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이 글은 지난 2년 전 명안 님이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한국의 몇몇 게이 관련 웹진에 송고한 글입니다. 몇 편 더 연재할 계획입니다. 명안 님은 지금 다른 곳으로 또 여행 중입니다. 이후 여행담을 보내주면 또 올리겠습니다. 이 코너는 전세계를 아우르는 퀴어 여행자들을 위한 곳입니다.
암스테르담의 날씨는 온화했다.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늘 축축하고 쌀쌀한 아일랜드에서 입고다니던 점퍼부터 벗어던져야 했다.
더럽고 냄새나고 또 위험하다며 한국의 배낭여행자들이 꺼리는 도시라던 암스테르담의 첫인상은 듣던만큼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블린에 비해 훨씬 정리가 잘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편 암스테르담은 듣던대로 역시 진보적이고 관용적인 도시였다. 공항이나 숙소에서 게이퍼레이드에 대한 정보를 물어봐도 친절히 대해주었고 상점 등에서는 전혀 거리낌없이 레인보우 마크가 그려진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딱 한가지 여행자들에게 불리한 점은 숙소가 부족하다는 것 뿐...
우리도 예외는 아니라서 첫날밤은 하마터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할 뻔했다.자정이 넘도록 헤매다 들어간 작은 호텔의 주인아저씨가 거실에서 공짜로 재워주지 않았더라면...
대머리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발음을 구사하던 그는 내일 게이 퍼레이드를 볼 거라고 하자 동행한 L을 가리키며
"그럼 그녀는 네 보디가드인 셈이구나."라고 조크를 던졌다.
아무튼 하루종일 굶다시피했던 우리는 커피와 토스트, 치즈를 얻어먹었고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주인 아저씨의 술친구가 되어 위스키까지 마셔야 했다.
이튿날, 새벽부터 일어나 한시간 넘게 줄을 서서 큰 호스텔에 잠잘곳부터 마련했다. 그리고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전날의 화창했던 날씨에 비해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길거리는 레인보우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붐볐고 우리도 기념으로 하나 사서 쓰고는 오전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미술관-박물관들이 모여있는 거리로 갔다.(그건 내 여행에 동참해 준 L을 위한 작은 배려이기도 했다. L은 박물관-미술관 매니아니까...)
시간이 많지 않아 우리는 한가지 박물관만을 선택해야 했는데 단연 고호박물관이 우선 순위에 올랐다.
고호 박물관은 크고 깔끔한 건물에 고호의 그림 육백여 점이 전시된 곳이다. 물론 고호와 관련된 도서관과 카페, 서점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예상대로 인파가 만만치 않았다. 제대로 감상하기가 힘들 정도라서 좀 짜증이 났다. 과연 저 사람들이 제 나라에 돌아가면 미술전시회 브로셔라도 한번 뒤적일까... 나도 마찬가지겠지만ㅠㅠ
다행히 오후에는 날씨가 개였고 도시를 관통하는 운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게이레즈비언 축제의 하이라이트!!! 인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운하에 수십 척의 배를 띄우고 그 위해서 게이레즈비언들이 운하를 따라 지나가는 행사인데 네덜란드에서는 두 번째로 많이 인파가 몰리는 행사라고 했다. 작년의 경우 25만명 정도?
첫번째 배에는 하얀 드레스에 천사복장을 한 여자 두명이 작은 배를 타고 지나갔고 그 뒤를 이어 갖가지 아이템으로 무장한 수십명의 사람을 태운 배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제각기 앰프를 갖추고 있었는데 마돈나, 프린스, 신디로퍼, 7,80년대 디스코 음악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프리실라 영화음악도 자주 흘러나왔다. 길거리에 운집한 구경꾼들 중에는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없었고, 키가 큰 외국인들 틈에서 나는 사진찍을 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다가 자전거 주차장까지 침입, 세워놓은 자전거 위에서 위태로운 곡예까지 벌여야만 했다.
이날 행렬에서는 프리실라 분장을 한 뚱뚱한 베어들이 제일 인기를 끌었고, 에이즈예방 캠페인이나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팀들도 간간이 끼어있어 다양함을 느끼게 했다.(아쉽게도 네덜란드어로만 씌어져서 무슨 말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퍼레이드는 거의 세 시간동안 이루어졌다. 어디까지 가나 보려고 따라 가 보았지만 한 시간만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ㅠㅠ
종일 돌아다니느라 너무 지쳐서 일단 호스텔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잠시 쉰 후 다시 밤거리를 구경하러 나섰다. 일단은 홍등가에 위치한 섹스 숍들을 거쳐 섹스뮤지움 부터 갔다. 다른 박물관에 비해 1/3밖에 안 되는 싼 곳임에 비해 볼거리는 쏠쏠한 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곳에 온 사람의 반 정도가 동양인, 또 그 중 반이 한국 사람이라는 점! 한국에서는 성에 관심없는 척하던 내숭파임이 분명했을, 새침하게 생긴 여학생들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
큰 광장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놓고 축제기간 내내 밤 열시부터 무료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 날도 역시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는데 아쉽게도 하필 상영작이 독일영화에다 네덜란드어 자막이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반쯤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달려드는 모기떼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시내 곳곳에는 길거리에 조명과 레인보우 깃발, 무대를 설치해 놓고 댄스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개 게이빠 한 곳을 중심으로 벌어지는데 전부 합쳐서 대여섯 군데 정도고 레즈비언을 위한 장소는 따로 있었다.(모인 사람들의 숫자나 규모상으로 레즈비언 파티는 열악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규모가 큰 큰 거리파티에 모인 인파는 거의 백미터 정도에 달했는데 얼마전 한국 광화문에 모인 월드컵 응원단을 연상케 했다. (한편, 외국의 밤거리 문화를 접해보고 든 생각인데 한국 사람들처럼 잘 노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규모로 지원을 받아서 행사를 한다면 단연코 세계 제일의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게이 친구들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몇 명이라도 같이 왔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키 큰 외국인들 틈에 한번 쯤 끼어들어서 놀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멋적기도 했고 같이 간 L을 위해서라도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솔직히 둘 다 너무 지쳐 있기도 했다.
숙소에 돌아오자 같은 도미토리에 얌전히 머물러 있던 두 명의 한국 여자애들이 부럽다는 듯 우리를 맞이했다. 그네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대충 얼버무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보니엠 등을 초청한 대규모의 폐막식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비행기 시간 때문에 참관하지 못하고 더블린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아쉽게도 그네들은 브로셔 같은 걸 만들지 않아 기념으로 들고 갈 만한 건 없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짧은 일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불현듯 일부에서 상업성 운운하며 애를 먹었던 한국 퀴어문화 축제 생각이 나서 씁쓸해진다. 어차피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인데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며 또 서로 존중하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는 없었던 걸까...
2004-02-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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