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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뀌어도 홍길동은 여전하다. 아비를 아비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울분을 참지 못해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길동이의 후예들이 21세기에도 출몰한다. 그분들의 성경에는 동성애가 죄악으로 기록돼 있단다. 죄악을 죄악이라 못 부를까, 걱정에 분연히 떨쳐 일어선 분들의 이름은 ‘동성애 차별금지 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 그리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차별금지법에는 20가지 차별금지 영역이 명시돼 있지만, 이분들은 그중의 하나만 콕 찍어서 ‘동성애 차별금지법’이라고 부른다. 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디서든 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처벌받을지 모른다. 아시다시피 이분들은 막무가내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분들이 아니다. 법안에 명시된 19가지 차별금지는 환영하나 오직 하나만은 반대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차별적 환영이다. 한기총의 성명서는 용감한 선언으로 가득하다. “동성애로 성문화가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로 유황불 심판으로 망하였다”고 역사적 사실까지 적시하더니 “동성애가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된 것도 에이즈가 동성애자들에 의해서 많이 전염되었기 때문”이라는 의학적 소견도 빼놓지 않으셨다. 정치적 올바름 따위야 던져버리는, 대명천지에 쉽지 않은 커밍아웃이다.

이명박 장로님과 함께라면 율도국도 멀지 않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우는, 이름하여 ‘줄푸세’로 기업에 줄줄이 퍼주고 세금도 세일해주는 아름다운 나라.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강국 달성, 이른바 ‘7·4·7’로 5년 만에 이룩하는 오 꿈의 나라! 그리하여 박근혜의 ‘줄푸세’와 이명박의 ‘7·4·7’을 양 날개로 합쳐서 한나라당 대선 공약 슬로건은 “줄푸세 타고 747로”. 그리하여 우리는 건설왕자가 운전하는 비행기를 타고 행복의 나라로 무사히 날아갈 수 있을까. 혹시나 지금도 연소득이 4만달러 넘는 사람들만 무사히 도착하는 행복의 나라는 아닐까.

벌써 행복의 나라에 사시는 분들도 계시다. 현대상선 주가조작의 뒤편에서 남들은 모르는 정보를 이용해 가뿐하게 10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얻은 분들 말이다. 서민들이야 기껏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은 영화에 취할 무렵, 고매하신 이분들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얻은 정보로 거액을 취하신 것이다. 혹시나 세금에 눌리고 규제에 묶여서 욱하는 마음에 법질서를 바로 세우지 않기로 작심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분들이 아니니 슬로건으로 그분들 마음을 풀어주는 줄푸세를 내세우셨을 듯싶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이명박 후보의 사위도 연루돼 있다고 주장하니, 벌써부터 그분의 친인척은 율도국에 먼저 가 계신지 모르겠다. 그분들의 럭셔리한 행복의 나라에선 장모님께 선물하는 핸드백 하나가 12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 1%가 개인 땅 57%를 소유했다니,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정말로 행복한 대한민국.

[한겨레]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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