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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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생활동반자법과 그 너머의 가족구성권 간담회 후기
2023년 9월 22일 금요일 오후 2시, 강북노동자복지관 5층 강당에서는 가족구성권연구소를 비롯한 11개 단체 공동주최로 "생활동반자법과 그 너머의 가족구성권을 실천하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공론장"이 열렸다. 이 날의 행사는 혼인·혈연 관계 외의 가족관계의 인정을 골자로 하는 생활동반자법의 의의를 비롯하여, 그것을 뛰어넘는 가족관계의 상상과 법적·사회적 인정을 논의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법에 10의 내용을 담으려면 통상 10이나 9의 논의가 아니라 그보다 더 나아간 13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만큼, 이 날 논의된 다양한 이야기들은 비단 법의 테두리에 한정되지 않는 사회적인 것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시작 시간에 이르러 장내는 참석자의 열기로 가득했으며, 8개 단체 대표가 나누어 맡은 발제의 내용은 다음의 기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생활동반자법에도 담기지 못한 가족이 있습니다" (일다, 2023.10.4.)
발제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이 내국인, 비청소년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이주민, 청소년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친권과 가정을 어떻게 사회화, 공공화 민주화시키느냐"(자료집, 17쪽)는 질문은 행사의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화두였다. 더불어 이주 여성의 경우 출산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미등록 이주 아동의 존재가 양산됨으로써 기존의 법적 가족에서 아예 배제된 존재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례와 죽음에 관한 법제도에서는, 현재의 법령으로는 사후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고, 혈연 관계가 아닌 사람에게 장례를 주관토록 하는 "내 뜻대로 장례"와 "가족 대신 장례"의 절차가 매우 까다롭게 규정되어 있는 점(30~31쪽) 등이 지적되었다. 더불어 장애여성의 경험을 통해, "의존과 돌봄 없는 독립은 누구에게나 불가능"(51쪽)하며, 수용시설을 비롯하여 시설 밖의 관계 또한 '시설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 날의 발제가 통틀어 이야기한 것은, 기존의 가족제도의 달콤한 과실을 우리도 달라는 차원이 아니라, 기존의 가족제도가 여기에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삶과 관계를 얼마나 모욕하는지에 대한 내용과, 따라서 그 가족제도 자체를 흔들고 재구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였다. 이것은 입법 투쟁과 전략·전술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칫 누락될 수 있는 현장의 감각과 목소리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8개 단체의 목소리는, 곧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지난 시절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등을 통해 쌓아온 연대의 관계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주거 정책이 혼인제도와 긴밀히 연동되는 점에 비추어, "결혼은 너무나 계급적"(20쪽)인 것이며 "가족정책이 곧 인구정책"(23쪽)으로 치부되어온 사실에 눈감아서는 안된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았다.
지난 십몇년 간 공들여 관계맺어온 연대의 장 안에서, 성소수자의 혼인과 가족구성의 욕망과 언어 또한 이들 연대단체에 통약 가능한 어떤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온 '코르셋'이 아니라, 운동이 스스로 운동 사회에 발을 넓히고 스스로의 의제를 확장하기 위해 선택해온 전략이다. 그러한 노력이 운동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 운동의 굳건한 성원권을 만들었고, 주요 행사 때마다 나부끼는 무지개 깃발의 풍경을 만들었다. 이날의 행사는 그러한 그간의 역사와 성취에 부대되는 기쁨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만든 자리였다.
끝으로 공동주최 단위 중 하나인 친구사이 측의 발제문 전문을 아래에 인용하며 후기에 갈음하고자 한다.
성소수자의 돌봄 실천을 통한 삶/관계의 재정의
터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전신인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약칭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은 2006년 7월 13일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의 활동 초창기부터 줄곧 연대 단위로 참가해왔습니다. 2010년 12월 7일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이 개최한 제6차 가족정책포럼에서, 친구사이는 가족형태·가족상황에 대한 차별을 복합차별(compound discrimination)로 개념화하였고, 여기에는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로서 겪는 차별뿐만 아니라, 제도적 혼인을 기준으로 발생하는 한부모 가족·비혼 가족·독신 가족·동거 가족·공동체 가족 등 다양한 가족구성 형태에 대한 차별 등이 포함되었습니다.[1] 이는 친구사이가 일찍부터 성소수자에 고유한 차별 경험과 더불어, 일견 낯설지만 실은 그것과 연결되어있는 다양한 차별 현장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게이커뮤니티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운동단체로서, 친구사이도 동성혼에 대해 꾸준한 관심과 활동을 전개해왔습니다. 2013년 친구사이 대표이던 김조광수와 친구사이 회원인 김승환 두 분의 결혼식이 진행되었을 때, 친구사이 내 합창 소모임 지보이스의 단원들은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부르다 혐오세력이 뿌린 오물을 뒤집어쓰기도 했고, 그해에 발족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현 혼인평등연대)에도 친구사이는 초창기부터 꾸준한 연대를 이어왔습니다. 이처럼 친구사이는 혼인평등과 동성혼 의제 또한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이라는 의제의 차원으로 파악하고 그 중심에서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여기서의 가족구성권이란, 제도적 혼인을 포함해 현 단계의 제도가 인정하는 관계형태를 넘어서, 지금 여기에 이미 존재하는 관계들과 그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실질적인 돌봄 수행에 주목하여,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한 인간의 삶과 관계와 가족과 혼인,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제도적 인정을 재정의하자는 포부를 담은 개념입니다.[2]
이에 따라 친구사이는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관계의 실천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관계적 욕구가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친구사이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실시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서, 전체 유효 응답자들(3,159명) 중 59.8%(1,823명)가 동성혼 법제화를 원했고, 36.1%(1,101명)가 법적 결혼이 아닌 시민결합 등의 제도적 인정 형태를 원했습니다.[3] 이러한 추세는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측에서 조사한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성소수자 관련 정책의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서, 전체 응답자(3,911명) 중 42.5%가 동성결혼에 대한 법적 결혼 인정을 꼽았고, 38%는 결혼이 아닌 동성커플을 위한 파트너 관계의 법적 인정을 꼽았습니다.[4] 즉 성소수자들의 절반 가량이 동성혼 법제화를 원하는 한편, 적지 않은 비율의 성소수자들은 동성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법적 관계 인정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사실로부터 유추되는 것은,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관계 실천과 그것의 법적 인정에 동성혼 법제화가 필수적인 의제임과 동시에, 동성혼이 아닌 형태의 법적 관계 인정에 대한 활동 또한 반드시 병렬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023년 5월 31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소위 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지원법이 '가족구성권 3법'의 이름으로 나란히 명명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5]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동성혼 법제화와 동성혼이 아닌 가족형태의 법적 인정을 동시에 욕망하는 만큼, 혼인평등법과 생활동반자법 또한 어느 것 하나 빠짐이 없이, 서로간의 우열이나 우선순위가 설정되지 않은 채 반드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위 3법의 발의를 통해 천명된 셈입니다.
게이커뮤니티에서도 1:1 연애·로맨스 관계에 대한 욕망과 선망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것이 이성애 사회에서 억압되고 금지되어왔기에 더욱 강렬하고 절박하게 추구되는 면도 강합니다. 하지만 게이커뮤니티의 모든 사람들이 1:1 연애 관계를 욕망하는 것은 아니고, 욕망하더라도 자원의 부족으로 그것을 실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며, 나아가 꿈에 그리던 1:1 연애·동거 관계가 성사되었다고 해서 당사자의 관계·돌봄 행위 및 안전에 대한 욕구가 알아서 실현되는 것도 아닙니다. 1:1 로맨스 관계에 대한 동경과는 별개로, 친구사이 상담 채널에는 연애 관계를 맺고 상대를 기망한 사기 사건, 파트너폭력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사례 등이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제도적 결혼과 가족이 그러하였듯이, 성소수자의 연애 또한 그것을 장밋빛으로 경험하는 사람과 피해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모두 존재합니다. 어떤 피해가 있을 때 그 피해 현장의 경험과 목소리가 소외되지 않고, 피해가 회복될 수 있도록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변혁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인권운동의 준칙이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런 까닭에 친구사이에서는 그간의 활동을 통하여, 게이커뮤니티의 구성원이자 단체의 회원으로 살아나갈 때 반드시 연애나 동반자 관계가 있어야 함을 전제로 삼지 않고, 단체와 커뮤니티의 지원과 돌봄을 통해 혼자서도 성소수자로서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사업에 힘써왔습니다.[6]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야 둘이서도 잘 살 수 있고, 여럿이서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가 법적 혼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혼인평등이 중요하다면, 혼자서 무사히 살 수 있는 권리 또한 마찬가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는 양쪽 모두를 위한 제도적 인정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생활동반자법은 바로 1인 개인의 입장에서 혼인·혈연관계가 아닌 형태의 가족/관계의 구성을 법적으로 인정하자는 취지로 구상된 법입니다. 즉 생활동반자법은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다양한 관계 욕구와 그것의 법적 인정의 형태가, 배타적 애정관계에 있는 2인의 법률혼 모델로 국한되고 그것이 유일한 옵션이 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동성혼과 생활동반자법은 서로를 대체할 수 없고,[7]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관계와 돌봄 실천을 현실화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두 법과 각각의 법이 함유한 의제는 어느 것 하나 빠뜨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끝으로 게이커뮤니티의 가족구성권과 동성혼을 놓고, 친구사이가 2015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주최한 간담회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목소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성혼 법제화가 필요하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결혼이 마치 완전한 제도처럼 취급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8] 가족구성권 3법 중 하나인 비혼출산지원법이 이미 기존의 제도적 결혼이 배제해온 비혼 출산, 미혼모 낙인에 대해 도전하고 있고, 동성혼과 생활동반자법 또한 기존의 제도적 가족과 결혼 관계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부터 출발하였기에 이는 중요한 지적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성애 결혼을 두고 "저런 식으로는 결혼하기 싫다"는 게이커뮤니티 내부의 여론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사이를 비롯한 인권운동의 뿌리는 게이커뮤니티를 비롯한 현장에서 이미 실천되고 욕망되는 관계·돌봄과 거기서 비롯되는 정의일 것이고, 그곳에서 기존의 결혼과 가족이 과연 어떻게 새로 정의되는지를 살피는 것은 중요합니다. 마치 게이커뮤니티에서 수행되는 항문섹스가, 안팎으로부터의 낙인에도 불구하고 섹스/관계의 쾌락과 욕망과 안전을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입장으로 새롭게 정의한 것처럼, 성소수자의 관계 및 돌봄 실천과 그것의 법적 인정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섹스가 그토록 남들과 같아지려 하였음에도 결국은 남들과 다르기에 존엄하였듯이, 우리의 관계 또한 그토록 남들과 같아지려 함에도 결국은 남들과 다르기에 존엄할 것이 분명합니다. 동성혼과 생활동반자법이 그렇게 우리 스스로 새로 정의한 관계와 돌봄에 걸맞는 내용을 지니기를 바라며 발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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