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의 질문들에 답을 달며...
몇년을 알아온 이 '커밍아웃 게시판'의 관리자로부터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수많은 인터뷰를 했었지만 대부분 개인적이기 보단 커뮤니티를 알리고 동성애자들이 처한 일반적인 현실과 에이즈문제 등을 다루는 주제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그 내용이 약간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먼저 늘 대하던 이성애자 인터뷰어가 아닌 같은 성정체성을 가진 이로부터의 질문이라는 점이 항상 인터뷰의 시작을 열던, '동성애자/동성연애자'.'무지개깃발과 핑크 트라이앵글'과 같이 지겹도록 떠든 '용어정리'와 '동성애 인권운동의 역사' 등등을 생략하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중에 인터뷰의 결과를 접하는 대상도 이성애자가 아니고 대부분 동성애자일 것을 생각하면 이제껏과는 다른 질문들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막상 개인적인 주제를 정하려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있었다. 게시판 관리자와 나는 사석에서 농담반 진담반의 대화들 속에서 '뜨개질 하는 남자'라는 주제를 잡았었다. 내 취미에 대한 그의 질문에 '나 뜨개질 할 줄 알아!'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을 거다. 내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또다른 이야기들은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금 내 일상의 '평범'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남들에게 보일 것도, 흥미를 유발할 꺼리도 없는 '학교, 집, 학교, 집...'의 학생 신분으로 뭔가 이야기 꺼리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억지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인터뷰를 '당연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지난 몇년간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진 빚이 있다면 아마 내 주위에 있는 많은 '동지'와 '친구'와 '연인들'일 것이다. 4년전 학교모임을 통해 처음 커뮤니티에 '데뷰'하였을 때부터 게이 커뮤니티와 나 자신을 묘사할 때 따라다니던 '음지'라는 표현에 나는, 뭐랄까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서 일종의 자격지심에서 출발한 나의 의지는 나 스스로를 '양지'로 밀어내어 왔다. 그러는 동안 알게된 많은 사람들은 내가 힘들 때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어 주었다.
내가 커뮤니티에서 받은 혜택들을 다른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작은 바램이 이 인터뷰를 결심하게 한 것 같다. 자신과 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고서 같이 행동하며 같이 준비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개인적인 관계뿐 아니라 이런 인터뷰를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다고 바랬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래의 인터뷰에 어떠한 해답이 제시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가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한번 마음이 굳어지고 난 뒤 별 생각없이 일을 진행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이 인터뷰가 나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서도 이러한 고민들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1. 당신은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 인터뷰의 주제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당신은 '자신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속속들이 밝히는 일이 자신을 재정의하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원래 인터뷰를 싫어하는가? 아니면 아직 자신에 대해 말할 게 없다고 느껴서인가?
동훈 : 인터뷰란게 그런것 같다. 대화하듯 전개되는 말투 속에서 인터뷰의 결과물을 나중에 대하는 이들은 마치 인터뷰 대상자와의 거리를 개인적인 것으로 환원가능케 느낀다. 하지만 그들은 주어진 내용만을 친밀한 대화의 내용인양 강요받을 뿐 스스로 '수다꺼리'를 제시하진 못한다. 또 대부분의 인터뷰어들은 그 객관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차라리 인터뷰는 주관적이고 정치적이라고 고백하고 시작하는게 옳을듯 싶다. 아직까진 개인적인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매체를 접할 기회가 본인에게는 없었다.
오늘의 인터뷰도 그러할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객관적이기를 원해도 질문자는 원하는 답을 가지고 있고, 대답하는 사람 또한 모든 것을 다 보여주기 힘들다. 게다가 진실이란게 이렇게 글로 표현되는 '격식의 옷'을 입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개인적인 주제를 다루기로 한 이상 나는 인터뷰의 전개방식과 내 표현의 방법등에 더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신문지상에 간단히 소개되는 뉴스거리가 아닌 '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 미숙하다고 고백할 수 밖에...
또 이렇게 문자로 남는 인터뷰에는 부담이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나 자신이 문자화된 글처럼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기에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자꾸 내 생각의 영역을 좁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표현을 자꾸 거르게 되고 내 사고를 검열하게 된다. '수다'를 떠는 것이 훨씬 개인적인 인터뷰라고 생각한다. 순간순간의 내 생각에, 내 자신의 모습에 훨씬 충실하고 싶은게 내 욕심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인터뷰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보일만한 특별하고 흥미있는게 없는 것이 나 자신을 주눅들게 하는 것 같다.
내 '과거'를 궁금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세살땐가? (정말로 칸을 메꾸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다.. -_-;;)
2.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그간 여러 인터뷰에서 많이 우려 먹었던 '게이 여성성의 정치성', 가령 뜨개질 하는 남성이 뭐 어때서?와 같은 당당한 제스추어를 주제로 삼기로 합의했다. 당신은 다른 인터뷰에선 그런 점들을 어떻게 말해왔나?
동훈 : 정말 잘 우려먹었음을 고백한다. 매체를 통해 보여진 이상 나의 뜨개질 솜씨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성역할 구분을 혼란시키고 '마초적 남성성'의 우월성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인터뷰어들이 한 게이의 뜨개질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페미니즘과 진보적 정치성을 띄는 매체일수록 이러한 그림을 원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나 또한 그들의 그런 수요를 적당히 이용한 셈이 된다.
내가 뜨게질을 배운 시점도 내가 대학모임에서 활동을 시작하던 때임을 생각하면 내 욕망 또한 정치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음... 개인적인 인터뷰치고는 너무 '안'개인적인 이야기뿐인 것 같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생각나는데로 자판을 두드리려고 하다보니 글을 쓰다가 약간 흥분한 것 같다.)
3. 정말로 당신은 뜨개질을 잘하는가? 여기 솜씨를 과시해달라.
동훈 : 레즈비언 후배에게서 뜨개질을 배웠다. 처음에 뜬 목도리는 선물했다. 그 뒤로 만든 목도리, 모자들 중에서 몇개는 직접 걸치고 다닌다. 어떤 것들은 나름대로 세련된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뜨개질이란게 생각보다 재료비가 많이 들어서 노력한 시간을 제하고라도 별로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재작년 가을에는 주위에 있는 후배들에게 목도리 뜨는 것을 가르쳤다. 분명한 것은 그런 행위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4. 그럼 뜨개질 말고, 소위 '여성적 젠더의 취향'으로 분류되는 다른 특기 사항은 없는가? 가령 꽃꽂이나 요리 같은 것들.
동훈 : 언젠가 '친구사이' 사무실에 케잌을 들고 간 적이 있었는데, 그거 내가 만든 '녹차쉬퐁케잌'이다. 자취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오븐을 샀었다. 자랑을 하자면 내가 구운 케잌은 주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매년 화이트데이에는 주문을 받아서 홈메이드 케잌을 팔았었다. 올해 봄에는 열판정도 판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생크림케잌을 별루 좋아하지 않아서 '무스케잌'을 만들어 팔았는데, 벌써 내년 주문도 몇개 들어와있다.
빵, 케잌 뭐 이런 것들 말고도 다른 종류의 요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요리는 일종의 대화이다. 요리라는 행위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음식을 같이 나누는 이들의 행복에 대한 기대이다. 애인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 전날에 처음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봤다. 친구들을 자치집에 불렀을때 처음으로 탕수육을 만들었었다. 로맨틱한 저녁을 위해 초콜릿을 직접 만들었었고, 동아리 후배들을 위해서 과자를 구웠었다. 대화라는게 그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듯이 나의 요리 또한 그러하다.
꽃꽃이는 별루 생각해보지 않았다. 꽃선물하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 내가 사는 공간에서 꽃꽃이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절대 시들지 않는 꽃을 선물하기 위해 종이꽃접기를 연구한 적이 있었다. 도자기를 구워본 적이 있고, 이쁘게 선물포장하는 방법들을 알고 있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공예'라는 것들을 잘하고 좋아한다. '아름다움'이란게 대리석 조형물이나 액자속의 유화나 프레스코화에서만 찾아지는 게 아니지 않는가? 하찮은 것들이 아니라 '이쁜'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5. 난 당신한테 당신이 유년 시절에 고무줄 놀이나 인형 놀이를 했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질문들은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의 유년시절을 '식민화'하려는 기존 심리학의 지리멸렬한 호기심이 전제되어 있음을 당신도 잘 알 것이다. 다만, 난 당신이 자신의 취미 생활을 할 때 느껴지는 개인적인 만족과 기분을 묻고 싶다. 뜨개질이나 요리를 할 때 당신은 '행복'이란 추상적인 감정 말고 무엇을 능동적으로 느끼는가?
동훈 : 질문을 잘 이해못하겠다. '추상적인 감정'을 '능동적'으로 느낀다고 생각되는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에게 뜨개질이나 요리는 상황에 따르는 일종의 '대화'이자 '관계'의 확장이다. 난 늘 소통을 원한다. 내 주위사람들과 서로의 상황들과 생각들이 잘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준비한 음식들이 그러한 소통을 원할히하는 '윤활제'가 되기를 바란다. 나와 내 연인의 낭만적인 추억들에 내 목도리가 소품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이런 것들은 이상적인 생각들이고 보통 싱크대 앞에서는 간을 보느라 정신이 없고, 케잌용 생크림에 거품이 잘 일지 않아서 짜증을 내고 있을 것이다.
6. 얼마 전에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동성애자의 젠더 양식이 생리학적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한 실험을 했었다. 공중 화장실에 주인없는 아름다운 꽃다발을 놓고 화장실을 들낙거리는 남성 이성애자/남성 동성애자의 반응과 행동을 관찰했는데, 그의 통계와 주장에 따르면 그 꽃다발에 '열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대부분 게이였다고 한다. 당신은 당신의 취향과 기호가 '동성애자'라는 성적 지향성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또 이견이 있다면 그 미국 심리학자의 주장에 대해 말해달라)
동훈 : 개인적인 취향의 편차가 성적지향성의 편차보다 크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난 몇년간의 내 커뮤니티 경험을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 그들의 생각까지 알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겉모습만이라도 엄청 다양한 스팩트럼을 보았다. 일차원적인 겉모습들이 그리 다양한데, 하물며 그 속내들이야 뭐라 구분짓는 것 조차 힘들지 않을까? 많은 군상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단순판단은 매력적이나 위험하다고 본다.
미국 심리학자의 실험에서 꽃다발에 '열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몇 안 될 것 같은데... 그 몇명 중에 게이가 많았나보지, 뭐...
7. 이제 주제를 게이 커뮤니티 쪽으로 옮겨보자. 우린 종종, 아니 대부분 '여성스러운 게이'와 '마짜(혹은 바텀)'을 곧바로 연계시켜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듯싶다.이 점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의하는가? 아님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동훈 : '마짜'가 '여성스러운 게이'를 정의한다면 별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여성스러운'이라는 성역할이 '성행위역할'과 동일시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섹스에 있어서의 다양한 행위들에 '남 vs 여'라는 단순구분이 가능할지... '마짜'라는 용어를 '항문성교시'에 적용하는 것으로 한정한다면 분명 모든 '여성스러운 게이'가 '마짜'는 아닐 것이며, '남성스러운 게이' 중에도 '마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커뮤니티 내에서 '어머, 언니 제 관심꺼! 제가 저래보여두 마짜래.'라는 식으로 쓰일 때에는 '마짜'라는 용어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 같다. 섹스를 바로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녀석'의 여성스러움을 '비하'하는 표현인 듯...
8. 위의 질문과 연계된 것인데, 점점 더 한국 게이 커뮤니티에서 '마짜(혹은 바텀)'에 대한, 그리고 여성스러운 게이에 대한 배제와 주변화 과정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것을 거칠게 표현해서 '바텀포비아'라고 정의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 급부로 스포티한 게이, 마초, 근육질의 때짜(혹은 탑)이 선호되는 경향이 늘어나는 추세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동훈 : 음... 관리자가 너무 흥분한 것 같군... 이래서야 인터뷰가 아니라 정견발표장이 아니겠는가? 질문의 답은 질문 속에 이미 있다고 본다.
생각난게 하나 있는데 몇해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친구를 방문했을 때 본 기억나는 장면중의 하나이다. 난 한 기념품가게에 있었는데, 탄탄한 근육의 잘생긴 흑인 청년이 가게로 들어오더니 점원에게 코맹맹한 소리로 새로나온 화장품 샘플을 보여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 점원과 친구인 듯한 그 '쭉쭉빵빵'한 청년은 파우더를 연신 얼굴에 바르면서 점원과 수다를 쉬지 않고 떠들어 대었었다. 처음에는 그 당당한 '끼떨기'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는데, 알고 봤더니 캘리포니아 어디를 가도 몸매과시를 해대는 게이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들이 열심히 체육관을 다니며 근육을 키운다면 일단 게이로 의심해라는 미국 농담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탑'인건 아니다.
초가부장적인 미국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쁘아송'같은 게이가 무시당하는 것은 '이쁘고 잘 생기고 봐야된다'는 우리네 사회의 한 단면이 될 것이다.
9. 게이 커뮤니티의 젠더 양식에 관해서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사실 우린 이러나저러나 탑/바텀, 부취/팸과 같은 양분화된 젠더 역할 속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체현하고 있다. 그 '중간'이나 '없다'라는 표현들은 거부당하기 일쑤고, 쉽게 '올'이라는 모호한 수사 속에 숨기 마련이다.
당신은 이러한 양분되고 분절된, 혹은 이성애 관계를 그대로 답습한 듯보이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역할 놀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훈 :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해야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나와 다른 모습을 배척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분명 '때짜'와 '마짜'가 존재할 것이고, '바이'와 '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짜인 취향이 때짜를 선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올'이라는 가식의 옷을 입을 필요는 없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성성'에 대한 혐오와 '여성스러운 게이'에 대한 혐오를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정말 재미없는 교조적인 논조로군... -_-a)
10. 이제 당신에 관한 개인적인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현재 애인이 있나?
동훈 : 없다. 뻔히 알면서 뭐하러 물어보나? 괜히 심란하게... T.T
11. 애인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뜨개질할 목록은 무엇인가? 장갑? 목도리?
동훈 : 글쎄...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나에게 있어서 뜨개질이나 요리는 일종의 대화이다. 상호소통의 대화를 전제로 한다면 어떤 종류의 빵을 구을지는 둘의 관계에 달려있다. 애인이 생기면 이런 색깔의 목도리를 뜨겠다는 계획같은 건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다가 내가 원하고 서로 필요하면 뜨게질을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그런 대화의 소품들이 필요했던건 아닌것 같다. 가까운 관계였던 사람들중에 아직 내 케잌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당연히 훨씬 많은 시간과 공이 드는 뜨개질 소품을 받아본 사람은 극소수이다.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평생 케잌을 안 굽고 살 수도 있고 매일 요리하면서 살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가능성있는 것 같다.
12. 당신이 속해 있는 모임은 서울대 마음005(006에서 다시 내려간) 말고 '백 번의 토요일'이란 모임이 있다. 뜨개질하는 모임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떤 모임인지 소개해달라 .
'백번의 토요일'의 일부 멤버들...동훈,재흠,준석
동훈 : 그야말로 열심히 놀자는 모임이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친구들끼리 서른이 되기 전 '백번의 토요일'을 멋지게 보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대학생일때 만났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사회생활(내지는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어 예전처럼 자주 만나서 수다떨고 재미있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봄에 만든 일종의 친목모임이다. 주말에 어울려 놀러다니고 영화도 보고한다. 지난 여름에는 같이 동해로 놀러갔었다. 적극적인 놀이를 만들려고 노력중이다. 온라인상에서 조그만 소식지도 만들어 서로 돌려보고 있다.
혹자들은 '폭탄들의 모임', '문란한 관계들'이라고 우리들을 시기하기도 하지만, 뭐 별 신경쓰지 않는다.(아마도 이런 소문의 최근원지에는 이 커밍아웃 게시판의 관리자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소문만큼 '문란'하기를 다들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구성원중 한명은 이 게시판의 두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이고, 다음번 인터뷰도 구성원중 한명인 걸루 알고 있다. 굳이 구성원들을 소개할 필요가 없겠다.
새로운 멤버의 영입? 글쎄? 그만큼 적극적인 의사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우리랑 같이 놀 수 있는 재미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생각해보겠다.
13. 당신은 지겨워하겠지만 99년 마음006 회장이었던 전력을 핑계삼아 지금 모임 후배들의 달라진 특성이나 활동방향이 있다면 말해달라. 지겨워도 말해달라. 당부의 말도 함께....
동훈 : 역시나... 지겨운 질문이다. '김기호'로 더 알려진 나와 '서울대학교 이반 운동 모임 마음 005'... 내가 커뮤니티를 접하게된 창구였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난 자리를 제공하였으며, 내 생활을 바꿔버린 영향을 생각한다면, 사실 오늘의 인터뷰는 내 뜨게질보다는 '마음 005'와 나의 관계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터뷰는 너무 많았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인터뷰에 지쳤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만큼은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는 욕심이었지만, 역시 모임에 관한 얘기를 안 할 순 없겠다.
먼저 아직 내가 모임의 활동에 대한 '당부의 말'을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나는 여전히 모임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난 이제 '노땅'이고 모든 책임은 후배들에게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모임에 소홀한 건 내 게으름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임의 성격이 처음 만들어졌던 때와 내가 대표로 활동하던 때가 달랐던 것처럼 지금도 그때와는 다른 모습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치판단을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모임의 공식적인 활동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 개개인의 생활에 대한 '한마디'를 한다면, 꼭 나름의 커뮤니티를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면 주말의 이태원이 주는 위안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길 바란다. 그것은 단순히 연애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낮에도 서로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관계들을 만들기 바란다. 그리고 그런 관계들의 형성을 위해서 지금 시간들을 투자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심심해하는 '아줌마'들도 같이 끼워 놀자는 정도... ^_^
14. 당신은 이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개설되어 있는 '커밍아웃 게시판'의 효용가치에 대해 종종 비웃곤 했다. 물론 그것은 그간 잘 알고 지냈던 나에 대한 비웃음이기도 할 거고. 물론 나도 요즘 젊은 신세대 인기 싸이트마다 버젓이 올라오는 자신의 프로필 사진-소개서들과 이 커밍아웃 게시판의 차이에 대해 골몰하고 있는 중이다. 만일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면 그 점에 대해 말해 달라.
동훈 : 분명한 것은 나는 '커밍아웃 게시판'의 호용가치를 비웃은 적이 없다. 앞서 언급한데로 나 또한 이 게시판이 많은 사람들의 글로 넘쳐나길 바란다. 그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겠는가? 게시판 관리자의 자격지심에서 나온 얘기가 아닐까? (^.^) 어서 백명의 커밍아웃 이야기가 실리길 바란다. 내가 알고 게시판 지기가 아는 범위의 사람들이 아닌 많은 신청자들이 있길 바란다.
그리고 사진들이 게재되는 싸이트가 있는 줄 몰랐는데... 어딘가? 뭐 질문에서 말한 분명한 차이는 '젊은 신세대 인기 싸이트'와 '친구사이 커밍아웃 게시판'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각각의 게시판에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가지는 목적이 대부분 다를 것이고, 말하는 이의 목적도 다를 것 같다.
16. 마지막 질문이다. 뜨개질하면서 대답해도 좋다. 뜨개질하는 남자와 터프 가이 사이에는, 그리고 그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그런 구별이 필요한 것일까? 구별이 필요하다면 어떤 필요성에 의해 그런 것일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우리가 서로 합의한 이 '뜨개질하는 남자'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마지막 질문일 것이다.
동훈 : 뭔가 거창해 보이는 질문이어서 그런지 별루 마음에 안든다. 이런 식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마치 내가 정답을 제시하는 듯 하여서 말하는 나도 부담스럽고 주눅이 든다. '선언' 같은 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질문에 충분한 답이 들어있다고 본다. 뜨게질하는 남자라면 이런식의(분명한 논조와 설득력있는 근거로 접하는 사람을 동요시키는) 결론이 아닌 다른 접근을 하지 않을까?
* 이 인터뷰 내용은 신동훈 씨와 인터뷰어의 허락없이 다른 곳에 절대 게재할 수 없습니다(이송희일 : gondola21@gondol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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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별명은 '마님'이다. 항상 단아한 행동거지와 말씀씀이로 천박한 동생들에게 귀감이 되어온 바, 마치 조선 시대 화폭에서 걸어나온 마님을 대하는 듯한 정갈함이 항상 몸에 배여 있다. 또 그는 2000년도 친구사이 회장이기도 하다. 말수를 아끼는 그 세심함 뒤엔, '...
그는 종로 이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잠을 조금 잔 후 그는 낮에 회사에 출근한다. 이처럼 맹렬히 사는 이유가 뭘까? 우린 주제를 그의 닉네임인 '순수한 소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 가닥은 그의 특이한 이중생활로 흘러가고 말았다. 누군...
지금껏 했던 커밍아웃 인터뷰 중,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인터뷰였다. 그의 언어는 그의 솔직함 때문에 더욱 도발적이었고, 미처 우리가 발설하지 못한 부분을 저어함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데 인터뷰어는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뼈속까지 게이다, 그의 진정성을...
며칠 전 우리는 그가 퇴근할 무렵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msn을 통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시간 이상이 걸렸고, 시무룩하게 시작되었던 인터뷰는 춤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셀 위 댄스, 정말로 그에게 맞는 행복한 수사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이...
그는 사랑니를 빼느라 진통제를 먹고 있어 정신이 몽롱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단시간 안에 게이 커뮤니티 속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에 대해 궁금하는 이가 많다. 인터뷰 과정에서도 보겠지만 그는 소박한 소망, ...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재흠은 마음006과 친구사이의 회원이기도 했다. 언제나 밝은 면으로 사람을 대하려는 태도가 있다면, 한편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도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열성도 함께 겸하고 있는 그와 '복날은 간다'라는 제...
# 인터뷰의 질문들에 답을 달며... 몇년을 알아온 이 '커밍아웃 게시판'의 관리자로부터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수많은 인터뷰를 했었지만 대부분 개인적이기 보단 커뮤니티를 알리고 동성애자들이 처한 일반적인 현실과 에이즈문제 등을 다루...
천정남, 98년 친구사이 회장. 이 인터뷰는 2001년에 행해졌고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터뷰 뒤에 후기를 적어놓는다. 1. 당신은 98년 친구사이 회장이었다. 우린 당시 언론에서 당신의 인권 운동 활동에 대해 가끔 들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