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동 이주민들, 성 소수자들, 그들의 ‘인간선언’ |
조민진기자 waytogo@munhwa.com |
차별받지 않고 차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과는 조금 달라서, 혹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어서 같은 사회 구성원이면서도 사회적, 법적 보호의 테두리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결혼 이주자인 외국인 이주여성들이나 동성애자 등과 같은 성 소수자들은 ‘최소한의 도덕’인 법적 장치를 통해 기본적인 인권이라도 보장받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 가리봉동의 이주민들…“한류 드라마 같은 행복을 꿈꿨어요”= 지난 2001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온 중국인(한족) 장춘쥔(여·39)씨는 2005년 중개인을 통해 A(44)씨를 만나 결혼했다. ‘5월6일’ 결혼 기념일도 잊지 않고 있지만, 남편이 될거라 믿었던 A씨는 결혼 6개월 만에 사라져 연락을 끊었다. 장씨는 “결혼 전 남편은 생활형편이 좋다고 했고 나한테도 잘해줬기 때문에 흔쾌히 결혼을 결심했는데 막상 결혼해보니 우리에겐 비를 피할 수 있는 방조차 없었다”며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돈을 모으고 집을 계약하려는데 결국 남편이 사라졌다”며 흐느꼈다. 남편을 잃게 되자 장씨는 위장결혼자로 몰리게 됐고, 체류기간이 만료되면서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장씨는 “남편과 결혼생활을 2년 이상 유지해야 국적을 얻을 수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서울 중국인 교회에는 장씨와 비슷한 아픔을 가졌지만 한국에서의 행복한 삶을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중국인 이주민들이 70여명에 이른다. 지난 2006년 2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으로 들어온 왕리(31)씨는 병적으로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 성소수자…“말할 수 있는 행복”= 대학생 한모(여·20대 중반)씨는 동성애자다. 만난 지 1년 된 ‘파트너’도 있다. 자진해서 레즈비언으로 살기로 했다는 한씨는 “현실이 힘들지만 이성애자의 삶을 택할 수 없는 건 정체성 때문이다”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거부감 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씨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모두에게 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동성애 혐오증(호모포비아) 성향이 심한 사람들에겐 나를 드러낼 수 없다”며 “부모님께도 아직 말씀을 못 드렸다”고 고백했다. 한씨에게 소망이 있다면 “언젠가 동성애자라는 말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역시 동성애자인 장모(32)씨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이혼한 사람들을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도 평범해질 것”이라며 “내 존재를 긍정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각종 성 소수자들의 상담소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폭언이나 폭로를 빙자한 금품갈취 등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의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장씨는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며 “우리에겐 이런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행복한 인권’을 위한 법안 마련 절실 = 최근 차별금지 법안 마련을 위한 외국인 이주민과 성 소수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겠다는 것이다. 서울 중국인 교회의 이주 여성들은 이번 4·9 총선을 앞두고 ‘국제사기결혼 피해자 보호법’ 마련을 위한 후보 지지운동에 나섰다. 조선족 김염화(여·28)씨는 “한국에는 결혼중개업 브로커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있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입고 추방당하는 이주여성들에 대한 법적 보호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 총선운동은 정치적이라기보다 우리들의 ‘인간선언’이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한 진보신당 최현숙(여·50) 후보는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면서 성 소수자 및 사회 소수자들을 위한 권리 확보를 공약했다. 최 후보는 “성적지향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 동반자법 등 다양한 소수자를 위한 법안 마련이 목표”라며 “다수가 소수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야말로 차별과 억압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조민진·박준희·김인원기자 waytogo@munh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