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The Hours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출연 :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만, 줄리안 무어
제작 : 영국 2002
비디오, DVD 출시
ugly2의 평
언제부턴가 일요일 오후 늦잠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즐겨보던 "출발! 비디오여행"을 보지않게 되었다. 다른 방송사와 경쟁이 붙어서였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소개가 아닌 영화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읊어주는 썸머리 프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 반전, 스토리까지 다 보여주면 누가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가겠는가 말이다! -_-;;
출발! 비디오여행때문에 가장손해본 영화는 일본영화 "철도원" 이었는데, 철도원의 딸이 유령이었다는게 가장 큰 반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 까벌려져서 한없이 맥빠진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 영화에 대한 어떠한 얘기도 듣지 않고 개봉한 그 주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보려 열심히 뛰어 다닌 것 같다.
"디 아워스"도 개봉하자 마자, 부랴부랴 표를 끊고 극장으로 향한 영화중 하나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하염없이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놀라움에 한참을 멍해 있었다. 막연하게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전기영화로만 알고있었던 나는 이 영화가 그녀, 혹은 그녀들이 겪어야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룬 영화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긴 이상했다.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이 셋이나 출연하는 영화인데, 이 영화에 대한 정보나 마케팅이 턱없이 부족한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동성애"코드를 내포한 영화라서 어떤 식으로 마케팅을 전개해야 할지, 막막했었던 건 아닐까? 동성애 코드를 내포한 영화가 성공하기란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 영화가 "빌리 엘리어트" 감독(스티븐 달드리)의 영화라는 걸 그리고, 그 감독이 "게이"라는것, "디 아워스"의 원작자(마이클 커닝햄) 역시 "게이"라는 것, "디 아워스"가 레즈비언에 관한 영화라는 것, 옆 좌석에 구겨진 찌라시에서 읽은 "게이감독이 그려내는 레즈비언의 모습이란 어떤것일까?"라던 어느 평론가의 영화평까지... 영화를 보고 나서야 한꺼번에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의 깊이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이 영화를 정리하여, 게시판에 올렸더니 대부분 사람들은 "이 영화는 동성애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라며 리플을 달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고민, 방황, 일탈, 허무함들이 동성애를 용납하지 않았던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될 듯도 한데, 사람들은 이 영화를 그렇게 정의내리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어머니(줄리안 무어)가 이웃집여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아들(애드 해리스)가 게이가 되었다!"라는 얼토당토 않는 이론을 보며 이 사회가 아직까지 동성애라는것이 잘못 인식되어 있구나, 하는 씁슬한 생각도 들었다.
투쟁하며 살아가는 삶 뒤에 얻어지는 진정한 자유!
삶은 전쟁판이고 난장판이며, 요지경이다. 그 삶속에서 투쟁하며 얻어야 하는 진정한 "자유"가 있다면 그 길이 험하고 힘들어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하던 버지니아 울프... 그러나 그녀역시 자살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려 하지 않던 시대의 희생양이었나...
사족 : 세명의 여배우 필생의 명연을 보여줬고, 모두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시상식장에서는 "니콜 키드먼"이 가장 주목 받았으나, 개인적으로는 끝없이 불안한 신경쇠약 직전의 연기를 보여줬던 "줄리언 무어"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싶다.
시놉시스 :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 : 버지니아 울프의 집
버지니아 울프는 오늘도 집필중인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 레너드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답답한 생활을 하는 중이다. 런던에서 오기로 한 언니를 기다리던 비지니아는 예정보다 일찍온 언니를 보고 반가워 하지만, 언니는 잠깐 머물고 다시 돌아가 버린다. 언니를 보내고 저녁식사 시간을 앞둔 버지니아는 무작정 집을 뛰쳐나가 런던행 기차역으로 간다. 그리고 자신을 급하게 쫓아온 레너드에게 답답한 시골 생활을 벗어나 런던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레너드는 버지니아가 런던에서 얼마나 정신적으로 약해졌었는지를 상기시키며 그냥 있자고 말한다. 그때 버지니아는 삶을 정면으로 맞서야한다고 말하며, 이제 런던으로 돌아갈 때라고 말한다. 결국 레너드는 버지니아의 바램대로 런던에 가기로 동의한다.
1951년 미국 LA : 로라의 집
둘째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로라는 귀엽고 건강한 첫째 아들과 자신을 끔찍히 사랑해주는 남편과 함께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그녀는 요새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한창 읽고 있는 중인데, 남편 리처드의 생일 날 로라는 아침부터 안절부절 못해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친구 키티의 방문을 받고, 그녀는 로라에게 자신의 자궁에 작은 혹이 생겨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키티는 로라에게 아이가 있는 것을 부러워하며 그녀가 행운아라고 하지만, 로라는 자신의 그런 삶에 이미 염증을 느끼고 있다. 결국 로라는 가방에 약병을 가득 넣고 아이는 이웃집에 맡긴 채 호텔에 들어가 자살을 기도한다.
2001년 미국 뉴욕 : 클라리사의 집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라리사는 옛애인인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 기념파티 때문에 아침부터 분주하다. 그녀는 오늘 하루의 일정을 일러주기 위해 리차드를 아침 일찍 찾아가지만, AIDS와 투병하느라 지쳐버린 리차드는 파티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겨우 그를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파티 준비를 하는 클라리사. 샐리와 10년 동안 동거하는 그녀지만 여전히 클라리사는 리차드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 하지만 아침에 리차드로부터 안좋은 소리를 들은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모두 헛된 일인 것만 같아 파티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리차드의 헤어진 애인 루이스의 이른 방문을 받고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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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7 23:58
2003-02-12
The Hours
지금 현재 열려지고 있는 베를린 영화제 작품상 수상이 유력시되고 있는 가운데, 'The hours'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디 아워스'를 둘러싼 평론계의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먼저 전미비평가협회에서 '올해의 최고 영화'로 추켜세운 반면 타임즈는 젠 체 하는 지적 허영의 영화라며 '올해 최악의 영화'로 뽑고 있다. 평론가 조희문은 아예 '지적 유전자'를 찬양하는 영화라고 가치를 깎아내리기조차 했다.
이 영화는 마이클 커닝햄이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대한 오마쥬로 쓴 책을 바탕으로 했는데, 이 책은 98년 풀리쳐상을 받았다.
감독은 '빌리 엘리어트'로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스티븐 달드리가 맡았는데, 마이클 커닝햄 소설에다 '세월'을 탈고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생애를 삽입하며 색다른 재미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난 이 영화를 이 달의 영화로 주저 없이 꼽고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타임紙 비평에 숨겨져 있는 유럽문화에 대한 미국 식자들의 지속적인 컴플렉스와 영화 속 여성 주인공들이 겪는 자살에 대한 유혹을 '엄살'이라고 치부하는 대단히 '서사적인' 남성 평자들의 얄팍한 자기 방어 따위는 관심 밖이다.
적어도 그들이 '등대로'나 '댈러웨이 부인'의 한 장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이 영화 속의 매 씬들이 정교하게 소설 속의 중요 장면을 그대로 필름에 옮겨 미쟝센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자살 충동' 역시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책을 읽었던 동시대 여성들이 빅토리아 시대의 숨막히는 가부장제에 맞선 고뇌의 흔적이었음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들은 이 영화가 지적 허영심의 발로라고 깎아내리면서 그 사실을 간파해내는 자신의 지적 능력이야말로 현명하다고 자신했겠지만, 버지니아 울프 하면 깜빡 죽는 허영 덩어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려는 차별화된 전략에 골몰하는 매우 멍청한 지적 기생충들에 불과하다.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헐리우드 영화 중에 제대로 된 영화가 과연 몇 개나 되겠는가?
'The Hours'가 비록 헐리우드 자본으로 만든 영국영화긴 하지만 그렇게 지적인 체하지 않고 차분하게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로 웅변되는 '여성의 자살'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여성의 자살을, 그리고 서로 다른 시대의 여성 세 명이 느끼는 삶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버지니아 울프가 그의 글쓰기 방식으로 채택한 '의식 흐름의 기법'을 영화 속에서도 차용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이 영화의 흐름은 그렇게 세 여 주인공들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진행된다. 세 공간이 연결되는 컷들은 정교하게 계산되어 영화에 배치되어 있고, 카메라 움직임과 공간 배치는 매우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물론 이 영화의 결정적인 핸디캡은 의식의 흐름을 주관하는 화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커닝햄은 '댈러웨이 부인'을 핵심축으로 놓고 로라처럼 집을 떠나 자신의 삶을 선택한 어머니, 그리고 에이즈에 걸려 자살하는 양성애자 아들과 그녀의 옛 연인 이야기를 두 축으로 횡단하면서 자연스럽게 화자를 만들어내지만, 이 영화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가 삽입되어 각각 세 개의 이야기가 단독의 주체적 발언권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해서 각색자와 스티븐 달드리는 이야기가 자율적으로 해체되는 걸 제어하기 위해서 세 개의 이야기를 연결지으면서 거의 똑같은 언어, 상념, 상황을 화두로 던져놓고 있다. 자칫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었지만, 세 명의 여자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기를 해냄으로써 영화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높은 코와 비슷하게 하기 위해서 인조 코를 갖다 붙여 대체 니콜 키드만인지 아닌지를 놓고 적잖은 헤프닝을 일으킨 니콜 키드만은 소름끼칠 정도로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한 캐릭터를 창조해냈고, 줄리안 무어 역시 뻔한 내러티브(재미없는 남편과의 일상 생활에서 겪는 여성의 고뇌)를 그나마 생생하게 형상화하는데 그녀가 아니면 해내지 못했을 묘한 카리스마를 제공했다(이 역에는 원래 기네스 펠트로우였다).
영화 런닝 타임이 길어 버지니아 울프가 당시 느꼈던 암울함에 대해 시대상황의 밑그림을 조금 더 첨가하고, 두 번째 상황인 로라 브라운 이야기도 조금만 더 현실에 근거했다면 이 영화가 가지는 장점이 더 부각되었겠지만, 거의 2시간이 되는 런닝 타임이 무력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보다 더 깊고 슬픈 빛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알아야 할 두세 가지 것들
1. T.S 엘리어트, EM 포스터, 케인즈 등 당시 최고의 식자층들이 모인 '블룸스베리그룹'을 주도적으로 이끈 이는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남편 레너드 울프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세월'을 탈고하고 1941년 주머니에 돌을 넣고 서섹스 강에 투신하여 자살하기 전까지 이 그룹의 멤버들은 환청에 시달리고 두 번씩이나 자살을 기도한 버지니아 울프를 시골인 서섹스로 옮겼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때 환청과 글쓰기 능력에 대한 좌절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으며, 런던에 다시 가고 싶어했다.
영화에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의 시골집, 그리고 그녀의 갈등은 이런 배경 하에 그려지고 있다.
2. 왜 그녀들은 여성들과 키스를 하나?
'올란드',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의 양성애가 드러나는 중요한 책들이다. 올란드가 시대를 초월하여 성이 변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면, '댈러웨이 부인'은 실제로 그녀가 좋아했던 여성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아침 꽃에 대한 묘사, 파티에 대한 우울증 등을 통해 그녀가 좋아했던 여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언니와 키스하고, 로라 브라운은 옆집 여자와,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메릴 스트립은 아예 레즈비언으로 등장한다.
로라 브라운의 버려진 아들 리처드가 양성애자로 그려지면서 그의 전 애인을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부르고 그녀에 관한 책을 쓴 것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리처드는 즉 버지니아 울프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실제로 남편 레너드 울프와 거의 정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몇몇 여성들과 사랑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까지도 그 점은 비밀에 휩싸여 있다.
3. 의식 흐름의 기법
20세기 최고의 영미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와 더불어 '의식 흐름의 기법'의 소설 창작법을 성공적으로 접목한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가 대표적 소설인데, 섬과 육지를 가로질러 한 여성의 심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줄달음질치고 있다.
의식 흐름의 기법은 자동연상법이라고도 불리워지는데, 창작가의 주관적 심도의 변화와 굴절을 어떤 틀에 끼워맞추지 않고 그대로 묘사하는 방법을 말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루스트가 이 창작법을 집대성한 소설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창작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해서 컷트와 씬 연결들은 매우 자의적이고 주관적이다. 영화를 볼 때 놀라거나 자지 말고 그대로 시선과 청각을 맡겨 두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