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약’이 있습니다. 입 안에 넣기만 하면, 이성애자로 바뀔 수 있대요. 개인에 따라서 약발이 잘 받을 수도 있고 또는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때요? ‘이 약’을 먹겠습니까?
------------------------------------------------------------------------------
(제가 스물여섯의 안일하게 살고 있는 먹고대학 5학년이라는 걸 미리 밝힙니다.)
P가 J를 통해 얘기 좀 하자고 한다. 이내 P의 공간에 가서 취조(?)같은 걸 당했다. 좋게 말해서 면담. 이러저러한 걸 묻기에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까지 해주었다. 1부의 결론은 ‘넌 능력있는 아이었는데 변했다.’. 어떤 의미에서 난 내 의지나 열정이 몇 년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 말로는 내가 열정도 의욕도 그 전에 비해 너무 사그라졌댄다 그래서 실망이랜다. 이극고 ‘여자친구는 있느냐’로 2부가 시작되었다.
‘P여 다른 (남자)사람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몰라도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짜인 극본처럼 P는 되물었다. 왜 자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것은 제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되받아쳤다. 스물다섯인 작년 나를 드디어 인정하고 엄마를 시작으로 친구들, 주변인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P는 잠시 정신이 혼미했는지, 1부에서 크게 실망했던 것의 절반 정도 되는 실망을 가지고(내가 게이라서 실망했다는 말이 아니라! 실망의 총량이 줄었다는 말!!)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호르몬도 연구했단다. 나 같은 사람들은 호르몬의 비율부터가 다르다고. 그리고는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호르몬 치료도 있는데 받아볼 생각은 없느냐고. 동성애자에게 그런 게 있다고? 작년 이전에는 나는 왜 다를까 바뀌고 싶다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나에게 만족합니다. 그리고 호르몬 치료라는 게 어떤 건지는 몰라도 그 전에 내가 바랐던 변화는 나로부터의 자연스러운 변화지 외부적 요소에의 일시적 변화가 아니라고. 아무튼 시간이 되어 나는 일하러 가야한다고 말하고 나오는 것으로 2부 종료.
가게 오픈 준비를 하면서 지나림께 연락을 한 것이 3분의 시작이다. 동성애자에의 호로몬 치료 따위의 자료가 있다면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저 그런 게 있다면 어떤 건지, 그 걸 한 사람들은 뭔가가 궁금했다. 사실 지나림이 내게 ‘바꾸고 싶으세요?’라고 물으셔서 띠용?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짐작/예상할 수 없던 질문이었으니까. 어쨌든 찾아보고 자료가 있다면 보내주시겠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오픈 준비. 곧 날아온 대표림의 장문의 문자. 보내주신 고대로 올려보자면
-지나에게얘기들었고 좀 실망스럽다 솔직히 성정체성은 XX가 아니고 네가더전문가아닐까 글고 XX는 널모욕한거라고생각한다-
되물었다. 실망스러운 게 저 김태우인가요?
-XX도 실망스럽고 XX의 말에 진짠가 궁금해하는 피타추도 조금은 실망 기분언짢구나 안타깝다는새각이든다는거지모 그교수가너와어떤관계인지는모르지만 내겐으론 호모포비..-
글로 남기겠다고 매듭짓고 청소를 마저 했고, 12시 넘어서까지 일을 했다. 집에서 써야지 했는데, 모니터 앞에 앉았던 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보니 이불도 안 덮고 자리에 누워있는 나를 보았다.
처음엔 실망이 담긴 문자를 보낸 대표림께 되려 떨떠름하고 실망을 했다. 그저 궁금한 것에 대한 자료를 물어본다는 것에 ‘그 사람 말에 진짠가’ 혹했다고 의역했다는 것. 하지만 이 감정은 이내 귀여움으로 바뀌었다. 실망이라는 것도 기대 후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기대할 만한 사람인가도 싶고. 하지만 고작 요까짓 물음으로 실망을 준다는 건 내가 그만큼 믿을만하지 않은 것인가도 싶고. 신뢰의 문제인가. (@지나림께) 게이를 벗어나고 싶어서 자료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친구사이’에 연락을 했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고,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3부가 끝났다. 4부까지 하면 너무 긴가 다음에 쓸까도 고민스럽지만 4부까지 쓸 작정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 구분을 못하는 건가도 싶고. 아무리 관심이 없대도 그 정도로 (이 방면으로) 무식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끌끌. 침이나 오줌만으로 호르몬 성분 분석이 가능하다고 해볼래? 라고 했던 건 모욕수준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것도 귀엽게 봐주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이 사회의 편견과 억압에서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걱정해준 걸 봐도 그렇고.
신뢰의 문제에 떨떠름할 때 토닥여준 H에게 참 고맙다. H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지난 1년의 시간동안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곱씹어보았다. 지금의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막 잘생기지도 않고 막 못생기지도 않다. 막 크지도 않고 막 작지도 않다(키뿐만 아니라). 막 똑똑하지도 않고 막 멍청하지만도 않다. 이 얼마나 어중간한가. 어쨌든 이 어중간한 내가 좋다. 그리고 동성애자인 것이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지금이다. 거지같은 이성애자 남자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있는 이 상황 또한 나름 만족한다.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세상에 내가 있었다면, (야구동영상들과 자위를 좋아하는 걸로 봐서) 누구누구 못지않게 성적으로 문란하고 방탕했을지 모르지. 동병상련이라고 나 같이 대접받기 힘든 사람들의 소리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일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모방송국의 '화성인'들을 보면서 뭐 저런 사람들이 있냐 하다가도 내가 이 말을 할 처지는 아니다 하며 끌끌댄다. (가끔 너무한 사람들이 내 눈쌀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아무튼) 나는 게이(개인적으로 개이라고 쓰기는 하지만)인 내가 좋기까지 하다.
그나저나 내게 애인이 있다면 더 편하고 당당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개이인 나의 존재는 내 쪽에서도 여자들 쪽에서도 아주 편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남자일 경우 내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찝쩍거리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상대가 느낄 수 있는) 조심스러움이 있다. 이 때 ‘난 애인있습니다. = 너한테 관심없어요.’ 라고 말하면 서로 편하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내친김에 공개구혼(?)도 할까 하지만 여긴 만남의 장소가 아니므로 아쉽지만 팻스를 하련다. 이렇게 4부 마침. 아, 배고프다.
--------------------------------------------------------------------------------
여기 ‘약’이 있습니다. 입 안에 넣기만 하면, 이성애자로 바뀔 수 있대요. 개인에 따라서 약발이 잘 받을 수도 있고 또는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때요? ‘이 약’을 먹겠습니까?
나는 먹지 않겠습니다. 다시 고민을 해보죠. 네, 먹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게이라며 치료 가능하냐고 묻는 전화가 꽤 많이 와서 부지불식간에 학습되어;; 게다가 그 말도 안 되는 P님의 호르몬 치료 운운하는 얘기에 뚜껑이 열렸나봅니다-_-; 사과드리겠습니다.
전에 '이성애자로 바뀔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복용할 동성애자가 많을 것이다'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었지요. 이유는 다수에 속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나 종교의 이유 기타등등 일 것 같습니다만 그 역시 후천적으로 학습되어진 탓이겠지요. 피타추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공평하게...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바꿀 수 있는 약도 나왔으면 합니다. 저는 먹...을까요? ㅡㅡㅋ 뭐 굳이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성적지향은 그 사람을 이루는 아주 작은 부분이고.. 아는 사람 전부와 섹스를 해야하는 것도 아니니.. 전 그냥 '사람'이면 됩니다. 이성/동성을 나누기도 싫어요 ㅎ 그냥 예쁘면 좋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