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박완서 작가의 초기 작품을 읽었다.(물론 반 강제적인 이유로ㅜㅜ)
‘휘청거리는 오후’.
박완서 작가의 첫 작품을 읽었을 때는 그녀가 불혹의 나이에 등단한 사실을 배경삼아 막연히 그녀의 작품들이 모성애에 기초한 따뜻한 감성류들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그런 예상들은 내가 읽은 그녀의 첫 작품(꿈꾸는 인큐베이터)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았고 그녀가 가진 날카롭고 냉소적인 세상인식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정서적 공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역시 마흔이 넘어 등단한 은희경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가진 얄짤없는 시선으로 세상 베기도 장난이 아니었긴 하다.
이 작품도 70년대 결혼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한 장편 소설이다.
초희, 우희, 말희라는 세 자매와 그 부모들.
세 자매의 결혼과 그 후의 일상을 동정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암울한 결말.
여느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심정적인 선인이나 어쭙잖은 대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을 이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시대와 제도의 희생물이자 가해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이성애자들의 결혼 제도를 둘러싼 냉소적인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묘한 쾌락과 ‘니들이 별 수 있어?’ 류의 유치한 감정이 동하는 것은 나만의 속 좁은 생각이려나?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과연 제도나 상황과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들.
아무튼 꾸준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박완서 작가의 창작열과 성실성은 본받을만한 일이지 싶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오정희 작가의 새 작품들도 많이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노래 : 봄 (이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