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이명박 대통령의 인권 의식 비판 |
2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정과제 기본 상만 있고 공식적인 국정과제를 내놓지 않았다. 너무나 '여유로운' 정부다. 공식적인 인수위의 과제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PDF 파일 준비 중"이라고 뜰 뿐이고, '국민을 위해' 출범한 지 한 달 지나고 총선을 바로 앞둔 시점인 3월말이 되면 책자로 내놓겠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실린 정부조직에는, 아직도 '여유롭게', 인수위 초안 그대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적인 입장인 취임사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만 있고 '인권'은 없다!
언어는 사람의 인식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더라도, 단어 선택조차 민감한 정치권에서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가가 바로 정책방향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짧은 취임사에 '경제'라는 말은 여덟 번이나 나오지만 '인권'이란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지상최대의 과제인 양 남발되는 '경제'는 정말 국민의 삶의 질을 끌어올릴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없고 '종말론'처럼 광범위한 공포를 유포하며 '경제'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세계경제대국 10위가 되어도 '국민의 사회적 권리' 보장은 없다
취임사에도 밝혔듯이 수많은 노동자, 농민 등 국민들이 흘린 땀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국민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국민소득은 2만 불로 올라갔지만 소득양극화는 심해져 근로빈곤층은 늘어났다. 경제성장이 대다수 시민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또한 가난해도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와 공공성이 미흡해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
시민들은 공공적 성격의 의료와 교육, 교통에 수많은 지출을 소비해야 하고 그래서 세간에는 "임금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올 2월말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정부예산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예산은 2007년 19.8%로 전년에 비해 0.3%p 감소했다. 교육공공성을 위한 재정 마련은 하지 않은 채 사교육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교육정책을 내놓고 있다. 의료비 부담을 줄여야 할 정부가 나서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같은 의료의 경제적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의료양극화를 불러일으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었지만 국민소득 2만 불일 때 유럽에서 실시되었던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한국에는 없다. 한국의 복지지출은 OECD의 '2007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GDP 대비 5.7%로 OECD 30개국 중 최하위이며, 평균치인 20.93%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사회보장은 UN의 세계인권선언,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사회권 규약)에도 명시된 시민의 권리이다. 물론 복지가 사회권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복지지출 비율로 사회보장제도에 국가가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읽을 수는 있다. 아무리 새 정부가 '능동적, 예방적 복지'를 하겠다고 하지만 재원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지정책은 어느 후보보다도 많았다. 그러나 복지를 사회권의 실현 과정으로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일부 층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복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복지가 모든 국민이 누려야할 보편적 권리로서 상정되지 않으면 복지정책은 예산 등을 이유로 계속 후퇴할 수 있음을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경험했다. 또한 새로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내정자 김성이가 "현재 복지정책은 일부 수혜자들이 정부 지원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하는 '복지병'을 키울 뿐이다"라는 발언을 하고 있기에 새 정부의 복지재원확보 방식과 권리대상자 선정기준을 우리는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은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비전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처럼 국민소득 4만 불이 된다고 해도 사회권 보장은 요원할 것이다. 의료와 교육, 교통 통신 등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한 사회권 보장은 이루어질 수 없다. 시장은 기업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국민의 권리보장 실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기업이 헐값에 민간에 넘겨지기도 했고 이를 통해 세금이 민간기업의 이윤 확장에 쓰여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취임사에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민간에 이양하겠다"며 공공기관 및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이명박 정부는 "기업인이 나서서 투자하고 신바람나서 세계시장을 누비는데" 치중하기 위해 각종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권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불법투쟁'이란 낙인이 아니라 노동권 보장 계획을 세워야
새 정부가 인권에 대한 인식이 없음은 단지 '인권'이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회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표에 따르면 2007년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의 비중은 68.2%로 전년대비 1.0%p 증가했다. 우리 사회 대다수 국민은 임금노동자로 살아간다. 따라서 노동권의 보장은 국민의 인권 실현의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는 노동권 실현을 위해 필요한 임금조건, 노동조건, 단체행동권에 대해 얘기하지 않은 채 "노동자들은 불법투쟁을 지양"하라는 말만 되뇌이고 있다. 1990년에 UN의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권 규약)에 가입했지만 22조(결사의 자유와 단결권)는 아직까지도 유보조항으로 두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비롯한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고 불법파업으로 몰아넣었으며, 필수공익사업장의 기준을 확대하여 파업권을 비롯한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였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노동3권 규제법들에 대한 전면적인 법 개정이며, 업무방해·가압류·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단체행동권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통제할 방안을 세우고 기업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침해해온 노동권을 보장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턱대고 '불법투쟁' 운운하고 있다. 노동권을 보장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가치지향은 없고 '실용'만 강조하는 허무함
취임사에서 새 정부는 '이념의 시대'에서 '실용의 시대'로 가자고 한다. "실용정신은 동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합리적 원리이자 시대정신"이라며 실용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용은 쓰임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므로 정부는 먼저 무엇을 위한 실용인가를 밝혀야 한다. 지향이 분명하지 않은 채 논의되는 '실용'으로는 열심히 노를 저어봤자 배가 산으로 올라갈 수 있음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그 가치가 국정철학으로 내놓은 화합적 자유주의의 설명 중 '자아실현과 행복추구'라면 그것은 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자아실현과 행복추구'가 빈부차이에 따라 불균등하게 보장되는 한국사회에서 수사로 그치지 않으려면 지향하는 가치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새 정부가 어떤 '가치' 실현을 위한 실용인지를 말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전체기조에서 그 가치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규제완화, 경제성장, 기업은 부국의 원천'이란 말잔치에서 결국 '국민의 인권향상'을 위한 실용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실용임을 맥락상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사람다운 삶을 위한 인권'의 가치이다. 경제대국 10위라는 지위에 걸맞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지향해야할 가치는 '생태, 평화, 인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