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군대내에서 추행을 할수 있을까?
어딘가에서는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자기 능력을 인정받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어릴때부터 무언가 하려고 했던 이계덕씨는 중학교때부터 각종 축제/문화행사등에 직접 참여하면서 청소년들이 끼가 있어도 그것을 활용할 공간이나 장소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동아리 GMG청소년문화기획그룹을 만들어 각종 축제/행사등과 청소년동아리들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회경험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울특별시 청소년 의회에서 청소년 인권,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되고 그러한 의지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으로 인한 촛불추모제 참여. 민주노동당에 청소년 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정당의 대의원조직에도 청소년들이 참여할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직접적인 정치참여에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이후 오히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정당사람이라고 멀리하게 되고 정당안에서는 조직의 목소리가 아닌 본인 개개인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 활동의폭이 좁아진다고 생각해 탈당하고 서울시청소년회의의 인연으로 고건 전 국무총리의 외곽조직이였던 우민회의 최연소 상임위원장을 맡아 민주당,한나라당 등 모든 정당에 청소년이 참여하고 대화하여 정책의 입안자로써의 역할을 할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른이들이 자기중심으로 헤쳐모여식으로 전고협,청소년공동체,전청련,민학연,학연,대청의 등 청소년 대표기구를 만들겠다 청소년 대의기구를 만들겠다 청소년을 조직화시켜야한다는 식으로 모일때 이계덕씨는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대표기구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그럴 동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현재의 자기 자리에서 세상에 보탬이 되기 위해. 무언가 바꾸기 위해 혼자서 할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언론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대자보. 시민의신문. 인터넷저널. 신문고뉴스 등 각 종 매체에서 인터넷신문 객원.시민기자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이나 의견. 그리고 바꾸고자 하는 이야기등을 실어왔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다른이들이 볼때 '언론노출증' 또는 '어린정치인'등으로 폄하되었고 생각없는 아이로 비추어졌을때 혼자서 많이 울기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를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에서 고건산하 우민회에 들어갔을때는 철새정치인이라는 어른들에게만 따라붙는 표식까지 붙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군에 입대한이후 이계덕씨가 군 복무를 잘해야지. 긍정적으로 해야지. 혹시나 과거의 정당활동이나 사회참여 경험들이 군대 내에서 잘못 보일까봐. 부적응으로 찍힐까봐 이계덕씨는 군대 내에서 참 열성적으로 근무했습니다. 2007년도 606전경대 행정반에서 중대소식지/경력현황등을 관리하고 부대원들을 위해서 강제휴일을 지정하는 중대휴무제등을 제안하여 실시하기도 하는 등 대원들에게 도움되는 방안들을 만들려고 남들과는 달리 무언가 부대 내에서 해보려고 했습니다. 부대원들의 과도한 근무시간을 줄이지는 못해도 최소한 한달에 두번은 휴식을 취할수 있게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고 짜서 제안해 만들어진 중대휴무제와 중대소식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계덕씨가 나홍식 부중대장님을 설득하여 만들어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렇게 부대에서 일년여가 지난 2008년 1월. 이계덕씨는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중대결심을 하게됩니다.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않고 군대내에서 2007년 한해동안 잘 복무해왔는데 남은 한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근무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동성애자를 밝히지 않았을때와 밝혔을때 이계덕이란 인물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자임을 밝히고도 남은 1년 정상적으로 근무해서 동성애자도 군복무를 남들과 다르지 않게 할수 있고 이미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 군대에서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남들에게 감염될수 있는 질병으로 인식하는 것을 뿌리뽑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커밍아웃 이후 부대는 점호시간에 '동성애와 같이 근무가 가능하냐'거나 '부대 내에 애인이 있냐'는 질문을 하며 저를 사흘간 생활실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고 행정반에서도 저를 쫒아냈습니다. 기동단에서는 각 부대에 업무연락을 보내 부대내에 동성애자가 누군지 찾아내라고 대대적인 수색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제가 동성애자 커밍아웃했음을 밝혔고 가족들이 충격에 빠질수도 있으므로 가족들에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이야기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다음날 바로 가족들에게 연락해 아우팅을 하여 부대로 오게 하더라구요. 너무 황당하고 반인권적이며 부대 내 생활실에 감시자를 붙여 한발자국도 못나가게 심지어 화장실에 갈때도 감시하도록 하는 처사에 항의하며 7일간 단식을 했습니다 이후 행정반으로 임시로 돌아왔지만 행정반 컴퓨터에 전의경 제도의 문제점이라는 글을 적어놓은 것을 두고 또 다시 영창을 보내려고 하더라구요. 전의경 제도는 반드시 폐지해야라는 제목의 글은 나중에 육군전환신청서를 작성할때 제가 그대로 옮겨적은 바로 그글입니다.
제가 생각했던건 부대 내에서 커밍아웃으로 인한 반항이 아니라 커밍아웃 이후에도 나에 대해 아무런 이상없이 평소처럼 대해주기를 바랬고
일년동안 정상적으로 복무해왓던 신뢰. 그리고 부대가 바뀌어 나가는 과정을 하나 하나 함께 해왔던 지휘관과 동료들을 믿었기에 커밍아웃 이후에도 아무일 없기를 바랬었지만 그것은 착오였었나 봅니다. 그렇게 부대 지휘관이 하나 둘 바뀌고 새 지휘관이 오고 상담을 하고 다시 부대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것처럼 보였습니다. 중대장에게 대원참여고충위원회 등 몇가지 제안이 받아들여져 부대 내에서 실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원하던 평범한 군생활은 아니었고 어찌보면 일개 대원이 부대운영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부대가 어떻게 하면 좋게 될까, 어떻게 하면 전의경들의 가혹행위가 없어질까, 어떻게 하면 전의경들의 인권이 개선될까 ,어떻게 하면 부대 막내들이 조금더 근무량을 줄여줄수 없을까라는 것들을 솔직히 중대장의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수차례 요구했고. 수차례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럴때마다 부대의 다른 지휘관분들에게는 단단히 찍히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다가 2011년 6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때 군홧발에 여대생이 폭행당하고 전의경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을때 저는 전의경들의 잘못이 아닌 지휘요원들에 잘못을 꼬집고 싶었습니다. 경찰청에서 부대원들에게 '전의경 사이버 대책'이라며 행정전의경을 시켜 전경,의경, 구타, 가혹행위를 검색하여 포털에 삭제하라고 요청하고 안들으면 고소하라는 내용에 공민. 전의경의 자살및 가혹행위 방지 대책이라며 내려온 업무연락에는 위해 대원들의 디카.휴대폰 금지 조치를 엄중관리하고 이를 사이버등에 올리지 못하도록 블로그,.싸이월드 등을 수집하여 관리하라는 내용의 공문. 한남동 유엔빌리지앞에서 흉기를 들고 여성을 찔러 상해를 입힌 사람을 몸싸움끝에 검거한 대원의 공을 마치 자신의 공인양 꿀꺽한 이모 경위의 행동들. 그리고 취사대원을 새벽에 술안주 만들어오는 종업원으로 부려먹는 경찰관들. 전의경이 도대체 왜 있는건지? 대사관 시설경비를 하더라도 도둑이 들던 테러가 발생하던 폭탄이 터지던 잡으러 가면 근무지 이탈로 처벌되니 관할지구대에 보고만 하라고 가르치는 중대장. 대사관에 전의경이 있는게 단순히 망보고 알리는게 목적이라면 외교관의 생명.재산.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찰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 집회 시위 현장에 전의경들이 왜 정치의사와는 반하게 나가서 왜 전의경이 욕을 먹어야 하는지? 왜 그들이 우리의 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이러한 부분들을 가지고 전의경에서 육군으로 전환하는 복무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다시 가고 싶은 생각있습니다. 일년더 고생하더라도 내가 군대에서 동성애자로써도 아무 문제없이 복무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전의경보다 군대에서 의미있는 복무로 나라에 무언가 보탬이 될수 있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내 스스로 나를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것을 의심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자만이었지만 그 때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육군으로 전환을 요청하는 행정심판이 언론의 화두가 될것은 예상하고 있었고 그것이 전의경 제도에 대한 비판과 문제점. 그리고 어물쩍 전의경 제도 유지로 선회한 어청수 경찰청장에 정책전환에 대해 전의경 폐지에 대한 중론이 모아지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육군에서 강제차출된 전경들이 겪게 될 정신적인 아픔이나 양심상의 이유. 그리고 복무하면서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같은것도 없이 내가 왜 서있는지 알수 없는 대사관에서 시간만 보내며 지휘관의 개인사역및 시중을 드는 노예로써 복무하는 전의경들에 대하여 정부나 사회에서 무언가 개선대책을 마련해줄것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행정심판청구는 내가 병역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였고, 군대 내에서 시위를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단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의견을 묻는 행위였기에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고 그냥 영창한번정도 보내면 갔다 오면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대는 영창이 아니라 부대원들에게 시켜서 '선임병인 당시 기율경 중대최고왕고 이우일과 같은 초소에서 근무 소위 라인이라고 하는 2소대 나진영. 그리고 나진영의 동기인 허영준.구현우를 비롯해 취사대원 강성현 등 열다섯명이 추행을 당했다는 식으로 진술서 작성을 하여 강제추행혐의로 고발하더군요.이제는 실명을 밝힐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들도 그 사건에 대해서 이제는 의문에 대해 질문을 받을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그들을 보호해주려고 제 스스로 실명공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부대에 정진주 경감이 변호사 두명을 불러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것을 분명 봤는데 '강제추행은 물증이 없더라도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있으면 유죄를 선고할수 있다'는 '피해자중심주의' . 도가니 사건과 같이 사회악들의 재판에서는 단 한번도 적용된적이 없었던 '피해자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부대원 열다섯명의 갑작스러운 고발이 이어졌습니다. 정확히 육군전환신청한이후 이주만에 일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런 사실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이 육군전환신청을 희석시키기 위해 강제추행혐의로 물타기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도 취하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없던일이니 만큼 무고를 안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은 누명을 씌워서 유죄로 만들 자신이 있었던 것이었던 겁니다.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안믿었습니다. 후임이 선임을 한명도 아니고 다수를 상대로 추행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는 것입니다.추행을 당했다는 시점에 일병이었던 이계덕이 기율수경이면서 중대왕고 였던 이우일을 대상으로 강제추행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구타와 가혹행위가 판을 치는 전의경 부대에서 그것도 커밍아웃을 한 대원이 말이지요. 두번째로 나진영.구현우.허영준에 대한 추행이 2007.08 경 삼일에 걸쳐 같은시간에 각각 10분동안 동일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인데 문제는 그 누구도 생활실 1층 및 2층에서 고참들이 감시하고 신임대원 옆에는 보호대원이 따라다니는데도 어떠한 목격자도 없고 심지어 같은날 벌어졌다는 나진영, 구현우, 허영준 스스로도 서로에게 "개한테 물어봐라" "개한테 물어봐라" "개한테 물어봐라"는 식으로 떠넘기며 스스로가 진술한 내용까지도 서로 안맞는 아주 웃지못할 헤프닝이 법정에서 벌어지기도 하고, 추행을 당했다고 진술서를 작성한 강성현은 법정에서 자신은 추행당하지 않았다고 법원에서 진술을 번복하고 소대장이 불러서 작성했다는 진술을 했음에도. 606전경대에서 이미 전역한 고참들이 부대내에서 후임이 선임을 추행하는 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진술 했음에도. 심지어 추행을 했다는 시점에 부대 당직근무일지에서 근무한 기록과 전화한 기록까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유죄선고이유는 검찰의 공소장뿐. 집행유예 사유는 육군전환 신청당시 이 사건이 뜬금없이 제기 된 점입니다.
- 군대에서 커밍아웃을 하게된 배경에는 동성애자도 다른이와 똑같이 군 복무를 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신념때문이라고 언론을 통해 공개 커밍아웃을 했던 내가군대내에서 강제추행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범죄를 벌이기전에 범죄를 하겠다고 알리는 셈이고 이미 범죄를 벌였다면 내가 범죄자라고 떠드는 셈이되는 것 아니겠느냐더구나 커밍아웃이후 부대내에서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부대원들중에 일부는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추행이 일어났을수 있겠느냐. 심지어 추행을 했다는 시점들에행정반 상황실에서 근무를 했던 기록및 전화를 받았던 기록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행을 당하였다는 사람들이 법정에 나와 그건 자의로 쓴게 아니라 소대장에 의해
시켜서 작성되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죄선고이유없이 검찰의 공소장만 붙여놓고 뜬금없이 육군전환신청 시점에 고소가 제기되었기에 집행유예라는건 이해가가지 않는다법원이 정말 군대에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추행을 할수 있다고 믿는다면 유죄의 이유를 작성하고 나를 감옥에 보내라. 법원이 집행유예 처벌에도 언급한바와 같이육군전환신청 시점에 이 사건이 뜬금없이 제기된 점에 의문을 품고 있다면 그에 대해서 명백히 조사해달라"
당시 집행유예취소신청서라는 내용으로 법원에 결정에 항의하면서 쓴 글입니다. 1심은 북부지법에 김형배 공보판사가 2심은 같은 법원의 부장판사가 맡았고 3심은 사실관계의 확인은 1.2심에서만 하는 것으로 3심에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고 법적용에 오류가 있었는지만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각했다고 하여 사실상 대법원은 사실관계 파악조차 하지 않고 1.2심 같은법원 공보판사. 부장판사에 의해 검찰 공소장만 있는 유죄. 강제추행과 관련없는 집행유예 사유로 형을 확정되게 됩니다. 감옥에 가지는 않았으나 군대 내에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추행을 할수 있다는 판례를 아주 쉽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군대내 성폭력에 피해자가 될수는 있어도 가해자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밝힌 연구자료와 후임이 선임을 추행하는 경우도 극히 드문것으로 연구된 자료가 있습니다. 제 사례는 후임이 선임을. 그것도 목격자는 하나도 없이 신출귀몰하게 같은날 같은시간 같은 방법으로 다수에게. 군대 행정반에서 순간이동을 써서 생활실로 가고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추행하고. 막 분신술을 써서 추행을 하는.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였기에 '추행을 예고 하고 추행을 저질렀거나 추행을 저질르고 추행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이상한 성격. 참 드문것들만 골라서 종합선물세트로 만들어진 사건이라고나 할까요?
군대 내 에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부대원 다수를 추행하는 일이 벌어질수 있을까요?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법원에서는 그렇다고 판결했으니까요. 감옥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하지만 저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제 유무죄를 판단하기 보다 군대 내에서 커밍아웃 하지 않은 동성애자가 있고, 그 동성애자들이 현재 군복무를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아무 문제 없이 전역한다는 점에 비추어 군대 내에 동성애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닌 그냥 군인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렇게 회고의 글을 남기는 것은 저는 많이 지쳤습니다. 무죄를 위해 싸우는 것도 힘들고 이걸로 인해 일자리 구하는 것도 힘들어서 최근의 겨우 정규직으로 취업은 했지만 최소한 이 불행한 진실이 이대로 뭍혀지지는 않기를 바라는 맘에서 써보았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내 자신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바꾸어보겠다는 욕심이 단순히 욕심에 지나지 않고 그로 인해 벌어진 결과가 매우 참담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런일을 할 용기가 안납니다. 누군가 나서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 진심만은 전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