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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끼리의 진한 우정, 표출되지 못한 미완의 색정 아닐까
성은 인간 실존에서 가장 사적인 부분… 타인의 성정체성에 단지 무심한 것도 윤리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우선 이 글의 표제에 대해서 독자들의 해량을 구해야겠다. ‘밴대질’은 글 제목으로만이 아니라 본문 한 귀퉁이에도 올리지 말아야 할 말이다. 그것이 여자끼리 하는 성행위를 뜻해서가 아니다. 이 말의 어감이 매우 모멸적이고 천박하기 때문이다.

밴대질은 이를테면 그와 비슷한 뜻을 지닌 영어 단어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이나 새피즘(sapphism)보다 훨씬 도발적이고 속된 말이다.

그 말은 비역질(남자끼리 하는 성행위)이나 용두질(남자의 자위행위), 요분질이나 감탕질(이 두 낱말은 차마 그 뜻을 여기 적지 못하겠다. 이 말들이 낯선 분은, 그런데도 그 뜻을 꼭 알고 싶은 분은 사전을 뒤적이시라)처럼, 글에 담는 것만이 아니라 입에 올리는 것도 삼가야 할 비속어다.

나는 잠깐 이 글의 표제를 ‘동성애’나 ‘레즈비언’이나 ‘게이’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로 할까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사랑의 말들’의 목록을 고유어로 한정한다는 원칙을 깨기 싫어, 망설임 끝에 ‘밴대질’을 골랐다. 그러니까 내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꼭 밴대질 얘기라기보다 동성애(나 성 소수자) 얘기다.

1996년에 낸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문학과지성사)이라는 책에서도, 나는 ‘살친구’라는 표제 아래 동성애 얘기를 늘어놓은 적이 있다. (‘살친구’는 남성동성애자들끼리 제 짝을 일컫는 말이다.)

되풀이는 글쓰기의 악덕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므로(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그 악덕을 때때로 저질러 왔다), 열두 해 전에 한 말과 겹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동성애 얘기를 하려 한다.

나 자신은 완고한 이성애자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본 어떤 남자 영화배우에게도, 주변의 어떤 매력적 남자친구들에게도, 성적으로는 손톱만큼도 이끌려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 이성(理性)은 성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추악하고 비열한 감정이라고 거듭 내게 가르치지만, 막상 동성애자들 사이에 끼여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레즈비언들 사이에 끼여 있으면 불편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게이들 사이에 끼여 있으면 좀 불편함을 느낄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내 주위에는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가 없고, 나는 게이바에도 가 본 적이 없다.

내 이성애의 완고함은 몸뚱이를 파고들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성년이 된 이후, 나는 연애만 여자랑 한 게 아니라, 일상적 교제도 주로 여자들과 해 왔다. 직장에서도 대체로 여자 동료들과 어울렸고, 술친구들도 대개 여자다.

내가 진한 우정(연애감정에 이르지 못했거나 그것을 넘어섰거나, 아무튼 연애감정과 성격이 조금 다른 감정)을 느끼는 여자 친구는 수두룩하지만, 내가 진한 우정을 느끼는 남자 친구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여자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남자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가까운 친구들과만 그런 게 아니다. 낯선 카페에서 낯선 여자와 한 시간을 보내라면 그럭저럭 버텨내겠지만, 같은 자리에서 낯선 남자와 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내내 안절부절못할 게다.

나는 젊고 아름다운 남자에게보다, 나이 들고 수수한 여자에게 훨씬 더 끌린다. 그래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도, 이를테면 장동건씨나 배용준씨보다 여운계 선생이나 나문희 선생에게 더 끌린다.

애정이든 우정이든 호감이든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후한 내 내면을 곰곰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쩌면 완고한 이성애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실제로 내 마음은 여자이고, 그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애정과 우정과 호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누군가의 말을 훔쳐오자면, 나는 ‘남자의 몸에 갇힌 레즈비언’(a lesbian trapped in a man’s body)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겉은 이성애자이지만, 그 속은 성 소수자에 속하는지 모른다. 비록 여장 취미는 없지만 여자들 사이에서 편하고(유사 트랜스젠더), 그 여자들과 애정이든 우정이든을 나누고 있으니(유사 레즈비언) 말이다. 이 문제를 두고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본 적은 없어서(상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남자의 몸과 레즈비언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확언할 순 없지만, 내 마음자리 한 구석에 꽤 짙은 여성성이 웅크리고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 자신을 완고한 이성애자라고 말하긴 했지만, 순수한 이성애자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순수한 여성성이나 순수한 남성성은 인간 세상에 드물지도 모른다.

우리가 동성애자로 알고 있는 역사상의 유명인들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부분적으로 이성애자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양성애자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도 그렇다. 딱히 동성애 영화라고는 할 수 없고 심미적으로 뛰어나다고도 할 수 없는 패디 브레스내치의 영화 <블로우 드라이>(Blow Dry, 2001)에서도, 셸리(나타샤 리처드슨)는 (옛) 남편 필(앨런 릭맨)과의 사이에 브라이언(조쉬 하트넷)이라는 아들을 둔 어머니이자, 헤어드레서인 남편의 모델 샌드러(레이첼 그리피스)와 눈이 맞아 출분한 레즈비언이다.

여자들끼리의 진한 우정이나 남자들끼리의 진한 우정 역시, 풍속의 감시자들 때문에 연애감정으로 바뀌지 못한 미완의 색정일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소설가(남자다) 가운데 젊은 시절 가까운 친구들이나 남자후배들에게 입맞춤(혀까지 들이미는 프렌치 키스)을 함으로써 친밀감을 드러냈던 이가 있는데, 누구도 그것을 동성애의 징후로 여기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나 이상으로 완고한 이성애자다. 그러니 그 입맞춤은 자신의 탈-풍속적 전위성을 뽐내려는 제스처에 불과했으리라. 그러나 한편으로, 그 소설가의 내면에 숨어있(었을 수도 있)는 동성애 성향의 표출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방대한 지적 작업 속에서 동성애에 집중적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고, 동성애에 대한 관점도 조금씩 변경시켰다. 만년인 1935년 4월9일, 자신의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투덜거리는 한 미국 여성에게 그는 이런 편지를 썼다. “동성애는 분명히 유리한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 부끄러워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악덕도 아니고 타락도 아니며, 질병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동성애를 성 발달의 정지 단계에서 야기된 성 기능의 다양성으로 여깁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깊은 존경심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여럿이 동성애자이며, 그 가운데는 가장 위대한 인물들(플라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포함돼 있기도 합니다.  동성애가 범죄라도 되는 양 박해하는 것은 커다란 불의입니다. 그리고 잔인한 짓입니다”(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와 미셸 플롱 공저 <정신분석학사전>에서 재인용).

다시 말해 프로이트는 동성애를 찬미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동성애를 인간 성생활의 보편성 안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가 동성애에 대해 지녀야 할 양식(良識)에 근접한다.

그러나 박해받는 동성애자들을 열렬히 옹호했던 헝가리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산도르 페렌치를 제외하면, 초기 정신분석학계는 동성애에 너그럽지 않았다.

특히 프로이트가 죽은 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만년의 관점을 벗어나 동성애자를 성도착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정신분석의 주체에서도 대상에서도 배제했다. 정신분석학계의 이런 몽매주의가 타파된 것은 20세기 후반 자크 라캉에 이르러서였다.

성은 인간의 실존에서 가장 사적인 부분에 속한다. 그러니 우리 주위의 누군가가, 또는 어떤 저명인사가, 동성애자든 트랜스젠더든, 그들의 성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접는 것이 좋겠다.

성년자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제 몸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섞든, 밴대질을 하든 비역질을 하든, 그것은 저마다의 취향이고 권리다.

꼭 특정한 종파의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단 한 번의 성행위도 하지 않고 삶을 마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취향 때문이든 종교적 신념 때문이든 장애 때문이든,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이성애를 실천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들에게 무심하듯, 동성애자들을 무심히 대하는 것도 이성애자들의 윤리다. 성 소수자들은 성 다수자들의 찬양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무심을 바란다. 그럼으로써 세상의 증오가 확 줄어든다면, 그 무심을 실천해야 마땅하다.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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