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title_Free
Identity

나는 Vampire요.

믿지 않겠지만 나는 뱀파이어요. 나는 지금 눈물로 이 글을 쓰고 있소. 나는 뱀파이어요.

그러나 당신들이 익히 세뇌당한 편견 속의 뱀파이어가 아니요.
송곳니, 박쥐, 흡혈귀, 드라큐라 등등의 편견들은 당신들이 온갖 문화를 통해 세뇌당한 것이요, 마치 동성애자들이 더럽고 추악하며 에이즈의 원인처럼 치부되듯이 말이요.

우리가 피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요. 허나 어찌 생사람의 목을 딸 수 있겠소.
그런 일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소이다.

물론 우리 뱀파이어의 중시조인  트랜실배니아의 블라드 더 임페일러 백작이 '블러드 드라큘라'는 오명을 받으며 생사람들을 고문하고 쇠꼬챙이로 살육하면서 뱀파이어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나빠진 건 인정하오. 그렇지만 그는 중세의 잔혹한 십자군 전쟁 시절이 빚어낸 끔찍한 악몽의 현현이었소.

이후 우리들 뱀파이어는 절대 생사람의 목을 따지 않소. 동물들의 피를 먹으며 살아왔고, 현대 이후엔 혈액 은행을 통해 우리 먹거리를 위생적으로 공급받고 있소.

본디 뱀파이어의 정체성은 동성애자와 마찬가지로 각기 사람에 따라 다른 시기를 통해 깨닫게 된다오. 어떤 뱀프는 어렸을 적에, 또 우리 지하 조직의 문지기 할아버지처럼 아주 늦게 정체성을 깨닫기도 한다오. 목이 물려 뱀파이어가 된다는 편견 또한 거짓이오. 전염될지도 모른다는 일반인들의 두려움 때문에 생긴 거요. 동성애는 전염될 수 있으니, 애들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무식한 이성애자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소.

우리 뱀파이어 학자들 사이에선 '왜 우리가 피를 좋아하는가?'하고 지금도 논쟁을 벌이고 있소. '헬레모뜨자이라'라는 저명한 학자는 800만년 전 유인원의 초기 형태인 라마피테쿠스가 지구상에 등장해서 막 육식을 시작했을 때, 피에 대한 도착이 이루어졌고, 이 도착이 진화됨에 따라 유전인자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는 주장으로 뱀파이어 존재를 설명하고 있지만 아직껏 확인된 바는 없소.

우리는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깨닫소. 처음엔 왜 자신이 일반인과 달리 피를 좋아하게 될까 고민을 많이 한다오. 어떤 뱀프는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 자살하기도 하고, 어떤 뱀프는 엄청난 돈을 주고 비밀을 댓가로 정신병원에서 요양하기도 한다오.

하지만 결국엔 대부분의 뱀프들이 우리 지하 조직에 들어올 수밖에 없소. 바로 우리의 커뮤니티기 때문이오.


지하 조직, [로즈]

한국 뱀파이어 조직은 딱 하나 뿐이오. 바로 '로즈'가 우리의 조직이오.

이 로즈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 있으며, 우리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국정원의 수뇌부 뿐이오. 예전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군부 출신의 국정원 수뇌부 몇 명이 부화뇌동하여 '로즈'를 세상에 공개할 계획을 가졌지만, 세상 사람들이 놀랄까봐 결국 그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소.

우리 로즈 조직에서는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치 당신네들이 커밍아웃 하듯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소. 나 또한 그 중에 하나며,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오.

우리들은 위계 조직이 아닌 대신,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소. 비밀이 곧 우리의 생존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난 언제까지 이렇게 비밀을 붙이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소. 당신네들을 보고 힘을 얻었소. 당신네들이 힘든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하나 둘 커밍아웃하며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말이오.

본디 1500년 대의 프랑스 남부 지방의 뱀파이어 커뮤니티에는 동성애자 뱀프 모임이 따로 있었소. 왜 우리 뱀파이어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아름다운지는 아직도 연구 중이지만, 여하튼 뱀파이어 치고 이쁘지 않은 사람이 없소이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던 남자 뱀프와 여자 뱀프들 사이에 서서히 동성애자들이 생겼고, 우리 소수자인 뱀파이어들은 동성애를 이성애와 똑같이 취급하고 있소.

이 자리를 빌어 살짝 귀뜸을 할 것 같으면 '뱀파이어의 인터뷰'를 다 보셨을 것이오. 거기에 등장하는 중세 뱀프 커뮤니티는 바로 동성애자 커뮤니티였소. 뱀파이어의 인터뷰를 처음 기획한 자가 누군지 아시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소. 더 말하고 싶지만, 나중에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겠소.


연대를 제안하며

이제 우리 한국 뱀파이어들도 아직은 몇 명 안 되지만 당당히 세상에 나갈 꿈을 갖고 있소.

"나는 뱀파이어다!"라고 말할 꿈 말이오.

우리는 당신네들보다 더 소수자요. 설마 우리가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소. 해서 난 당신네 동성애자들에게 연대를 제의하는 바요. 이 연대는 조직간의 실질적 연대라기보단 소수자를 이해하는 소수자로서의 마음의 연대를 의미하오.

우리 뱀프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마시오. 오늘은 처음인지라 당신들에게 적잖이 충격일 것 같소. 그 충격의 여파를 걱정하는 나머지 오늘은 조심스럽게 겉만 핥고 있는 중이며, 차후에 우리 뱀파이어에 관해 더 말하겠소.

우리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소. 우린 밤을 사랑하고, 피를 좋아하며, 당신네들처럼 그저 일반인들과 '차이'가 있을 뿐이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벌써 새벽이 지고 있소. 곧 해가 뜰 것 같아 관에 들어가야겠소.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