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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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활동스케치 #6]
일본 LGBTQ+ 정치 탐방기
(feat. 이시카와 타이가)
0. 갑작스럽게 추진된 도쿄 출장
6월 말, 3박 4일 도쿄 출장은 “지금이 아니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갑작스럽게 추진되었다.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이미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정치인들이 국회와 지방의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들의 경험은 한국의 성소수자 정치참여 운동에도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간접적으로만 접하던 그 현장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제도 안에서 성소수자 정치인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정치인으로서의 삶과 LGBTQ+ 당사자로서의 삶은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는지, 그리고 RUN/OUT은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1. 일본 국회에서 마주한 낯선 장면
첫 일정은 일본 국회 견학과 초당파 LGBT에 관한 과제를 생각하는 의원연맹(링크)의 간사장 니시무라 치나미 중의원과의 만남이었다.

일본 국회의사당은 한국의 국회와는 또 다른 무게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1920년 1월 착공해 1936년 11월 완공되기까지 17년이 걸린 건물. 제국 시기에 지어졌고, 일본 국산 자재와 고유의 기술로 세우겠다는 원칙 아래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회의사당 곳곳에 남아 있는 제국의 흔적이었다. 국회 개회식 때 천황을 맞이하기 위해 열리는 중앙현관, 천황이 머무는 공간으로 이어지는 중앙계단과 휴게실, 그리고 중앙홀에 세워진 세 개의 동상. 그곳에는 일본 의회정치의 공로자로 기념되는 이토 히로부미, 오쿠마 시게노부, 이타가키 다이스케의 동상이 놓여 있었다. 한편 네 번째 좌대는 비어 있었다. 다음 인물을 정하지 못해 비워두었다는 설명도, 정치에는 완성이 없다는 미완의 상징이라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낯선 건물 안을 걸으며 일본 정치 안에서 성소수자 의제가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듣는 시간은, 일본 정치의 제도와 역사,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한국인과 LGBTQ+라는 정체성과 함께 겹쳐지는 경험이었다.

니시무라 의원은 1999년 니가타현의회에 처음 당선되고, 2003년 중의원에 당선된, 30년 가까운 정치 경력을 쌓아온 정치인이다. 또한 초당파 ‘LGBT에 관한 과제를 생각하는 의원연맹’에서 간사장을 맡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우선, 의외였던 것은 일본 국회의원실의 규모였다. 일본의 의원실은 한국에 비해 훨씬 작았고, 보좌진도 세 명 정도라고 했다. 한국의 국회의원실을 떠올리면 꽤 다른 풍경이었다. 공간은 작았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결코 작지 않았다. LGBT의원연맹의 활동, 일본 정치 안에서 성소수자 의제가 놓인 위치, 그리고 제도정치 안에서 당사자 정치인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으로는 묘한 한탄도 들었다. 한국의 국회의원과도 이렇게 LGBTQ+ 주제를 바탕으로 대화해본 적이 많지 않은데, 왜 오히려 해외에서는 이런 만남이 가능한 걸까. 정작 내가 살아가는 한국 정치 안에서는 왜 이런 대화가 이토록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일본 국회에서의 만남은 부러움과 배움, 그리고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질문을 동시에 남겼다.
2. 기사에서 보던 사람들과 마주 앉다

이후에는 신주쿠 산초메로 이동해, ‘아리가또’라는 동네 음식점에서 일본의 성소수자 지방자치의원들과 만났다. 겉으로는 평범한 음식점이었지만, 신주쿠 니초메 바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게이 커뮤니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커뮤니티 술집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일본 LGBT 지자체 의원연맹 발족 맴버
(왼쪽부터 이시카와 타이가, 호소다 토모야, 가미카와 아야, 마에다 쿠니히로, 이시자카 와타루)
사진 출처 : https://www.buzzfeed.com/jp/kazukiwatanabe/20170706
이 자리를 주선해주신 이시카와 타이가 전 참의원과 더불어, 지난 1월 RUN/OUT 2026 정치축제에 함께했던 호소다 토모야 의원, 마에다 쿠니히로 전 의원,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밝히고 나카노구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시자카 와타루 의원까지. 2017년 일본 LGBTQ+ 지방의원 연맹을 만들고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실제로 눈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3~4시간 가까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아쉽게도 가미카와 아야 의원님은 갑작스러운 의회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셨다). 격식을 차린 회의라기보다, 서로의 정치 경험과 고민을 솔직하게 꺼내놓는 자리였다.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마에다 쿠니히로 전 의원을 포함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들이 RUN/OUT의 활동 자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당사자 출마 운동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후보와 캠프를 어떻게 연결했는지, 선거 이후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모으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어떤 자원에서 시작되었는지, 현재 상근자는 몇 명인지, 각자가 분담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현재 어떤 점이 가장 난관이고 또 어떤 점이 생각보다 확실하게 풀리는지. 나아가 일본에서도 당사자 출마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며 오래 협력하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한국이 일본을 배우러 간 자리였지만, 동시에 일본의 당사자 정치인들도 한국의 실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리가또'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동하기 전, 20~30대 게이들의 주거지역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나카노구에서 당선된 이시자카 와타루 의원은 까먹고 못줄 뻔 했다며 나카노구 내 게이바와 커뮤니티 공간에 배포하고 있다는 "LGBTQ+용 의정보고서"를 전해주셨다. 상업지역을 넘어, 성소수자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만나는 주거지역에서 의정활동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멀리 미국의 하비 밀크의 사례가 바로 옆 일본에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었다. 나아가, 한국의 마포, 용산, 종로에서 당선된, 혹은 앞으로 당선될 지방의원은 과연 이만한 상상력과 용기를 갖고 있는가. 자연스럽게 반문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한편, 이 자리에는 이름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전현직 정치인들의 동반자와 보좌진들도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정치인의 삶의 현실로 이어졌다. 정치인으로서 요구받는 삶과 LGBTQ+ 당사자로서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매끄럽게 맞물리지 않았다. 가족과의 관계, 연인과의 갈등, 지역사회에서의 시선, 정당 안에서의 위치, 선거를 치른 뒤의 소진까지. 그 이야기들은 화려한 대표성의 언어 뒤에 놓인 실제 삶의 무게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출마를 말했고,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정치에 도전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정치가 내 삶과 멀리 떨어진 제도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게 정치는 자기 존재를 걸고 들어가는 삶, 그 자체였다.
3. 신주쿠 니초메와 종로3가 사이에서

도쿄에 왔으니 니초메도 안내해주겠다는 이시카와 전 의원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술자리에 함께했던 의원들과 함께 신주쿠 니초메를 걸었다. 일본 최대의 게이 상업타운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막상 걸어보니 규모는 생각보다 작게 느껴졌다. 골목과 건물 사이에 작은 바들이 밀집해 있었고,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쌓인 커뮤니티의 흔적이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니초메를 중심으로 한 별도의 퍼레이드와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서울퀴어문화축제와 종로3가 게이축제가 따로 열리는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도시 전체를 향해 열리는 프라이드와, 특정 커뮤니티 공간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축제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니초메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친구사이가 위치한 종로3가를 떠올렸다. 두 공간은 완전히 같지 않지만, 닮은 점도 있었다. 도시의 중심부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비껴난 공간, 공식적인 지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분명한 의미를 가진 장소. 집창촌과 유흥가, 낡은 상업지구의 틈에서 게이바와 퀴어 공간이 생겨났다는 점에서도 서로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레즈비언바의 존재였다. 게이 남성 중심으로 기억되기 쉬운 도시의 퀴어 공간 안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를 만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니초메는 단순한 유흥가라기보다, 일본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도시 안에서 어떻게 몸을 숨기고, 드러내고, 살아남아 왔는지를 보여주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4. 이시카와 타이가의 동네

이번 출장에서 가장 마음에 자리 잡은 장면 중 하나는 이시카와 타이가 전 참의원이 살고 있는 도쿄 스가모 일대를 방문한 일이었다. 국회와 니초메가 일본 성소수자 정치와 문화의 공적인 얼굴이었다면, 스가모는 한 정치인의 일상이 놓인 공간이었다. 스가모 일대는 저층 주거지와 중고층 상업지구가 섞여 있는 동네였다. 굳이 한국의 감각으로 비유하자면 서울의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난 동작구, 서대문구, 동대문구의 어느 동네가 겹쳐 보이는 느낌이었다. 특별히 화려하지도, 위압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생활권이었다.
이번 출장의 숙소는 이시카와 전 의원이 운영하는 Airbnb였다. 지난해 10월 친구사이와의 인터뷰에서 “도쿄에 오면 머물러도 좋다”고 제안해주셨던 말이 실제 방문까지 이어진 셈이었다. 숙소 한편에는 ‘LGBT welcome’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한 것은 인터뷰 속 정치인의 단편적인 사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활이었다. 이런 인연이 아니었다면 책이나 기사 속 인물로만 마주했을 한 정치인의 삶이, 이번에는 동네와 집, 식탁과 이웃의 관계 속에서 날것에 가깝게 다가왔다. “이 술집은 제 단골집이에요. 근처 학교 학부모 모임에서도 오래 활동해온 분이 운영하는 곳이라, 동네에서는 아주 힘이 세답니다.” 이시카와 전 의원이 그렇게 소개하자, 철길 인근의 작은 술집 사장님은 익숙하다는 듯 허허 웃으며 술을 따라주었다. 그 짧은 장면만으로도 이 사람이 이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함께 있는 동안 동네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고, 도쿄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라며 몬자야키를 직접 준비해 대접해주었다. 화려한 접대라기보다, 자기 동네에 온 손님에게 익숙한 음식을 내어주는 마음에 가까웠다. 가족의 흔적이 있는 집, 동네 사람들과 이어진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일상. 전직 국회의원이자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밝혀온 정치인의 삶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일은 한국에서는 아직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일본 국회에서 본 것은 제도였고, 신주쿠 니초메에서 본 것은 문화였다. 그러나 도쿄 스가모에서 본 것은 커밍아웃한 정치인의 평범하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삶이었다. 성소수자 정치인이 특별한 상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동네의 주민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이웃과 관계 맺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 장면은 한 명의 커밍아웃 정치인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관계와 돌봄이 필요하며, 무엇이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5. 동아시아가 함께 만들어가자는 말

이번 출장에서 가장 오래 남은 말은 긴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시카와 타이가 전 참의원이 건넨 “동아시아가 함께 만들어가자”는 제안이었다. 일본의 성소수자 정치참여 경험은 한국보다 앞서 있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국회 안에서 LGBT의원연맹이 활동하고 있었고, 지방자치의원들의 네트워크도 이어지고 있었다. 기사와 자료로만 보던 이름들이 실제 정치 현장에서 서로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일본이 앞서 있고 한국이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국에도 선거를 치른 성소수자 후보와 캠프, 활동가들의 경험이 있고, 혐오와 제도적 장벽 속에서도 정치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경험과 한국의 경험은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었다. 성소수자는 어떻게 정치의 주변부가 아니라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커밍아웃한 정치인은 어떻게 혼자 소진되지 않고 다음 세대와 연결될 수 있는가. 혐오와 백래시가 강해지는 시대에 민주주의는 누구의 삶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 일본 역시 이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도쿄 출장이었지만, 이시카와 의원님의 배려 덕분에 만난 인물들은 모두 서로 다른 정당에 있었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정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소수자 정치인이 혼자 버티지 않도록 연결망을 만들고, 다음 세대가 더 쉽게 정치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놓아야 한다는 문제의식만큼은 같았다. 그래서 이시카와 전 의원의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의 성소수자 정치참여자들이 각자의 고립된 싸움에 머무르지 말고, 서로의 경험을 번역하고 연결하며 함께 기반을 만들어가자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이번 출장은 단지 일본의 정치를 보고 온 시간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의 성소수자 정치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리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실마리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도쿄에서 확인한 것은 일본의 앞선 사례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RUN/OUT 역시 이미 동아시아 성소수자 정치의 한 장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경험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참, 한일 통역에 함께해주신 일본 NPO <Peace Winds JAPAN>의 활동가 손보라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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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리드 정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