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정말로 간판을 내릴 셈인가
- 新국가모독죄에 대한 의견표명조차 하지 못하는 인권위를 규탄한다! -
바로 어제 4월 12일(월) 국가인권위(이하 인권위)에서 열린 2010년 제 6차 전원위원회에서는 “서울중앙지법 2009가합103887사건 관련 의견제출건(이하 박원순 사건)”이 의결안건으로서 논의되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국가정보원이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인권위는 이 날 전원위를 통해 박원순 사건 담당 재판부에 의견 제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전원위의 결과는 자료를 보충하여 “재상정”하여 재논의를 하자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위 안건의 결과에 대해 규탄을 하기 전에 먼저 인권위의 수준 이하의 논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 설립 초기부터 인권위원의 자격에 있어 인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바탕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제도로서 인권위원으로서의 자격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에 만들어져 있지 않아 인권문외한이어도, 혹은 반인권적인 인물이어도 임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인권문외한이고 반인권적인 인사들로 인권위원이 임명되고 있고, 인권위는 최소한의 인권적 수준에도 못 미치는 논의가 오고가고 있는 실정이 되고 만 것이다. 특히 <PD수첩 사건>과 <야간집회 금지 조항 위헌제청 건> 관련 의견 제출안이 부결 된 것에 오래 지나지 않아 <박원순 사건 의견제출안>이 이번 전원위에서 ‘재상정’ 결론이 난 것이다. 더욱이 현재 인권위원의 비율이 보수적·진보적 성향의 비율이 6:5로 보수적 인권위원의 비율이 더 많아 이번 <박원순 사건 의견제출안>도 부결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상황이다. 특히 어제 전원위에서 위원장을 제외한 5명의 보수적 인권위원들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을 고려한다면 이번 <박원순 사건 의견제출안>이 부결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이번 인권위 논의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헌법재판소와 법원 등에 인권위가 의견제출을 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이라는 주장, 두 번째는 국정원이 국민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번 사건은 국민이 국가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 즉 표현의 자유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에 대한 판단여부 등이다.
먼저, ‘반대’입장을 밝힌 위원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근거인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이라는 주장에 대해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이라도 제대로 읽길 권한다. 국가인권위법 제28조(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대한 의견제출)에는 “①위원회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 계속 중인 경우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요청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법원의 담당재판부 또는 헌법재판소에 법률상의 사항에 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②제4장의 규정에 의하여 위원회가 조사 또는 처리한 내용에 관하여 재판이 계속 중인 경우, 위원회는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요청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법원의 담당재판부 또는 헌법재판소에 사실상 및 법률상의 사항에 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이라고 주장하는 인권위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아무리 정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정권·사법부·입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권의 관점과 기준으로 인권적인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이다. 사법부에 의견표명을 하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이라고 한다면, 그 주장 자체가 인권위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발언인 것이다. 인권과 직결되는 여러 판결과 정책에 인권의 관점에서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인권위는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인권위는 정말로 정권의 ‘꼭두각시’로서 존재하길 바라는 것인가?
두 번째, 국정원이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소송을 낸 것은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 개인에 대해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인권위는 이런 관점에서 이 사안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금 新국가모독죄의 부활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셈인가. 인권위는 이 안건에 대해 논의를 하려면 박원순 변호사의 허위사실 유포 사실관계에 대해 따질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비판할 수 있는 입을 틀어막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따져야 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에 들어 국민이 공권력을 비롯하여 정권을 비판하는 것에 매우 억압적인 지금의 상황에서 그것이 손해배상청구로까지 간다는 것은 “국민은 더 이상 ‘감히’ 국가를 비판하지 말라”는 국가적 선언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는 독재시대 때나 볼 수 있었던 ‘국가모독죄’의 부활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견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국가라면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이번 인권위의 재상정 결정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에 인권위가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는 기존 판례에 따라 혹은 법리에 따라 사안을 판단하는 조직이 아니다. 인권의 관점으로, 또 국제인권기준에 발맞추어 한 걸음 더 인권이 발전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권위를 보자.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대며 ‘사법부의 독립성’ 운운하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갉아먹고 있고, 차마 국가인권기구의 논의라고 볼 수도 없는 수준 이하의 논의들로 인권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다. 일부 인권위원들은 사무처의 보고서가 편향되었다며 찬성과 반대의 입장 모두의 자료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도대체 찬성과 반대의 기준은 무엇인가? 찬/반이 아니라 ‘인권’의 관점으로 만들어진 자료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인권위원으로서 인권에 대한 무지함과 무심함을 괜한 곳으로 둘러대는 비겁함 또한 인권위원으로 갖춰야 할 자격이 되어버린 것인가?
인권위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국가권력에 대해 대항하는 것을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회피하며 비겁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국정원의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新국가모독죄’ 라면, 인권위는 스스로 인권을 모독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인권위원들은 인권위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한다. 이명박 정권의 꼭두각시로서 정권의 ‘잠재적 동조자’가 되어가고 있는 인권위는 차라리 그 간판을 내려라. 이런 수준의 인권위라면 더 이상 필요 없다.
2010. 4. 13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인권단체연석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