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하프 (Blues Harp, 미이케 다카시, 1998)
일본에서 현재 가장 기발한 상상력으로 b급 영화계를 호령하고 있는 미이케 다카시의 야쿠자판 퀴어 영화.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들은 혼란스럽다. 어떨 때는 경박스럽다가도 어떤 때는 그 놀랄만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나 '이치 더 킬러'의 선혈 낭자한 영화들에서부터 '오디션', '비지터Q'에 이르는 기괴스러움을 진득하니 대면하고 앉아서 내면의 평정을 이루기란 도저히 힘든. '착신아리'는 그가 상업적으로 타협해 얻어낸 범작에 그치는 정도. 1999년 전주영화제에서 '오디션'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런 점에서 '블루스 하프'는 미이케 감독의 이력에 견주어봤을 때 이채롭다. 차분한 리듬이며, 따뜻하고 감성적인 색채.
야쿠자 중간 보스인 켄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상대편 조직의 말단 마약 공급책인 츠지를 사랑하게 되지만 야쿠자인 자신의 위치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 채 츠지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한다. 결국 츠지에게 향하는 켄지의 욕망은 야쿠자 조직과 더불어 자신과 츠지의 삶에 파국을 불러 일으키고. 켄지가 클럽 뒷골목,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사이, 오디션을 보느라 피를 흘리며 클럽 무대 위에 선 츠지의 하모니카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영화는 서서히 매듭을 짓게 된다.
이 사회 마초이즘의 상징인 조직폭력배와 동성애간의 '애매호모한' 관계를 B급의 감수성으로 차분하게 응시하는 미덕이 돋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