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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할 것 없이 운동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진보진영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궁금했다. 성소수자의 눈에 비친 진보진영의 모습은 어떨까. 한국사회에서 숨죽이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진보진영 안에서만은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또 총선 시기 한 가운데에서 진보정당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최근 '최초의 성소수자 국회의원 후보'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최현숙 진보신당 후보(서울 종로)와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를 만났다.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 민주노동당에서 함께 활동했다.

이제 서로 당적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하고 있다. 최현숙 후보는 직접적으로 선거의 장에서, 정욜 활동가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성소수자 운동과 정치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의 대담은 지난 2일 최현숙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진보진영의 한계, 성정치를 핵심 의제화 하지 못한 데 있다"

▲  최현숙 진보신당 후보/김용욱 기자

일단 두 사람이 생각하는 '성소수자'란 누구인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성소수자' 개념에 대해 이른바 '정상의 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다양한 성적 주체들을 포괄한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다만 정욜 활동가는 "성소수자라는 용어 자체가 성소수자들을 항상 수적인 의미에서 소수로 귀결되게 보이게 하는 측면도 있다"는 짧은 우려를 나타냈고, 최현숙 후보는 "수적인 소수를 의미한다기보다 권력의 측면에서 소수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정당 평가와 관련해 최현숙 후보는 "비단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은 노동.통일 의제 등 다수 의제에 집중하고, 소수의제를 핵심적인 의제로 삼지 않으며 소위 사상을 위계화해왔다"며 "진보진영이 부딪치고 있는 한계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지나치게 계급문제에만 천착한 채 가부장제 문제와 성정치의 의제를 핵심 의제화 하지 못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진영, 단지 발설을 안 할 뿐"

최 후보는 이제는 탈당한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진보신당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도 진보신당을 포함해 진보정당 안에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며 "단지 스피크 아웃(speak out), 발설을 안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처음 국회의원 후보로 나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자, 당 내부에서는 "진보신당의 성격을 지나치게 한쪽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튀어 나왔다고 한다. 최 후보는 "진보신당이라고 해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안에서도 끊임없이 싸워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최현숙 후보는 성소수자 운동 자체에 대한 평가 부분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정체성 운동에 빠져있었던 측면이 있다"며 "진보를 끊임없이 고수하기 위해서는 성소수자 운동이 정체성 운동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왜 탈당 안하냐?.. 아직 충분한 소통 하지 못했다"

▲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김용욱 기자

정욜 활동가는 요즘 "왜 탈당 안 하고,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왜 안했을까.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민주노동당 안에서 그동안 충분히 많은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아직 여지를 두고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또 그는 최현숙 후보가 위원장을 지낸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그간의 성과를 강조하며 "성소수자위원회가 그간 해왔던 것처럼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 같아서 아직 탈당을 안했다"며 "성소수자위원회의 그간의 성과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민주노동당도 앞으로 많은 노력들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욜 활동가는 요즘 당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한편, 두 사람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성소수자 관련 정책 부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공히 지적했다. 정욜 활동가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서 나오는 정책이 우선순위는 다르겠지만, 거의 같다고 생각한다"며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이지, 어떤 차이가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신나고, 통쾌한 짓".. "익명의 다수 가시화해야"

이번 총선 의미와 후보 출마 소회를 묻는 질문에 최현숙 후보는 "내 자신에게 굉장히 신나고, 정말 해보고 싶은 짓"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든 못되든 상관없이 내가 성소수자 후보로 나를 드러내고, 성소수자 의제를 한국사회 전반에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굉장히 통쾌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현숙 후보는 이어 "'누가 성소수자냐'라고 물었을 때 숨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혹은 모자이크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나 있다'며 가장 공세적인 방식으로 가시화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욜 활동가는 역시 "성소수자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익명의 다수의 성소수자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일"이라며 "한 사람에 의한 가시화가 아니라 이 가시화를 통해 익명의 다수를 가시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을 시험하는 자리"라고 이번 선거와 최 후보 출마 의미를 설명했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좀 '생뚱맞은' 질문으로 시작할까 한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을 일컬어 보통 성소수자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제는 많이 사회화 된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대중에겐 헷갈리는 요소도 있고, 적절한가라는 생각도 든다. 두 분이 생각하는 성소수자란 누구인가

최현숙: 크게는 우리사회에서 보통 정상의 성이라고 여겨지는, 소위 정상의 성을 뗀 나머지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여러 성적 주체들과 성향유권 측면에서 소수자 입장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성소수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등이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영이 포괄하고자 하는 성소수자인데, 좀 더 확장하면 장애인, 청소년, 노인, 여성, 성매매여성까지도 포함될 수 있겠다. 이처럼 넓은 의미의 성소수자로 봐야지 정상의 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치선을 만들 수 있다. 국가와 자본은 끊임없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회구성원들의 성을 관리하려고 한다. 소위 국가가 정상으로서의 성으로 여기고 싶지 않아 하는, 효율적인 성으로 분류하고 싶지 않아 하는 다양한 성적 주체들이 존재한다. 관리되는 성이 아니라 스스로 시민 입장에서 주체적인 성, 자유로운 성도 국가와의 관계, 즉 권력과의 관계의 측면에서 성소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정욜: 성소수자라는 용어가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성소수자라는 용어가, 사회가 규정해놓은 정상 범주의 성을 벗어난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실 대중적 용어라기보다는 학술적 용어라고 본다. 아직도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캠페인 때 쓰면 잘 모른다. 그런데 익숙하게 동성애자, 동성애자 운동이라는 말을 쓰면 트랜스젠더가 들었을 때는 소외감 같은 게 들 수 있다. 그래서 정상의 성 범주에서 벗어난, 다양한 규정에 있는 사람들과의 폭넓은 대화를 만들기 위해 성소수자라는 개념을 의식적으로 써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성소수자라는 용어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소수로, 물론 수적인 의미에서 소수지만, 항상 소수로 귀결되게 보이게 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최현숙: 성소수자의 의미가 수적인 소수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권력의 측면에서 소수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거나 혹은 그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권력을 쥐고 있지 못한 소수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학술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정치사회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 후보로 나오면서 호칭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는데, 예컨대 '동성애자'라는 말은 한 사람의 성정체성을 규정해버리는 측면이 있다. 성정체성이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혹은 자기 성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인데, 내 자신을 동성애자로, 동성애자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권력에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성소수자라는 용어가 나에게는 가장 편한 용어다. 그러나 이 용어가 성소수자를 피해자화 해 동정과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불편함은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은 어떠하다고 보는가, 또 그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성소수자 운동이 성장해왔는데, 현재의 성소수자 운동을 진단한다면... 정욜 활동가부터 먼저 얘기해달라

정욜: 성소수자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 면밀하게 들어가면 각각의 조건과 현실은 굉장히 다양할 수 있다. 청소년의 경우 흔히 얘기하는 이반검열에서부터 시작해 이성애 중심적인 교육을 받아야한다든가, 정보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거나, 그래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 안에서 어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또 공간을 군대로 옮겨보면, 그 안에서 성정체성이 밝혀졌을 때 군대가 취하는 방식은 대단히 성폭력적인 것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크게 사건화 되었다. 분명한 점은 성소수자가 속한 연령과 성별, 그리고 공간 등 세부적으로 들어갈수록 성소수자가 놓여 있는 객관적 위치와 조건은 예컨대 이성애자와 비교해봤을 때 굉장히 낮은 조건에 있다는 것이다. 또 가장 근저에 깔려있는 어려움은 자신의 정체를 어떤 공간에 있던지 간에 밝히지 못함에 있는 것 같다. 2005년 이후 가장 활발하게 벌어졌던 운동의 이슈를 보면, 청소년 성소수자들에 대한 상담과 지원,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 보호, 트랜스젠더 성별변경 법안 마련 등이었는데, 이것이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편, 문화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해 과거보다는 많이 열려있다는 생각도 들고, 사회적 시선에 있어서 과거와는 달라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성소수자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세력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깝게는 작년 차별금지법 논란에서 보수기독교계는 윤리와 종교의 이름으로, 재계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을 공격했다. 이처럼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들어남과 동시에 그것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들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하에 노골적으로 성소수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최현숙 후보에게는 앞서 질문과 함께 진보진영의 노동운동 중심성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이 있는데, 이 측면에서 의견을 덧붙여달라

최현숙: 정욜 님의 얘기에 대체로 동의를 한다. 중복되지 않는 부분에서 레즈비언들에 대한 이중적 억압, 동성애자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는 혹은 놓여질 수밖에 없는 억압에 말하고 싶다. 게이들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와는 완전히 다르게 레즈비언은 여성이기 때문에 노동현장에서 가지고 있는 낮은 지위, 그리고 이는 파트너와 이중적으로 같이 짊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또 가부장제 하에서 남자의 아내가 아닌 이유 때문에 사회경제적 위치가 더욱 낮을 수밖에 없고,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성숙하지 않은 여성으로 취급 받는 레즈비언에 대한 이중적 억압이 있다. 그것은 성전환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FTM(Female to Male: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물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남성으로 보여지는 사람으로서 뛰어들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 그러나 MTF(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한 경우)은 절대 다수가 유흥업소에 취직할 수밖에 없는 조건 역시 여성이기 때문에 노동현장에서 당하는 사회 억압을 잘 보여준다.

정치 안에서, 특히 진보진영 안에서 성소수자 의제의 위치는 항상 부문으로 취급되어 왔다. 비단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당 밖의 진보진영은 노동 혹은 통일 의제 등 다수 의제에 집중하고, 소수의제를 핵심적인 의제로 삼지 않으며 소위 사상을 위계화 해왔다. 나는 성소수자 의제라는 표현보다 '성정치'라는 말을 더 잘 쓰는데, 성정치의 의제는 가부장제 안에서 얼마만큼 성평등 한 인식을 가지고 있고, 또 실천하고 살고 있느냐의 문제다. 또 자신들의 가정, 직장, 그리고 정당과 조직의 문제인데, 이를 성소수자만의 의제로 말하면서 부문의제화 한 측면이 있다. 또 성소수자 진영도 성정치의 의제를 지나치게 LGBT(Lesbian, Gay, Bixesual, Transgender: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 의제만으로 접근한 경향도 있다. 개인적으로 지금 진보진영이 부딪치고 있는 한계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지나치게 계급문제에만 천착한 채 가부장제의 문제와 성정치의 의제를 핵심 의제화 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가장 시급한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 총선에서 직접 뛰고 있는 최현숙 후보는 정치영역에서 풀어낼 성소수자 관련 정책을 중심으로 얘기를 해줘도 좋겠다

최현숙: 선본이 성소수자 의제만을 공약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다양한 진보적 의제를 어떻게 사회적 소수자 입장에서 제기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어쨌든 성소수자와 관련한 핵심적 의제는 우선 동반자법이 있다. 동성애자들의 관계, 이성애자들의 사실혼 관계, 노인들의 경우 자신이 새롭게 사랑한 사람과 가정을 구성하기 어려운 조건 등 소위 정상가족에 속하지 못하는 다양한 동반자 관계에 대해 정상가족과의 차별을 없애는 법제도를 만드는 것이 동반자법이다. 또 차별금지법을 제대로 만들어 내는 것도 하나의 과제다. 지난 해 정부안을 저지한 것도 큰 성과지만, 가장 차별받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차별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법의 강제력과 효율성을 높여내야 한다. 또 16,17대 국회에서 연달아 무산된 성전환자 성별변경 법안을 만드는 것도 핵심 의제다.

정욜: 과제의 우선순위는 한편으로 위험할 수 있을 것 같고, 개인의 조건과 관심도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다만 동반자법의 경우 동반자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포괄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혼자 살아도 가족을 구성할 때 주어지는 혜택들이 똑같이 주어질 수 있도록 개인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은 단지 공약이 아니라 성수자 운동이 반드시 쟁취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덧붙여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이 공격받는 핵심적인 지점은 청소년과 에이즈라는 생각이 든다. 단편적인 예로 차별금지법 논의에서 보수기독교계가 반대할 때 들고 나온 논리가 '동성애는 청소년들에게 유해하고, 에이즈를 확산시킨다'는 것이었다. 차별금지법안에 성적지향을 넣냐, 빼냐에 대한 명확한 쟁점이 형성되어 있었음에도 성소수자들을 공격할 때는 이런 반대 논리들이 튀어나온다. 이들을 우습게 취급해 상대안 할 수도 있지만, 윤리와 정상이라는 싸움에서 이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다양한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쟁취해야할 과제와 별도로 운동의 방향과 전략을 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지점일 것 같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대응을 위한 운동이 전개되고, 정책이 생산된다면, 우리가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과제들을 좀 더 빠르게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현숙: 그동안 성소수자 운동이 지나치게 정체성 운동에 빠져있었던 측면이 있다. 이번에 선거에서 선본 지지선언을 모으고 있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성소수자 개인과 단체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했다. 성정치.성소수자 의제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미 많이 존재하는데, 성소수자 운동이 지나치게 정체성 의제에 집중하며 우리와 함께 연대할 세력을 모아내지 못했던 것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성소수자 운동이 성정치의 의제, 성소수자 의제를 함께 할 연대의 폭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정욜: 성소수자 이슈가 다양한 영역에서 맞닿아 있음을 성소수자 운동 스스로가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연대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성소수자 운동이 정체성 운동에 매몰되어 왔다는 지적은 여러 토론지점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성정체성과 성소수자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 연대를 확장하고 그 범위를 뚜렷이 만들어나가는 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현숙: 이번 선거를 통해 느낀 점은, 우리는 사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선거를 시작했다. 테러까지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소위 서구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지 않느냐.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유세를 하며 사람들을 만날 때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이 온다. 물론 '쟤네들 빨갱이다'는 식의 반응은 있었지만, 동성애자임을 이유로 한 구체적 반응은 확인되게 없다. 이런 면을 보면서 그간 성소수자 운동이 지나치게 자신들을 피해자화 하면서, 스스로 가둔 측면이 있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레즈비언 운동의 경우 지나치게 피해자 중심적으로 간 측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 중 하나가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가시화 전략을 펼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거다. 길거리에서 내가 '나는 동성애자 후보다'라고 얘기를 하니 그것에 대해 몰랐던 혹은 막연하게 혐오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저렇게 떠드는 거 보니깐, 잘난 건가 보다', '동성애에 대한 나의 혐오는 부끄러운 것인가 보다'라는 식으로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부문에서 적극적인 가시화 전략이 편견과 고정관념과 차별을 깨고나가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최현숙 후보는 이미 여러 언론 지면을 통해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로 알려졌다. 출마를 해 지금까지 선거운동을 치르고 있는데, 여러 가지 소회가 있을 것 같다. 정욜 활동가에게도 최현숙 후보의 출마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국회의원 후보의 의미, 무엇이라고 보나

최현숙: 소회라고 하면, 이번 선거가 내 자신에게 굉장히 신나는 일이다. 정말 해보고 싶은 짓이다.(웃음) 국회의원이 되든 못되든 상관없이 내가 성소수자 후보로 나서서 성소수자 의제를 저들의 정치일번지인 종로에서, 또 종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서 제기한다는 것, 그리고 성소수자가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는 이 현실을 한국사회에 드러내는 것 자체가 나에게 굉장히 통쾌한 일이고, 해보고 싶은 일이고, 역사적인 일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에 동의하는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나누고, 참여하고 있다. 같이 신바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신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앞서 얘기한 대로 가장 공세적인 가시화 전략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얘기하지만 '누가 성소수자냐'라고 물었을 때 숨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혹은 모자이크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나 있다'며 가장 공세적인 방식으로 가시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내가 국회의원 후보로 기득권자들의 정치 속에서 '너희들의 정치는 가짜고, 가장 차별받는 사람들의 편에 선 이 정치야말로 진짜 정치이다', '이 정치가 진정한 민주의의의 확장이고, 진보의 리트머스 시험지라다'는 입장을 취하며 공직선거 후보에 나섰다는 것이 이번 선거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정욜: 일단 성소수자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익명의 다수의 성소수자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일일 것 같다. 쉽게 얘기하면 대리만족. 후보가 가시화됨으로써 그간 갇혀있던 성소수자 개인과 이 선거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에 의한 가시화가 아니라 이 가시화를 통해 익명의 다수를 가시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을 시험하는 자리가 성소수자 국회의원이 최초 출마하는 이번 선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또 당연하게도 이번 선거가 성소수자 운동 안에서도 남다른 의미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는 진보진영의 큰 틀에서 얘기를 했다면, 한국의 진보정당이 성소수자 의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체화하면서 왔는지를 평가해 달라. 좀 더 쟁점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질문하겠다. 두 분은 얼마 전까지 함께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다. 최현숙 후보에게는 왜 민주노동당을 떠나 진보신당으로 갔는지를 묻고 싶고, 정욜 활동가에게는 민주노동당에 남기로 한 이유를 얘기해줘도 좋겠다

최현숙: 사실 나는 성소수자여서 민주노동당을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진보정당 안에서 소위 다수파와 소수파가 있을 수 있지만, 의사소통과 토론이 불가능하고, 다수결만 남아 있는 진보정당의 모습 때문에 탈당을 한 것이다. 나는 성소수자 의제와 관련해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진보진영이 성소수자 문제를 얼마만큼 자기의제로 받아들여왔는가를 지적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역시 성소수자위원회는 그냥 부문 의제였다. 내가 한명의 상근자 자리를 받아내기 위해서 단식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내가 이전에 여성위원장을 할 때도 그랬고, 성소수자위원장이 된 후에도 소수자 부문은 발악발악 악을 써야만 했다.

나는 지금도 진보신당을 포함해 진보정당 안에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단지 스피크 아웃(speak out), 발설을 안 할 뿐이다. 이전의 성소수자위원회 건설은 그렇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발설하는 사람들에 대해 발악발악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생각해보면, 성소수자위원회 건설 이후 성소수자 의제와 관련해 끊임없이 진보정당 당원들에게 교육할 수 있었던 것이 중요한 성과인 것 같다.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민주노동당 안에서 굉장히 큰 논란들이 여러 번 있었다. 물론 당 전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굳이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몇몇 인사들의 개인적 '발설'에서 야기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더욱 중요한 점은 민주노동당이 그 '발설'을 처리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적절치 못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민주노동당은 지난 10년의 진보정당 운동의 성과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앞서 질문은 민주노동당 안에서의 그간의 활동을 냉철하게 평가해보는 것이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데 유의미할 수 있겠다는 취지에서 드렸다

최현숙: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진보신당 얘기를 좀 하고 싶다. 내가 처음에 언론 등에 노출이 되니까 진보신당 안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냐하면, '진보신당이 알려지기 전에 레즈비언 후보가 먼저 알려진다. 이러면 진보신당의 성격을 지나치게 한쪽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식의 반응이 있었다. 바로 이점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포함한 진보정당 혹은 진보진영의 한계이다. 진보신당이라고 해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가능성, 소통의 가능성이 이쪽에 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를 선택했지만, 이 안에서도 끊임없이 싸워야 할 부분이 있다.

정욜: 일단 최 후보께서 탈당하셨지만, 그간 민주노동당 안에서 성소수자 당직자를 두고,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의무화시킨 것은 상당부분 성소수자위원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민주노동당의 성과이다.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민주노동당도 앞으로 많은 노력들을 해야 할 것 같다.

요즘 민주노동당과 관련해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왜 탈당 안 하고, 남아있냐'는 것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그동안 충분히 많은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소통을 이루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는데, 토론할 공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없는 게 사실이다. '소통의 창구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을 때 지금의 성소수자위원회는 민주노동당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 위원회에 속해 있는 많은 성소수자 당원들이 탈당한 상황에서 처음에는 나도 탈당을 고민했다. 그런데 위원회에 대한 중요성을 이어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이전보다 좀 더 당에 많이 가게 되는 것 같다.

요즘에는 그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만들어왔던 여러 정책들을 통해 어떻게 당 내부와 외부를 정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엮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한다. 물론 또 실패할 수 있겠다. 또 다시 이전과 같은 큰 사건들이 내부에서 있을 수 있고, 이런 것은 당내가 아니라 당 외부에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배제하고 갈 것인가, 아니면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갈 것인가에 있어서 아직 여지를 두고 있다. 성소수자위원회가 그간 해왔던 것처럼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 같아서 아직 탈당을 안했다. 나는 진보신당에도 반드시 성소수자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자들에 대한 정치 안에서의 배제 등의 문제를 어떻게 소통하면서 갈 것인가는, 남아있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당원들이 성소수자위원회 안에서 해결해야 될 몫이 아닐까 싶다.

최현숙: 2005년 이후부터는 민주노동당에 남아있는 유일한 이유가 성소수자위원회 때문이었던 것 같다. 2004년을 경과하며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이미 포기했었던 것 같다. 나는 이용대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을 것 같고, 또 범민련에 동의하는 많은 세력들이 민주노동당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사회의 수준이고, 한국 진보정당의 수준이다. 그들은 진보라고 믿고, 나는 진보가 아니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또 설득이 가능한 사람들도 충분히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 문제가 아니라 다수파와 소수파간에 패권주의적인 문제가 극복될까라는 면에서 2004년부터 계속 싸워왔다. 북핵문제에서도 그랬다. 중앙위, 대의원대회 등에서 싸워왔지만, 내 자신이 이제는 싸울 기운이 없더라. 그렇게 토론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토론해도 토론의 성과는 아무것도 없이 결과는 애초부터 예상되는 비율로 찬반이 나눠지는 그 모습을 보며 절망했다.

그런데 당에 남아있었던 것은 성소수자위원회가 진보정당과 만나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의원들을 통해 성정치 의제를 제도정치 영역에서 풀어내고, 성소수자 의제를 정치의제화하는 것이 성소수자위원회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했고, 그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당에 남아있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임시당대회는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가도 되는 명분을 만들어준 종지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혼자 행동하는 안 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탈당하지 않은 것이었지 평당원이었다면, 벌써 탈당했을 것이다. 진보신당 역시 성소수자의제에 있어 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매스컴을 통해 비춰지는 '종북'이라는 키워드 외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차별성이 잘 부각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 정책과 관련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차이가 있을까 궁금하다. 있다면 얘기해달라

정욜: 지금 차별성 부분을 얘기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진보신당이 가지고 있는 많은 부분이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활동을 이어받고 있고, 최현숙 후보의 출마 이전의 많은 시간들이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안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때문에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서 나오는 정책이 우선순위는 다르겠지만, 거의 같다고 생각한다.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인 것이지, 이게 어떤 차이가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최현숙: 동의한다

정욜: 보수정당과 관련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는 자기 삶의 바깥에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성소수자로 사는 것도 힘든데 마치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찍으면 나의 삶이 나아질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정당을 떠나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안에서 선거와 관련된 활동들을 하면서 운동과 정치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삶과 정치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연장에서 무지개행동에서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의 후보 600여 명에게 성소수자반차별선언에 동참 요구 서신을 보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민주당에서 4명의 후보에게 연락이 왔고, 지난 대선에서 후보로 나왔던 정동영 후보가 동참을 했다.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는데, 반차별선언에 민주당의 후보가 참여한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성소수자운동이 오래되지 않았지만, 선거라는 공간을 활용하는 활동에 많은 비중을 두어왔다. 그리고 이번 총선은 후보가 직접 출마를 했으니, 그 활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라는 공간은 유권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직접적으로 뚫려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보수정당이라고 얘기되는 통합민주당의 반응은 성소수자 운동이 선거 공간을 활용하려고 고민해온 것에 대한 성과라는 생각도 든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는 성소수자들이 유권자로서 눈에 보이는구나라'는 느낌도 든다. 직접 후보가 출마하는 지금의 도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되겠지만,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운동과 커뮤니티가 정치와의 거리감을 좁혀 나가는 활동들도 필요할 것 같다.

그간 민주노동당에 민주노총당이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역으로 당이 부문 운동단체나 대중조직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온 측면도 없지 않다. 당과 성소수자 운동 간의 연대방안, 혹은 당과 운동이 함께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얘기해달라

최현숙: 한나라당 비례대표 1번이 소년소녀가장 관련 활동을 해왔던 분인데, 그 분을 비례대표 1번으로 세워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이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은 어떠했는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공히 1번을 여성장애인으로, 2번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세웠다. 가장 차별받는 사람들과 얼마만큼 연대해왔는가, 또 노동문제에서 비정규직 의제를 자신들의 의제화해왔느냐와 관련해 민주노동당은 한계가 있었고, 진보신당이야 이제 시작이라서 사실 아직 모르는 거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동당은 장애인운동을 사실 제대로 못했었다. 하다못해 깃발로만 보더라도 한국사회당 깃발이 먼저 와있었다. 민주노동당의 장애인 의제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었다고 보인다.

반면, 사회단체들도 당에 어떤 자리를 요구하고, 그 자리를 채우려고 하기 보다는 예컨대 장애인운동 역시 정체성 운동에 빠지지 말고, 진보와 결합해 진보적인 장애인운동을 해야 한다. 나는 민주노동당에서든, 진보신당에서든 장애인운동 진영이 비례대표 1번을 주장하는 방식이 적절했는가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자신들의 정체성만을 강조했지, 장애를 포함한 다른 소수자들의 의제 안에서 같이 가야한다는 주장을 형성하지 못했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점은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똑 같이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비례대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비례대표 1번을 세우는 과정에서 장애인운동 진영이 얼마만큼 진정한 진보 혹은 진정한 소수자 운동을 얘기했는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뜬금없는 질문 하나 하겠다. 초록당을 건설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성소수자하면, 흔지 '무지개'로 대변되는데 혹시 무지개 정당 하나 따로 만드실 생각 없나

정욜: 무지개 정치가 우선 진보정당 안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또 무지개 정당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정당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지만, 그 대상이 성소수자 혹은 소외된 사람들로만 얘기된다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한다.

초록당이라고 해서 환경 혹은 생태주의자들만 모여 있는 정당은 아닌 것 같다. 예컨대 생태.직접민주주의,지역 등 이른바 '초록'으로 대변되는 그 가치가 진보진영 안에서 지니는 의미가 점점 커지고 있고, 진보진영도 이를 자기 의제화하려하는 모습들도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처럼 성소수자 진영에서 얘기하는 의제들, 이를테면 '무지개 가치'로 표상되는 의제들을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 질문 드린 거다(웃음)

최현숙: 중앙집권화에 반대라는 의미에서 초록당 혹은 무지개 정당의 의미를 이야기 한다면,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 역시도 진보정당으로서 한계가 뚜렷하다. 진보신당 역시도 여전히 서울 중심으로 일을 할 것이고, 또 진정 대의되지 않는 중앙당과 대의원회를 통해 결정을 내리고 평당원들은 소외될 것이다. 어떻게 직접 민주주의를 최대한 실현하면서 자치와 지방분권을 이뤄낼까라는 면에서 초록정치연대는 굉장히 변혁적이다. 예를 들어 의사결정권자들을 제비뽑기로 뽑는다든지, 형식적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중앙 집중을 극복하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 변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고민은 해봤다. 나에게는 예수쟁이, 진보주의자, 여성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과, 진보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과, 여성주의가 소수자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일치하는 문제였다. 지금의 진보는 이 중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문제를 지나치게 계급문제.경제문제로만 접근했고, 정서적.성적으로 소외된 다양한 주체들을 자기의제화하지 않았다. 나는 여성주의 등 다양한 소수자 의제를 진보에 담는 게 정말 불가능하다면, 여성주의적인 혹은 우리사회 가부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정치조직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은 해봤다. 지금은 진보가 너무 갑갑하기 때문에 이런 페미니스트들의 정치조직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다면...

정욜: 다양성을 포괄하는 게 정당 안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발현이 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진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 정당과 정치 안에서 성소수자 의제에 대한 관심이 없을 때 한마디로 서운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의제가 그 어떤 의제보다도 가장 우선인데, 진보정당 혹은 후보들에게도 번외로 취급받는다면, 성소수자들로서는 진보마저도 '나에게는 대안이 아니다'고 느낄 수 있다.

앞서 정동영 후보가 성소수반차별선언에 참여했다고 했는데, 성소수자 부분만 봤을 때는 정동영 후보를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 정동영 후보와 통합민주당이 비정규직 문제 등에 있어서 어떤 입장을 취해왔는지는 명확하다. 그런 면에서 진보라는 이름이 성소수자 안에서 얘기되어지는 범위도 운동이 커 가는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겠다. 앞으로 정치 안에서 진정한 진보와 함께 하는 성소수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다양하게 생겨날 것이라고 본다.

여성운동 안에서 '박근혜'를 둘러싼 논쟁과 비슷한 논점이 형성될 수 있겠다

정욜: 그런 점이 정체성 정치의 한계라고 본다.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면, 성소수자가 가시권 안에 들어왔을 때 예컨대 미국의 경험을 반복할 수 있다. 미국 민주당 안에서 누구나 동성결혼에 대해 얘기를 하지만, 이들이 의료보험제도 등의 문제에 있어서 취하는 태도를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단체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이슈파이팅하고 있지만 그것은 2008년인 지금의 조건일 것 같다. 좀 더 운동이 성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와 사회에 등장했을 때는 이도 새롭게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 진보가 재편되는 것처럼, 성소수자 운동도 재편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기초를 어디다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최현숙: 그런 면에서 진보를 끊임없이 고수하기 위해서는 성소수자 운동이 정체성 운동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지나치게 정체성 운동에 빠지면, '성소수자 관련한 모든 것들은 무조건 확장되어져야 한다'는 논리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최현숙: 진보진영 안에서 진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사람들의 가부장성과 이성애중심성을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는 것이 성정치이자, 성소수자 진영의 주요한 의제가 되어야 한다. 또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성소수자위원회가 부문위원회로 있는 것이 맞는가라는 고민이 있다. 앞서 정욜 님이 진보신당에도 성소수자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하셨는데 조금 다른 문제의식이 있다. 부문위원회로 존재할 때 여전히 부차적인 의제로, 사상의 위계화 속에서 맨끝 의제로 놓여질 가능성이 많다. 정당 안에서 성정치 의제가 어떻게 진보의 패러다임을 바꿔낼 수 있는가에 대해 아직은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김삼권 기자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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