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a and Billy the kid, Kutlug Ataman, 1999, 터키
윽... 착잡, 우울. 터키에서 커밍아웃한 유일한 게이 감독인 아타만의 역작.
'Victimism', 제3세계 망명 지식인들은 곧잘 자국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확대해서 서구 시장에 내놓는 버릇이 있습니다. 솔제니친 효과, 라 지칭할 수도 있겠지요. 특히 서구로 망명한 동성애자 지식인들은 내부 고발자 역할을 자처하며 감정적 과잉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여하간에 Lola and Billy the kid는 고통스러운 영화입니다. 독일의 터키 이주자들 중 퀴어 게토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죠. 아타만 감독 스스로 이 영화를 가리켜, 터키의 억압적 정치 상황을 고발한 올리버 스톤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퀴어 버젼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얼마 전에 올리버 스톤은 오리엔탈리즘과 제 3세계에 대한 몰지각의 이해에서 비롯되었다는 터키 측의 주장을 시인하며 자신의 그 영화에 대해 사과를 했더랬지요.). '호모섹슈얼'에 관해 정공법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는 위악적으로 느껴질 만큼 참혹한 내용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둘째 아들이 빨간 가발을 쓴 채 가족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그녀는 내쫓겨졌고, 지금은 롤라라는 이름을 가진 게이(혹은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롤라에겐 빌리라는 애인이 있지만, 게이로 살아갈 자신이 없는 그는 롤라에게 성기를 커팅하고 여자로 살아갈 것을 주문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게이인 16살의 막내 남동생 뮤라트도 매춘부와 억지로 자게 하려던 맏형으로부터 도망쳐 롤라에게 온 날, 롤라는 호모포비아 세 명에게 시달리다가 살해되기에 이르죠.
뮤라트와 롤라의 애인 빌리는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라고 선언하며 롤라 복장을 한 채 호모포비아 세명과 싸우게 됩니다. 잔인한 싸움이 벌어지고 뮤라트와 뮤라트가 좋아하는 젊은 애만 빼놓고 모두 죽게 되지요. 하지만 롤라를 죽인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롤라를 내쫓은 맏형이었던 겁니다. 이 맏형은 롤라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몇 번에 걸쳐 성폭행하다가 집에서 내쫓았으며, 종국엔 롤라를 살해해버렸던 겁니다.
빨간 가발의 롤라 복장을 한 뮤라트가 마초 문화를 응집하고 있는 자신의 집에 찾아가 맏형에게 진실을 말할 것을 요구합니다. '너는 롤라가 퀴어여서 죽인 게 아니라 니 자신이 바로 퀴어였기 때문에 그녀를 죽인 거야!.' 이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는 대사입니다. 터키의 마초 문화, 그 집요한 호모포비아의 무의식적 작동 방식을 비통하게 토로하는 장면이지요.
이 영화는 세 형제가 모두 게이였고, 맏형의 호모포비아로 인해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 일어났다는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제작되었지만, 터키의 호모포비아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공원 크루징, 게이 바, 매춘 거리를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있지요. 공원에서 만나 돈으로 성 관계를 맺은 독일 노인과 지저분한 터키 총각과의 애정 이야기도 재미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 영화에 사용된 과장된 드라마 트루기와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거슬리긴 하지만 감독의 분노가 녹록치 않게 스며 들어간 이 영화를 보며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울림이 있는 대사들도 많습니다. '자긍심'은 하층 계급의 빵이라든지, 매춘을 할 때 돈을 먼저 이야기하고 절대 키스는 하지 마라든지, 죽기 전 롤라의 고백이라든지.
99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special Teddy Award를 수상했습니다. 허나 칸과의 경쟁에서 뒤쳐진 베를린 영화제가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게 바로 '오리엔탈리즘'이기도 합니다. 국내 모 감독의 영화들이 유독 그 영화제에서 사랑받는 것도 이런 경향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4/12/26
아타만 감독의 인터뷰과 영화 소개글
http://www.advocate.com/html/video/823_lolaandbilly.asp
Marianne Faithfull | Who Will Take My Dreams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