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및 정리 : 샌더
사진 : 동하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의 지휘자.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오케스트라와 몇 개의 합창단을 오가며 학업도 병행하고 있는 욕심 많은 젊은이.
커밍아웃 인터뷰 중에도 일을 하는 일 중독자.
무대 위에서 지휘할 때가 가장 매력적인 카리스마 음악인.
그가 말하는 그의 현재와 미래.
샌더 :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하겠다.
노명현 : 자기소개는 딱히 할 것 없고 스물여덟 살 청년이고 남자다.
샌더 : 키 몸무게 이런 자세한 건 없나.
노명현 : 그건 노코멘트다.
샌더 : 뭐 좋다. 그럼 게이 커뮤니티에는 어떻게 나왔나?
노명현 : **시티 검색해서, 나오게 되었다.
샌더 : 대답이 너무 짧다. 이거 이번 인터뷰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든다.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면 안 되나.
노명현 : 글쎄. 할 일이 없어서 게이라는 단어도 검색해보고, 이반도 검색해보고.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다, 사람들이 이런 데서 만나는구나 하고. 커뮤니티도 이미 인터넷에 많이 형성되어 있고, 일반 웹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있으니까.
샌더 : 그럼 오프라인에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
노명현 : 군 전역하고, 할 일이 없어서 검색을 하다가 지보이스에서 반주자를 구한다는 구인공고를 보고, 돈 주는 건 줄 알고 갔다. 그런데.. 아. 이런 이야기 해도 되나?
샌더 : 그럼 해도 된다. 욕은 내가 먹는 거 아니니까.
노명현 : 그래. 친구사이에 대한 첫인상은 좀 안 좋았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연습실이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외적인 모습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피아노도 없고 고장 나기 일보 직전의 키보드 달랑 하나에 협소하고, 그 자리에서 대실망을 했다. 괜히 지원했나…하는 생각도 했다. 뭐 어쨌든 첫인상은 그랬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아주 훌륭해진 거다.
샌더 : 어쨌든 그런 이유로 커뮤니티에 나오게 되었는데,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
노명현 : 처음엔 포털사이트 이반 카페에 가입해서 눈팅만 했었다. 그때는 사람들 이야기에 별로 공감이 가거나 현실감이 없었다. 좀 소극적인 모습이랄까. 자신을 밝히길 꺼리는 모습. 그런 걸 상상했다. 나 자신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다들 적극적이고 밝고 유쾌하고 대중에게도 부담감 없이 나서는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이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굉장히 폐쇄적인 인생을 살아왔었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친구사이 나오고 나서 예전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이 놀란다. 친구들이 엄청 많이 변했다고.
샌더 : 나는 노르마가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종로의 게이 커뮤니티는 대한민국 게이 커뮤니티의 메인스트림이다. 종로에 나와 있지만 사생활과 관련해서는 은둔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명현 : 이것도 솔직히 말하면 성격 탓인데, 내 원칙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거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한테 일어나는 일들을 일일이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샌더 : 고도의 자기 마케팅인가?
노명현 : 그럴 수도 있다. 지휘자 일을 하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지휘자는 단원들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연습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샌더 : 그렇지만, 사석에서는 조금 가깝게 지낼 수 있지 않나.
노명현 : 기회는 많은데, 시간이 너무 없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케줄에 치이다 보니 뒤풀이나 정기모임에 참석할 여유가 없었다. 초창기에는 그래도 꽤 열심히 했다. 그땐 심심했으니까. 지금은 시간도 없고, 하도 뜸하다 보니 이젠 나가는 게 어색할 지경이다.
샌더 : 알겠다. 어쨌든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인터뷰를 통해서 차차 알아가 보자. 커밍아웃은 어느 정도 범위에서 한 상태인가?
노명현 : 가족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어릴 때부터 워낙 성격이 여성스럽다는 소릴 듣다 보니 어머니가 의심을 조금 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카페에 가입했는데 그 카페 정기모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메모를 해뒀다. 그런데 그 쪽지를 어머니가 보고 집중적인 추궁을 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웃음) 그 때 방학 대부분을 정신과와 상담실을 왔다갔다했던 기억밖에 없다. 그렇게 어머니만 알고 계시던 상황에서 아버지하고 부부싸움을 하던 중에 말이 나와서 모든 식구가 알게 되었다. 동생은 알고 있지만, 이야기를 잘 꺼내려고 하지 않는다.
샌더 : 그럼 지금은 마음이 조금 편한가.
노명현 : 여전히 결사항전 중이긴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도 되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시려는 눈치다. 그저 요즘만 같으면 좋겠다.
샌더 : 이 인터뷰가 부담될 수도 있는데.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떻게 응하게 되었나.
노명현 : 음. 언젠가는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권유도 계속 있었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수락했다.
샌더 : 이 인터뷰를 시작으로 조금씩 정체성을 주변에 열어가는 과정이 더 필요할지 모르는 데 혹시 계획이 있나.
노명현 : 솔직히 사람들 앞에서 정체성에 대한 부분을 일부러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샌더 : 사람들이라면 어떤 사람들?
노명현 :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 그쪽에서 물어보면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먼저 말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우연히 이야기할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일단은 그전에 내가 먼저 편견을 깨기 위해 유명했던 게이 음악인들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런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또 좋아하더라.
#. 창작곡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샌더 : 현재 내가 알기로 오케스트라 세 군데, 합창단 세 군데에서 일을 하고 있다. 거기에 학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게 소화 가능한 스케줄인가.
노명현 : 연습시간이 다 달라서 스케줄 조정은 가능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상임이 아니라서 연습 횟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최근에는 몸이 많이 힘들다. 가끔 집에 들어가서 누우면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사나 싶다. 가끔은 다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샌더 : 지휘에 대한 꿈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일인가?
노명현 : 다들 그렇듯 수도 없이 많이 꿈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는 피아노를 했고, 그러다 작곡에 욕심이 생겨 입시 때는 작곡과에 지원했다. 그때만 해도 지휘에 대한 꿈이 특별히 있지는 않았었다. 지보이스에서 지휘를 하게 되면서 지휘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또 매력도 느꼈다.
샌더 : 지휘는 연출이지 않나. 곡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뭐 그런 것에 매력을 느낀 건가.
노명현 : 그렇다. 내 생각이 반영되어서 어떤 곡은 전혀 새로운 곡이 된다. 음악을 연출하는 것. 그런 경험이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2008년도에 본격적으로 지휘과로 편입했고, 대학원도 지휘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샌더 : 지휘이야기가 나왔으니 게이코러스 '지보이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다가 지보이스 지휘를 맡게 되었나.
노명현 : 처음에는 반주자로 활동하다가 2007년도 지보이스 특별공연 때 내 창작곡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샌더 : 지보이스에서 지휘하는 것은 정체성이 많이 드러나게 되는 일이라 고민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다.
노명현 : 반주자보다 지휘자가 얼굴은 더 안 보인다. 내내 지휘하다가 돌아서서 인사만 잠깐 하면 된다.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많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이런 고민은 있다. 지보이스 외에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할 때마다 내 프로필에 지보이스를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지금은 관객층에 따라서 공연마다 지보이스를 넣기도 한다. 그런데 시립, 구립 단체들은 조금 어렵다. 골치 아픈 건 딱 싫어하는 타입이라 그냥 내키는 대로 그때그때 하는 편이다.
샌더 : 어쨌든 그렇게 지휘를 시작해서 지보이스와 함께 한지도 벌써 6년째다.
노명현 : 글쎄. '정'. 이거 무시하기 힘들다. 비상임 단체이고 주 1회 모여서 연습하고 단원들도 그렇고 나도 따로 급여를 받는 단체도 아니지만, 창단멤버들도 아직 있고 그분들하고 같이 있었던 시간.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일반 합창단에서 할 수 없는 시도를 많이 한다. 그게 매력이다. 가끔 지보이스의 파격적인 선곡은 내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정이라는 문제가 제일 크다. 솔직히 그만두겠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고 뭐 그런다.
샌더 : 정이라고 해서 좀 놀랐다. 노르마는 정에 연연할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다.
노명현 : 내가 원래 잔정이 많다. 내가 먼저 버려도 속병은 내가 늘 더 많이 앓는다. 그래서 뭔가 내려놓는 일이 어렵다.
샌더 : 창단 멤버 이야기가 나왔다. 잔뼈 굵은 언니들이 버티고 있고, 또 까마득한 신입단원도 있을텐데 모든 단원을 어우르는 일이 힘들 것 같다.
노명현 : 모두를 어우르는 그런 시도 안 하는데.
샌더 : ..아아. 그런가. 그래도 지보이스를 이끌어가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을 텐데.
노명현 : 사람마다 자기만의 이상이 있다. 요즘엔 여기저기서 의견이 많이 나오면 그냥 따라가려는 편이다. 그게 노하우라면 노하우. 지보이스 같은 경우에는 워낙에 하고 싶어하는 곡들도 많고 좀 자유를 제약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샌더 : 그럼 특별히 다른 힘든 점은 없나? 욕해도 좋다. 욕하고 그런 게 더 재밌지 않겠나.
노명현 : 그냥 붙박이 고정 단원들이 많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보이스 여러 가지 특성상 몇몇 분들 빼고는 붙박이가 없는 점이 아쉽다.
샌더 : 잘 안다. 나도 그 점이 아쉽다.
노명현 : 당신도 그만둘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있더라. 왜 계속 지보이스 활동하나?
샌더 : 질문은 내가 하는 거다.
노명현 : (웃음) 아. 그런데 나는 단체 내부에서 연애하고 헤어지고 안 나오고 이런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휘자 입장은 또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오디션을 보고 선발하는 단체도 아니지 않은가. 다들 가지고 있는 악기(목소리)가 다 다르다. 이걸 애써 맞춰놓았는데 갑자기 그 역할이 비어버리게 되면 그게 참 어렵다.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주면 좋겠다. 속된 말로 물 보러 나오는 사람들이 좀 없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다.
샌더 : 본인이 연애를 안 하고 있어서 삐딱한 건 아닌가.
노명현 : 하하. 그런 이유가 없다고는 못하겠다.
샌더 : 워낙 하는 일이 많아서 지보이스가 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안 그런가?
노명현 : 진짜 가끔은 짐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보이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일에 대해 독촉을 받는다거나 잘 안 풀린다거나 할 때는 어느 단체든 다 짐처럼 느껴지는 거 아닌가. 아. 거기다 공연 몇 주 전부터는 정말 스트레스가 심하다.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 음악적인 완성이 되지 않았는데 무대에 올려야 할 때는 미쳐버릴 노릇이다. 그럴 때는 표정관리가 안 된다. 그런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 본무대에서는 이 사람들이 두 배 세 배 잘하더라. 왜 사람 맘을 들었다 놨다 하는지. 리허설 때도 프로답게 최선을 다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샌더 : 참 원망스러웠겠다. 지금은 지보이스도 점점 안정권에 드는 것 같다. 최근에는 멤버들도 안정적으로 정착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어떤가.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이 노력했겠지만, 특히 지휘자로서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다.
노명현 :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 겸손 떠는 거 아니고. 정말이다. 그런 역할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라고 늘 생각한다.
샌더 :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과도기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우려하는 점은 없나?
노명현 : 우려하는 점이라기보다 합창단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보이스를 더 많이 외부에 내보이고 싶다. 창원이나 거제 같은 콩쿠르에 내보내고 싶은 욕심도 있고 일반 합창단과 연합으로 공연을 해보는 것도 좋고. 단체 정체성도 알리고 또 다른 단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할 것 같다. 이건 순전히 내 욕심이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몇몇 단원들은 아직 폐쇄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단체 정체성을 잘 보여주기 위한 레퍼토리 구성이나 그런 부분에 고민을 많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샌더 : 특별히 더 바라는 게 없나.
노명현 : 지각 금지 결석 금지. 그리고 더 보태자면 의견 교환이 활발했으면 좋겠다. 각자가 프로 의식을 가지고 임했으면 좋겠다. 우린 아마추어니까. 하는 사고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가끔은 거만도 좀 떨고.
샌더 : ..바라는게 많다.
노명현 : (웃음)
#. 연애보다는 일이 먼저다.
샌더 : 인터뷰하는 지금도 틈틈이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그건 뭔가.
노명현 : 7월에 연주할 악보다. 내년 2월까지는 이런저런 스케줄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워낙 일벌이기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산다.
샌더 : 확실히 잘나가긴 하나보다.
노명현 : 돈은 못 번다. 돈 안 주는 단체들 일을 많이 한다. 돈을 벌어도 공연 준비 하다 보면 버는 만큼 나간다.
샌더 : 그런데도 일을 많이 하는데 다른 보상 같은 게 있나.
노명현 : 경력이다. 멀리 내다보고 일을 한다. 내 나이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일을 이렇게 많이 한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정말 긍정적인 거다. 초반에는 돈 벌 생각은 하면 안 된다고 교수님들이나 선배들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샌더 : 동갑내기 친구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자기만의 확실 꿈이나 목표 같은 게 있는 것 같아 부럽다.
노명현 : 나는 당신이 더 부럽다.
샌더 : 놀리는 건가.
노명현 : 나는 연애 욕을 일에 푼다. 연애 대신 일을 한다.
샌더 : 꼭 나는 일도 안 하고 아무나 마구 만난다는 뉘앙스인데.
노명현 : 아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았나.
샌더 : 오해다. 많이 해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겠다. 이왕 연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워낙 베일에 싸인 캐릭터라 노르마의 연애사에 다들 관심이 많다. 남자는 어떤 루트로 만나나.
노명현 : 노코멘트.
샌더 : 내가 밤을 새워가며 심혈을 기울여 고민해 만든 질문이 이거다. 노코멘트는 반칙이다.
노명현 : 알겠다. 음.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더러 사람도 한 번도 안 만났을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사람인데 사실 만나기는 했었다. 그때는 처음에 언급한 그 게이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만났었다. 한 번은 굉장히 용기를 내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내친김에 연애를 하자고 했더니 그 사람이 흔쾌히 승낙하더라.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좀 놀랐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이 갑자기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게 전부다.
샌더 : 남몰래 하는 구애 활동이나 비밀스러운 다른 만남은 없었나? 내가 들은 소문이 몇 개 있으니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
노명현 : 음. 무슨 소릴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냥 잠깐 만나기만 했던 거다. 연애를 전제로 만난 것도 아니었다. 더 할 말이 없다.
샌더 : 사실 들은 거 없다. 떠본 거다. 그래도 이거 너무 자기 이야기를 안 해준다. 슬슬 슬퍼지려고 한다.
노명현 : 별로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연애이야긴 할 게 없다.
샌더 : 그거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노명현 : 현재는 연애 욕이 없다. 외롭지도 않고. 나이가 좀 더 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섣부르게 그런 감정에 휘말렸다가 일 적인 부분이 엉망이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다.마음이 없다기보다 여유가 좀 부족하다. 지금은 일을 굉장히 우선시 하는 상황이다.
샌더 : 영리하게 연애하는 테크닉을 연마하면 되지 않나.
노명현 : 지휘 테크닉 연마하기도 바쁘다.
샌더 : 음. 바쁘다는 건 충분히 알겠다. 그럼 바쁜 거 말고 다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노명현 : 잘난 얼굴도 아니고, 무엇보다 적극적이지 못한 게 문제다. 혹은 어머니가 나 모르게 남자 생기지 말라고 기도를 엄청 열심히 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샌더 : 지휘할 때처럼만 하면 충분히 적극적일 것 같은데. 난 오히려 당신이 워낙 접근하기 어려운 느낌이 있어서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노명현 : 인정한다. 사실 요즘은 연애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서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지금은 확실히 연애보다는 일이다.
샌더 : 연애할 때 좋았던 경험은 없나?
노명현 : 있다. 손잡고 영화를 볼 때 너무 행복했다. 장거리 연애였는데, 만나러 가는 시간이나 그를 기다리는 시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헤어지고 돌이켜보니 그런 사소한 것들이 참 행복했다.
샌더 : 헤어지고도 주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티를 안 냈던 것 같다. 이별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나.
노명현 : 일 벌이는 거. 더 몰두하는 거. 그때도 헤어지고 나서 성적이 톱이었다. 그게 내 방식인 것 같다.
샌더 : 이별 한두 번 더하면 대성하겠다.
노명현 : (웃음)
#.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샌더 : 그럼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라도 해보자. 상대의 어떤 면에서 매력을 느끼나.
노명현 : 외모를 조금 보긴 본다. 뛰어난 외모의 사람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처음 만났을 때 딱 드는 느낌. 그거다. 내면적인 매력에 대해서는, 지휘자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조금 이야기를 해보면 아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렇게 계속 알고 지내다 보면 호감이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샌더 : 대답이 너무 착하다. 그럼 다시 묻겠다. 상대의 어떤 면에서 섹시함을 느끼나.
노명현 : 섹스 어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샌더 : 아 왜 우리 솔직히 야한 상상 이런 거 하지 않나. 다 알면서 왜 이러나.
노명현 : 그쪽은 야한 상상 많이 하나보다.
샌더 : 자꾸 그러면 진실게임 해야 한다 우리.
노명현 : 아. 방금 생각났는데, 나는 목이다. 턱선과 목의 경계?
샌더 : 너무 억지로 짜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명현 : 정말이다. 목의 성대 부분이 불끈. 왜 물 마실 때 꿀꺽하는 목 넘김. 그때의 목 모양을 좋아한다. 목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면 만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목에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 이런 이야기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데.
샌더 : 전혀 어려운 이야기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심지어 핥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뭐. 어쨌든 당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팁이 될 것 같다. 어쩌면 다음 연습 때 지보이스 단원들이 다들 꿀꺽꿀꺽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명현 : 제발. 그럼 진짜 민망할 것 같다.
샌더 : 연습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프라인 모임도 지금 하고 있으니까 거기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노명현 : 오프라인이면 지보이스가 전부다.
샌더 : 그러니까.
노명현 : 사실 지휘를 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다.
샌더 : 지보이스에 있나. 그런 사람이?
노명현 : 그렇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 진행형일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마음을 내색하지는 않는다.
샌더 : 이거 특종인데.
노명현 : 절대 말 안 해줄 거다.
샌더 : 이니셜만이라도 말해주면 안 되겠나. 뭐라도 건져가야 내가 운영위원들한테 가혹행위를 안 당한다.
노명현 : 미안하지만 절대 말 못해준다.
샌더 : 아까 단체 내에서 연애하는 것에 대해 금기시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유 때문인가?
노명현 : 스캔들에 휘말리는 건 나한테 치명타다. (웃음) 남이 보면 단순한 문제인데 내 경우에는 아니다. 그냥 가슴앓이 한 번 하고 정리하는 편이다.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는데, 거절당했을 때의 민망함 창피함. 그런 거 감당하기 어렵다. 누구는 나더러 공주 과라고 하던데. 그냥 혼자 가슴앓이하고 정리하는 게 속 편하다. 누가 나한테 고백하기 전에는 먼저 말하기 어렵다. 뭐 그렇다.
샌더 : 솔직하지 못하면 후회하게 될 것 같은데.
노명현 : 호감 가는 사람들 있을 때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솔직하지 못했던 부분이 후회스럽기는 하다. 좀 더 진득하게 몰아붙여 볼걸. 하는 생각도 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샌더 : 다음에 또 마음을 뒤흔드는 사람이 생기면 그 때는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나.
노명현 : 장담은 못하겠다. 그런데 고백은 어려울 것 같다. 또 가슴앓이하고 혼자 정리하고 그럴 것 같다.
샌더 : 바보 같다. 이건 친구로서 이야기하는 건데 눈 딱 감고 질러버려라.
노명현 : 그렇게 질러버리고 지보이스 못 나가면 책임져라 그럼.
#. 소수자들은 주변에 꼭 있다.
샌더 : 지면이 모자란다는 핑계로 슬슬 분위기 전환을 해야겠다. 가까운 시일 내에 꼭 해내고 말리라 하고 계획하고 있는 일. 뭐가 있나.
노명현 : 구립 합창단이나 구립 오케스트라 지휘자. 되고 싶다. 5개년 계획이다. 개인적인 부분에서는 지보이스를 정점, 그러니까 우리끼리 하는 말로 반석 위에 올려놓고. 이제 물러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 나보다 더 뛰어나고 지보이스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기분 나빠하지 않고 물러날 준비는 되어 있다.
샌더 :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이 단기간에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노명현 : 그게 문제다. 아. 그리고 연애 감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좋은 인연이 나타나면 마다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계획은 없지만. 그럼에도 일이 먼저일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길게는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샌더 : 권력욕이 있나 보다.
노명현 : 맞다. 대통령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이익을 많이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열심히해서 힘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면 그때에 꼭 소신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도 이미 그런 위치에 있는 성소수자들이 있을텐데, 우리를 위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샌더 : 그런 면은 좀 의외다.
노명현 : 정치에 관심이 많긴 하다. 독일의 쿠르트 마주어가 음악인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샌더 : 그럼, 마지막으로 더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노명현 : 음 딱히 없는데. 요즘 많이 느끼는 점 중 하나인데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소수자에 대한 너무 일방적인 편견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좋아하는 슈베르트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찬사를 보내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그렇게 아름다운 작품들의 겉모습에 환호하지 말고 그 안을 깊이 들여다보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나를 비롯한 소수자들은 주변에 꼭 있고 우리는 그저 다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명현님의 메일 주소는 operanmh2@hanmail.net 입니다.
이 인터뷰의 사진과 내용은 노명현님과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는 절대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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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를 처음 본 건 2014년 신촌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였다. 부스를 지키고 있던 친구사이 언니들을 보고선 저 멀리서 한달음에 달려와 반가움을 표시하던 그녀. 이후 다양한 활동들 속에서 늘 밝고 넘치는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활력을 불...
41번째 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은 차세빈 님입니다. 이태원의 클럽 Le Queen, Looking-Star, 호텔포차 대표를 맡고 있으며, 이태원의 게이들에게는 이미 유명하신 분입니다. 더불어 근래에는 퀴어퍼레이드 무대를 비롯, 올랜도 LGBT클럽 총격사건 추모문화제에서도 ...
40번째 커밍아웃 인터뷰는 해영님입니다. 여러 해 동안 <지보이스> 객원으로도 활동해서 우리에겐 많이 친숙하기도 하고, 커뮤니티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지난 겨울 서울 시청 농성장에서도 볼 수 있었던 얼굴이었습니다. 평소 수더분한 이미지의 그에게 어떤 이...
친구사이 사무실을 방문하면 늘 조용히 맞아주는 청년이 있다. 새침한 듯하지만 알고보면 안경 너머 다정한 눈을 가진 청년. 친구사이의 상근자로 오며가며 많이 알고있을 얼굴이지만, 불필요한 말은 잘 하지 않는 성격 탓에 여전히 궁금한 것 투성이인 그 남자. 그 남...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이번 인터뷰 주인공인 김종국 형.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느릿한 말씨지만 중요한 말을 앞두거나 강조할 부분에서는 말을 멈추고 지긋이 한 곳을 응시하는 여유를 아는 형이에요. 쬐끔 많은 나이에 굴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이 있거나 옳다...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2013년 5월 15일 문화대통령이라 불린 가수 서태지의 결혼발표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친구사이 현 대표이자 영화감독 겸 제작자인 김조광수 대표님의 결혼 발표였지요. 이와 함께 그동안 열...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낙타 여행노동자 김기민 씨, 친구사이나 LGBT 행사에서 몇 번 그를 마주쳤을 땐 새침하게 말하기를 싫어하는 미소년인 줄 예상했었어요. 그러나 그가 손수 내온 홍차와 샌드위치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질문의 요지에 맞춰 달...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선가드 마흔이 넘은 사람의 인생은 얼굴에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그렇다. 이십대 시절의 그는 우수에 젖은 표정의 순정만화 속 창백한 청년 이미지 그대로였다. 소녀들이 꽤나 따라다녔을 게다. 인터뷰이의 친구인 이성애자 여...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법 없이도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지나다니는 차 한대 없던 한적한 거리에서 교통법규를 지키기 위해 먼 길을 종종걸음으로 돌아 친구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이 꽁초를...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선가드 지난 6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국내 최대의 성소수자 행사인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그날 저녁 각종 뉴스 사이트의 첫 화면에는 이 퍼레이드에 대한 기사들이 속속 올라왔고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댓글들 역시 봇물처럼 ...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차돌바우 서른 두 번째 커밍아웃 인터뷰의 손님 역시 레즈비언이다. 그는 아직 학생이고 꽤 젊다. 인터뷰이와는 안면만 겨우 익힌 사이라서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기대반 불안반.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안방처럼 생긴 찻집...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썬가드 서른 한 번째이자 두 번째 레즈비언 커밍아웃 인터뷰어는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이하 센터)의 활동가이자 엘지비티(LGBT)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인 ‘홀릭’님이다. 십여 년 전 조용히 나타나 어느새 국내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대...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차돌바우 도발적이고 섹시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채식주의자, 소셜테이너, 게다가 품절녀인 삼십대 여성을 한명만 꼽아보시라. 이효리? 이효리라면 너무 쉽지 않은가, 오늘 우리가 만날 사람은 이효리보다 앞서서 가수로 데뷔했고, 채...
인터뷰 및 정리 : 샌더 사진 : 선가드 얼굴은 낯익지만 대화를 나누어 본적은 없다. 고백하자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10여년 전부터 친구사이 활동을 했다기에 따분하고 고지식한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었다. 하지만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의 인상은, 내 생...
인터뷰 및 정리 : 샌더 사진 : 동하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의 지휘자.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오케스트라와 몇 개의 합창단을 오가며 학업도 병행하고 있는 욕심 많은 젊은이. 커밍아웃 인터뷰 중에도 일을 하는 일 중독자. 무대 위에서 지휘할 때가...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네 명의 게이들의 커밍아웃을 다룬 다큐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 부산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후, 그와 영화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여요. 지난 이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듬직한 체구에 늘 카메라를 짊어지고 다니던 그의...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이번 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은 이종걸님입니다. 현재 친구사이 상근간사이자 인권팀장, 회원지원팀을 맡고 있고 무엇보다 친구사이에서 미모가 돋기로 유명한(?) 게이코러스 모임 G-Voice(이하 지보이스)의 단장이기도 하지...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열심히 활동하는 게이들’이라는 주제로 실시된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정욜 씨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의 초창기 활동가이면서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굳건히 활동을 지속하는 열혈남입니다. 우연하...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차돌바우 안녕하세요. 2010년도에 커밍아웃 인터뷰를 담당하게 된 라이카입니다. 잘 읽어주세요.^^ 이번 인터뷰는 게이 커뮤니티나 인권단체 혹은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게이들’ 이라는 주제로 진행이 되었...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스물두 번째 인터뷰, “꽃중년시리즈”의 세 번째 인물은 김성진입니다. 훈훈한 외모와 행동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스캔들을 일으켰던 문제의 인물. 항상 바쁜 듯 보여 사생활이 궁금했던 인물.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