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을 동경한 아이, 남자가 되다
[인터뷰] 성전환자인권모임(준) '지렁이' 한무지 대표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사진/용오 기자
“너 그렇게 남자가 되고 싶냐?”
“나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니야. 나도 너처럼 아빠 되고 싶고, 결혼해서 내 새끼 낳고 싶어”
“누가 언니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빠서 3일 동안 잠을 못 잤어요. 그러다가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처음에 만났을 때는 동성애자로 만났죠. 그런데 그 친구가 저를 자꾸 여성으로 대하려는 태도들이 거슬리는 거예요”
한무지(예명) 씨는 현재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한, 정확하게 말해 성전환 중인 남성이다. 성전환자 커뮤니티 내에서는 한무지 씨의 경우처럼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사람들을 FTM(‘Female Transfer Male')이라고 부른다. 그는 현재 그가 원했던 대로 남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해 살고 있지만, 여전히 힘겹다.
지난 12일 출범한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공동연대) 참가단체인 ‘성전환자인권모임(준)’(지렁이)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한무지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남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버럭 화를 내곤 한다. 그에게 있어 이처럼 화가 나고, 우스꽝스런 질문이 없다. 그러나 한무지 대표가 성전환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묻곤 한다.
누군가 ‘언니’라고 부르면 분해서 잠을 못 이뤘던, 이소룡과 성룡을 동경했던 한무지 대표는 10살 때까지 성인이 되면 자기 성을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당연히 어린 시절 그의 머릿속에는 남성으로서의 ‘한무지’가 채워져 있었다.
“전 어렸을 때 망상을 해도 꼭 마초적인 남자애들이 하는 것 같은 상상을 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근육 우락부락 하고, 덩치 좋고, 싸움 잘 하고..”
이소룡과 같은 남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실제로 온갖 무술을 몸에 익혀가며, 자신이 상상했던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또 타고난 체격이 왜소한 것도 불만이었다. 키가 작고, 체구가 왜소한 한무지 대표는 근력을 키우기 위해 한 동안 모래주머니를 팔과 다리에 차고 다니는 ‘수련’을 할 정도로 ‘강한 남성’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한무지 대표에게 여자친구는 가끔 ‘당신은 뼈 속까지 남자였어’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지곤 한다.
사진/ 용오 기자
“하나부터 열 끝까지 문제가 아닌 게 있어야죠”
한무지 대표에게 한국 사회에서 성전환자들이 겪는 인권침해와 차별의 실상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는 선뜻 대답을 안 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는 “어디서부터 어떤 문제를 먼저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나부터 열 끝까지 문제가 아닌 게 있어야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소수자들, 그중에 성적소수자들, 또 그중에서도 성전환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어디서부터 풀어 놓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을 터이다.
한무지 대표는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성전환자들이 일할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성전환자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혐오범죄와 성폭력을 두말할 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기의 성주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MTF(‘Male Transfer Female')의 경우 사실상 교육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하게 되요. 학교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거죠. 이는 또 노동권 박탈로 이어져요. 일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무분별하게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등본 같은 것을 요구하잖아요. 그래서 신분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찾아 일을 하게 되죠. 대부분이 비공식노동이고, 많은 MTF 분들이 성산업에 유입되는 실정입니다' ”
주민번호 ‘2’ 새겨진 당신, ‘취업불가’
한무지 대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역시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하고,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주민등록증 사본만을 요구하는 직장에는 때로 주민등록증 뒷자리 ‘2’를 ‘1’로 고쳐 제출하기도 했다. 사실 공문서 위조에 해당되는 범죄이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어요. 전 학교를 그만둔 후 계속 남성으로서 일을 해왔어요. 제일 많이 한 것이 배달 아르바이트였죠. 그나마 배달 일이 신분증 확인을 제일 덜 하더라구요”
평소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해 온 한무지 대표는 한때 운 좋게 컴퓨터 학원 강사로 일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직장도 그리 오래 있지 못했다. 우연히 그가 성전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장 동료에 의해 그 사실이 알려졌고, 이후 치명적인 성폭력범죄를 당하는 등의 고초 끝에 그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성전환자라는 사실을 떳떳이 알리고, 취직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많은 성전환자들이 때로는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고, 때로는 형제나 주변 친구들의 명의를 빌려 회사에 취직하기도 한다고 한무지 대표는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타인의 명의로 취직을 해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하면, 보상 한 푼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성전환자들이 취직을 할 수 없다보니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등본이나 등본을 빌리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아는 한 FTM은 자기 형의 호적으로 운전 일을 하셨어요. 각종 자격증, 보험 등을 자기 형 명의로 한 거죠. 그런데 이분이 큰 교통사고가 났는데, 전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었어요”
“네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한무지 대표는 노동권 박탈과 함께 성전환자들이 겪는 가족 안에서의 문제, 그리고 결혼의 문제 등도 강조했다. 사회적인 배제도 문제지만,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은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하게 된다. 굳이 혈연중심 가족의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성전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 장치가 전무한 상황에서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는 성전환자들에게 현실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은 커밍아웃 즉시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요. 성전환자들이 어린 시절 성정체성을 깨닫는데, 제 주변에는 14살 때 집에서 쫒겨 나 20년 동안 신문돌리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 MTF도 있어요”
한무지 대표 가족들의 반응을 물었다.
“집에선 일찍이 제가 여자를 사귄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성애자라 생각하신거죠. 그래서 그나마 충격이 덜한 편이죠. 어머니는 ‘다 큰 네가 (성전환자로) 살겠다는 걸 말릴 수는 없지만, 나는 네가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고 말해요. 믿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죠..”
사진/ 용오 기자
“성별변경, 경제적 능력 없으면 신청 엄두 못 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결성된 성전환자인권모임인에 몸담고 있는 한무지 대표는 최근 성전환자성별변경특례법(성별변경특례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 여념이 없다. 그에게 있어 성별변경특례법은 부족하지만, 그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성전환자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그 시발점이다.
공동연대가 추진하고 있는 성별변경특례법은 호적 상 성별변경의 법제도적 기준을 마련해 성별변경을 원하는 성전환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이다. 지금까지 성전환자들이 호적 상 성별변경은 오로지 담당 판사의 재량에 맡겨져 왔다. 현재 성별변경을 원하는 성전환자들은 법원에 호적정정 신청을 내고, 판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이 내려진다. 때문에 수술비가 없어 성전환 수술을 완료하지 못했거나, 변호사 선임비용 등이 없는 성전환자들은 호적정정 신청조차 내지 못하게 된다.
이 같은 문제점은 관련 통계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대한의사협회가 파악하고 있는 성전환수술 건수는 매년 400여 건에 달하지만,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법원에 접수된 호적정정 신청은 81건에 불과했다. 그만큼 현재의 호적 상 성별변경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물론, 성별변경 결정을 받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한무지 대표는 “현재는 쉽게 말해 호적정정이 판사 마음”이라며 “‘어디가면 잘 내주더라’, ‘부산지방법원에서 호적정정 결정이 잘 나오더라’하면 그 지방법원을 찾아가서 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변호사 선임비용, 정신과 진단서, 의사소견서 등등 성별변경을 하려면 최소한 2천만 원 이상이 소요 된다”며 “경제적인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성전환자들은 아예 신청을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호적정정 요건 기준 놓고 향후 논란 예상돼
아직 법안이 마련 중이지만, 성전환자 호적정정 요건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정할 것이냐를 두고 내부적으로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예컨대 외과적 수술 여부를 기준에 넣을 것인지, 또 넣는다면 어느 정도 수준을 인정할 것인지 등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한무지 대표는 “개인적으로 성주체성 장애를 가진 이들을 모두 성전환자로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술과 관련된 부분이 법안에 들어가야 한다면 생식능력 유무를 판단하는 성선제거(고환제거 또는 자궁적출 수술 등) 정도로 최소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무지 대표에 따르면 많은 국내 성전환자들이 성기성형 내지 성기재건 수술 직전 상태인 성성제거 수술을 완료했고, 이 수준을 법적 요건으로 정한다면 그만큼 성별변경을 원하는 성전환자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현재 성별변경 관련법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 중 가장 선진적이라고 평가되는 영국은 법적 성별변경 요건으로 외과적 수술을 전혀 요구하고 있지 않다. 영국의 경우 성전환자가 외과적 수술이 없어도 2년 이상 변경하고자 하는 성으로 살았다면 법적인 성별변경이 가능하다.
사진/ 용오 기자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한무지 대표는 당장에 영국과 같은 수준으로 법안이 통과될 수는 없겠지만, 성전환자 당사자 진영에서는 이번 법안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성전환자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빠듯해요. 당장 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잖아요. 이번 법에 희망을 가지는 이유가 호적이 변경되면, 일단 공식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인정하기 싫지만 양성으로 완벽하게 이분화 된 사회이고, 한쪽 성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기회라는 거예요”
동시에 한무지 대표는 이번 성별변경특례법 제정과 함께 향후 성전환자 인권보장을 위한 활동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성전환 수술과 관련된 의료학적 기준 자체가 없는 것도 문제이고,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해 그 비용이 턱없이 비싼 것도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현재는 MTF든 FTM이든 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으려면 적게는 1천만 원에서 많게는 2천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또 한무지 대표는 외과적 수술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성주체성 장애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체적 성과 정신적 성의 불일치에서 오는 성주체성 장애는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이 겪는 심각한 고통 중 하나다.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이분화 된 사회에서 생물학적 성이 정신적 성과 불일치하다는 것은 특히 청소년기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체계에서 성주체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그저 방치되기 일쑤다.
“FTM 같은 경우 2차 성증 때 오는 괴리가 굉장히 커요. MTF도 마찬가지인데, 일종의 자기 신체에 대한 혐오에요. 심한 경우 군대를 간 MTF가 자기 성기를 자르는 사건도 있었어요. 저도 사춘기 때 붕대로 가슴을 꽁꽁 싸메고 다녔는데, 가슴을 너무 압박해 아직까지 심장이 별로 안 좋아요”
스웨덴의 경우 성주체성을 고민하는 시기부터 당사자들이 스스로 성주체성을 세워갈 수 있도록 돕고, 성전환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의료적 서비스를 국가가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한무지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번 성전환특례법 제정 운동이 성전환자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 스스로가 쟁취해야 한다는 것처럼 성전환자 문제도 결국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막 출발하는 당사자모임이 현재는 몇 명 안 되지만, 조금씩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를 키워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출처 : 트랜스젠더인권사랑모임
http://cafe.daum.net/kdlpsmc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