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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다! –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무지개농성에 부쳐
2014-12-30 오후 16: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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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2월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다! 
–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무지개농성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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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11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시민 공청회가 보수기독교 단체의 단상 점거로 무산돼버린 날이었지요. 호모포비아 세력이 본격적으로 체계와 조직을 갖추어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이들의 패악질은, 차마 기록된 영상을 눌러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대화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대화 자체를 가로막은 이 폭력적인 사태를 서울시는 수수방관했고, 이 사건은 이후 몇주간 벌어진 일들의 전주곡이었습니다. 
 
11월 28일, 시민위원회의 인권헌장 표결이 있었던 날입니다. 마찬가지로 의견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토론 자체를 가로막는 일들이 벌어졌고, 위원들에게 퇴장을 종용하는 시측의 방해도 잇따랐습니다. 전체 180명의 위원 중 자리를 지키고 있던 73명이 헌장안 중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의 삽입 여부를 표결했고, 재적 인원 중 압도적인 60명이 찬성을 표하여 시민위원들은 이에 헌장이 통과되었음을 공표했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서울시는 전체 180명의 위원 중 과반 이상이 퇴장했고, 또한 표결이 되었음에도 이 사안에는 "전원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헌장 제정이 무산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하루 사이에 헌장의 제정과 좌초를 동시에 알리는 기사가 포털상에 어지러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시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1995년 민주노조운동의 결실로 출범한 민주노총과, 2004년 이래 주요 인권 현안의 중심에 있었던 인권단체연석회의와, 2008년 차별금지법 투쟁을 계기로 결집된 무지개행동이 한 목소리를 낸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근래의 성명서 중 가장 규모가 큰 연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명서가 나온 지 불과 하루만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언행이 기사화되었습니다. 인권헌장 제정에 회의적이라는 발언과 함께,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기독교 목사들을 찾아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인권배반적이며 형용모순적인 말을 다름아닌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공청회장에서 보수 기독교 단체가 테러에 가까운 일을 벌인 판국에, 그가 목사들 앞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은, 테러조직인 재건 서북청년단 앞에서 좌익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한 것과 똑같은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인권의 확대가 "정치인"이 아니라 "활동가"에게 달려있다던 그는, 그렇게 정치인의 책임을 방기한 동시에 이제까지 인권 증진에 매달려왔던 활동가들을 모욕한 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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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썰전" 86회 상영분 中, 2014.10.23. ⓒ2014. JTBC all rights reserved.
 
 
 
2. 
 
그의 말대로, 동성애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 있어 "사회적 합의"가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합의가 부족해서 저런 헌장이 통과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명목적 헌장'이라도' 통과된 이후에야 "합의"고 뭐고를 논할 수 있는 '조건'이 비로소 갖추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 빨갱이로 몰려죽은 이들에 대한 복권과 해원에 전국민적 "합의"를 기다려야 했다면, 그들은 영영 아무런 세월도 얻지 못한 채 잊혀져야 했을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든 말든, 대화의 장을 보다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 나아갈 것은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연구자로서 좌익 학살의 기억을 '논쟁'할 수 있는 장을 그토록 집요하게 만들려던 역사문제연구소의 발기인 박원순이, 어느날 낯을 바꾸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논하며 헌장을 무효로 만든 것에 사람들이 아연해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금도 대다수 중고등학교 교칙에 여전히 남아있는 동성애 학생 처벌규정과 비교했을 때, 저 힘없는 헌장 한 줄이 어떤 진지가 되어줄 것인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서울시장의 저 무심한 말이 더욱 분노스러웠는지도 모릅니다. 혐오당하지 않을 권리보다 혐오할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일베와 보수 기독교 사이의 희미한 연결고리가 박원순 서울시장에까지 가닿았을 줄은 몰랐기에 그토록 화가 났던 건지도 모릅니다. 배신감에 치를 떨던 인권단체들은 어떤 루트로도 해명을 전해오지 않는 서울시에 맞서 12월 6일, 비로소 서울시청 로비에 가부좌 틀기를 결의합니다. 6일간 이어진 무지개 농성단 연좌농성의 막이 오른 것입니다. 
 
농성 3일차 밤부터 시청 로비의 전기가 간헐적으로 끊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점거농성장의 신박한 레파토리가 여지없이 돌아왔습니다. 농성 2일차에 서울시 비서실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팅 시간을 잡아줄테니 연좌농성을 풀라"는 말을 전해왔고, 이에 연좌농성을 통틀어 사회를 보시던 김조광수 감독이 자신이 겪은 일화를 말해주었습니다. 임종석이 부시장으로 있을 때 그도 똑같은 말을 했었고, 거기에 김조 감독은 "우리가 예전에 투쟁할 때 그런 소리를 과연 믿은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했을 때, 임종석은 "그건 반민주세력이랑 싸웠을 때의 얘기고"라 답변했다고 합니다. 한결같은 낯빛을 가진 보수의 몰염치가 그렇게들 처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에 성소수자들은 의연하고 유쾌하게 맞섰습니다. 본래 12월은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각종 공연과 후원 행사가 잦은 달입니다. 연좌농성이 시작되던 그날은 HIV/AIDS 감염인 후원을 위한 제2회 RED PARTY가 예정된 날이었고, 이튿날은 언니네트워크의 소모임 "아는언니들"의 제2회 정기공연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농성 시작 당일 많은 사람들은 시청의 농성장과 종로의 후원행사장을 번갈아 오가며 양쪽의 안부를 걱정했고, "아는언니들"과 그녀들의 무대에 찬조공연한 "지_보이스"는 매일 저녁 연좌농성장의 문화제 합동공연 무대에 함께 했습니다. RED PARTY 때 활약했던 고고보이 크루 "SPIKE"도 거듭 농성장을 찾아주었습니다. 성소수자들 스스로 놀이의 문화와 인권의 의제를 얼마나 세련되게 소화하고 있는지를 몸소 알려주는 광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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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RED PARTY 장내 풍경. @50Fifty, 종로.
 
 
 
3.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6일동안 시청 로비를 찾아주었던 수많은 게이들과 레즈비언들과 여타 소수자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취재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현장에서 그들은 얼굴이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주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을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려는 것이야말로 지난 몇십년간 인권단체들이 목숨처럼 여겼던 일입니다. 숨어살아야 했고 숨어살고 싶었던 긴 세월을 지나 내가 여기 있다고, 내가 바로 성소수자라고, 내 얼굴을 찍어가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장엄했습니다. 로비 한쪽 구석에서 줄기차게 울려퍼졌던 호모포비아들의 찬송소리보다 성소수자들이 더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당당함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을 찍으려는 카메라를 향해 찍지 말라고 윽박지르던 포비아들과 비교해, 과연 이 자리에서 누가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명명백백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연좌농성의 모든 흐름들은, 참여자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빼앗지 않고 불필요한 격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장치들로 촘촘히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발언하고 공연하는 모든 팀들에게 요구되었던 끼스러운 구호들, 우스꽝스런 몸짓들은, 지나치게 타오를 분위기를 웃음으로 승화시켜주었고, 따라서 농성의 현장은 우리 일상과 보다 가까운 곳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연좌농성 현장에 이렇게 활동가가 아닌 일반 사람이 많이 오는 광경은 퍽 드문 것이었고, 이는 이전에 겪어본 수없는 실패의 경험들 위에 쌓인 성과였습니다. 그렇게 그곳의 사람들은 "내가 여기에 이렇게 살고 숨쉬는 것이 이토록 큰 의미를 갖는다"는, 일상이 곧 정치라는 뜻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셈입니다. 그들이 이룩한 것은, 정치를 일개 선거공학으로 생각하고 인권보다 지도자 옹립의 가치를 더 추켜세우던 몇몇 박원순 지지자의 그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정치였습니다. 
 
연대단체로부터 도착한 모포와 침낭들, 각계각층에서 답지된 솔찮은 액수의 성금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청 로비를 번갈아 지샌 소수자들로 넘실대던 시청 로비는, 농성 5일차에 드디어 고대하던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가집니다. 그전까지 그를 향해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활동가들의 피켓과 몸싸움과 결기어린 목소리 끝에 얻어낸 성과였습니다. 활동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시장은 적어도 닷새 전에는 했어야 했을 간단한 사과의 말과 함께 향후 논의를 지속할 것을 구두로만 약속하고는 몸을 거두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 면담결과를 들은 사람들은 시청 로비에서 장시간 향후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조별로 토론하고, 그 결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마침내 농성의 즉각적인 해산 불가와 더불어 향후 농성 유지 여부 결정을 대표단에게 위임할 것을 의결했습니다. 무거운 책임을 맡게 된 대표단은 그날 밤 긴 회의에 돌입했고, 회의는 새벽 5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회의의 결과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6일간의 연좌농성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권헌장의 공포와 시의 공식적인 사과와 논의 채널의 공식화를 끌어내지 못한 실패는 뼈아프지만, 그 자리에 모인 그 수많은 소수자들의, 스스로 더는 익명으로 살기를 거부했던 얼굴 얼굴들이야말로 이 시위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고, 그것을 실패한 기억으로 만들지 않을 의무가 우리에겐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동원도 아닌 자신의 걸음으로 나와준 그 힘들을, 과거에 그랬듯 감히 어떤 집단이 전유하거나 동원가능한 무엇으로 여기기보다, 그 걸음의 무게를 최대한 음미하고 그 걸음의 의미를 만천하에 공표할 필요가 우리에겐 있었습니다. 농성 6일차의 문화제를 끝으로, 머지 않아 이어질 또다른 연대의 장을 기약하며 연좌농성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무지개 농성단 해산 직전, 수백명의 성소수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당신의 인권이 여기 있다"라는 피켓을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거둔, 성소수자들의 유례없는 대규모 정치적 가시화의 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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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같던 6일동안 우리는 눈으로 보고 또 경험했습니다. 우리 성소수자의 존재가 바로 운동이고 투쟁이며, 또한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이것이, 우리의 선대가 그토록 눈물겹게 싸워 얻으려던 성취라는 것을. 6일간 시청 로비를 버티어준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 무지개농성단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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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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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2014-12-31 오전 09:46

* 농성 관련 기사 추가
시사in : "당신 곁에도 성 소수자가 있습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97
(차돌바우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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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쿠샤 2014-12-31 오후 20:53

저런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해 보지 못해 무척 아쉽습니다.
그래서 인권헌장은 결국 폐기되는 건가요? ㅡㅡ
제가 보는 잡지에도 관련기사가 있어서 소개하려 했는데
벌써 위에 댓글로 올리셨네요ㅎ  무지개농성단 기사는 아니지만
인권헌장과 관련된 짧고 속시원한 기고문이 있어서 링크 걸어둡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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