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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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8 00:44:21
+8 1930
보통 12시에서 1시 사이에 일어나면 매일 하던일들(밥먹기, 설겆이하기, 집 청소하기, 음악듣기, 웹서핑하기)을 하다가 동네 시장에서 그날 사용할 싱싱한 재료들로 장을 보고 나머지 것들은 낙원시장에서 장을 본 다음에 가게에 나가서 청소하고 준비하면 되는데 오늘처럼 일찍 일어나는 날은 잠시 멍해진다.
직장인들에 비하면야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니지만(오늘은 내가 아침9시에 일어났다. 아니나다를까 요즘은 종종 일찍 일어나게 된다. 늙었나부다)보통 내가 잠을 자는 시간이 아침5시에서 6시 사이인걸로 치자면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거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날은 직장생활을 할때의 일요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침대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다가 늦게 아침겸 점심을 먹고 오늘은 뭘 할까 생각하고...
오늘같은  날 날이 맑았으면 동네 뒷산에 때늦은 단풍구경을 가도 좋을텐데 하필이면 비가오니 그러지도 못하고 오랫만에 대청소를 시작했다.

둘이 사는집이지만 한명은 직장다니면서 저녁에는 수영장 다니고, 난 장사한답시고 매일 새벽에 집에 들어오다 보니 가끔 거실이며 방바닥에 먼지가 밟힐때가 있다.
청소하느라 한참을 보낸후 싱크대를 열어보니 쌀도 다떨어져가네?
잘 됐다. 이참에 멋진총각이 배달한다는 동네 쌀집에다가 배달시켜야겠다.
전화번호를 누르니 저음의 젊은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여기 북아현3동 몇번지 1층인데요 쌀 10kg짜리 갖다 주세요" 라고 했더니 30쯤 걸린다고 그런다. 그런데 30분은 커녕 1시간이 지나도 전화기속 저음의 총각은 오질 않는다.
조바심에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저 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음성 "지금 출발했습니다"
그래도 안온다.
혹시 이 놈의 내 속셈을 알아차린 것일까?
또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낯선 남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배달하는 총각이 갔는데 집을 못찾아서 그냥 왔답니다"

바보 같은 놈 우리집을 왜 못찾아...

그래서 결국 난 다른 쌀가게에 전화를 걸어서 배달시키고야 말았다.
근데 이 집은 전화하기가 무섭게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물론 쌀을 들고 온 남자는 저음의 젊은 총각과는 반대로 세수도 안한 듯한 얼굴의 부시시한 50대 아저씨였다.

결국 내 은밀한 욕망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고 난 안방 장롱이며 작은방 옷장속의 옷들을 다 끄집에 내 놓고 겨울을 대비한 옷정리하는 걸로 일찍 일어난 날의 낮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래도 '제일 좋은 쌀로 갖다 주세요'라고 해서 그런지 밥맛은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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