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커밍아웃>의 기획의도는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동성애자의 공개적인 출연을 통해 '커밍아웃'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따고 싶다고 말한다. 2008년 대한민국의 케이블 TV가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살짝 건드리면서, 정치적으로도 문제없게, 그러면서도 자극적인 소재를 다뤄 높은 시청률을 얻기 위한 의도로 삼은 소재가 바로 이 '커밍아웃'이다.
<커밍아웃>, 술자리의 진실게임 딱 그정도의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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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라는 자극적인 소재(아직도 한국에서 동성애는 자극적이다)를 한국의 상황에서 잘 버무리면 나올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프로그램이다. 그 시작이 바로 '커밍아웃'이라는 것인데, 이 프로그램은 정말 한국의 동성애자들이 벽장문을 열고 나오기를 바라는 것인가? 아니 케이블 TV 채널의 화면에서 '커밍아웃'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커밍아웃'에서 '아웃(out)'을 사전적으로 풀어 생각하면 다양한 의미가 있다. 영어 사전을 들춰보면 '아웃'은 누군가를 탄로나게 하는 표현으로도 쓰이고,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의미로도 쓰인다. 또는 어떠한 계기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도 쓰인다.
비밀은 감추면 감출수록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지만, 적절히 그것을 알릴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비밀이 알려지면 감내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극복할 수 없기에 감출 수밖에 없기도 하다. tvN의 <커밍아웃>은 그런 의미에서 '자극적'일 수 있다. 남과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비밀을 케이블 TV라는 매체를 통해 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비밀 이야기가 과연 어디까지 '자극적'일까? 우리가 술자리에서 흔히 하는 진실게임 속에서 간간히 나오는 비밀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 정도 아닌가? <커밍아웃> 역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자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특히 첫회 출연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커밍아웃'을 하려고 결심한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순도 100% 게이'의 첫사랑 이야기와 동성애자와의 첫 관계 맺는 장면을 정말 이성애자들만의 시각대로 풀어내고 있다.
사실 동성애자를 대하는 많은 이성애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동성애자의 첫사랑이야기와 첫 관계 이야기는 과연 어떠할까?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럴 수 있을까?' 하며 궁금해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불손하다.
이성애자 당사자에게 게이인 나로서도 궁금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물어보지 않는다. 그것은 호기심으로 접근할 대상이 아니며,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길을 열어줄 일이 아니다. 접근 자체가 너무 이성애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타 다른 언론 매체에서 성소수자 관련 이야기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였다.
"난 동성애자다?" 커밍아웃은 요술 주문이 아니다
동성애자 스스로가 '커밍아웃'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함께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 기존의 이성애자 중심사회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성역할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물론 '커밍아웃'을 하게 되는 상대방이 받을 부담감과 충격은 생각해야 한다. 심할 경우 관계의 단절까지 예상해야 하고,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tvN의 <커밍아웃>에 출연하는 당사자들의 결심은 대단한 것이고, 앞으로 거쳐 갈 험난한 사회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처럼 '커밍아웃' 이야기는 인생의 험난한 과정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문제이고, 단 한 번으로 끝날 문제는 아니다. tvN의 <커밍아웃> 역시 이에 대한 고민의 생각이 보인다.
사회자는 출연자에게 이러한 문제를 감내할 수 있냐고 묻기도 하고, 출연자가 결심한 점에 대해 격려 또한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방송 이후의 이야기는 사실 다시 알릴 수도 없고, 출연자 스스로가 결정한 문제이기에 애프터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커밍아웃>의 시선이 못내 아쉬운 것은 이 프로그램의 절정이 결국은 친한 학교 친구 또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시점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 시청자가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가장 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자는 그 순간에 겪게 될 상대방의 첫 반응이 두려워 '커밍아웃'을 주저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커밍아웃' 했다고 해서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쉽게 받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성애자들이 갖는 다양한 편견들을 우리는 또 다시 반복하며 편견을 깨뜨리는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커밍아웃>은 초기 자극에만 매몰되어, 받아들이는 순간 이성애자들의 얼굴에만 집중되어 있고, 이를 본 커밍아웃 당사자는 힘들어 결국 눈물을 흘리거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평소보다 불안해진다. 이것만으로 '커밍아웃'은 끝나지 않는다.
이미 '커밍아웃'을 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넌 결혼 안하니?"하며 황당한 질문을 자주 받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동성애자라고만 알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 나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상대방의 자세 또한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친분과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에서 가능한 것이다. 직접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말하는 장면이 안타깝기도 하고, 눈물이 찡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결국 케이블 채널이 갖은 한계에서 비롯된 장면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동성애자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다
'커밍아웃'은 적절히 분위기를 잘 이용한다면 자신에게 있어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커밍아웃'이 갖는 파워는 다이내믹한 한국사회에서 아직 검증된 바는 없지만, 자신의 입지를 세울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커밍아웃>의 앞으로의 출연자 역시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영리하게 스스로를 포장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대중매체와 적절히 합의되는 지점을 출연자 본인 스스로가 찾았을 것이고, 한국의 대중매체 역시 이제는 그 지점을 받아들여 동성애자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작이 tvN의 <커밍아웃>이고, 이 프로그램의 성공여부에 따라 비슷한 시도가 잇따를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더욱 <커밍아웃>은 초기에 많은 이성애자들이 갖는 호기심을 해소해주기 위해 이성애자가 보기에 자극적인 장면들을 위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커밍아웃' 속에 내재되어 있는 풍부한 함의보다는 비밀을 털어놓는 정도의 깊이로만 다루어 동성애자가 '커밍아웃'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고민을 들을 수도 없다. 아직도 동성애자가 커밍아웃 하는 것이 자극적이라고 믿는 것에서 비롯된 기획의도란 것이다.
이제 그런 자극에는 동성애자 스스로도 반응하지 않는다. 호기심의 대상도 아니고, 안타까운 눈초리를 받아야할 대상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내는 당당한 사람들이다. 18대 총선후보로 레즈비언이란 성정체성을 당당히 알린 최현숙 후보 역시 그러한 사람이다.
tvN의 <커밍아웃>이 동성애자가 스스로 벽장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것까지는 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100% 게이 출현'이라는 문구와 'DNA 이중나선' 이미지를 보여주는 감각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조금만 더 진정성을 갖고 세련된 매너를 보여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종헌 기자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