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헤어진 지는 3년째, 전화가 온 지는 1년만이다.
난 이럴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
잘 사냐? 하고 묻는 게 첫 번째 수순이라면, 두 번째는 가족의 안부를 묻고, 그리고 정 할 말이 없으면 애인은 있어? 하고 묻는다. 그러다 이것저것 밑천이 떨어지면 잠시 침묵을 서로 공유한다.
녀석과 사귈 때는 몇 시간이고 붙들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전화 통화 내역, 63층 빌딩 옥상에 서서 통화 내역서를 힘껏 펄럭여도 끝에 닿을 그 길고 먼 이야기 자락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옛 애인을 우연하게 만나는 일, 어제밤처럼 느닷없이 전화로 출몰하는 일, 난 자못 당혹스럽다. 특히나 어제밤처럼 추근덕거리던 누군가에게서 냉수 한 사발 흠뻑 얻어 맞은 직후에 이런 전화가 올 때는 참 질긴 신파군, 하고 읊조리다 못내 허허거리고 만다. 그게 세상 사는, 참 질기고 오묘한 맛이지 하고 허허거리며 담배를 맛있게 빨아댄다.
누군가 나에게 보졸레 누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