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석천과 하리수를 둘러싼 기사내용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어디에도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성적소수자로서 인권을 다룬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보다 예쁘다”, “누가
누구를 부러워한다”, “성적소수자 사이의 갈등” 등 상업적 시각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의 존재를 인권이란 차원으로 봐야할 때가 아닌가!
최근 일본의 활발한 성적소수자 운동은 자신의 존재를 호소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인
법적인권운동으로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유를 찾아 나선 그들의 모습에서 진한 땀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근대 일본의 동성애자는 문학 등에서 보여졌지만 1920년대를 경계로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70년대에 들어서 겨우 게이 잡지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커밍아웃을 고백하는 책이 출판되게 된것도 80년대에 들어서다.
약 60년간에 걸쳐 일본 동성애자의 문화는 표면화를 허용 받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과 습격과 달리, 일본에서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진행되었던
것이다. 즉 표현의 차이만 다를 뿐 일본도 동성애자에 대해 결코 관용의 나라는 아니다.
80년대 후반의 이른바 ‘에이즈 패닉시대’에 들어서 동성애자 차별은 현저하게 늘었다. 정부와
후생성은 미국에서 에이즈환자인 일본인 동성애자를 찾아내 “일본인 에이즈 제1호는
동성애자”라고 발표하였다.
감염경로에 있어서도 ‘이성간 성적접촉’과 함께 ‘남성동성애자’라는 항목을 의문시 않고
첨가하였다. 정부는 ‘동성애자=에이즈’라는 이미지를 매스컴을 동원해 자연스럽게 흘려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에이즈 관련 부정적 편견을 계기로 동성애자 운동이 본격적으로 조직화되었다. 70년대
이후의 게이운동과 레즈비언운동이 80년대 후반 들어 동성애자운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다양한 단체의 결성, 소수자 사이의 네트워크, 커밍아웃 퍼레이드를 비롯한 축제 등이 전개되었다.
90년대는 긍정적인 정보공개 및 다양한 운동의 전개에 힘입어 자신들이 처한 성적소수자로서의 인지 및 입장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냈다. 타인에 의해 부정적으로 불린
‘호모’가 동성애자 자신들이 의미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킨 자부심 넘치는 ‘게이’(즐거운)가
된 시대라고 평가되고 있다.
90년대의 일본 성적소수자들의 운동은 긍정적이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결혼이나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 등을 금지한 국가들과 달리 일본은 동성애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 법률이 현재 하나도 없다.
이런 실정에서 성적소수자들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전히 일본 사회는 게이가 살아가기 쉬운 환경이 아님에 틀림없다.
결국 사회의 법·제도와 구조적인 면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60~70년대 다양한 인권운동이 전개되었지만 동성애자의 인권에 관한 운동은 하나도 없었다.
90년대 들어 처음으로 ‘후쭈청년의 집 사건’을 통해 인권운동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90년 동경도가 도립시설인 청년의 집에서 동성애자의 사용을 금지시킨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카’라고 하는 동성애단체가 7년을 거쳐 97년 법적으로 완전승소를 거두었는데, 이는
일본에서 동성애자가 처음으로 사회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호소해 사법제도를 통해 권리를 획득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후 성의 자기결정은 인권의 문제임을 주장해온 동성애 단체의 줄기찬 요구에 의해 2000년에
들어 일본에서 처음으로 동경도가 동성애를 인권시책의 대상으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동경도는 도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는 이유로 곧바로 동성애자를 대상에서 삭제시켰다. 이 문제는
아직도 동경도와 동성애 단체간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결혼문제,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변경 등 성적소수자들의 법적·제도적
권리투쟁은 이제 시작의 단계에 들어섰다.
앞으로 10년 후를 기대하면서 한 게이는 “게이마케팅이 활성화되어 게이를 타켓으로 하는
상품의 개발·선전이 일반화되고, 게이를 통해 배우는 남성의 매력등이 특집으로 다루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한다.
(kwakuijae@hotmail.com)
일본의 성적소수자 운동<2> - 단체와 활동
*동경 ‘아카’, 인권 상담·소송·정책제안·문화 활동 활발
*‘삿포로미팅’·‘G-Front칸사이’ 퍼레이드로 사회인식 바꿔
9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일본의 동성애 단체의 활동 및 축제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관동지방의 영향력 있는 단체로서, 동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카(OCCOUR)가 있다.
아카는 ‘일하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모임’의 뜻으로, 86년 이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권활동 이외에 전화상담(03-3380-2269)이나 커밍아웃 지원, 하이킹서클, 영어회화활동을
행하고 있다.
또한 게이스터디를 진행시켜 이론적인 면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동경도의 인권시책지침문제와 에이즈의 예방계몽에 동성애자를 포함시킬 것 등을 요구하는 등 행정 측에 동성애자의 문제를 인식시키거나 정책제안을 해오는 데도 역점을 두고 있다.
이 단체가 주도한 ‘후쭈청년의 집 사건’은 처음으로 동성애자가 법적인 권리를 획득한
소송이었다. 이를 계기로 동성애자 운동이 본격적으로 권리찾기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인권담당을 하고 있는 이나바씨는 인권을 위해 도내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NGO·NPO의 동의와 협력을 통해 동경도에 동성애자를 인권시책의 대상으로 인정해 줄 것을 계속해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 ‘LOUD’(03-3319-3069)는 레즈비언과 여성 양성애자를 위한 모임으로서 현재 8인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동북지방 홋카이도의 중심도시 삿포로는 동성애자의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 중의 하나이다.
대표적인 단체로 82년 시작된 ‘삿포로미팅’(www.plaza12.mbn.or.jp/~hsa/)이 있다.
다양한 정보제공 및 상담활동(011-242-3321), 차별과 편견에 대한 항의활동, 게이 나이트 개최,퍼레이드 진행 등을 전개하고 있다. 성적소수자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문제, 에이즈문제 등을 취급하는 단체에도 성적소수자로서 협력하고 있다. 그리고 ‘ESTO’(Easy Sexuality Team in 東北)는 자유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는 모임이다.
이밖에 일본 서부지방의 대표적인 동성애단체로 ‘G-FRONT칸사이’(www.kcn.ne.jp/~gid/)는 93년 4월에 일본 관서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서클들이 통합되어 발족하였다.
자신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지시킬 수 있는 퍼레이드는, 여러 가지 스타일로 가장 좋아하는 자신을 표현하고, 인간의 자기긍정적인 표현을 행할 수 있는 장으로서 이용되고 있다.
94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어 올해로 제6회를 맞이하는 동경 게이·레즈비언 퍼레이드2001(www.tlgp.org)은 8월 25~26일 동경 요요기공원 이벤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소수자의 ‘사회적 인지’를 목적으로 내세웠으며, 부제는 ‘We are
here! We are happy!’ 로 달았다.
실행위원회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비영리적인 입장에서 시민친화적으로 개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이벤트는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양성애자(현재 2천에서 7천명 정도 존재하는
트랜스젠더나 트랜스섹슈얼) 등 다양한 성적소수자가 참석한다. 그리고 이들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이벤트는 다양한 성적소수자간의 만남이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된다. 올해는 4천명의
참가자를 예상할 만큼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앞서 7월 29일 동경 디즈니랜드에서는 ‘July pride 2001’(www.members.aol.com)축제가 레즈비언·게이의 날을 기념으로 열렸다. 최근 동경퍼레이드 못지않게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는 삿포로의 제5회 레인보우마치2001(http://www2.orions.ne.jp/hsa/parade.htm)이 9월 16일로 예정되어 있다. 이 퍼레이드는 삿포로미팅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실행위원장 스즈키씨는 다음의 3가지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성적소수자들에게 마음껏 자신들을 드러내는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며, 둘째로
국가와 지방자치체의 인권시책에 성적소수자의 인권침해나 차별문제를 명기하도록 호소하는 것, 끝으로 다양한 개성이 공생하는 다문화 사회의 실현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한다.
삿포로 중심부에서 열리는 퍼레이드가 끝나면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참가자는 1천명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2001년 일본의 중부지방인 나고야에서 처음으로 ‘NAGOYA GAY REVOLUTION2001’(www.ma.nma.ne.jp)이 열렸다. 이 행사는 6월 16~17일 열렸는데 퍼레이드는 없었지만, 자유시장, 옥외 카페, 무엇이든 게시판, 놀자 등 각종 코너와 토크쇼, 사진·작품전시, 음악축제, 영화제, 미의 축전, HIV무료검사 및 교육 등 다양한 행사를 전개했다.
또한, 올해로 10회를 맞이하는 동경국제레즈비언·게이영화제(http:www//l- gff.gender.ne.jp/)가 7월 18일 ‘Psycho Beach party’상영을 시작으로 동경 아오야마 SPIRAL 홀(03-3498-1171)에서 22일까지 열렸었다.
실행위원장 야마히라씨는 동경영화제는 성을 주제로 한 영화작품을 독자적인 시점으로부터
소개해 왔으며 올해도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작품이 풍성하다고 한다. 작년 관람자수가 6천명을 넘어섰고 해를 거듭할수록 성적소수자의 문화를 격리하는 울타리가 낮아지고 있으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게이·레즈비언도 평범한 사람이네!”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성적소수자 측도 권리획득 주장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풍부한 표현을 발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의 이용은 정보수집과 운동을 더욱 활발히 진행시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동성애자의 라이프 스타일 정보 사이트인 www.gayweb.ne.jp www.gaywalker.com
www.gproject.com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할 수도 있다.
* 행사비용·조직게이단체 의존도 커인식전환 쉽지않아
* 강제이성애 규범 및‘동성애 대 이성애’ 구도 재편 시도
생물학적 이원론사회와 강제이성애사회가 동성애와 성동일성 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소수자를 배제·주변화 시켜왔다. 이런 면에서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맞선 일본 성적소수자들의 운동이 90년대에 많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성적소수자들 사이의 관계는 그들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존재를 인정받은 것과는 달리
원만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90년대의 성과는 게이의 성과라고 할 만큼 다른 성적소수자의 존재는 희미했다. 작년 동경의
게이·레즈비언 퍼레이드 실행위원장이었던 스나가와씨는 “일본의 성적소수자는 동성애자 중
게이가 압도적이며, 이런 이유로 게이 중심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게이의 사회적 성역할에 대한 편견, 그 밖의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오해나 차별감이 뿌리 깊다”고 말한다.
이는 남성동성애자의 위치가 일본의 성적소수자 가운데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같은 성적소수자 내에서의 차별 또는 무시적인 행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매년 퍼레이드에 참석하고 있는 양성애자 히비노씨는 ‘게이·레즈비언 퍼레이드’라는
명칭과‘동성애자 및 성적소수자’라는 성명문의 표현은 동성애 중심적 발상이라고 말한다.
일부 동성애자들은 성별에 관계없는 성적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양성애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퍼레이드에서 여성이 선두로 나아가는 것을 원치 않고 있으며, “레즈비언인 주제에”라는 표현 등 일본사회의 구조가 그대로 퍼레이드에 옮겨지고 있다고 말한다.
“성적지향만 생각합시다”라는 현재의 퍼레이드는 압도적으로 남성동성애자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주장한다. 퍼레이드에 다양한 성적소수자가 참가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게이들은 그들 중심적으로 운동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나가와씨는 “현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벤트의 개최여부를 좌우하는 인적·재정적
지원이 대부분 게이에서 나오며 ‘성적소수자 퍼레이드’라는 명칭으로 모든 성적소수자를
하나로 묶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성적소수자 내에서의 갈등은 쉽게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논의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의 게이중심적 운동이 사회적 승인을 얻는다 해도 이것은 동성애 틀만 인정받을 뿐 그 밖의 성적소수자는 여전히 주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지적과 게이의 정치학이 이성애 대 동성애의 대립구조를 심화시킴으로서 이성애의 타자화 전략에 포섭 당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논의 등이 중심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퀴어’(QUEER)는 이성애의 규범성을 해체시키고, 동성애자를 넘어 그 밖의
성적소수자 문제를 같이 아우르고자 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퀴어는 ‘기묘한’ 또는 ‘변태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에서 퀴어의 정치학은, 운동의
현장에서는 동성애 및 양성애자 그 외의 성동일성장애자를 같은 성적소수자의 입장에서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학문적 이론의 세계에서는 게이운동이 갖는 이성애 대 동성애의 대립구도와 강제이성애사회의 규범성을 해체시켜 보려는 시도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각각의 성적소수자가 찾고자 하는 권리가 다른 데, 한 단어로 모두를
얽어매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을 낳을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다른 성적소수자와 같은 명칭으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게이 중의 극히 일부는 자신을 퀴어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본에서 퀴어는 정체성으로서 자리잡을 것 같지는 않다.
동성애자와 다른 성적소수자들의 네크워크가 겨우 시작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퀴어가 정체성이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론적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퀴어적인 관점 혹은 시점으로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90년대 중반부터 출판되고 있는 ‘Queers Studies’는 80년대 ‘Gay studies’의 한계를
극복하고자한 성격을 띠며, 99년 창간된 잡지 ‘Queer Japan’은 이런 의미에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잡지 편집부 하시모토씨는 “일상의 언어로 성의 쾌락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성적소수자의
시점으로서 성의 윤곽을 비추어 보려는 기획으로서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의 문제를 담당해왔던 페미니즘은 억압과 차별에 중점을 두어, 삶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
즐거움이 없었다. 퀴어는 차별상황을 비웃으면서 자명하게 여겨지고 있는 규범과 기준에 이의를 제기해, 성의 즐거움을 긍정하는 시점이라고 한다.
지금껏 게이·레즈비언 스터디가 소수자의 ‘존재’에 호소한 것에 비해, ‘Queer Japan’에서는
소수자의 ‘가치관’에 호소함으로써 보편이나 상식이라고 하는 것들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규범과 기준을 의심하면서 자기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면 성적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누구나
퀴어적 시점을 가진 정치적 행위자가 된다.
성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결혼제도, 사회문제에서 예술까지 모든 장에서 퀴어적이며
변태적인 시점으로 기준·규범을 해체시켜 미래의 성애·직업 등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자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90년대 호모를 넘어 게이가 되었다면 21세기는 퀴어적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ugly2
제목조차 낯선 이 영화를, 룰루님의 글을 읽고 찾아보게 되었네요. 무엇보다도 "하비에르 바르뎀"이 주연...
룰루
잘 보셨다니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