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05 전재우 : 셀 위 댄스

며칠 전 우리는 그가 퇴근할 무렵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msn을 통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시간 이상이 걸렸고, 시무룩하게 시작되었던 인터뷰는 춤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셀 위 댄스, 정말로 그에게 맞는 행복한 수사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이 전재우 씨는 인터뷰 공개 과정에 활력을 넣기 위해 인터뷰 과정에서 흘러나온 사적인 대화들을 공개하는 것을 흔쾌히 수락했다. off the record로 첨부한다. (참조 : 인터뷰어 채팅 아이디 '꽃사슴')





나이는 만 서른 셋이고 이름은 전재우입니다.
닉네임은  춤샘, 혹은 명안.

지금 친구사이 회장을 하고 계시죠? 힘드시죠?

재우 : 네!... 라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면 무지 갑갑하겠죠? ㅎㅎㅎ
힘들어요. 하지만 꽃사슴 님을 비롯한 회원들이 많이 도와주시니까... 힘들어도 해야죠. 개인적으로는 제가 좀 더 젊었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꽃사슴' 아이디에 방점이 찍혀 반가운 마음입니다. 그래도 일 하시면서 가장 애로 사항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재우 : 애로사항이라......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동성애자인권운동이란 눈에 보이는 목표나 결승점 혹은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으니까, 어떤 방향으로 활동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안 따라주니 답답하고요.^^

off the record

재우 : 인터뷰 대답하기도 힘들군.
꽃사슴 : 초반 공식 멘트의 압박이라 그래.
재우 : 화려하고 있어 보이게 대답해야 될까?
꽃사슴 : 형, 하고 싶은 대로.

재우 :  빨리 질문이나 하시죠.

네. 그래도 요즘 들어 친구사이에 활력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전재우 씨가 회장이라는 이유말고 더 다른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재우 : 없습니다.^^ 농담이구요, 내적으로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그간 축적되어온 친구사이의 인력자원들이 풀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습니다. 국내 게이 커뮤니티의 특성상, 가족적 성격이 강한데요 친구사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 면들을 비집고 들어가서 옷소매 붙들고(?) 호소했던 거죠. 같이 일하자고 말입니다. 일정부분 효과는 거두었지만 그런 수공업적이고 전근대적인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또... 외부적으로는 변화하는 게이 커뮤니티의 모습들을 반영하고자 하던 노력이 약간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집에 커밍아웃은 하셨나요?

재우 : 네.

언제 어떤 계기로?

재우 : 친구사이 활동 초창기 시절.... 한 육 년 전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꽤 오래되었군요.

재우 : 네, 사실 커밍아웃 한 지 오래되었는데, 이런 인터뷰 하려니까 쑥스럽네요.

조신한 척하지 마시고 있는 대로 말씀하세요.

재우 : 그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단 부딪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활동을 하면서 커밍아웃의 필요성도 느꼈구요.
사실 저는 아주 가족구성원간의 유대감이 단단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막내라 사랑도 많이 받았던 것 같고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내 모습을 감추기 싫었고, 내가 노력하면 가족들의 이해와 지지까지도(맹랑하게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커밍아웃은 한 번 선언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게 지금 제일 저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인상적이군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라는 말이. 그럼 주변 친우분들한테도 뭐, 스스럼없이 밝히셨나요?

재우 : 밝힐 필요가 있다면 밝히겠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묻지도 않는데 '나 게이야' '나 게이야. 나 좀 봐줘' 이러고 다닐 수는 없죠.

중요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커밍아웃의 요점일 수도 있겠어요. 우린 전재우 씨의 인터뷰 주제를 잡기 위해 참 많은 말을 했습니다. 재우 님의 소설 습작 일기를 훔쳐볼 것인지 아니면 님의 장기에 대해서 말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다 스스로 '춤샘'이라 칭하며 떠벌리고 다니는 춤 솜씨로 낙찰을 보았지요.

재우 : 그랬던가요? 워낙 가리고 싶은 치부가 많아서리...^^ 겁이 나네요. 춤샘에서 '샘'은 선생님의 준말이 아니고 물이 솟아오르는 샘입니다.

참 황당한 말씀이군요. 그간 소설 습작은 몇 편 정도나 하셨나요?

재우 : 글쎄요... 장편, 단편, 중편 가리지 않고 대략, 사십여 편 정도 되겠죠. 미완성인 것도 포함해서...^^

아, 꽤 많군요! 우린 '명안'이라는 닉네임으로 쓴 당신의 소설들을 인터넷에서 적잖이 본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론 인터넷북으로 출간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재우 : 흠...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었음)이 된 소설집 '핑크스카프' 말씀 하시는군요. 그 회사 망했어요. 하긴 회사가 망한 건 아니고 인터넷북관련 사업을 접었죠. 핑크스카프도 몇 사람이나 사서 봤는지도 모르고, 인세는 물론 못 받았죠(기껏 몇 만원밖에 안 되겠지만)..... 암튼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이곳저곳에서 재우 씨의 소설들을 본 것 같은데, 여기 독자들을 위해 소설들 보기에 좋은 인터넷 사이트 하나 정도라도 소개해주셨으면 해요.

재우 :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게이문학닷컴(gaymunhak.com), 꽃사슴님이 황송하게도 지면을 만들어주신 소해피(sohapy.or.kr), ... 참 게이문학닷컴에서 이번에 두 번째 무크지를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도 소설이 포함될 겁니다.

네. 우문일 수도 있겠는데, 소설에 관해 한 말씀 더 질문하겠습니다.

재우 : 현답으로 대답해드리죠.

마음 속에 맺힌 응어리들이 많아서 소설을 쓰시게 된 겁니까? 아니면 직업과 상관없이 그전부터 소설쓰기가 좋아서 쓰게 되었나요?

재우 : 정말 우문이군요. 예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 있는 것 같은데요.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고르라면 전자를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소설은 제가 택한 형식적 방법이었던 것 같고요. 소설이든 무엇이든 저는 자신을 표현하거나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끼'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게이로서 살면서 맺힌 응어리 혹은 '한'으로 인해 폭발했던 것 같네요. 글이라는 틀을 갖고서 말입니다. 물론 소설쓰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말하기 껄끄러워 하는 게 한 가지 있어요. 그전에 사라진 당신의 인터뷰 글에도 나왔던 거지요. 당신의 직업 때문에 가지는 불합리한 추측들과 환타지에 대한 경계 말입니다. 계속 의사 일을 하실 거지요?

재우 : 불합리한 추측과 환타지라...ㅎㅎㅎ 솔직히 그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의사라서 가지는 추측, 환타지 그런 게 있나? 의사 일은 저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다면 계속 할 수도 있겠지요, 근데 그보다 전에, 게이로서 한국에서 살면서 직업적으로 장기적인 전망을 갖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 그렇죠?

재우 : 재테크에 관심을 가진다거나 직업에서 성공하거나 하는 것들은 핵가족을 이루고 사는 안정된 일반 가정에 속해 있는 이성애자들의 경우에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포부이겠으나 동성애자들한테는 쉬운 문제가 아니죠. 노후를 생각해서 당연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한국 땅에서 언제 퇴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자리잡고 있거든요. 내일 당장 직장에서 짤리거나 집에서 쫓겨나서 지금까지는 다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또한 우리 주위에는 아직 나이 들고 안정된 게이의 모델이 없습니다. 숨어 사는 동성애자들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네.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음직한 진지한 고민일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정한 주제에 천착해보기로 합시다. 전 춤에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재우 씨는 몇 종류의 춤에 대한 테크닉을 가지고 계신가요?

재우 : 남들 앞에 가장 자신있게 내보일 수 있는 건 역시 나이트에서 추는 내 스타일의 막춤입니다.^^ 디스코, 테크노, 라틴댄스, 재즈댄스 등을 맘대로 접목시킨...

그거 말고 재우 님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춤들...

재우 : 자격증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구요. 시간과 돈, 그리고 열의를 투자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종목은 댄스스포츠입니다. 라틴 5종목과 모던 5종목에 대한 초급교사자격증이 있습니다. 아마츄어 수준이라 남들에게 내보일만한 수준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교사 자격증까지 따려면 꽤 정성을 들였을 것 같은데.. 몇 년이나 투자하신 건가요?

재우 : 그냥 좋아서 즐긴 건데... 삼 년 정도 투자했나 봅니다. 하지만, 아주 어렸을 적 '장미화'씨의 노래와 춤에서부터 초등학교 때의 마이클잭슨 춤, 텔레비전에 나오는 춤들을 따라하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데뷔무대였죠.^^ 그리고 이태원 초창기 스팔타쿠스, 지퍼에서 익힌 춤들과 엄정화 립싱크 등이 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긴 재우 씨의 '엄정화' 노래와 춤 때문에 춤을 버린 사람들이 많지요. 너무 잘 추셔서 재우 씨 앞에서 엄두내지 못한다는 소문이 살짝 돌긴 돌았어요. 왜 춤을 버렸죠?

재우 : 제가 버린 게 아니라 춤이 절 버렸어요. ㅎㅎㅎ 며칠 전에 이태원 어느 클럽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춤을 추는데 영 부끄럽더군요.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어요. 한때는 의사 외에 부업으로 혹은 전업으로 춤선생님이 되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사실 그러기엔 나이도 너무 들었고 몸매도 쭉쭉빵빵하지 못하니까...  

흠.... 좀 속보이는 하소연이군요. 하지만 전 우연찮게 찍은 재우 씨에 관한 사진 한 장이 있어요.

재우 : 무슨 사진요?

올해 봄, 친구사이 엠티에 가서 숙취에 찍은 사진인데, 산장 앞마당에 친구사이 회원들을 정렬시킨 채 춤을 가르치던 사진이었습니다.

재우 : 저도 보여주세요. ㅎㅎㅎ

제 딴엔 봄빛도 좋고, 나른한 아침에 갓 모내기 하다 온 것 같은 회원들에게 라틴 댄스를 강습하던 그 모습이 이뻐보였지요. 자, 질문 들어갑니다. 요즘, 춤샘으로 명성을 떨치며 이런 저런 엠티를 따라다니시던데 기분이 어떤가요?

재우 : 올해 몇군데 이반 엠티 따라다니며 춤을 가르쳤는데요, 그래도 잘 배워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순간들을 즐기고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대충 어디어디 강습을 나가셨는지.....

재우 : 그렇게 물으시니까 대단한 강습인 거 같은데요. 작년에 친구사이에 댄스스포츠 소모임 만들어서 퀴어문화축제 때 선을 보였었죠. 모임은 일년 가량 같이 했는데 결국 올 봄에 흐지부지 되어 참 아쉬웠습니다. 대신 올해는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때 친구사이 수영모임 마린보이팀의 안무를 했지요. 홈페이지 초기화면 사진에도 나오는 동작이죠. 그리고 올 여름에 친구사이 엠티, 청소년동성애자인권캠프, 이반시티 엠티에서 참가자들에게 라틴댄스 강습을 했습니다. 사실 저보다 뛰어난 이반 춤꾼들이 많은데 다들 커밍아웃에 대한 부담때문에 잘 안나서니까 하는 수 없이 제가 하게 되는 거죠.

겸손 모드로군요. 반응들은 어떻던가요?

재우 : 좋았죠.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이반시티 엠티에 갔을 때의 경우는 반응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좋았어요.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시간 가까이 돌렸죠.

그래요?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가슴이 뿌듯하시겠어요.

재우 : 질문이 좀 낯간지럽네요. 그냥 그런 작용과 반작용이 좋아요. 춤이란 건 사람들을 한데 섞이게 하고 긴장감을 풀게 만들어서 친해지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거든요. '몸'을 부딪치는 거니까요. 그래서 단체 모임에선 두명이서 커플을 만들어 추는 춤인 댄스스포츠 종목들보다 여럿이서 원형을 그리며 추는 춤이 어울리죠.

네. 말씀하신 것 중에 퀴어문화축제 거리 퍼레이드 때 참여한 게 나오는데, 저도 작년이 기억납니다. 춤 모임의 화려한 율동과 당당함.... 아마 최초이지 않을까 싶군요. 한국 거리행렬에서 그렇게 춤을 춘다는 거 말입니다. 그 당시 어떤 기분이셨나요?

재우 :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죠...

흠...... -.-

재우 : ㅎㅎ 그때는 제가 모임을 이끄는 입장이었기에 좀 부담스럽고 긴장도 되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리에서 추는 춤이란 '우린 살아 있어.' 혹은 '우리도 즐겁게 놀 줄 알아.' 라는 동성애자들의 주장을 몸으로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막상 거리에 섰을 때는 솔직히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나요? 그냥 정신 빠진 듯이 노는 거죠.

재미있었나요?



재우 : 네. 근데 끝난 후에 녹화한 자료화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낯이 뜨거웠어요. 같이 춤을 췄던 멤버들은 멋있게 보이던데... 전 복장도 그렇고 동작들도 그렇고 정말 '퀴어'스러웠거든요. 그래서 한 친구가 그 동영상 같이 보면서 "너 저래."(네가 저렇게 별스런 꼴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뛴다는 거 아니? 라는 뉘앙스) 하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에 게이커뮤니티가 좋은 거죠.

off the record

재우 : 나 이렇게 인터뷰하면 안 팔리는 거 아냐?
꽃사슴 : 웃겨, 이러나저러나 형은 안 팔릴 거야. 마지막 엔딩이나 기대하셔.

그래도 즐거우셨다니 더할 나위 없겠죠. 다음에도 또 나가서 퍼레이드의 꽃이 되실 생각이세요?

재우 : 기회가 된다면요. 하지만 혼자서 눈길을 잡아끄는 꽃보다는 푸짐한 잔치상에 차려놓은 보기좋고 맛깔스러운 음식의 하나가 되고 싶소.

off the record

재우 : 음, 나 말 잘한다.ㅎㅎㅎ
꽃사슴 : 거울 보고 춤추고 그러면 너처럼 자뻑이 되나 봐?

춤에 관해 하나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저 같은 춤치도 춤을 출 때는 어떤 '육체의 해방' 같은 걸 느껴요. 땀 흠뻑 빼고 나면 말입니다. 실은 게이 커뮤니티에 처음 나왔을 때 당신의 안내로 이태원 게이 바를 알게 되었지요. 재우 씨는 춤을 추는 동안 어떤 느낌을 가집니까?

재우 : 음악+미술+운동=무용인 거 아시죠? 카타르시스를 느끼지요.

지금 저한테 지금 강습하시는 건가요? ^^

재우 : 전 춤추는 동안에는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표현하는 몸짓이 그 음악의 분위기와 잘 맞을 때는 희열을 느끼지요.

어떤 종류의 곡이 가장 자신이 춤 추기에 좋죠?

재우 : 아하~ 잘 모르겠어요... 7,80년대 디스코 음악? 하지만 테크노도 좋아요.

얄궂은 질문 하나 더 드려야겠어요. 지금까지 사귄 분들하고 방에서 단 둘이 춤을 춘 적이 있나요? 조명 잔뜩 힘주고 둘이 얼싸안은 채 빙글빙글 도는 그런 이미지 말입니다.

재우 : 네.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은 워낙 춤추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제가 억지로 가르쳐서 방안에서 춰본 적이 몇 번 있어요.

정말요? 거의 시계는 뚝딱뚝딱, 그런 놀이처럼 되었겠군요.

재우 : 그런 놀이도 있나요?

아빠 발 위에 발을 올리고... 시계는 뚝딱뚝딱 그런 놀이 안 해보셨어요? 좀비처럼 어그적거리는....

재우 : 아하... '여름향기'에서 송승헌과 손예진이 풀밭위에서 추었던 거...

그렇죠.

재우 : 네, 그것도 좋은 방법이죠.

아무튼 낭만적 이미지와는 별로 상관없는 분이라는 게 인터뷰에서 드러나버렸군요.

재우 : 근데 잘못하면 발을 세게 밟힌 답니다. 낭만적 이미지는 꽃사슴님한테 양보하죠. 제 몫이 아닌 듯싶네요.

아하하하... 재우 님은 친구사이 초창기 멤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간 참 지난한 과정이 흘렀고, 벌써 내년이면 10년이 됩니다. 10년 즈음에 와서 드는 느낌, 그 주마등 같은 편린들에 대해 간략히 스케치해주셨으면 해요.

재우 : 그때는 공개적인 오프라인 모임이 친구사이밖에 없다시피한 상황이었으니까 사무실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자긍심을 얻을 수 있었지요. 할 일도 많은 것처럼 보였구요. 지금은...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이 정도였는가 혹은 제대로 해왔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잘못 되었다면 어떻게 방향을 틀거나 고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때는 참 단순하고 쉬웠는데 지금의 한국 게이커뮤니티는 역사에 비해 너무 양적으로만 팽창해버리고 다양해져버려서 친구사이의 정체성을 잡는 일이 참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우 : 그리고... 잘 모르겠어요. 십 년이 지난 지금은 그냥 내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서 말입니다. 물론 가족 이기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귀를 열어놓고, 목소리를 가다듬되 언제나 앞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해야겠죠.

워낙 기존 멤버들간의 관계가 돈독하고 젊은 피가 수혈이 안 돼서 한때는 '양로원'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재우 씨가 회장이 된 이래 젊은 피 수혈 작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 같더군요. ^^ 우리 젊은 친구들에게 해줄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재우 : 저도 아직 젊은 걸요...ㅠㅠ

네, 그럼요. 누가 뭐라겠어요.

재우 : 젊은 친구들의 눈높이에 맞고 친구사이의 활동방향과도 부합하는 돌파구를 찾고 싶은데 잡힐 듯 말듯하면서도 잘 모르겠네요.
우선 내부의 젊은 친구들한테는요, 나이나 권위 같은 거 생각지 말고, 눈치보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고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친구사이를 보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친구사이의 문턱이 정말로 낮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길진 않지만 십 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동안에는 친구사이가 엘리트의식에 빠져 있다든가, 단순한 친목모임에 불과하다든가 하는 등의 소문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다면 와서 함께 겪어보시고, 사실이라면 바람직하게 고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친구사이에 대해 모르는 친구들에게는요, 채팅하고 번개하고 크루징하고 괴로울 때 인터넷에 글쓰는 것,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 만나서 둘이서 알콩달콩하게 사는 것만이 동성애자로서의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면 저희들 같은 단체의 활동에 참가해서 힘을 실어주시든가 아니면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단체를 만들어서 보란 듯 활동해주시거나 둘 중 하나는 해줬으면 합니다.

그래도 챠밍스쿨, 이라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피돌기가 빨라진 듯한 느낌이 역력하던 걸요.

재우 : 네. 챠밍스쿨 뿐 아니라 올해 들어서 그동안 온라인에만 머물러 있던 게이들이 오프라인 활동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할 조짐을 보입니다. 제가 올해 참석했던 몇몇 오프라인 행사들(친구사이 행사를 비롯해서 타단체 행사까지)에서 그런 분위기가 역력했는데요.



재우 : 그런 내적인 욕구가 있었다는 걸 우리는 간과하고 단순히 게이들이 영원히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거죠. 교양강좌인 챠밍스쿨은 그런 중간단계에 있는 분들에게 좋은 운송수단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를 보는 사람들도 한번 쯤은 참석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챠밍스쿨이 계속 지속되고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정도만 사적으로 질문하고 싶어요.

재우 : 더 하셔도 되요.

off the record

꽃사슴 : 당신, 퇴근해야한다며?
재우 : 어차피 다른 직원들 다 가버렸어. 나 째려보면서.....

어그적거리며 좀비 춤을 출 애인이 있나요?

재우 : 네?

시계는 뚝딱뚝딱, 하는 좀비 춤을 밤늦게 창문 열어놓고 출 애인이 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재우 : 없습니다. 참 좋은 친구랑 오래 사귀었었는데 최근에 헤어졌네요.

애인이 춤을 잘 추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재우 : 네. 그 뿐 아니라 술도 조금 마실 줄 알고...

off the record

재우 : 더 말해도 되냐? 눈치...
꽃사슴 : 그럼그럼, 형은 팔려야 된다며?

재우 : 착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면 좋겠어요. 겸손하고...

과연 그런 남자가 나타날까는 미지수겠지만 꼭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질문 드릴까 해요.

off the record

재우 : 아직 안 끝났어.
꽃사슴 : 하하... 대단하시구려.

재우 : 꽃사슴만큼 이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면... 오케이... 이렇게 말하면 영원히 안 팔릴 것이다...ㅠㅠ

이거 간접 프로포즈인가요? 이쁜 줄은 알아가지고....

재우 : 입 닥치고 질문이나 하세요. 제가 매너가 너무 좋다보니 인터뷰어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접대용 멘트를 날린 거죠.

어련하시겠어요. 재우 님이 그런 좋은 남자 만나서 연애도 잘하고, 애인이랑 인권운동도 열심히 하고, 특히 붉은 방에서 함께 춤추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사이 회원들 중 간악한 자들 몇몇은 내년까지 재우 님을 회장으로 추대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간악한 자들을 지금 이야기한다면... 천 모씨, 꽃사슴, 이쁜이 등등 입니다.


재우 : 대의를 위하여 당장 제명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일년 동안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더 늦기 전에 큰 스캔들 만든 다음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습니다.
대표직은 저도 할만한 여건만 된다면 하겠죠. 저 뿐만 아니라 지금 활동하는 모든 회원들이 마찬가지리라 생각합니다. 근데 다들 여건이 안되고 저 역시 내년에 또 하긴 힘들 것 같네요. 사실 일년동안 갖고 있던 카드를 다 썼는데 내밀 수 있는 카드가 뭐 더 있겠어요? ^^ 5년 쯤 뒤에 한번 더 시켜주면 할께요.

off the record

꽃사슴 : 인터뷰하느라 수고했어.
재우 : 야, 하나 빠졌어.
꽃사슴 : 뭐?
재우 : 돈 이야기. 넘 노골적인가?
꽃사슴 : 하하......

네.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모론자들과 한바탕 난리굿 싸움을 벌이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끝내기 직전 재우 씨는 제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친구사이의 재정상태는 어떻습니까? 역시 회장님 답군요. 멍석 쫘악 폈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재우 : 친구사이는 회원들의 자발적 회비와 약간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요... 사무실 월세 내기 빠듯할 정도로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실 친구사이가 인권단체라는 이름에 걸맞는 활동을 하려면 상근활동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실정이지요. 조금씩이라도 친구사이에 후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후원금이체란이 생길 것 같은데,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친구사이 전격 앵벌이로 나선 회장님의 노고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우 : (무서워... 모두들 퇴근하고 불꺼진 사무실...)


인터뷰 끝난 후의 off the record


꽃사슴 : 하나 더 할까?

재우 : 머?

꽃사슴 : 친구사이 회장 마칠 때까지는 팔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그런 협박성 질문. 그거 할까?

재우 : 그럴 땐 이렇게 대답해주지. 두 달만 참으세요.

꽃사슴 : 누구한테? 미지의 니 낭군한테?

재우 : 여태껏 제게 프로포즈 했던 분들 많지만 두 달 후로 다 미뤄뒀으니 그 후에 공정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겠다고!.... 하하하

꽃사슴 : 어쩜 좋아요. 두 달이 아니라 니 임기는 내년 3월까진데.....


'명안'이라는 필명으로 전재우 씨가 쓴 소설들을 읽으려면
http://gaymunhak.com
http://sohappy.or.kr
전재우 jjoohyun@chol.com


*이 인터뷰 내용은 전재우 씨와 인터뷰어의 허락없이 다른 곳에 절대 게재할 수 없습니다.
(이송희일 : gondola21@gondol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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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