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간부가 ‘공개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양 젖꼭지를 비틀거나 잡아당기고 손등으로 성기를 때린’ 행위가 군형법상 추행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2008. 5. 25. 선고 대법원 2008도2222)이 선고되었다. 대법원 판결은 법리적인 측면에서는 군형법상의 추행죄와 일반 형법상의 추행죄는 보호법익 등에서 서로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었지만, 이 판결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군형법 제92조의 추행죄는 군 내부의 건전한 공적생활을 영위하고, 이른바 군대가정의 성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서, 주된 보호법익은 ‘개인의 성적 자유’가 아니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이고, “군형법 제92조에서 말하는 ‘추행’이라 함은 계간(항문 성교)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군형법상 추행죄의 보호법익이 형법상 추행죄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군대가정’이라는 고색창연한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가장인 지휘관, 형제지간인 병사들로 구성된 가정 공동체라는 ‘군대가정’의 은유는 군 내부의 위계와 권력 관계를 자애로운 가정의 이미지로 가리며 관계를 낭만화하는 은유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군대가정’의 가장인 중대장이 다른 사람도 아닌 형제들(병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한 것이므로, ‘양 젖꼭지를 비틀거나 잡아당기고 손등으로 성기를 때린’ 정도의 행위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거나, 혐오감을 일으키거나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게 된다.
또한 ‘군대가정’의 은유는 ‘근친상간 금기’와 ‘동성애 금기’를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군대=가정이고, 그 구성원 사이의 성관계는 그 자체가 (가정의) 성적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는 무의식이 법원의 판단에 전제된다. 동성간 성행위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킨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동성애 일반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차별문제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고, 동성간 성행위에 대한 혐오적 판단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형법 제92조의 추행죄 규정은 행위유형이 세분화되지 않고, 처벌법규로서의 명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위헌론이 계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축소)해석을 통해서 위헌성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이번 대법원의 판단을 통해서 군형법 제92조는 순수하게 ‘군대가정’에서의 동성애적(근친상간적) 성행위만을 금지하는 법규범으로서 (축소)해석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제정 등으로 인해서 한국사회에서도 군대사회를 제외한 영역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과 혐오가 더 이상 법적인 정당성을 유지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군대사회는 동성간 성행위에 대하여 형사법적으로 개입하면서 동성애 혐오(호모포비아)를 정당화하고 있다. 군대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당사자의 합의에 기초한 관계에 대해서까지 형사상 제제를 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군대사회에서의 합의에 기초한 성행위는 - 이성애와 동성애적 관계 여부를 불문하고 - 복무규율의 차원에서 접근될 문제이지, 형사적 처벌의 관점에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법리’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군대가정’이라는 낡은 은유와 동성애 콤플렉스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 결과 군형법 제92조는 법적 정당성을 확인받고,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게 되었다. 합헌적 축소해석의 명분으로 이루어진 위헌적인 결과다.
정정훈(공익 변호사 그룹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