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했던 커밍아웃 인터뷰 중,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인터뷰였다. 그의 언어는 그의 솔직함 때문에 더욱 도발적이었고, 미처 우리가 발설하지 못한 부분을 저어함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데 인터뷰어는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뼈속까지 게이다, 그의 진정성을 들어보기로 하자.
이름?
박용 : 박용
나이를 물어봐도 되나요?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요.
박용 : 21살이요.
인터뷰 하기 싫으세요?
박용 :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 21살 이후로 나이 안먹었는데요.
어린왕자?
박용 : 넘어가구요. 다음 질문 해주세요. (주 : 그의 나이는 올해 스물 일곱이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이자와'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는데, 무슨 뜻이죠? 뭐 특별한 뜻이라도 있나요?
박용 : 이나중 탁구부라는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이자와인데요. 그 이대팔 가르마의 엽기적인 행동이 너무나도 잘어울린다고 제가 존경하는 어떤 분께서 지어준 별명이에요.
존경하는 분? 대충 우리에게 귀뜸해주실 수 있어요? 저도 처음 듣는 소리군요.
박용 : 아하, 네 그분은 스님이에요. 큰누나 친구인데, 비구니가 됐죠.
제가 그 만화를 보지 못해서 그런데, 이대팔 가르마의 엽기적인 행동이라는 표현을 봐서, 이자와 씨의 성격과 비슷한 구석이 있나 보군요.
박용 : 아마도요.
어떤 성격이라고 우리가 여기면 될까요?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설명해주셨으면 해요.
박용 : 맥주 마시면서 해도 돼죠?
네. 음주 인터뷰가 되겠군요.
박용 : 성격이라....... 기발하고 지저분한 행동들을 서슴지않고 하는 악동이면서도, 로맨티스트이며, 무식하면서도 유쾌하고 성격파탄 같으면서도 약방의 감초 같은 캐릭터거든요. 저랑 딱 어울린데요..^^
이 무슨 기괴한 수사의 남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희 현명한 독자들은 대충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다른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이 있으세요? '직업'이라든지 뭐 그런 거 말입니다.
박용 : '작업'은 안하고 있구요. 애인이 있거든요. 하는 일은 여러 가지 해요. 돈 되는 건 다 ..... 어머 직업이네! -.- 직업은 프리랜서예요.
벌써 취하셨나요? 문장이 개판 오분 전이긴 하지만 꾹 참습니다. 애인이 있었군요. 어디서 만나셨나요?
박용 : 모 커뮤니티에서 대화하다 만났어요. 제가 앤 찾는 구인광고를 올렸거든요. 이제 50일이 됐군요.
아, 네. 대담하시군요. 구인광고까지 올릴 성격이면 말입니다.
박용 : 뭐든 못하겠어요. 우리 애인은 일단 무지하게 착해요. 이렇게 착하고 저에게 잘하는 사람이 여직 없었거든요. 그리고 늘 제가 자길 떠날까봐 전전긍긍 해요. 저한테 직접 이야기는 안하지만 가끔 글 쓰는 거 보면 그런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제가 약속했죠. 절대 안 그럴 거라고요. 전 약속하면 지켜요. 그래서 담배도 끊은 거고요.
네. (개인적으로도) 연애를 하시는 걸 보니 부러워요. 박용 씨 사진을 보고 반할 수많은 남정네들이 땅을 치고 울겠어요.
박용 : 설마요. 다 사진을 찍은 꽃사슴 씨 덕이죠... 호호호
우리는 이번 인터뷰 제목을 '뼈속까지 게이다'로 정했습니다. 그만큼 뭔가가 절실하다는 뜻일 수도 있겠는데요. 본인이 정한 이 제목에 담긴 박용 씨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왜 뼈속까지 게이다, 입니까?
전 다시 태어나도 게이로 태어날래요. 전 헤테로(이성애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불행했을까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 제대로 못 했을거구요. 정말 솔직한 사람이 못 됐을 것 같아요.
지금도 후회없다, 그 말씀인가요?
박용 : 원래 후회 같은 거 잘 안해요. 솔직히 이반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괴로웠던 적 없었거든요. 외려 제 자신이 솔직하지 못한 거에 괴로웠던 것뿐입니다.
아, 그래요? 초반부터 세게 나오시는군요. 집에서의 갈등, 뭐 이런 건 없었습니까?
박용 : 갈등이라...
소문에 듣자하니 이자와 씨가 겪은 집안 갈등은 소설 다섯 편 정도의 분량이라던데... 조금만 우리에게 말씀해주실 수 있겠어요?
박용 : 왜 갈등이 없었겠어요. 전 그래도 당당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했구요. 더 시간 끌고 싶지도 않았어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졸업을 앞두고 말했어요, 집에.
반응이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을 줄 아시겠지만, 외려 정반대였어요.
그래요?
박용 : 제가 처음에 형과 누나들에게 말을 했거든요. 일단 저의 동조자... 암튼 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형 누나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이반들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었던 사람들었죠.
특히 큰누나는 생각이 아주 개방적인 편이죠. 그래서 남편도 미국인이고 사는곳도 미국이니깐요. 큰누나는 거의 울 집안의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일단 큰누나를 제 편으로 만들었죠. 그리고 형은 아주 덤덤이 받아주더군요.
그리고 가족회의 소집을 한 것도 큰형이 제안한 겁니다. 전 '예, 아니오'의 답변을 하는 것이전부였고 되려 나머지는 큰형이 다 했죠.
그래도 형제들이 지지를 표명해서 다행이었겠군요. 형제들이 지지를 하면 집안에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 훨 나은 편이라고들 하더군요.
박용 : 네. 아버지는 별 말씀 없으셨구요. 어머니가 문제였죠. 아직도 문제지만요. 어머닌 가끔 제가 이반이란 걸 잊어버려요. 그래서 전 가끔 상기 시켜드리죠. 그럴 때마다 심하게 싸우게 돼요.
하하... 어떻게 상기시켜 드리나요? 예를 들자면?
박용 : 평소엔 그냥 말로 하구요. 심할 땐 편지 써놓고 집을 나와 버려요. 그럼 형이 전화해서 너 게이인 거 다 알아 아는데 왜 매번 그 문제 때문에 편지 쓰고 잠적 하냐구 그러죠. 그러니까 다른 가족들은 다 알고 이해하고 넘기자는 분위긴데 어머니는 그러다 말겠지예요.
그럼 박용 씨는 어머니마저 본인이 게이임을 받아들이길 원하시는 겁니까?
박용 : 네, 당연하죠. 꼭 받아들여야 해요.
흠... 어머님도 어머님 방식대로 그간 삶을 살아오셨을텐데, 일방적으로 자식의 삶을 이해해달라 요구하는 건 다소 무리가 아닐까요?
박용 : 자기 어머니에게 받아들이게 할 수 없다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전 원래 생각이 좀 극단적이거든요. 무리가 있더라도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과격한 게이시군요. ^^
박용 : 절대 그렇진 않아요. 저 부드러운 게이에요.
아, 네. 그렇게 혼자 생각하세요. 방금 말씀하신 거와 연관해서.... 아까 말씀하시기에,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하면 뭘 바꾸겠냐고 하셨는데, 동성애에 대해 편견을 가진 이 사회가 전체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시나요?
박용 : 그럼요. 변화해야죠. 제가 보기에는 사회가 전체적으로 변화하기 이전에 게이인 우리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숨어서 살기보단 이판사판 나서야 된다고 생각하죠. 지금만큼 목소릴 높이고 나설 수 있는 것도 선배 이반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희생이 필요하면 희생해야죠. 그게 누구이건 무엇인건 말이에요, 필요하다면.
그럼, 님이 희생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가령, 스스로 인권운동을 열심히 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
박용 : 당연히 있지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할려고 노력중이에요.
어디 소속되어 있는 단체라도 있나요?
박용 : 친구사이요.
네. 이것도 알면서 물어봤어요. 친구사이엔 언제 들어오셨죠?
박용 : 가입한 것은 작년 10월쯤이구요. 실질적으론 작년 3월 친구사이 현재 회장님이신 전모 님께서 운영하던 댄스 소모임을 통해서입니다.
아, 기억납니다. 제가 박용 씨를 처음 본 것도 작년 3월 댄스 모임에서였던 것 같군요.
박용 : 전 별로 기억이 안나네요..^^
아주 젊은 나이에 치매가 걸리셨군요. 퀴어문화축제 거리 행렬 때도 퍼레이드를 나가셨죠? 어땠어요? 느낌 말입니다.
박용 : 가슴이 터질 것 같았죠. 처음엔 굉장히 설레고 두근거리는 가슴 주체할 수 없을 만큼요.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두려움반 설레임 반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몇 년 전부터 공개적으로 게이 커뮤니티에 들어오신 거에요?
박용 : 95년 처음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첫발을 내딛었죠.
첫발을 내딘 이후, 박용 씨가 스스로 '뼈속까지 게이'로 살아가기로 다짐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아니면 자연스레 터득된 느낌인가요?
박용 : 군대에서의 커밍아웃 때문이었죠.
그래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좀 야해도 상관없어요.
박용 : 야한 건 아니구요. 여러가지로 말이 많을 것 같아서 이 부분은 아는 사람만 아는 걸로 넘어가고 싶네요.
헉.... 저도 모르는 사실이 있었나보군요. 우린 군침만 삼켜야 하나요?
박용 :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에요. 약간만 이야기하자면 제가 군대에서 커밍아웃하고 군병원 정신병동에서 지냈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전 제 자신을 믿어요. 스스로를 인정하고 믿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남을 믿는 건 그리 어렵지가 않은데,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믿는 게 저로서는 어려운 일이었어요.
전 제 자신을 믿어요. 제가 저의 밑천입니다. 전 돈도 별로 없구요. 그렇다고 인물이 반반하지도 않아요. 반이모(반전을 위한 이쁜이들의 모임, 친구사이 소모임)에서도 안 받아주는 미모를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친구도 별로 없어요. 이반친구들 말입니다. 가진 게 별로 없지만 전 제 자신을 가지고 있지요.
반이모에서 안 받아들였다는 건 님이 지어낸 소설이군요. 하지만 님 스스로를 밑천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 몸 담고 있으면서, 가장 꼴볼견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용 : 전에 동인련에서 임모 대표가 탄핵 받은 일이 있잖아요.
네.
박용 : 사실 그때부터 전 사람들의 싸움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여기서 활동가랍시고 한목소리 내는 분들에 대해서요. 최근에는 정말 해외토픽에 나와도 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되는 모 단체 활동가들에 관련한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순간, 커밍아웃 최초로 인터뷰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그의 거침없는 입담의 칼날은 매서웠다. 필자는 인터뷰어인 본인과 인터뷰이인 박용 씨 모두 친구사이 회원이라는 이유를 들어 타 단체에 대한 언급은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박용 씨는 여과없이 실어줄 것을 요구했다. 해서 내놓은 필자의 중재안인, 나중에 진행 중인 사건이 매듭지어지거나 친구사이 입장이 공식화되는 순간 여기서 '누락'된 부분을 다시 이 인터뷰 전문 속에 삽입하는 것으로 이 부분을 일단락짓기로 했다.)
이번엔 조금 분위기를 바꾸는 의미에서 다른 질문을 드릴까 해요. 제가 박용 씨 벗은 몸매를 찍자고 했을 때 흔쾌히 하자고 하셨는데, 몸매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겁니까? '뼈속까지 게이다'를 증명하기 위해서입니까? 하신 의도가 뭡니까?
박용 :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였다고 하면 참 애매하게 들리겠죠?^^
지금 님이 찍은 사진 안에 등장한 손의 임자, 즉 당신의 애인을 자랑하고 싶단 말입니까? 어차피 애인은 자주 볼 터인데....
박용 : 애인도 있었고 다른분들도 몇명 있었죠, 그 자리에는.
대답이 참 야리꾸리하군요. 그래도 막상 하자고 해놓고, 님이 선뜻 나선 데에는 저도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껏 그런 경우가 별로 없었잖아요. 구인광고나 그런 걸 제외하고 한국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말입니다.
박용 : 저도 진지할 때는 진지해요. 제 마음보다 제 몸이 저보다 빨리 움직일때는 그럴 때거든요.
정말 성격이 "기발하고 지저분한 행동들을 서슴지않고 하는 악동" 다우시군요. 가끔 박용 씨를 보면, 뭔가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그런 성격이었나요? 아님 본인이 뼈속까지 게이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이후부터 그러셨나요? (반 농담입니다)
박용 : 원래 성격상 그런 거구요. 낯을 많이 가려요. 처음에는 좀 데면데면하게 굴지만 제가 인정 하기 시작하거나 상대방이 먼저 다가서면 그런 거리낌은 문제도 아닙니다.
게이로 살기로 작정한 이후에는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정말 소심했죠.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누가 이 문제 풀어 볼 사람, 하고 선생님이 물으면 그 문제 답을 알면서도 눈치보면서 손들까 말까 망설이는 성격, 제가 늘 그랬었거든요.
전 학창시절 모범생이고 공부도 참 잘하던 학생이었는데, 선생님들은 절 기억 못해요. 니가 우리반이었어? 할 정도였어요.
음... 수상쩍은 냄새가 나긴 하지만 믿겠습니다. 정말 궁금해요. 최근의 그 도발적인 성격은 어디에서 연원한 걸까요?
박용 : 군대죠.
자꾸 군대로 문제가 소급되니 궁금증이 도지는군요.
박용 : 군대는 제 인생을 백팔십도 바꿔 놓는 아주 저에게는 보양식이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한가지 더, 군대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도 게이에게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있더군요.
그래서 희망이 있다는 것! 희망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겁니다. 희망이 저에게 힘을 주고요, 전 그 희망 때문에 제 자신을 밑천 삼아 살아요.
'군대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도 게이에게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표현, 못내 궁금합니다. 저희에게 보너스 지급한다고 생각하고 그 분 말씀만 몇 마디 해주세요... 네?
박용 : 그 분은 제가 제대할 때까지 충성을 다해서 보필(!)했던 분이에요. 19금쪽으로 오해하진 마시길 바래요.
19금?
박용 : 제가 근무하던 부서의 장이었죠. 계급은 대위였구요.
점점 더, 궁금증이 200% 가동되는군요.
박용 : 현재는 서울지방검찰청에서 현직 검사로 근무하고 있구요. 여기까지만 이야기 할께요.
아, 정치를 참 잘하시네요. ㅠㅠ 군대 문제는 여기까지만 묻도록 하겠습니다. 박용 씨는 20년 후나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떤 그림들을 가지고 계신가요?
박용 : 전요. 가능하다면 빨리 서울 생활 정리하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어요. 그래서 그 친구사이 회원 중에 음성총각이란 닉넴을 쓰시는 분이 부러워요(고추로 유명한 음성에 사는 친구사이 회원, 음성총각은 별명).
9번째 커밍아웃 인터뷰 주자인 정한 씨도 그런 말을 자주하던데... 정말 의외군요. 농사 짓고 사실 생각이세요?
네. 농사짓고 취미로 전원생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땀흘려서 제가 농사일을 돌보면서 살고 싶어요. 그걸로 먹고 살면서 말이예요.
농촌 게이라.... 정말 파격적인 선언이군요! 그런데 뼈속까지 게이인 당신이 과연 호젓한 시골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요?
박용 : 네. 전 서울을 벗어나면 이상하리 만치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구요. 포근하게 느껴져요. 다시 도시로 오기가 싫죠. 군대 있을 때도 그래서 가지, 오이, 토마토, 고구마, 호박, 이런 거 심어서 다른 부서에 가져다 주고 그랬어요. 저, 그런 거 잘해요.
그럼 님이 농사지은 고추밭에서 고추를 딸 때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 그림에는 박용 씨 혼자 나오나요?
박용 : 아마도 지금의 애인은 제 옆에 있지 못할 것 같아요. 왜냐면 어제도 제가 물어봤는데요. 자긴 저와는 정반대로 빌딩숲을 떠나면 불안하고 갈피를 못 잡겠데요..ㅜ.ㅜ 저번때 묻지마 게이 야유회 가서도 짜증 내는 것 같던데 저한테는 그나마 내색 안하더라구요.
그럼 농촌에 내려가서 농촌 게이 총각을 찾아보셔야겠군요. ^^
박용 :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래요.
네. 전 지금 갈등하고 있어요. '뼈속까지 게이'인 당신의 입에서 뭔가 짜릿한 말을 뽑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는 거지요. 박용 씨가 보시기에..
박용 : 아, 그러세요? 전 섹스광이에요... 사실은... 이런 말들요?
아니요. 조금 더 센 거.
박용 : 아 그럼 전 쓰리썸을 즐겨요 이런 거요?
참나... 전 그런 걸 여쭤보는 거 아니에요. 박용 씨가 보시기에 게이 커뮤니티에 나오고 있는 게이들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용 : 예를 들어서 말해도 될까요?
지금 한창 주가를 팍팍 올리고 있는 모모커뮤니티의 채팅방에 가보면요. 아마 지금도 대화를 원하는 방보다 만남을 원하거나 만남도 번섹과 야한농담을 원하는 방들이 대부분일거에요.
그런데요. 거기 들어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고 습관적인 접속을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아닌 사람들도 일부는 있지만요. 어쨌거나 다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어떤 날은 번섹하고 싶어서 번섹방에서 놀구 있고 어떤 날은 진지한 대화를 원한다는 방에 있어요. 이건 제가 증거를 대라면 댈 수도 있어요. 제가 7개월 동안 아이디 적어가면서 통계낸 거 가지고 있거든요.
헉!
박용 :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면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분에 따라서 그 가면을 바꿔 쓸 뿐이에요. 그중에 인권을 옹호하는 단체임을 주장하는 곳에서 활동가랍시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도 그런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떤 잣대로 그 사람들을 재단하고 기준 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구요. 전 제 의견을 말하고 있는 거라는 거 아시죠?
네.
박용 : 요점이 딴데로 흐르는데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결론을 짓자면 사람들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거에요. 솔직한 사람이 많으면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이상해 보일 텐데 솔직한 사람이 적으니 솔직한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잖아요.
그럼 게이 커뮤니티 사람들이 적잖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뜻인가요? 특히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이 도덕적인 체 할 때 더욱 그렇고요?
박용 : 네. 누구라고 콕콕 찝어 이야기 해드릴까요?
(하지 마라... 너 죽는다.. 나, 찍으려고 그러지? 죽어...)
박용 : (아닌데 형은 대단히 솔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의외의 몇몇 인물들을 찍으려고 하는 거예요. 이니셜로 올리면 안될까요?
(에궁.. 아예 경찰 노릇까지 하려고 작정했구나... 제발 참아줘)
(알았어요 패스~~!)
역시 도발적인 주장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인 것 같군요.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의 내밀한 개인적인 이야기 두어 가지만 할까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사랑 방식에서도 솔직하신가요?
박용 : 애인이 있는데 누군가 마음에 들 경우 어떻게 하느냐 그거죠? 전 주로 연애할 때는 상대방에게 콩깍지가 확 씌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별로 한눈을 팔지 않구요. 또 한눈을 팔더라도 정말 마음속 깊게 호감을 갖은 적도 없구요. 괜찮네.... 이 정도여서요.
별로 신경은 안쓰는 편이구요. 누가 절 좋아한다더라는 건 앤에게 이야기 해주는 편이구요.
제가 이 질문을 드린 건, 지금까지 말씀하신 거와 같이 실생활에서도 거침이 없나, 이렇게 화끈한가 궁금해서 드린 겁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지금 집에서 사세요? 아님 혼자 사세요?
박용 : 집에서 살아요.
독립할 생각은 없으신지?
박용 : 때가 되면 할 생각입니다. 아마도 그 시기는 애인이 군대를 갔다 온 후에야 결정 될 것 같아요.
네, 요즘에 용 씨가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긴 합니다. 자세히는 모르나 요즘 님을 가장 괴롭히는 사항이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박용 : 금전이죠. 백수거든요 ^^
청년 실업자 대열에 끼신 거군요. ^^
박용 : 자의적인 백수가 아니라 타의적인 백수라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렇지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용이 씨가 얼른 백수 대열에서 이탈해, 애인과 알콩달콩하면서 인권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게이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한 마디 조언이 있다면 해주세요. 커밍아웃을 앞서 한 사람으로써 말입니다.
박용 :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꼭 잊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어떤 뜻이죠?
박용 : 현재를 너무 비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전보다 분명 좋아지고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구요. 거기다 별로 노력도 안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더 못했던 시절을 잊지 말자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상황은 더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은 저조하잖아요.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특히 친구사이 같은 경우) 이제 후진을 양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현재까지도 왕년에 회장 한두 번 해보신 분들이 중심에 서서 계신 걸 보면 이젠 물갈이할 때도 됐다 싶어요.
전 요새 생각이 그래요. 현 국방장관이 적체된 진급자를 위해서 정년시한을 두겠다고 한 것처럼 주기적으로 물갈이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D 단체가 그 일은 많이 앞서 있다고 생각하구요. 친구사이는 아직까지 시도도 못해 보고 있는 게 사실이죠?
늘 젊은피를 수혈한다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지난 파병반대 시위 때도 보셨으니 아셨을 거예요. 초라한 친구사이의 반이모와 팔팔한 D 단체의 그 모습들을요.
이넘 저넘 이뇬 저뇬 편가르는 것 같고, 어딘 어떤데 우린 왜 이래 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은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암튼 전 그래요. 이왕 편갈라서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이상 현 상황이 바뀌어야 합니다. 올챙이적 생각을 하자는 거죠.
아, 장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갈증이 많이 날 테니 가셔서 맥주로 목 축이시기 바랍니다.
*이 인터뷰 내용은 박용 씨와 인터뷰어의 허락없이 다른 곳에 절대 게재할 수 없습니다.
(박용 : polo_bvlgari@hotmail.com)
(이송희일 : gondola21@gondol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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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닉네임은 ‘스파게티나’이다. 스파게티집을 하고 있어서 친구들이 장난삼아 붙여준 별명이다. 우아한 닉네임만 듣고 그 역시 예쁘고 도도한 도회풍(?) 게이일 거라는 선입견은 갖지 않기 바란다. 아래 이야기를 읽어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그는 생활력 강하고 듬직하...
안녕하세요. 저는 새롭게 커밍아웃 인터뷰를 담당하게 된 라이카라고 합니다. 이번에 인터뷰를 해 주신 분은 김용일 형입니다. 나이는 마흔이 살짝 넘었구요. 인터뷰 초짜인 저는 그의 유쾌함을 지면에 옮기고 싶었어요. 친구사이 게이코러스와 수영모임인 마린보이에서 ...
친구사이 회원이자 이번 인터뷰어인 '전재우' 씨는 며칠 전, 교정이 덜 된 원고를 남긴 채 훌쩍 아프리카로 떠났다. 류청규 씨의 인터뷰는 이미 일 년 전에 약속된 터였다. 전재우 씨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과연 류청규 씨의 천방지축 입담을 당해냈을까 싶다. 그의 천...
그의 별명은 '마님'이다. 항상 단아한 행동거지와 말씀씀이로 천박한 동생들에게 귀감이 되어온 바, 마치 조선 시대 화폭에서 걸어나온 마님을 대하는 듯한 정갈함이 항상 몸에 배여 있다. 또 그는 2000년도 친구사이 회장이기도 하다. 말수를 아끼는 그 세심함 뒤엔, '...
그는 종로 이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잠을 조금 잔 후 그는 낮에 회사에 출근한다. 이처럼 맹렬히 사는 이유가 뭘까? 우린 주제를 그의 닉네임인 '순수한 소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 가닥은 그의 특이한 이중생활로 흘러가고 말았다. 누군...
지금껏 했던 커밍아웃 인터뷰 중,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인터뷰였다. 그의 언어는 그의 솔직함 때문에 더욱 도발적이었고, 미처 우리가 발설하지 못한 부분을 저어함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데 인터뷰어는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뼈속까지 게이다, 그의 진정성을...
며칠 전 우리는 그가 퇴근할 무렵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msn을 통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시간 이상이 걸렸고, 시무룩하게 시작되었던 인터뷰는 춤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셀 위 댄스, 정말로 그에게 맞는 행복한 수사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이...
그는 사랑니를 빼느라 진통제를 먹고 있어 정신이 몽롱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단시간 안에 게이 커뮤니티 속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에 대해 궁금하는 이가 많다. 인터뷰 과정에서도 보겠지만 그는 소박한 소망, ...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재흠은 마음006과 친구사이의 회원이기도 했다. 언제나 밝은 면으로 사람을 대하려는 태도가 있다면, 한편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도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열성도 함께 겸하고 있는 그와 '복날은 간다'라는 제...
# 인터뷰의 질문들에 답을 달며... 몇년을 알아온 이 '커밍아웃 게시판'의 관리자로부터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수많은 인터뷰를 했었지만 대부분 개인적이기 보단 커뮤니티를 알리고 동성애자들이 처한 일반적인 현실과 에이즈문제 등을 다루...
천정남, 98년 친구사이 회장. 이 인터뷰는 2001년에 행해졌고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터뷰 뒤에 후기를 적어놓는다. 1. 당신은 98년 친구사이 회장이었다. 우린 당시 언론에서 당신의 인권 운동 활동에 대해 가끔 들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