했다. 이름부터 목적이 분명하다.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동반국)과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불체본). 동반국은 11월부터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동성애 옹호하는 인권위는 각성하라!”는 구호와 함께 집회를 벌이고 있고, 불체본도 지난여름부터 서울 시내에서 “불법체류자는 범죄자입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동반국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1990년대 한국에 소수자 인권 문제가 제기된 이래 최초로 ‘소수자 반대운동’이 조직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도대체 왜 거리로 나선 것일까? 동반국의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불체본 카페에 참여하는 이들도 적잖다. 한국의 소수자 인권은 이들이 우려할 만큼 보호받고 있을까? 아니면 한국 사회는 때이른 ‘인권의 피로’ 증세를 보이는 것일까? 이들의 주장과 반박 의견을 들었다. 편집자
벌써 한 달이 가깝다. “동성애가 확산되면 가정이 파괴되고 청소년의 미래가 파괴됩니다!” 12월9일 낮 12시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동반국) 등 단체의 회원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지난 11월11일 시작된 인권위 앞의 집회가 이날도 열리고 있었다. 이따금 지나가는 장년의 남성들이 ‘인권위의 동성애 옹호정책에 항의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한국의 동성애 반대운동은 서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성애 반대 캠페인이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에서 보수층에게 ‘동성애’는 감히 공론의 장으로 들고 나와서 반대하기도 민망한 주제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부터 상황은 바뀌었다. 노무현 정권은 집권 말기에 인권의 역사에 그나마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초안한 차별금지법의 차별 금지 사유에는 ‘성적 지향’이 빠져 있었다. ‘성적 지향(동성애)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명시적 규정을 빼놓은 것이다. 성소수자단체가 항의하는 운동이 벌어졌고, 역으로 개신교를 중심으로 ‘성적 지향’을 넣으면 안 된다는 캠페인도 벌어졌다. 동반국은 그런 가운데 탄생했다. 결국 차별금지법이 좌초됐지만, 동반국의 활동은 여전하다.
“정체성 아닌 잘못된 성장 과정 탓”
강영숙 동반국 대표는 잘라 말했다. “동반국은 동성애자를 사회적 소수자로 보지 않는다. 동성애는 가정과 사회의 혼란과 붕괴를 초래하는 성적 문란이기 때문에 소수자 개념에 합당치 않다.” 이들에게 동성애는 비정상의 성행위일 뿐이다. “동성애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특성이 있다. 동성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또다시 다른 동성에게 성폭력을 가해서 동성애자로 만든다. 이렇게 동성애는 전염된다. 게다가 동성애자 가운데 상당수는 성중독에 빠진다.” 그리고 동성애는 감염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후천성면역결핍증(HIV)의 온상이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에이즈 감염인 중에서 (남성) 동성애자 비율이 40~50%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장한다. 동성애는 ‘치유’돼야 한다고.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 각 종교의 동성애 치유센터를 통해 동성애를 끊고 나온 사람들이 수십만, 수백만 명에 이른다.” 동성애는 타고난 정체성이 아니라 잘못된 성장 과정이나 성경험의 결과이니 교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반박한다. “이성 간 성폭력에서 피해자인 여성이 다른 남성을 상대로 가해자가 되는 구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성 간엔 가능하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은 동성애의 특수성이 아니라 동성 간 성폭력의 특수성이다. 그렇다면 동성애 경험이 없이도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생각하는 과정을 거친 다수의 동성애자는 무엇이냐?” 그리고 ‘증언의 독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자연스레 동성애자가 된 사람은 동성애자가 되는 과정에 대해 발언하지 않지만, 성폭력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이 발언하고 그들의 증언을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 반대 진영이 부각한다.” 동성애는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한 대표는 “이미 미국에선 1960~70년대에 이른바 ‘성적 취향 전환 치료’가 매우 위험하다는 연구가 잇따라 나왔고, 치료에 반대하는 단체도 꾸려졌다”고 반박했다.
인권위 앞에서 이날도 1시간 넘게 계속된 집회에서 동반국은 “인권위는 지속적인 동성애 옹호정책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동반국은 동성애를 보호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면, 청소년에게 “동성애를 해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결국엔 동성애가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항목에 성적 지향이 들어가는 것을 막았고, 2001년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 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이 들어가 있는 것을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영숙 대표는 “동성애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데 어떻게 동성애를 옹호하는 조항이 법에 들어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이날 이들은 인권위 앞에서 ‘인권위가 동성애를 조장해온 실태’를 담은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2003년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항목을 삭제하라고 했던 인권위 권고부터 2008년 대한민국 인권상 포상 대상에 ‘동성애자 인권 보호에 공적이 있는 사람’을 넣은 공고까지 꼼꼼하게 인권위의 행적을 수집했다. 이것이 이들이 인권위 앞에서 집회를 벌이는 이유다.
역시나 한채윤 대표는 말한다. “인권위는 모든 국민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한 명의 국민인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했다고 비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동성애 허용 법안이 만들어진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떨까. “동성애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았을 때 구제해주기 위한 최소한이 인권위법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처벌 규정이 없는 상징적인 문구다.” 정말로 이른바 ‘동성애 법제화’는 청소년에게 동성애 허용의 신호가 될까? 한 대표는 “애당초 사랑은 찬반의 논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으로 허용하든 허용하지 않든 동성애는 존재한다. 다만 고민하고 갈등하고 심지어 자살을 고민하는 성소수자에게 사회가 어떤 도움을 줄지 법적인 문제를 보아야 한다.”
“찬반 논란보다 현실 문제 고민해야”
한편 동반국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자를 처벌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되묻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논리의 변형인데, 동성애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는 이미 동성애자가 아닌데 도대체 누구를 용서하고 받아준단 말인가?”
동반국의 등장은 동성애를 둘러싼 갈등 심화의 징후로 보인다. 과연 한국은 대선 때마다 동성애 찬반으로 사회가 반으로 나뉘는 미국의 전철을 밟을까. 강영숙 대표는 “한국 전통을 지켜서 동성애로 고통받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일류 국가를 만들자”고 말했다. 이렇게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미국적인 방식의 반대가 시작됐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원문은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39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