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아까워라!"
산책로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가는 근사한 두 '남남'을 마주친 후배가 우리말로 살짝 속삭였다. 물론 후배는 여자다. 아까워도 할 수 없다. 현실에서는 손을 잡고 다니는 남성과 남성을, 방송에서는 같은 침대를 쓰는 남성과 남성을 볼 수 있는 데가 미국의 현재 모습이다.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게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는 미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겉에서 보기보다 상당히 보수적인 미국은 근래 들어 게이고등학교 설립안에 주지사가 사인하고 동성애 커플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주가 늘어나는 등 새 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가장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것은 역시 방송 프로그램이다.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드라마 <식스 핏 언더> <윌 앤 그레이스>에는 이미 게이 커플이 주요 출연진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블TV 심야 리얼리티쇼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보이> <보이 미츠 보이>, LA 레즈비언 세계를 다루고 있는 <더 엘(L) 월드> 등이 잇달아 게이·레즈비언들의 생활을 내세우고 있다. '스트레이트 가이'(straight guy:게이가 아닌 남성)에게 게이의 문화를 체험케 하는 <퀴어 아이>의 경우 지난 7월15일 첫방송 때 160만명의 시청자가 보는 등 관심 속에 출발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뉴스쇼도 예외는 아니다. 다이앤 소여가 진행하는 <굿모닝 아메리카>에서는 얼마전 게이 커플 두쌍의 일상생활을 취재했으며 <투나잇쇼>를 진행하는 제이 레노는 게이 밴드 무대에 합류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를 비난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한 공화당 의원은 "이제 그만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보수적인 시청자들과 광고주들의 압력을 받은 일부 방송에서는 신설 프로그램들에 대해 가급적 동성애적 색채를 드러내지 말도록 주문하고 있다.
예컨대 시트콤 <엘렌>을 통해 커밍아웃을 했던 코미디배우 엘렌 드제네레스는 가을부터 맡게 된 NBC의 토크 버라이어티쇼에서 '튀는 진행'을 하지 말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특히 이 쇼의 PD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게이가 동성애 혐오자에 의해 살해당한 일이 있어 상당히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으로는 동성애 문화를 접하는 것 자체가 낯설지만, 이 세상에 남성과 여성 외에 게이(레즈비언)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여기 좀더 있으면 '손 잡고 가는 남남'을 후배처럼 '아깝다'고 여기는 대신 무심히 지나칠 수 있게 될지, 그건 아직 모르겠지만.
LA(미국)〓김홍숙 특파원 hskim@h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