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19 나성천 : 나 뺀질이가 사는 법

인터뷰 및 정리 : 코러스보이
사진 : 차돌바우



열아홉 번 째 커밍아웃 인터뷰 주자이자 일명 F4 프로젝트의 마지막 주인공은 “아직은” 스물 여덟인 청년 나성천이다. 인터뷰 제의에 한마디로 쉽게 응한 그는 인터뷰 장소를 고르는 데는 꽤 신중했다. 분위기 있는 한적하고 조명이 밝은 카페로 안내한다며 인터뷰어와 사진촬영 담당 차돌바우님, 또 어디선가 나타난 묘령의 훈남을 끌고 부암동 언덕길에서 삼십 분간 혹독한 길녀놀이를 시켰다. 결국 목적지인“아트스페이스 스푼”을 찾아낸 건 차돌바우님이었다.  



예정보다 딱 오십오 분 늦게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 네. 나이는 스물여덟, 이름은 나성천, 사는 곳은 강서구 가양동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카페까지 어렵게 찾아왔는데 당신 분위기랑 이 곳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 아뇨 (웃음)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 커피 마시러 이 동네를 가끔씩 다니는데...

커피 한 잔 마시러 일부러 강서구 가양동에서 여기까지?
- 네. 그럴 때가 있어요. 사실 서울에서 한적한 데가 많진 않은거 같아요. 차를 마시면서 산책도 할 수 있는 데가 많진 않은데...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곳이 좀... 음, 번잡한데가 많잖아요. 동네도 번잡한데 많고. 그래서 바람도 쐬고 기분전환도 할 겸.

한 가지 더 특이한 건 인터뷰 하러 오면서 지금 사귀고 있는 분과 동행하셨는데 왜 데리고 왔어요?
- 자랑하려고?(웃음) 관심이 좀 있어하는 거 같아서요.

인터뷰에 아니면 당신 과거에 대해서?
- 둘 다인 거 같은데,(웃음) 커밍아웃 인터뷰를 몇 번 봤었던 거 같아요.  

평소에 당신이 애인한테 믿음을 못 줬거나 비밀이 많은 척 해서 그런 건 아니고?
- 척 하진 않는데...(남자친구가 앉아있는 옆 테이블을 돌아보며) 내가 어때서?(웃음)



하고 싶은 일이 내 이야기를 영화로 하고 싶은 건데

혹시라도 애인 때문에 제가 짓궂은 질문을 못 할 거라 생각하진 마세요. 그래도 물어볼 거니까요. 우선 가족관계를 간단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어요?
- 어머니랑 형이랑 저 있어요.

셋이 같이 살아요?
- 아닙니다. 어머니랑 같이 살고 형은 따로 살아요. 형은 결혼했고 아이들도 있고 큰 애가 대학 들어갈 즈음이 되었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요. 어머니가 절 마흔에 낳으셨어요.

고향은 서울인가요?
- 나주요. 전라남도. 논 막 이렇게 좌악 펼쳐져 있는 곳.

몇 살 때 서울에 왔어요?
- 세살 때 쯤 서울에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갔어요. 그러다가 다시 일곱 살 땐가 올라왔어요. 그때의 기억들이 많죠.

그럼 일곱 살 때 올라와서 학창시절은 서울에서 보냈어요?
- 네

지금 하는 일은?
- 아르바이트 하고... 먹고 살려고. 그리고 영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일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거?
- 지금 하고 있는 건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구요. 전에는 영화사에서 연출부, 제작부, 그리고 인제 조감독까지 해봤고 그 담에는 나와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꿈은 영화 연출? 아니면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 꿈이라기보다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이 내 이야기를 영화로 하고 싶은 건데 일단은 시나리오를 하고 싶고요 그 다음에는 조금 많이 키워서 연출 쪽으로 남의이야기 받아서 하는 것보다는.

영화나 예술을 전공했나요? 아니면 따로 교육을 받았나요?
- 일단은 독학? 영화사 있을 때는 감독님들한테도 배우고 뭐...

몇 살 때부터 영화판에서 일했어요?
- 스물 세 살요.

군대 갔다 와서?
- 아닙니다. 군대 안 갔습니다.

군대 안 갔어요? 왜요?
- 오지 말래요. 내가 너무 이쁘다고 오지말래.

혼자서만 믿고 있는 이유 말고... 어디 아팠어요, 아니면?
- 그건 아니고 어머님 연세도 많으시고 뭐, 스토리가 있어서...  호적상 제가 장남으로 되어 있어서...

네. 어떻게 보면 군대를 안 가서 남들보다 시간을 벌었네요.
- 예. 그래서 그 시간동안 돈을 열심히 벌어서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사실 주위에 보면 대학졸업하고 그때까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도 있던데 그 부분에선 시간은 좀 번거 같아요.



다이아몬드가 손에 있는 걸 알면서 다른데 눈 돌릴 건 아니죠.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어떤 소년 혹은 소녀였어요? 착실한 모범생이었어요?
- 욕심이 굉장히 많았어요. 얼마나 많았냐면.. 사람들하고 과일을 먹잖아요. 배를 입에 하나먹고 씹어요. 그러면 입안에 여분이 생기잖아요. 그럼 하나를 더 넣어요. 그러면 손이 남아요. 그럼 왼손에 하나 집고 오른손에 하나 집고...

그게 욕심인가요? 그냥 식탐 아닌가?
- (웃음) 근데 다른 것도 ‘다 내 꺼야’ 이런 거...(웃음) 갖고 싶은 건 항상 가져야 성이 풀리고...

그럼 애인도 많을수록 좋은 거겠네요?
-(웃음) 다르죠.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게 많진 않더라도 최상급의 다이아몬드라든지, 다이아몬드가 손에 있는 걸 알면서 다른데 눈 돌릴 건 아니죠.

애인이 다이아몬드?
- (웃음)

욕심 많았으면 공부도 열심히 했겠네요?
- ......

애인 없을 때 빨리 이야기하지.(이때 옆 테이블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훈훈한 총각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
- 안 했어요.

(차돌바우) 못했다는 소리는 안 하네
- ......네. 못한거죠.

그럼 뭐하고 지냈어요?
- 그냥 놀기 바빴는데... 어릴 땐 시골에서 살았으니까,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뭐 먹고, 뛰어다니고... 사람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걸 좋아했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땐 여자애들이랑 고무줄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오락실도 가고, 만화책도 빌려볼 때가 있었고...

남자보다 여자애들이랑 더 친했어요?
- 편향적이진 않았어요. 골고루. 그런데, 일케 골고루 있었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랑 놀진 않고 몇 명하고만. 노는 애들하고만.

중고등학교 때는?
- 음... 제가 되게 말을 잘 안 해요. 내성적이고 혼자의 세계가 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심해진 거 같은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 전에는 안 그랬는데 놀더라도 항상 노는 친구들하고만 놀고 내성적이고 표현을 잘 못하게 되는... 그때 여러 가지가 많이 왔던 거 같은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이 확실하게 온 때이기도 하고. 중학교 전후로 그런 모습이 나타나곤 하니까, 막 놀다가도 애들은 여자 친구 이야기도 하고 그러는데 말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니까 막 생각을 하게 되는거예요. 점점 많이 내성적으로 되고 사람들 앞에 못 나서고, 친구들한테도 얘기를 많이 못하고... 외롭거나 고독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성격이 내성적인 줄은 몰랐는데 뜻밖이네요. 영화는 무언가 표현해야 하는 매체인데 그래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건가요?
- 사실은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런 건 아니지 않느냐 생각을 하게끔 해보고 싶었고, 답을 준다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하는 사람이 기자라면 기사를 쓸거고 화가라면 그림을 그릴 거고, 저는 영화가 좀 끌렸어요.
고등학교 때 광고사진을 공부했어요. 공업예술 고등학교였는데 사진을 하다가... 그 왜 학기초가 되면 동아리 선배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모집하잖아요. 그때 제가 이뻐라 하는 애가 ‘나 저기 가야지’ 하길래 따라갔다가... 비디오작품 만드는 곳이었는데 캠코더 갖고 영상물을 만드는 동아리가 있었어요. 그때 경험들이 쌓여서 이쪽으로 나타난 거 같아요.
열일곱 살 때부터 지도 선생님하고... 그때 반별로 나눠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니들 이거 해’ 하고 내려주는 게 아니라 ‘니네 뭐하고 싶니’ 그랬는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보다 못한 일학년이(제가) 나서서 요런거 요런거 하면 어때요? 한 게 시작이었던 거 같아요.

그 선생님이 나름 진로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 은사였네요.
-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거 같아요. 어렸을 땐 되게 많이 헤맸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선배 형이 있는데, 잘생긴, 제가 좋아라하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그, 사진과가 있는 고등학교 가면서 ‘엘리베이터 있는 학교가 있다.’‘로비에 대리석이 깔려있고 정말 좋다’ 이러잖아요. 멋도 모르고 따라 갔는데 거기 과가 딱 세 개 있는 거예요. 디자인, 컴퓨터, 사진. 그림은 못 그리고 컴퓨터는 관심 없고 사진 한번 해봐야지 해서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을 보는 눈도 얻고... 뭐 생각을 하거나 그러지도 못하면서 난 기술을 배우고 있었던 거죠. 뭘 하는 지도 모르고... 근데 지나고 나니까 그 때 했던 것들이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요.

선생님이나 선배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네요. 그 선배 지금도 만나요?
- 네. 동네 형이고 오락실 형이고 잠깐 좋아했으며...

대책 없는 소녀 같아요. 자기 좋아하는 사람 따라 다니다 자기 진로도 결정하고. 그 형한테 커밍아웃 할 생각은 없어요?
- 많이 만나고 많이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은 하는 일이 바빠서 일 년에 한번 만나면 많이 만나요.
사는 이야기하느라 바빠서, 그... 내가 게이다 아니다 이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만나면 영화판이 어떻고 공연판이 어떻고 돈벌이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하다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요. 정체성에 대해서 심도 깊게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어요. 계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예전 7,80년대에는 젊고 똑똑하고 나름 치열하게 살고 싶은 청년들은 문학도를 꿈꾸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문학이 예술의 정점에 서 있는 거라 생각했었고. 근데 요즘엔 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청소년들한테 물어보면 영화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당신도 그런 케이스인가 했는데 그보다는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꿈이 형성된 경우네요.
- 그런 거 같아요. 사실 스무 살이 넘으면 다 해야 한다는 게 있잖아요. 돈도 벌어야하고 뭣도 해야 하고 앞으로의 인생도 준비해야 된다고. 스물한 살 때까지는 하고 싶은거 다 했어요. 돈 벌어서 여행도 가고... 아르바이트 많이 했거든요.
영화제 다녀오고 아 재밌을 거 같다 이랬는데, 근데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S기업에 들어갔었거든요. 돈 잘 벌었어요. 그래도 그 어린 나이에 백팔십 이백 벌었는데 벌면 버는 대로 나가더라구요.(웃음) 그 왜 머리가 컸다고 옷도 좋은 거 입어야 될거 같고 술도 좋은 거 먹어야 될 거 같고... 갑자기 돈이 생기니까.(웃음) 이뻐지는데도 돈이 들어가잖아요. 품위유지비?(웃음) 근데 점점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게 다들 하는 것처럼 결혼자금 모으고 집도 꾸미고 결혼해서 애 낳고 알콩달콩 살고... 이런 게 내가 원하는 건 아닌데... 그래서 스물세 살 때 이거 아니야 그러고 딱 나왔어요. 난 영화를 해야지 하면서.



사오십 명이 자장면하고 짬뽕을 먹는데 중학생부터 열아홉 스무살까지...

처음 게이커뮤니티엔 어떻게 나왔어요?
- 음...(애인 쪽을 바라봄)

그 쪽 쳐다보지 말고 말해요.
- 음... 가물가물하네. 열일곱 살 열여덟 이 때 쯤이요.

십년 전인데 그럼 인터넷도 아닐 테고...?
- 그 때 전화사서함이 있었어요. 일오삼 친구사이인가 동성애자 뭐 그런 멘트가 나오는 게 있었던 거 같아요. 그걸 하다가 동갑내기 친구랑 연락이 되었어요. 그 친구랑 너 어떻게 지내니 뭐하니 이런 이야기 하다가... 청소년 이반들의 모임이 있대요. 그때  정모를 한번 한다고 같이 가자, 그래갖고 여름 때쯤이었던 거 같은데 피카디리극장 쪽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이렇게 왜... ‘선데이서울’이라든지 ‘그것이 알고 싶다’, 신문도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것만 보다가... 친구를 따라 지하철 역 앞에서 친구를 딱 만나서 얘기 몇 마디 하고 이분쯤 걸어서 중국집으로 들어갔어요. 딱 들어갔는데 세상에, 애들이 그렇게 많은 거예요. 한 사오십 명이 막 거기서 자장면하고 짬뽕을 먹는데  중학생부터 열아홉 스무살까지. 여자애들 남자애들이 바글바글... 옷차림 특이한 애도 있고... 너무 신기한 거야. 세상에, 그래서 그때부터 그 모임에 빠졌죠. 그 왜, 내성적이었으니까. 하고 싶은 얘기도 못하고 조용히 살았는데 거기 갔더니 ‘이년아’저년아 하고...

청소년들이?
- 음. 그렇죠. 근데 이쁜 애들도 많았어요. 풋풋하면서 그 왜 지금 보면, 순정만화에서 보면 머리 짧고 얼굴은 타원형이고 눈썹도 단정하고... 날라리, 그러니까 양아치는 아니고 놀 줄 아는 그런 애들이 몇 명 있으니까 아주 막 난리가 나죠.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커뮤니티에 나왔죠. 정말 그런데서 놀아보지 못하다가 들어가니까 너무 별천지여가지고, 빠져서 애들끼리 모여서 무슨 모임을 그렇게 많이 가졌어요. 번개 한다고 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모 하는 데는 꼭 가고 영화도 보러가고 공원 가서... 이런 거 얘기해도 되나. (웃음) 탑골공원, 아니 종묘공원 한 켠에 모여서 소주랑 맥주 사가지고...

주로 어디서 만났어요? 청소년이라 카페나 어딜 가기 힘 들었을텐데...
- 운영자들이 섭외를 했어요. 까놓고. 이래서 된다고 하면 몇 몇 군데는 들어갈 수 있었고, 안 된다 그러면, 이제 애들이 아주 많다고 하면 공원이고 많지 않으면 비는 집.
카페를 가기도 하는데 애들은 사실 돈이 많지 않잖아요. 집이나 이런 데를 구하면 싸게 놀수 있고 그렇죠. 친한 친구 일고여덟 명 씩 집 비면 우루루 가고, 일 일어나고(웃음) 한 번씩 놀러 가면 하나씩 눈이 맞는 거야. (웃음)

거기서 연애도 해봤어요?
- 설레고 뭐 우리 사귀는 거다 막 이런 건 있었는데 왜 어릴 때는 그래 우리 사귀는 거야 하루 만에 이러고 이주도 안 되어 흐지부지되고 이런 거...있잖아요.  

그럼 첫사랑은 언제?
- 전 항상 다 첫사랑이어요. (웃음)



‘아들 진짜야.  진짜로 사랑하는 애인이야’

커밍아웃은 한 적 있어요?
- 워낙 많아서... (웃음)

가족들한테는?
- 어머님은 알고 계시구요, 그리고 좀 친하게 지내는 일반 친구들은 대부분 알아요.

어머님은 어떻게?
- 제가 이야기를 드렸죠. 몇 개월 전, 사월십사일이었어요.
사실 스무살 넘어가면서부터 허락을 맡고 산적은 없어요. 보고를 드렸죠. 어머님이 좀 대인배세요. 젊을 때 사업도 크게 하셨고. 그렇게 통제를 하는 분이 아니고 알아서 하겠거니 하면서 넘어가주는 부분이 많으세요. 근데 친척이나 옆집 이웃 분들이랑 술한잔 하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성천이 다 컸네.’ ‘결혼 해야겠네’ 이런 이야기하면 ‘여자 친구는 없니’ 하는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결혼은 안한다고 했죠. 이런 이야기를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했는데 어머님의 생각은 또 다르신 거죠. 음... 나이가 들면 혼자 살면 우중충해지잖아요. 불쌍하고 이런 경우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걸 좀 걱정하신 거 같아요. 어머님이 나이도 있으시고 그래서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래서 아, 어머님이 결혼이 아니더라도 혼자 나이 드는 걸 걱정하시는구나. 그래서 언젠가는 얘기를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사실 어머님이 충격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 안했는데 제가 떳떳할 때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그래도 내 삶을 잘 꾸리고 있을 때 이야기 드리면 받아들이기도 수월하실 거 같고 그랬어요.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었는데... 그때 사월 십사일, 그때가 다이아몬드...(웃음)

네?
- 다이아몬드를... 이게 내 것이 될까 안 될까 하다가 내 걸로 한 날이었어요. 사귀기로 한날이었어요. 막 그날 기분 좋게 들어갔죠.  열두시쯤 집에 들어갔죠. 어머님이 안 주무시고 TV를 보고 계시더라구요.
‘엄마 자? 아들 왔어 엄마 자?’ 몇 번이나 그랬어요. 엄마가 ‘아, 왜 빨리 들어가서 자지.’그래서‘엄마, 엄마는 진짜 아들이 결혼했으면 좋겠어?’,‘그라제.’,‘엄마는 결혼해서 행복했어요?’,‘안했어도...’(웃음) 우리 어머닌 혼자 사시면 좋은데 같이 살면 막 꼬이고 그랬거든요. ‘엄마 아들이 결혼 안 할건데’ 이런 식으로 시작했어요.’열댓 번 쯤 뜸들이다가 ‘엄마 아들 애인 있는데 몇 살이고 이쁘고 어쩌고...’ 근데 내가 막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니까 엄마가 눈치가 있으셔서‘사진 있으면 보자’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보여드렸어요.
빙그레 웃으시더라구요. ‘에이 말도 안 된다 무슨 남자가 애인이야?’,‘진짜 애인이야.’ 이야기 드렸죠. 음... 아들이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드린 거였거든요. 사귀는 사람이라든가 여자친구나 한 번도 한적 없었는데 결혼에 대해서도 꾸준히 안한다고 이야기했고... 웃으시던데. 웃으시면서 그냥 몇 마디 물어보시길래 ‘아들 진짜야.  진짜로 사랑하는 애인이야’ 몇 번 말씀 드렸어요. 그러면서 혹시 몰라서 쐐기를 박았죠.  엄마한테만 말하는 거라고 비밀이라고 했어요. 엄만 알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이후엔 딱히 언급이 없으세요.
사실 어머니한테 아들 하나밖에 없으면 다를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형이 있고 아들딸 낳고 살고 형은 또 목사님이거든요.

그 이후로 엄마가 달라진 건 없어요?
- 이야기하고 난 다음날도 그냥 여전히 아침밥 잘 차려주시고...

농담으로 받아들인 건 아닐까요? 그냥 알았다고 하는 무덤덤한 반응은 드문데.
- 사실은 음... 농담인줄 알아도 계속 지속되면 진짜로 아시는 걸로 하기로 저는 방향을 잡았어요. 왜냐면 저는 갑자기 충격선언해서 난리가 나는 것보다는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그래? 그럼 알았어’ 이렇게...
사실은 어머니도 당황스러우시겠죠. 갑자기 새벽 한시에 이십팔 년 된 아들이 다른 이야기하니까. 근데 아들이 여태까지 한 번도 그런 이야기한 적도 없는데.. 진짜인가 보다 하면서 편하게 하려고 하셨을 수도 있고. 어쨌든 저한테 알았어 라고 이야기하신 게 건성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고 눈을 보면서 안심을 시켜주신 거 같아요. 참, 어머님 사진 보여드릴까요? 스캔을 하려고 가지고 다녔는데, 사진이 오래되어서... 우리 어머니 사진. 맨 오른쪽에 시골에 놀러온 거 같은 귀부인...

(빛 바랜 흑백사진들을 보면서 잠시 인터뷰는 중단되었다가... 다시 속개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만난 거죠?
- 이년 전에...

이년 전에 어떻게요? 번개?
- 아는 사람들하고 고기를 먹고 있었는데 같이 오기로 한 친구가 누구랑 같이 있는데 같이 가도 되요 하길래 이쁘면 데려오고 안 이쁘면 데려오지마 했는데 데리고 온 거죠.

(차돌바우)나한테 졸라게 삼겹살 뜯어먹은 날.

그래서 그날 눈이 맞았어요?
- 음... 관심을 막 표현했죠. 먹을 거도 막 챙겨주고

(차돌바우) 입이 귀밑에 걸리더라.

근데 왜 바로 안 사귀고?
- 제가 원래 간을 봐요.

이년동안이나요?
- 아니, 얘가 짭짤한지 싱거운지 쫀득한지 파악을 해야할 거 아니예요. (웃음) 간을 보죠. 근데 그때는 제가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어요. 그때는 혼자가 된지 얼마 안 됐고, 그리고 그땐 영화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잠깐 짬을 내서 하루 보고 이러니까 뭘 많이 생각할 게 안 되잖아요. 또 이 친구가 외국에 연수를 갔어요. 그래서 잊고 살다가 올해 삼월? 삼월에 다시 한 빠에서 뒤통수를 봤죠. 어디서 많이 봤다 하다가 다시 또르르 굴려서... 그래서 근처에 오게 했는데... 이걸 (웃음) 낚시질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느라고 좀 걸렸죠.

노하우를 좀 알려줘 봐요. 어떻게 하면 낚시질을 잘 할 수 있는지
-(웃음) 음, 일단 집요하면 돼요.

집요? 그럼 도망갈 텐데?
-(웃음) 부담스럽게 하면 안되구요. 일단 먹여요. 먹을 걸로 꼬셔. 커피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이러면 같이 있을 시간이 점점 많아지잖아요. 이 때 막 잘해줘요. 근데 상대가 고리에 걸릴지 안 걸릴 지 빨리 파악해야 해요. 걸릴 거 같지 않으면 얼릉 버려야 되고. 이게 이쁜데 걸릴락 말락 하면 전력을 들여야지. 주위에 사람을 풀고 돈을 풀고...

주위에 사람 풀었는데 그 사람이랑 눈 맞으면? 돈 없으면?
- 으... 그러니까...
사실 이렇게 ‘지지직’ 하면서 만난다고 그러잖아요. 그럴 경우에는 여러 가지의 우연들이 일어나는 거 같아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연들이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들이 많이 있었어요. 다시 만났을 때 연락처도 없고 뭣도 없고 어, 잘 지내나보다, 왔나보다 하면 끝났을 텐데... 계속 잡아야죠.

잘 될 거 같아요? 이제 시작이라 말하기 뭣하지만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만나는 중?
- 어릴 때는 그냥 그 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모를거 같은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요. 그냥. 이게 막...

그래서 오래 가겠다고?
- (웃음) 그럼요. 이년 걸렸다니까요. 반딱반딱 닦아서 품에 안았으니까 안 내놓기만 하면 돼.



게이라고 떠벌이라는 건 아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긴 척 하지 말고.

좋다. 근데 시간이 다 되어 가네요.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 재미가 없어서 걱정이에요. 사실은 컨셉을 잡아왔는데...
오자마자 자기 소개하면서 애인 있구요, 모든 말끝마다 애인 있어요. 첫사랑은 애인이 제 애인이 컨셉이었구요... (웃음)

그럼 시간 줄 테니 애인 자랑하시든가.
- (웃음) 이 정도면 애인 이야긴 많이 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커밍아웃인터뷰잖아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얼마 전에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때도 느꼈는데 자기가 알려지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생각을 해요 사람들이. 그게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내가 게이라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불이익을 당한다든지 불안하다든지 이런 건 사회가 문제가 있어서 개선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만들어진 상황이 있을수는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자기가 만든 덫 같은데 자기가 걸려서 어쩔 수 없었어 라든지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야 라고... 두 번  생각도 안 해보고 사는, 숨어서 혹은 속이고 사는 경우가 있는데, 조금 다른 부분을 고려해도 되지 않을까요. 답답하지 않아요?

답답한 걸 못 느낄 수도 있죠 그게 본인으로서는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 사실 조그만 부분부터 만들 수 있거든요. 그렇잖아요. 그냥 친구들이라든지 일반친구들이라든지 직장에 친한 사람들일수도 있고 이런 사람들한테는 솔직히 얘기할 수 있잖아요. 내가 게이야 이렇게 선언 하라는 게 아니라, 여자한테 관심 없잖아. 여자친구 만들 생각도 없잖아. 근데 왜 관심 있는 척하고 여자친구 있는 척하냐는 거야. 나는 정말 싫어요. 그러지 않았음 좋겠어요. 게이라고 떠벌이라는 건 아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긴 척 하지 말고...

(종업원) 죄송합니다. 저희가 마감시간이라서요...

이제 정리할게요. 모쪼록 쓰는 시나리오 좋은 성과 있기 바라구요,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에게 물어볼게요.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날 두 분이서 이인용 자전거를 타고 친구사이 행렬 선두를 달린 거 같은데, 다들 엄청 부러워했었죠. 그날 퍼레이드를 빙자한 데이트 어땠어요?
(훈남 남친) 좋았어요. 재미있었어요.(웃음)



- 끝 -

#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친구사이 자유게시판에 나성천씨는 인터뷰 후기를 올렸다. 길치라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이 자기 소개를 해줄 것을 주문했다.
"애인 있구 15cm(?), 특기 삽질, 취미 삼겹살 부르짖기"


나성천 메일주소 scneo@nate.com
코러스보이 메일주소 jjoohyu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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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