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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남자를 사랑한 게 죄인가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퀴어 버전 <후회하지 않아>
텍스트만보기   이동환(ingulspapa) 기자   
▲ 왼쪽, 수민 역의 이영훈. 오른쪽, 재민 역의 이한. 수민과 재민의 사랑이 위태로운 것은 동성애자라서가 아니다. 이성애자라 할지라도 모든 격정적 사랑은 본래 위태로운 법이다.
ⓒ 청년필름
2005년 12월에 나는 <“제가 게이라서 싫으세요?”>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내 제자 이야기와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이분법적 잣대에 대해 나름의 소회를 옮긴 글이었다. 작년에 <왕의 남자>가 공전의 성공을 거두었고, <메종 드 히미코>나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영화들이 관객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었다. 지난 한 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 인식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데는 앞서 열거한 영화들 공로가 컸다.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이미 입지를 굳힌 이송희일 감독의 첫 장편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지난 11월 개봉 이후 전국 관객 4만여 명을 동원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002년에 개봉했던 영화 <로드무비>의 흥행참패를 기억한다면 <후회하지 않아>는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글은 지난 22일 영화를 관람한 소감과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인 <친구사이> 대표를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필자주>


사랑에 관한 지극히 통속적인 영화

가난한 청년과 부잣집 아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후회하지 않아>의 빤한 이야기다.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남녀 역할을 바꾸었을 뿐 그 얼개가 같다. 그러나 그렇게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 싸한 진실이 있다.

일찍이 '통속 작가'라는 평단의 혹평에 대해 작가 서머셋 모옴이 "이 세상에 통속이 아닌 이야기가 있던가?"라고 반문했듯이 이 영화는 통속일 수밖에 없는 지독한 사랑, 열정에 대해 담담히 그릴 뿐이다.

두 시간, 조금 긴 상영 시간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나는 잘 짜인 한 편 멜로영화를 본 감동으로 충만했을 뿐 거부감은 없었다.

우리나라 퀴어영화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웠던 적나라한 정사신도, 게이호스트바의 사실적 묘사도 따지고 보면 충격일 게 없다. 우리나라 성인업소의 어그러진 유흥문화와 전혀 다르지 않고 남녀 역할만 바뀐 게 아니던가? <친구사이> 대표 이종헌씨도 같은 시각을 내비쳤다(감독 이송희일은 <친구사이> 회원임).

"저희 회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좀 있었어요. 굳이 게이호스트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렇게까지 적나라하게 까발릴 필요가 있냐고요. 하지만 전, 게이 사회도 일반 사회와 똑같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고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불붙는 사랑의 특징은 언제나 그렇듯 당사자들을 눈멀게 한다.
ⓒ 청년필름
게이호스트바 선수(호스트바에서 접대하는 남성을 일컫는 은어) 수민이 부잣집 이들 재민에게 "당신은 부자여서 도망갈 곳이 있겠지만 난 아무 곳도 없어!"라며 소리치는 대목에서 나는 1974년에 개봉했던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주인공 경아가 첫사랑에게 배반당한 상처를 안고 돌아서며 흘리던 눈물을 보았다. 지나친 비약일까?

여자와 남자든, 여자와 여자든, 남자와 남자든 사랑 이야기는 같다. 사는 모양새도 같다. 따라서 동성애자는 성소수자일 뿐 사회 편견에 갇혀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이 영화는 감독의 치우침 없는 시선이 두 젊은 남자의 사랑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끔 유도한다. 감독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걸림은커녕 오히려 사실적 전개와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이 영화는 긴 상영시간에 비하면 전개가 빠르다. 따라서 영화 내내 숨 돌릴 틈이 없다. 그러나 사랑한 남자를 산속 구덩이에 파묻으려는 마지막 이야기 전개 과정의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는 흠과 그 부분 영상 호흡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전체로 보면 극히 작다. 오히려 이병훈의 수채화 같은 음악이 애틋한 젊은 사랑과 어우러지면서 눈물샘을 자극한다.

▲ 짧은 사랑 긴 상처. 통속 멜로이건만 이 영화는 특별히 아름답다. 솔직하기 때문이다.
ⓒ 청년필름
무엇보다 이성애자인 두 배우의 연기가 매우 흡인력 있다는 점이 성공 요인 중 하나다. 물론, 배우에게서 그런 장점을 이끌어낸 감독의 역량이 만만치 않다 하겠다. 이야기 구조상 밤 장면이 많은데 화면이 전체적으로 너무 어둡다는 단점은 영화의 다른 많은 장점들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런가 이종헌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예산 영화잖아요. 아무래도 조명기구나 장치 등,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쩌면 감독의 치밀한 계산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관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성이었고, 이 영화가 '동성애코드'에만 치우쳤다기보다는 열정에 불타 맹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랑'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화 한두 편으로 사회 인식이 싹 바뀌지는 않겠지만

▲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 <친구사이> 사무실. 인터뷰에 응해준 대표 이종헌씨.
ⓒ 쳥년필름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영화 <로드무비>가 개봉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분명한 사실은 그간 개봉된 퀴어영화들의 성공이 한몫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화 한두 편으로 사회 인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분법적 잣대가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 성소수자들의 입지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들을 평범한 사회 일원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동성애자 사회가 일반 사회와 다를 것이라는 편견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여러분과 사는 모습이 똑같습니다. 우리 내부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같은 생각, 같은 모양새 사람들만 있지 않다는 점에서, 특히 여러분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보헤미안 지수'라는 게 있다. 특정 지역에 예술가들이 얼마나 사는지 나타내는 지표로, 도시의 창조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위해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교수인 리처드 플로리다가 직접 고안한 지표를 말한다. 세계 패션이나 소프트웨어 산업, 그리고 문화적 측면을 선도하는 선진 도시들은 보헤미안 지수가 높다고 한다.

보헤미안 지수는 '게이 지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정지역에 동성애자가 얼마나 사는지 나타내는 지수가 게이 지수다. 하이테크 산업이 밀집한 창조적 중심지는 보헤미안 지수와 게이 지수가 일치한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나와 같지 않으면, 나와 생각이 다르면, 나와 생긴 게 다르면, 나와 사는 모습이 다르면 무조건 '함께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식, 즉 '아군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구조가 우리 사회 가장 큰 병폐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살 만한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전국 개봉관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단은 관객 몫이므로….

치명적인, 너무나 지독한 사랑
영화 <후회하지 않아>(2006)

각본·감독 : 이송희일 / 음악 : 이병훈 / 제작사 : 청년필름

주연 : 수민 역 / 이영훈(제2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자신인상) / 재민 역 : 이한

시골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대학에 가겠다는 꿈을 갖고 서울생활을 시작한 수민(이영훈 분). 서울에서의 일상은 기대만큼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수민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잣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에 지쳐있던 재민(이한 분)의 차를 운전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이 시작된다. 잠깐이었지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품게 된 두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는데….
2007-01-25 08:49
ⓒ 2007 OhmyNews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damaged..? 2007-01-26 오후 18:01

오호~ 대표님 멋지구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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